소설리스트

〈 19화 〉분노한 동생(1) (19/107)



〈 19화 〉분노한 동생(1)

"후-우……."

몰아쉬었던 숨을 고른 다음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한 직후 모은 힘을 쓰자마자 허무하게 뽑히는 자지.  하기에는 체력이 부족해서 대신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폰부터 찾았다.

"흐-긋! 흑! 으우읏…."

끝까지 우는 모습에 길게도 울 수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손은 사진 찍기 바빠서 거사 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남겼다. 어쩌다 보니 쓰지 못해서 거치된 삼각대가 우습게 되었지만, 어쨌든 자료는 남겼으니까. 이걸로 협박의 수단은 됐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원할 때마다 녀석을 불러 몸을 요구할지만 고민하면 됐다.

"들려?"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었어도 끝내 얼굴만은 가리길래 자나 싶어 툭 던지는 질문.

"…."

육노예로 전락한 주제에 건방지게 머리만 살짝 까딱해 거슬렸지만, 충만함에 아량으로 넘기고 준비했던 말을 전하기로 했다.

"사진도 찍었고, 여차하면 희진이 주변 애들한테 뿌릴 거니까. 그렇게 되기 싫다면 어떡해야 하는지 말 안 해도 잘 알겠지?"

찍은 사진을 확인하면서 느긋하게.

"……."

현 상황 자체를 인정하기 싫은지 다 가리지 못한 입술은  다물고 있음에도 부들거리고 있어 설마 나약해 빠진 얼굴로 화를 내는 건가 싶었다.

"대답해."

그러나 그런 생각을 금방 져버리는 건, 인상이 워낙 순한 양이라 사기꾼에게 간이라도 빼  호구 같아서.

"…응."
"응?"

긍정이었지만, 그렇게 지적해도 존댓말을 하지 않아 불편한 기색을 들어냈다.

"………네."

마침내 말투마저 복종시키니까 내심 쾌재가 하마터면 내지를 뻔하여 겨우  밖까지 치밀어 올라.

"쿡. 좋아. 그래야지."

넘치려는 흥분을 살짝 흘리고서는 아닌 척 분위기를 잡았다.

"앞으로도 내 명령에 따르도록 해. 부를 때마다 꼬박꼬박 대답하고."
이런 플레이에 재능이라도 있었는지 막힘 없이 나오는 말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
"……네."

여전히 느렸지만, 순순히 대답한 거에 만족하기로 하고 물었다.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라 해 봐. 앞으로 저는 여왕님의 명령에 따르는 육노예가 되겠습니다 라고."

역시 마무리는 자기가 직접 굴욕적인 말로 복종하겠다는 의사가 담긴 말을 해줘야겠지. 그래야 진정한 개시로 느껴져 화면을 줌해 침까지 삼키며 마치는 촬영 준비.

"……앞으로, 저는 여왕님의 명령에 따르는, 육노예가…되겠, 씁니다…."
"쿠-히히히힛!!"

진짜 할 줄은 몰라 실제로 듣게 되니까 터져 나오는 폭소를 도저히 막을  없었다. 굳게 다물었던 입술 찢어지게 깨물더니 끝내 본인 입으로 들으니까 감회가 새로워서 진짜 망가에서나 봐왔던 관계가 이루어지니까 형용할 수 없는 포만감. 식사가 아닌 거로 이렇게나 채워진 감상을 받을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좋아. 풀어줄게. 앞으로 부를 때마다 제때제때 대답하고, 항상 존댓말 하며 날 부를 때는 여왕님이라 불러. 너는 이제 내 육노예니까."

이미 일 년 치 말할 것을 전부 쏟아내며 즐거움에 흥얼거리기까지.

"……네, 여왕님…."

마지못해서 하는 대답에도 흡족하고는 아무런 의심 없이 수갑을 풀어줬다.


수갑이 풀어지자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팔.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니까 오히려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후-후 후-웅-."

그리고, 어째선지 묵묵하던 녀석의 흥얼거림을 들어야 하는지조차.

"히히힛-."
"힉-!"

엄청난 탈력감에 정신을  차리다 녀석의 웃음소리에 심히 놀라버렸다.

"음-? 왜 그래?"

본인 때문에 놀랐는데, 이런 내게 상냥한 목소리로 물으니까 낯섦에 움츠러드는 몸. 그렇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잊어버릴 즈음, 서서히 떠오르려니까 잠깐 싫은 기억에 갇혀 우스꽝스럽게 허우적댄  같았다.

"노예야. 육노예."

지금 부른 노예라는 호칭은…나보고?

