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조악한 겁탈(2)
방심한 틈을 타 녀석이 도주하진 않을까 싶었지만, 벌써 지쳤는지 그럴 낌새는 없어 엎드린 녀석을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귀엽긴."
고작 몇 번의 실랑이에 지쳤는지 온순해지니까 의기양양해져서 생각을 말하곤 주저 없이 허리춤으로 가는 손.
"무슨, 뭐하려…힣!?"
대답보단 행동으로 보여줘 차츰 바지를 벗기니까 다시 거칠게 움직이길래 고간으로 손을 집어넣자 아까의 발악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쿻-."
미묘한 감촉. 언젠가 본 짤방에 호랑이도 불알을 만지면 순해진다더니, 남자라고 다를 거 없었다.
"터지기 싫으면 고분고분하게 내 말 들어."
비록 팬티 너머였지만, 흥미로운 촉감에 바지 벗기는 것도 잊고서 요리조리 놀리는 손가락.
"끟-…!"
마치 네발짐승에게 대딸을 해주는 자세라 배덕감과 그렇게 싫어하던 녀석을 찍소리 못하도록 굴욕을 선사해졌다는 고양감에 몹시 만족스러웠다.
"쿱-! 이런 상황이라도 발기는 하는구나?"
더구나 마조 기질이 없었는지 여태 물렁물렁했던 자지가 겨우 만진 거 하나만으로 딱딱해지니까 계속해서 유지되는 기쁨. 녀석은 정말이지 괴롭힐 맛이 있는 놈이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 이제 좀 나랑 하고 싶지 않아?"
녀석을 끌어들여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원해서 해버리는 관계가 내가 바라는 관계의 형태. 그러기 위해 조악한 짓을 저질렀어도 쾌락에 빠지면 아마 저 스스로 요구해올 것이라고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끄-흩…!"
예 아니오란 대답 대신 불분명한 신음. 괴롭힘에 설레는 것도 여기까지라 질질 끌고 싶진 않았다.
"니 자지는 내 손 안에서 엄-청 불끈불끈하는데, 나도 너 때문에 젖었거든?"
스위치는 진작에 켜진 상태. 방금 녀석의 등허리에 하반신을 문대면서 애액이 팬티로 스며 나왔었다.
"나도 동정인 너처럼 얼른 처녀를 졸업하고 싶어. 그렇지만, 다른 사람은 무서우니까. 만만한 너로 할래."
제대로 된 대화 없이 듣기 좋은 신음만 내니까 괜히 녀석을 자극하고 싶어서 꺼내기 시작하는 속내.
"나 말야, 네가 마음에 드는데. 사귀는 건 계속 희진이랑 사귀고, 나랑은 섹스만 하자."
지난번 녀석에게 설명이 부족했단 생각이 들어 아예 직설적으로 고백했다. 녀석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지 감정이 충만해져서 하지 않아도 될 말조차 꺼낸 거 같지만.
"…으-읗, 끅-…!"
찐따미 물씬 들은 야릇한 호흡이 싫지는 않았어도 계속 대답을 회피만 하니까 슬슬 짜증이 났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녀석의 다리가 몹시 흔들려서 경련이 아닌가 싶은 떨림의 세기.
"하-악! 파-하…!"
이대로 기절할까 봐 혹시나 해서 쥐고 있던 손을 놓으니, 내가 타고 있었음에도 경직되어 솟았다 굳었던 허리가 이내 축-하고 털썩 침대로 떨어졌다.
"아, 미안. 키-힛!"
설마하니 낭심을 붙잡히니까 말 한마디 전혀 할 수 없을 줄은….
"그렇다고 그만두진 않을 거야."
불알을 만지기 전보다 힘이 빠진 지금, 기회라 여기고 등에서 내려 흐느적한 바지를 내렸다.
"흑, 제발…."
그사이 고통스러운 부분을 조금 회복했는지 애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녀석의 눈가엔 이미 흘린 듯한 눈물 자국.
"그만둘 생각 없으니까,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통증에 눈물마저 드러냈어도 마음 약해지기는커녕 흥분이 돋았다.
"몸 돌려 봐."
바지를 벗기려다 문득 발목에 걸쳐 있으면 도망치지 못할 거 같아서 정지. 팬티를 벗기기엔 짓누르는 몸이 거치적거려서 상반신이 보이게끔 명령했다.
"끄-흫, 흑!"
그러나 녀석은 훌쩍이기만 하면서 침대에 파묻힌 채 좌우로 흔드는 고개.
"확 비틀어 버리기 전에 몸 돌려."
협박이 약했던 건지 말을 듣지 않자 놓았던 손을 다시 덥석 잡았다.
"흫-! …응."
역시 고통 앞에선 별수 없이 순한 양이 되네.
"쿠-훟, 좋아."
