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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타념(3) (9/107)



〈 9화 〉타념(3)

"웅-? 히히히…오-빠?"

그 말을 듣자마자 화색이 돋더니 언제나 그러하듯 건수를 잡고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얼굴로 돌변했다. 그래봤자 맹수가 아닌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자태였지만, 그게 여자친구란 사실이 너무나 귀엽다가도 당장은 무서운 것이 돌이킬  없는 현실.

"어, 응…?"

너무 나댔나? 실수한 건가? 그런 거겠지? 아무리 사귀고 있어도 남친이라도 이런 드립은 안 좋았으려나? 젠장 젠장 젠장!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소-름.

눈과 입은 웃고 있지만, 웃음소리 자체가 묵음이라 표정만 웃고 있다.

"배우다니? 아니야."

애써 진정하며 변명이라고 둘러댄 것이 부정 한 마디. 이 상태로는 금방 느꼈던 감동이 오싹한 감정으로 변모해버릴지 모른단 두려움에 말초신경이 곤두섰다.

"어, 그…사실이잖아? 희진이는 먹는 모습도 예쁘고. 겉으로 봤을  가슴…말고는 딱히 살이 찐 거 같지도 않으니까…."

겨우겨우 둘러댄 답변을 말하면서 망했다고 체념하며 되는대로 지껄이는 형태. 눈도 질끈 감고 피할 수 없어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매가 나를 더욱더 괴롭게 했다.

"이히히히히. 내가 그렇게 예뻐 오빠?"

올려다보는 희진이의 표정에서 활짝 미소가 번지니까 뚝 하고 멈춰버린 두려움. 예쁘냐는 질문에 서둘러 응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도 막…크고?"

자기가 말해놓고 가슴이란 단어에 창피해하는 수줍음.

"…응!"

이에 쑥스러움을 감추려 큰 목소리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꽃처럼 만개한 표정에 묘한 안심이 됐다.

"설마 오빠한테서 가슴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 헤-헿."

나쁘지만은 않단 표현치곤 콧소리가 섞인 어조에 직감적으로 넘긴 위기.

"그러면 이제 오빠 놀릴 때 좀  수위를 올려도 되는 거지?"

어찌어찌 넘겼다고 안도하려는 차에 따라온 대화는 앞으로의 고단함을 예고했다.

"어? 아, 그…야한, 아니, 그런 건…싫은  아니지만, 그게…."

이번 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는 것이 마땅치 않아 당황하여 허둥지둥.

"이히히-장난이야 오빠. 아-유 귀여워. 히히."

지식의 한계에 부딪혀 어쩔  몰라하는 반응을  즐겼는지 양 볼에 손바닥을 대며 진정시키는 손길을 그저 받아들였다.

"아, 응-…고마워."

그야 뭐, 나도 싫진 않으니까….

"좋아. 가자 오빠.  케이크 먹을 테니까. 오빤 나중에  젖 먹어."
"푸-헭!?"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들을  들은 사람처럼 쳐다보니까 본인도 낯뜨거웠는지 빨개진 얼굴로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어 도망치듯 먼저 카페로 가버렸다.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얼른 자리부터 선점해 않더니, 곧 핸드백만 의자에 두고 기립. 묘하게 서두르는 나와 달리 차분한 인기척의  따라오는 오빠를 의식하며 빨개진 얼굴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케이크가 놓인 진열장으로 총총 걸었다.

"힛-!"

쇼윈도에 비친 케이크에 눈독을 들이다 슬그머니 다가오는 인영에 흐릿하게 비친 건 역시나 오빠의 귀여운 인상. 허리를 숙여 무엇을 고를까 살피다 보니 오빠가 높이 있는 게 살짝 어색했다.

"훗…골랐어 오빠?"

막 진열된 디저트들을 확인했으면서 혹여나 내 창에 비친 부끄러움을 보일까 각도상 사각이 되게 고개를 숙이면서 보채는 것은 괜스레.

"어, 음- 아직."

여유를 주지 않았으면서 골랐냐고 질문했던  다시 생각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마음이 조급해지니까 얼렁뚱땅해지는 것도 순간.

"후-웅, 맛있는  많으니까."

고르지 못한 것이 당연한 대답에 적당히 긍정하면서 이 와중에도  억지를 들어주려 서둘러 메뉴판을 향해 고갤 돌린다.  봐도 티가 나는 귀여움에 그만 옆구리를 쿡쿡 찔러 장난치려는 마음을 꾹 참고서 마저 메뉴를 골랐다.

"어-음, 난…초코우유로 할게."

무얼 고를지 고민하며 길게 늘이는 감탄사가 그리 오래 가지 않고 금방 정하는 음료. 인제 보니 서로 다른 메뉴판을 보고 있어서 나는 디저트, 오빠는 음료류를 보고 있었다.

"우유만 오빠? 케잌은?"

배부르다고 했지마는, 기왕에 온 거 비싸도 좋으니 달콤한 디저트를 먹고파 골라줬으면 하는 바람. 그런 심정을 모르고 은연히 사양하니까 앞선 수줍음은 죽고 돌연 심술이 생겼다.

"응…괜찮아."

어쩌면이란 기대를 저버리고서 무척 실망스러운 대답.

"정말?"