"그새 잊은 거야? 하여튼, 제대로 교육이 안 된 노예라니까."

지독한 혼란 속에 손목은 화끈거리고, 하반신은 묘한 만족감에 힘이 쭉 빠져 기운이 없었다. 그러나 기억을 되살리려니까 무서워져서 공포에 짓눌려 하라는 대로 해버린 느낌. 마치 최면에라도 걸려있었던 기분이었다. 진한 갈증과 함께 얼굴을 가린 팔뚝을 치우니까 점점 환해지는 빛.

"……왁-!?"

왠지 허전한 아래를 머리 들어 확인하니까 진짜 벗은 상태라 놀랐는데, 나와 비슷하게 전라의 여자애가 있으니 소리를 안 지를 수가….

"…뭐해?"

그런 나를 시큰둥하게 쳐다보는 걸 보니 얼른 몸을 가린  꼴이 우스워졌어도 머리가 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워 주변을 살피다 옆에 놓인 이불을 얼른 덮었다.

"…중간에 기절이라도  거야?"

기절? 무슨 일이 있었나? 얘도 알몸 나도 알몸. 정확히는 상의는 입고 있지만, 도대체가….

"아, 하! 하…!"

맞아, 강간당했구나…나. 기억났다….

"…진짜 기절했었나 봐. 그럼 아까 대답한 건 기억해?"

기억한다. 자기를 여왕님이니 나를 육노예니 사진 찍은 거로 협박한 거까지.

"…하-아."

나를 이렇게 만든 가해자의 말 따위는 들을 가치가 없었기에 무시하고,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니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라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여친의 언니에게 속아 방까지 찾아갔다가 강간을 당한 꼴이라니…거기다가 사진까지 찍혀 협박이라,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일단 옷부터 입기로.

"하-…."

설마하니 내가 강간의 피해자가  줄 몰랐다.

"…대답해봐. 기억해?"

범죄를 저지른 주제에 태연하게 묻는 모습이 역겨워서 그런 표정 감추지 못하고 노려보기를 잠깐, 이내 무시하고 축 늘어진 생식기에 초라하게 걸쳐진 콘돔을 빼 물티슈나 휴지를 찾아 헤매는 눈동자.

"하-아…."

보이지 않자 한숨을 연거푸 내뱉곤 당한 짓에 비하면 의외로 차분하게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야…대답 안 해?"

그런 행동이 거슬렸는지 언성이 높아졌지만, 어차피 기분 나빠지라고 한 거라 목적은 이룬 셈.

"뭐?"

낯선 환경에서 처음으로 겪은 정신적 피해는 잠시 기억을 잃을 정도였지만,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반항적인 태도로 대들었다.

"뭐…? 뭐, 뭘 믿고 그런 식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여기엔 너의 적나라한 사진이 담겨 있다고. 이게 뿌려지기 싫으면 순순히  말을 듣는 편이 좋을 거야."

마치 자기가 잘난 듯한 겉모습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해 보이는 방식이 먹혔는지 당황한 말투로 협박하는 수단이 딸랑 사진 유포. 물론 저게 뿌려지면 나의 사회적인 모든 것이 무너지겠지만, 중3 때 일진 새끼들한테 달랑 속옷만 입은 채로 찍히며 괴롭힘당한 전적이 있어 그런지 그렇게까지 동요하진 않았다. 되레 더듬으면서 말이 많아진  녀석이었고.

"이게 뿌려지면 희진이는 어떻게 될까?"

살살 흔드는 손에 들린 폰 화면의 사진은 나로 추정되는 것이 보여서 침대에 반쯤 걸친 자세에 하반신이 피부를 그대로 노출해 자지까지 드러나 있었다.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이라 녀석은 이것만 있으면 내가 거스를 수 없을 거란 확신은 가지는데, 대체 어떤 자신감에서?

"글쎄…."

툭 까놓고 말하자면, 이거 때문에 희진이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건 크게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사진에 찍힌 건 나의 치부뿐이니, 희진이가 조심할 건 그런 나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주위에 알리는 정도. 이런 게 뿌려지면 당연히 차이겠지만, 아예 나랑 사귀었던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면 나의 존재를 모르쇠로 일관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우선 나와 연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게 없어야 하는데, 나랑 찍은 사진…은 별로 없던 거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다행이지만, 그건  서글픈데.

"어떻게 되는데?"

사람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을 경험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더니, 내가 그런 모양. 벌어진 일에 당황하기보단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그나마 나아질지 최선을 강구했다.

"하-아?"

오히려 물으니까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듯한 녀석.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거야?"