낑낑대며 팬티를 벗기려다 허리를 들어주지 않아 지쳐서 벗기는 것은 미뤄두고, 끝내 몸을 돌리는 녀석은 여태 울었던 흔적을 보여주긴 싫었는지 수갑이 채워진 팔로 부들대며 얼굴을 가렸다. 그 부끄러움과 약간의 저항이 더욱 흥분돼서 만지는 다리 사이. 녀석을 밑에 둔 상태로 얼른 허리를 흔들고 싶은 욕구가 일렁였다.
"하-아, 드뎌…."
뒷말은 삼간 채, 녀석에게 올라타 아래를 비비니까 팬티로 솟아오르는 자지의 윤곽. 나도 같이 음부를 대서 서로의 애액을 묻히려 비볐다.
"하지 마…."
이제 좀 포기할 때도 됐을 텐데, 자지는 꿋꿋해졌으면서 싫다고 말하니까 괜히 생기는 심술.
"이렇게 자지를 빨딱 세워놓곳-…전혀 설득력이 없는데?"
녀석의 가슴에 손을 얹어 선점하고는 열심히 성욕을 문지르면서 나도 신음이 나오려는 걸 확인했다.
"싫어, 그만…!"
단조로운 반항이 지겨워질 즈음.
"엫? 큿-!"
단념했을 거란 예상을 엎고 녀석이 나를 밀어내려고 상체를 들었다.
"이게…! 킇-!"
두 팔은 좌우로 흔들면서 다리와 허리는 일어나고픈 반동에 앞으로 휘청이는 몸의 중심. 녀석을 깔고 앉았어도 기세는 완전히 꺾인 것이 아님을 깨닫자 다그치려 손 닿는 대로 밀었다. 이윽고 하체가 배 위로 옮겨져 수갑의 사슬을 낚아서 짓누르니까 겨우 맞춰진 힘의 균형.
"켁! 켁!"
더불어 다른 손이 녀석의 목을 누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얌전히 있어."
처음 발버둥 친 것은 전력이 아니었음을 인지하곤 목을 누른 손에 힘을 빼면서 살며시 주는 겁. 그러나 이게 서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대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그만…커-흑!"
손은 잡혔지만, 빠져나가려고 몸을 흔드니까 승마를 한 것마냥 버티기 위해 저절로 힘이 드는 허벅지. 상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대부분 직접 맞닥뜨렸을 때 체감하는 것이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어도 이미 되돌릴 수 없었기에 허약한 손과 몸으로 간신히 버티는 실정이었다.
"읏-!"
수갑에 묶인 채 깔렸어도 발악하는 몸을 완전히 구속하기란 어려워서 대응이 곤혹스러워지다 곧.
"엇-…?!"
제 몸 하나 버티기 어려워지자 신경질적으로 바뀐 음성에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음에도 생전 폭력을 쓴 적 없던 손이 빠져나가려던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해버렸다.
"…!?"
무심코 날린 손뼉에 쳤다는 감촉은 확실히.
"어…?"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맞혔다는 충격에 모든 것이 멈춘 기분은 찰나, 무의식적으로 때렸다는 걸 자각하고선 도리어 때린 본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니, 니가 반항하니까…난, 난…!"
처음으로 남에게 손을 댄 강경책에 정작 스스로 가장 놀란 건 무척 꼴사나운 일. 어쩌면 자신에게 하는 변명처럼 그런 거라고 말하려다 녀석도 놀랐는지 얼얼함에 정신 못 차리고 멍한 표정을 보니 무언가 깨달아서 하던 말을 끊고서 옆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챙겨 뒤로 물러났다.
"……-."
그대로 아주 잠깐. 상황을 살피고서 고막이 나갔는지 동공이 풀린 것까지 확인하고는 서둘러 바지를 벗겼다.
"…."
실컷 비웃고 성공을 마지아니하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도 얼른 파악해서 이어나가는 짓은 그나마 계획이라고 부를만한 작전에 실용성 있는 것을 남기려고. 때린 손은 욱신거렸지만, 덕분에 조용해져서 재빨리 카메라 앱을 실행하고 찍는 사진은 팬티까지 벗겨서 적나라한…실제 남자의 하반신이었다.
"뭘 하려…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해도 안쓰러운 의문 따위 조용히 무시하며 찰칵 소리를 내는 스마트폰.
"대체 무슨…."
사진 찍는 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상체를 세우니까 나타난 표정이 볼만해서 혼자 보고 즐기기엔 아까울 정도였다.
"…크-악!"
그러나 또 반항을 시도하면 골치 아파지기에 타이밍에 맞춰 찍힌 한 장을 끝으로. 황급히 다가오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내어 침대지만, 아플 만치 뒤통수를 박고 흔들리게 했다.
"가만히 있으랬지."
