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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조잡한 덫(3) (12/107)



〈 12화 〉조잡한 덫(3)

"긓, 그게, 그러니까…."

앞에선 낮게 깔았어도 사근사근 들리는 목소리의 희진이가. 양쪽으론 가녀렸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묵묵히 가로막은 팔이, 눈을 굴려 아래로 가니까 언제나 남자를 자기 뜻대로 할  있을 자신감의 증거가  가두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 샴푸 냄새. 좋아, 좋지만…수그러들지 않아…. 하지만, 처음인데. 이런 식으로 진짜 괜찮은 건가? 매번 할 것처럼 놀리더니 이번에도 장난이라고 하면 어쩌지? 설마…그렇지만, 콘돔 안 챙겼는데….


"후-웅?"


망설일 대로 망설이는 사이 고개를 살짝 기웃하고 모르는 척 눈웃음 애교를 보게 되니까 정신이 아득해져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흫-! 아니. 그, 개…괜찮아, 끙-…."

단지, 지난주에도 이랬던 기시감에 녀석이 떠올라서 끊길 뻔한 이성의 끈이 그나마 실낱같이 남았기에 고뇌하다 번뇌를 물리치고 간신히. 끝내 거부하면서도 아쉬움에 짙은 신음을 묵혀야 했다.


"…그래?"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답에 용기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어서 그런지 가슴을 두근거리게끔 했던 매혹적인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싸늘해진 음성.


"…겁쟁이."
"힉!?"

이어진 매서운 타격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콩닥거리던 형체가 얼어붙어 쾅 하고 때린 듯한 격통의 착각이 느껴졌다.

지, 진짜였나? 진짜지? 당연히, 이거까지 장난이라고 했으면 난….

두근거렸던 가슴 철렁이게 냉담한 한 마디에 억장이 우르르 무너지는 착각을 느꼈다.

"미, 미안…."


자신의 막막해진 심정을 돌아보려다 사과할까 말까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내뱉어버린 말. 차라리 이럴 거면 시도라도 해보고 눈치를   그랬다. 그랬다면 만약 실제로 하진 않았더라도 조금은 남자다워졌다며 그걸 가지고 놀릴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읓…-."

넘어지다시피 기울어졌던 상체가 물러나 나 대신 외로움을 달래듯 다시금 인형을 끌어안았다. 선택만 잘했다면 저 풍만한 가슴 사이 들어간 게 인형이 아니라  얼굴이었을지도.

"아니야 오빠. 연인 사이인데도 한 달째 손잡는 것조차 힘들어서 기껏 용기 내 떠먹여 주려고 했더니 그런 것도 모르고 겁쟁이처럼 굴길래 조금 짜증이 난 거뿐이니까."


아…지뢰다. 절대로 명백하게.

"아 맞다. 오빠 겁쟁이지?"
"읏…!"

민망함과 자괴감에 고개를  숙이면서 딱히 어떠한 반론도   없었다.  먹은 벙어리처럼 죄지은 태도에 쳐다보기가 무서워지는 눈매.


"하-아. 줘도  먹는 오빠가 남친이라 친구들이랑 애인 얘기 하면 난 쓸쓸히 듣기만 해야겠네. 오빠라는 남친이 있음에도."

듣는  울적해지라고 마지막 단어는 하나하나 강조해서 말한다.


"…흧-."


매번 비슷한 장난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만 하는  알았는데, 정작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내게 실망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전부 진심이었는데 내가 하도 건드리질 못하니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던 걸지도 모를 일. 혹시 녀석이 말했던 희진이에 대한 이야기가 제 딴엔 경고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숫기 없이 굴다간 진짜 떠나가 버릴지도 모르니 처신 잘하라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녀석과 연습이니 뭐니 하며 어울릴 싶은 생각은 없었다.

"…-."

우물쭈물하던 입술 속으로 사과의 말이 올라오려다가 이런 일에 일일이 미안해하지 말라던 소리가 떠올라 꾸-욱. 대신에 반성하는 자세를 하여 어느새 소파 위로 앉아 침울하니 떨어뜨린 고개.

"…히힛-! 농담이야 오빠."

이번엔 자기도 과했던 것을 인정하는 건지  반응을 길게 즐기지 않고 먼저 기분을 풀었다. 사실 처음 겪는 진한 수위에 아무런 대처를 못 했던 거지만.

"그러니까 너무 풀 죽지 마."

그래도 싸늘했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누그러져서 다정다감함이 방금을 생각하면 조금 위화감이 있었어도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가려는 느낌이 만연하여 넘겼다.

"으-응…, …-!?"