협박이 먹히지 않자 당황한 거 같은데, 실은 본인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거겠지.

"대충 알긴 하는데, 그래서?"

왕따 시절 괴롭힘을 수도 없이 당해본 나머지 협박에도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 이게 자랑은 아니어도, 이럴 땐 또 담담한 척할 수 있어 웃픈 상황.

"그래서라니…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말 기억하지? 네 입으로도 말했잖아. 내 육노예가 되겠다고."

경험했던 것을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경험이 마치 딴 사람의 기억처럼 느껴져 위화감이 들어도 분명 그렇게 말한 기억이 있었다. 협박 때문에 실질적인 효과는 없어도.

"그랬었지. 네가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말이야."

말하면서 순간순간 과정의 감각이 되살아나 찡그리는 미간에 더욱 떠올리기 싫은 사실은 마지막엔 쾌락에 이끌려 사정까지 스스로 허리를 흔들었다는 점이었다. 본능적이었어도, 그런 추악했던 본인을 인정하기 싫어서 기절한 거 같기도 하고…아무튼.

"대체 이유가 뭐야?"

예전에 나를 괴롭히던 애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이건 더더욱 궁금해졌다.

"이유라…했던  또 하는 거 같지만, 설명해줄게."

정상적인 동기를 기대하진 않아도, 그럴듯한 이유라도 알아야 다음부턴 조심할 수 있겠지.

"후-우…."

어디 변명이나 들어볼까 해서 기다리니, 얼마나 거창하게 할는지 숨 가다듬듯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너한테 돈을 바란다 거나, 도리어 희진이랑 헤어져 달란 것도 아니야."

적어도 일반적인 사유는 아닌 모양.

"그냥, 섹파하자. 희진이랑은 계속 만나도 돼. 대신에, 나랑도 어울려 줘. 그러면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어. 응?"

이유를 알려달라니까, 엉뚱한 내용에 점점 호소하며 부탁한다.

"……뭐?"

조금 뜸 들이길래 중요한 건가 싶어 진지하게 들으려 했는데, 의미가 영 꺼림칙해서 상종하기조차 싫어진 감정.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이 형사님 앞에서 변명하던 꼬락서니가  그 짝이었다. 그냥 싫다니, 괴롭히고 싶어서 그랬다니, 원색적인 변명이 아니라 어떻게든 감정에 거쳐 본질을  빼놓고 해대는 꿍꿍이들. 열이면 열 자기가 무엇 때문에 잘못했다고 뉘우치기보단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알량한 수작만 부려서 피해자인 내가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게 했었다.

"이해 안 돼? 섹파하자고. 네가 맘에 들어. 희진이도 그래서 너랑 사귄 거겠지만, 나도…그런 거 같아."

이제 와서 가슴 벅찬 고백 같은 분위기를 내도 구겨질 대로 구겨지는 얼굴은 어쩔 도리 없을 만큼 험악스레.

"…그딴 게 이유야?"

섹파라던가 내가 마음에 들었다든가 하나 같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응."

어처구니가 없는 나와 달리 나름 진심인지 여태 안 그랬으면서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니까 정지하는 사고.

"그러니까…내가 마음에 들어서 섹파…하자고?"

이 무슨 가당치나 않은 개소리인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재차 물어보니까 살짝 붉어진 표정 확인하기 무섭게 푹 숙이자 진심으로 말을 잃었다.

"…-."

여기서 지랄이란 단어가 바로 내가 해주고픈 대답. 그러나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건 오늘 하루 몇 번이나 격한 감정을 받아들이느라 두뇌의 연산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걸 거다.

"-…."

손목도 아프고 갈증도 났으며 몸에 기운은 거의 바닥 상태.

"……."

하지만 아직도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지 전라의 녀석은 징그럽게도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언니-. 누구 왔어?"
"…엑!?"

한창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와중에 익숙하면서도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불쑥.

"칫…."

그건 내 앞의 녀석도 마찬가지인지 당황한 표정. 정확히는 일을 그르친 모습에 가까웠다.

"…조용히 해."

나를 보고 입을 간수 시키면서 서둘러 옷을 입는데, 기껏 유지해왔던 냉정한 태도도 막상 희진이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해져 옷을 입고 있음에도 허리춤을 만지며 확인하는 복장.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녀석과 내가 같이 있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열심히 머리 굴리기 바빴다.

"언니? 자? 신발장에 못 보던 운동화가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 두드리는 소리에 심장이 덜컹거려서 몸은 얼어붙어도 정신은 심각하게 날뛰느라 그야말로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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