비명에 가깝던 명령에서 차분함을 찾은 여유로움의 이유는 단지 첫 시도가 어려웠을 뿐이라. 두 번째부턴 무척 과감해져서 거침없이 손찌검하는 건 방금 막 처음 때린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손길이었다.
"큭-! 큿! 읍! 그만!"
그에 반발이 거세지자 그런 몸짓을 보며 미련하게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려고 하면 밀치다 얼굴을 잡더니 방심한 틈에 또 밀어서 혼자 타의적인 상체운동으로 지치게 하려는 전략.
"멈췃!! 윽!"
특히나 무서운 점은 이게 의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었다. 더없이 순진하고도 악독하다고 볼 수도 있는 거리낄 것 없는 행위.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죽을 수 있는 생명을 가지고 노는 듯한 위태로운 행태와 비슷했다.
"키-힛. 키히힛."
더군다나 즐겁다는 듯한 웃음소리로 이러니까 당하는 처지에선 죽을 맛. 흡사 맹수가 먹잇감을 가지고 먹으려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직전까지 가지고 노는 듯한 인상마저 주면서 괴롭힘당하는 것과 커다란 차이의 공포를 느꼈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드디어 포기한 듯 남자치곤 가녀린 팔뚝으로 우는 얼굴을 들키지 않게 가리는 행동. 수갑을 찬 상태라 두 손을 모으고 감춰버린 자세가 뜻밖에 나약하고 섹시해서 가엽다기보단 왜곡된 성욕인 양 흥분됐다.
"하-아, 후-…있잖아. 희진이, 사랑하지?"
체격은 자신보다 여려 보여도 역시 남자 여자의 차이가 있어 제압하느라 지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저도 모르게 뱉은 말. 하나 녀석을 가지고 노는 것이 제법 재밌었는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건, 왜…?"
여태껏 갑작스러움의 연속이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찰나에 변해버린 의아하단 감정.
"그럼 계속 희진일 사랑하면 돼. 나랑은 섹스만 하고. 그럼 문제없지?"
제 딴에는 충분히 계획했으나 실상은 현실성이 부족했단 결론으로 끝나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상대의 조바심과 자신의 주저함 없는 돌진에 어쩌다 성공한 상황에서 벌어질 일이란 완성되지 못하고 우연으로 끝나기 마련. 그 조잡함을 모르고서 혼자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본심을 털어놓기 시작해버렸다.
"…뭐?"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단번에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마음은 연인에게 그대로 둔 채 육체만 자신과 어울려달라는 속내.
"이해 못 하겠어? 거두절미하고, 나랑 섹파하자니까."
아직도 자신이 여린 소녀 감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수줍으면서 강렬한 고백으로 착각하며 얼굴을 붉히는 자신을 상상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얼굴엔 그득하니 당황스러움이 역력해서 표정은 마치 쑥스러움과 동떨어진 광기 그 자체가 눈에 비쳤다.
"…싫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흐름에 이해하는 게 늦었지만, 확실히 표현하는 거부 의사.
"난 좋아."
상대방의 의견 따위 상관없다는 태도로 처음 내성적이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미친……."
수줍은 성격이란 건 어디까지나 자가판단에 불과했지만.
"쿠후후후후-!"
녀석의 표현처럼 정상이라 보기 힘든 자태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때가 거짓말처럼 표정이 풍부해져 나쁜 의미로 웃고 있었다.
"다들 그렇다 하더라고. 가족도, 친척도. 동생도- 오빠도…."
무슨 사연이라도 말하려는지 날뛰던 억양이 잦아들고.
"아무렴 어때. 난 지금의 내가 너무나 만족스러운걸."
그러길 잠시, 구태여 입을 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됐는지 내용이 길어지려던 차에 끊었다.
"나도 너처럼 희진이가 좋아. 그야 그럴만한 게, 이렇게나 내 타입의 남자를 데리고 와줬잖아?"
그동안 말수가 적었던 건 굳이 그러지 않았단 걸 증명하듯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혼잣말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희진이랑 헤어지란 소린 안 할게. 그냥, 단순한 이야기야…나랑 몸만 섞으면서 지내기만 하면 돼. 어때? 어렵지 않지?"
하고 싶은 말만 하느라 상대방이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대하는지 눈에 안 들어오다가도 상기 된 머릿속이 정리되자 흐려졌던 초점이 돌아와 확인한 반응은 누가 봐도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게 말이 될 거 같아!? 난, 싫어…!"
어쩌면 구애와 같은 본심에 한결같은 대답.
"있잖아, 여기까지 왔는데…네가 좋고 싫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아직도 이해 못 하겠어?"
싫다는 감정이 너무나도 적나라해서 머리론 받아들여도 가시지 않는 불쾌함 감출 수 없이 내색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