처진 기분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어수선한 표정을 정리하고 얼굴을 살짝 드니까 문득 뺨에서 느껴지는 손길이 서로 마주  수 있도록 가볍게. 다시 장난을 치려고 하기엔 새침했던 눈가가 사뭇 진지해져서 지긋한 눈초리에 예쁜 미모를 가졌음에도 멋지다는 감정이 살짝 들었다. 그러면서 차분히 감상하는 시선.

"그래도 오빤…조금 대범하질 필요가 있어."

말로는 선뜻 위로하지만, 희진이의 타박처럼 조금은 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게 희진이 덕분에 재차 깨닫는 거여도.

"응…맞아."


한심하게, 그것도 연하의 여자친구가 리드하는 꼴은 소심한 내가 되돌아봐도 고쳐야 할 부분이다. 그걸 희진이가 툭툭 내뱉는 대로 말하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친한 만큼 고쳐야  부분을 지적하는 건 몹시 중요하니까. 때론 우습게 장난치는 거로 보여도 착실하게 대화를 나눌 만큼 나를 생각하는 걸 알기에 나 또한 그런 희진이를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러니까 오빠, 우리…."

라는 생각도 잠시. 진중했던 이목이 조금 부담스레 가까워져서 자칫 잘못하다간 맞닿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에 벗어날까 해도 아까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터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대로 키스…하는 건가? 먼저 다가오는데 나도 다가가야….

"공포영화 보자."

가야…?

"…힉-!!?"


좋은 분위기로 나아지길래 이번엔 실패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잡는 사이 방심하고 들은 내용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싫어?"

반사적으로 거부반응 보이며 떨어지니까 손이 허공을 들게 돼서 기껏 상기 된 분위기가 허무해진 탓에 잔잔히 살벌해진 목소리.

"아, 아니야. 봐야지…응, 그래. 너무…무서운 것만 아니면, 읏-…."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다 작아지는 발언에 힘은 점차 빠져갔다. 어째 아까의 변화무쌍함이 지금을 위한 대범함일지도 모를 의심. 그러나 싫다고 거절하면 진짜 헤어나올  없는 늪에 빠질지 모를 일이었다.

"웅! 기대해 오빠. 무-섭지 않으니까-!"

…아, 이런.

아무래도 연계에 당한 거 같았다.

"어…응."

암만 남자답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하고 희진이에게 미안해해도, 체질이나 다름없이 무서운 게 질색인 내게 단지 재밌단 이유 하나로 보자는 희진이가 가끔 서글프나. 굳어버린 표정 한쪽 입꼬리만 간신히 떨면서 몸으로부터의 생리적 거부감을 다부지게 저항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응…."


그래도, 희진이가 좋아해 주니깐, 견뎌야지.


모성을 자극하는 외모와 행동이 남자 입장에서 수치심을 느낄지 몰라도 여자인 내가 보기엔 너무나 귀여워서 꼬-옥 안아주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가끔 지나칠 때가 있긴 했어도 그건 여자의 애교로 봐줬으면 싶은 이기심. 지금도 이렇게 어서 괴롭혀달라고 온몸으로 부들거리는데, 참고 지나칠 만큼 난 점잖지 못했다.


"이-힣!?"

지금까지 이런 귀여운 생명을 아무도 손대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 경황없이 얼른 데려왔지만, 혹여 쉬운 여자라고 느낄까 봐 대하기 어려워서 어설펐던 점은 사실 연애가 이번이 처음이라.

"후-우…괜찮아, 괜찮아…."


눈을 감으면 보지 않아도  장면을 순전히 내가 실망할까 봐 애써 뜬 눈으로 주시하며 자기최면을 건다. 정말이지…이런 점에서 꼼꼼하니 귀엽기 그지없어서는.

"히힛-."


어차피 오빠야 소심한 성격 탓에 고백하지 않고 동생 오빠로 시작해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데도 진전이 있을 거 같지 않았으니까. 모두와 두루 친한 것과 별개로 연애에 대해서는 별생각 없다가 당면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친구들에게도 묻고 연애 소설을 읽어도 내가 원하는 것과 달랐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으-햐, 앍!? 아하하……."

쉽게 예시로 들어 도화지에 부푼 꿈을 그려도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실망스러운 기분. 게다가 이건 주위에 조언을 구해도 결국, 내 손으로 그리는 거였으니까.

"뎃-…헿."

남사친들이나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 자리에서 스킨십에 관해 그리 생각이 없었어도 애들 앞에서 오빠와 살이 닿는 건 의식할수록 부끄러워져 허둥거리기 마련이었다.


"으으…!"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둘만 있는 자리. 그게 오빠의 거부에도 끝까지 괜찮다며 초대한 이유였다. 그렇지만, 집에 초대해도 기대했던 것과 반대로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됐고. 오빠가 무서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시청하는 공포영화에 몰래 이런저런 장난을 쳐도 무서움에 그런 건지 때론  장난을 무시하기도 했다.

"이, 있지? 희진…아?"

하지만, 힘들어하는 대신 옆에서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테니 이걸로 용서해주겠지.

"웅- 오빠. 옆에 있어. 내 맨가슴 안 느껴져?"

무서워하는 오빠의 장점이자 단점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옆에서 무슨 짓을 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이렇게 무서움에 벌벌 떨며 영화에 집중하는 사이 실제로  가슴을 여러 번 만지고  내줬지만, 그걸 전혀 신경 쓰는 눈친 아니었으니까.

"있구나, 헿-. 다해흐야앗!!? 힉!"

사실 부끄럼쟁이인 이런 나와 비슷하게 오빠도 숙맥이지만 내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읗-!? 헤헿…어, 엏?!?"


그게 너무 잘 보여서 탈이어도. 항상 자격지심을 지니고 다니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 이대로 행동하더라도 귀여워 그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괜히 혼자서 잘해보려고 끙끙거리지만 말고.


"흐흫-흫흫…."


내가 안아주지 않으면 누가 안아 줄까?

"재밌찌-? 오빠."


아니, 내가 안아줘야지.

"아-핡!? 앝앝앝앝…!"


다른 누구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이 즐거움은.


"헿헿…엩, 으으…."

이렇게 귀여운데 나보다 연상이란 점도 뜻밖에 플러스로 작용하여  그대로 취향저격이었다. 어떤 식으로 대해도 지겨울 일이 없어서, 그건 당연히 지금도.

"오-빠. 무서워한다면서 너무 영화만 보는  아니야? 나도 쫌 바죠."


솔직히 공포영화에 대해서 별 흥미는 없었다. 무섭다기보단 껄끄러워서 보기 그렇다는 감상.

"오빠…좋아해."

대신 자주 장난칠 때도 낯부끄럽던 애교가 지금이라면 스스럼없이 시도해볼 만한 좋은 실전이자 연습 상황이기에 마음껏 해보고 싶은 욕망을 표출했다.

"우리 쟈기 뽀뽀해주까?"


그야 본래의 목적은 다름 아닌 오빠였기에 영화를 보고 놀라 겁에 벌벌 떨어 귀여운 동물 같은 오빠의 반응을 보고 달래주는 행위.


"우와앍!! 하-! 후-우…."

아깐 내 기분 맞춰주려고 열심히 머리 굴리던 게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으나, 현실은 좀처럼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치-."

모처럼 평소에  수 없던 애굣로 중무장 해도 받아주지 않으면 내심 섭섭함이 슬쩍.
내가 보자고 해놓고서 무서워하면서도 집중해서 리액션하는 오빠의 모습은 예능에서 웃기려고 반응하는 프로의 모습이 겹쳐 보여 간혹 방해하면 안 될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 덕에 선을 넘을 뻔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아아아앍, 힛!?"


예를 들면 귀에 바람을 넣는다거나.

"으그그그그, 악! 느껴져! 아-흙!"

은근슬쩍 민망하게 등을 훑으면서 몸을 기댄 반대쪽 옆구리를 손으로 짚는다거나. 어릴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괜히 못되게 굴고 장난치는지 이해가 됐다.


"이히히히히…."

가끔 이런 행복이 정말 나만 즐거운 건 아닐까 싶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음에도 불안한 생각이 잠깐.

"힑…-!?"


너무 장난이라고만 변명하니까 진짜로 의도했을 때 역시 결단을 못 하니 자초했음에도 탓하고 싶은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

오빠는 항상 내가 아무렇지 않게 장난으로 유혹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할 때마다 엄청 용기 내서  거니까. 아무리 귀엽게 반응하며 피해도 애인이니까, 조금은 남자답게 굴며 박력을 보여줬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다.


"흐-햐알, 압! 하아아-…."

그렇게 대하다가도 이렇게 무서워할 때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싶어 돌연히 이런 내게 지쳐 헤어지잔 말을 할까 내심 두려웠지만, 이제 겨우 한 달. 너무 앞서 생각하는 거 같아 상체를 비비적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오빠에게 더욱 엉겨 붙었다.





"후우우우-…."


끝에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덜덜 떨더니, 지루했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니까 긴장이 풀린 탓에 액체괴물처럼 소파 밑으로 흘러내릴 뻔한 걸 붙잡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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