어차피 내가 사는 건데 한 입이라도 먹었으면 싶었다. 아니면, 내가 사는 거라서 조심스러운 걸까? 그런 거라면 고맙지만, 괜찮다고 했으니 사양하지 않았으면 싶은 심정.

"응. 배가 좀, 하하…."

…이러니까 받기만 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지.

"-…."

남자치곤 입이 작은 건 알겠지만, 같이 먹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몰라주면 어정쩡한 아쉬움만 덩그러니. 그렇다고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오묘함이 들어서 애정놀음을 주도하는 것도 놀릴 때나 재밌지 일방적이면 분명 둘 중 하난 먼저 지칠 거다.

"…난 배고픈데?"

본인이 고르는 것에 뜬금없이 내가 배고프다는 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알아차리겠지. 내가 사는 거고 내가 먹고 싶고 하니까.

"아-! 음…."

이만큼 어필했으니 대략 감지한  같은데, 결단력의 부실함이 문제일까? 짐짓 망설이는 까닭에 이걸로 오빠가 행동하기 조금 부족해 보였다.

"오빠. 이거 예쁘다."

가장 잘 팔리는 무지개 크레이프를 가리키며 케이클 가로막는 유리를 손끝으로 톡톡.

"이건 맛있어 보이고."

이어서 지목한 건 오빠가 좋아하는 초코로 범벅이 된 초콜릿 케이크로, 고른 후 확인하니까 공교롭게도 선택한 것이 각각 판매 순위 1위와 2위였다.

"아- 그럼 난 이거…먹을게."

그래서 고를 줄 알았던 초코를 제치고 무지개를 고르자 의아했지만, 순서와 상관없이 원하던 바를 이뤘기에 히죽 올라가는 입꼬리.

"응!"

 가지 아쉬운 건 결국 내가 고른  중에 하나 사도록 유도하는 꼴이라는 점이었다. 하나 첫술에 배부를  없는 법. 앞으로 오빠와의 시간은 많았다. 우린 아직 해봐야 이제 겨우 고작 한  사귄 사이였으니까.

"그럼 주문할게."

메뉴를 고르는 걸을 끝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지나치려 하자 무심코 손이 나가 오빠를 막았다.

"아니야 오빠. 내가 주문할게. 겸사겸사 계산도 하고. 그러니 오빤 자리에 가서 앉아 있어."

이대로 주문까지 하게 하면 자기가 계산할 것이 뻔했기에 어깨까지 잡으니까 주저하는 몸짓.

"아-, 응. 그럼 난 초코우유 말고 그냥 우유로 해줘."

예상대로 내가 막지 않았다면 본인이 계산하고 말았을 거다. 그렇긴 한데, 아무리 초콜릿을 좋아해도 초코 투성인 케이크에 우유까지 초코면 너무 자극적이라 먹기 힘들겠지.

"웅-! 히히."

끝에서 메뉴를 바꾼 이유를 추론하며 끄덕이고는 바로 옆의 카운터로 향하고 주문했다. 그래도 같이 먹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아준 건 내심 흐뭇. 좀 늦었지만, 답답하진 않았으니까. 모두 만들어진 제품이라 나오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란 생각에 주문하면서 대기했다.

"자리로 가셔서 벨이 진동하면 와주시기 바랍니다."

뒤이어 카드로 계산하니까 돌아오는 건 진동벨.

"…네-."

기다린다고 해봤자 단지 일이 분에 불과할 텐데, 자리로 가라니까 머뭇거리기 애매하여 냉큼 벨을 받아 오빠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영수증을 보니까 선명하게 적힌 내가 먹고 싶은 것과 내가 추천한 케이크에 우유와 딸기우유.

"고마워. 잘 먹을게."

아직 음식도 나오지 않았는데 하는 인사지만, 얌전하면서도 예의 있는 성격이 좋아 사귀는 거니까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었다.

"히히, 웅-! 맛있게 먹어 오빠!"

내가 사는 거니까 하고 생색을 내려다 지금까지 오빠가 해줬던 것을 떠올리니 장난이라도 그런 말을  밖으로 꺼내기 껄끄럽게 가라앉는 눈초리. 어째 눈을 피하는 거 같아 스마트폰 화면을 만지작거렸다.

'부우-웅'

"이번엔 내가 갈게."

테이블에 놓은 진동벨이 떨리자 반응하기도 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사적으로 집으면서 떠났다가 순식간에 돌아오는 오빠.

"와, 맛있겠다."

묘하게 처진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쟁반을 내려놓으면서 의도적으로 알  있게 감상을 표현한다.

"그러게 오빠, 힣-."

나도 이러한 기류는 달갑지 않았기에 동조하며 가볍게 미소를 힛-. 형형색색으로 이목을 끄는 무지개 크레이프를 자신의 앞에 두고는 이미 서로 앞에 주문한 것을 두었음에도 좀 더 먹기 편하게 세팅하니까 도와줄까 싶다가도 이미 다 했기에 움직이려던 손이 무안해졌다. 사실 이런 순간의 변화 따윈 그다지 대수롭지 않아서, 잠깐의 침묵은 정말로 아무 생각 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잠깐 딴 세상에 다녀온 것처럼.

"사진 찍을 거지?"
"응?"

오빠의 물음에  나를 생각해 배려한 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신경 쓰게 된다.

"음-…이거라면 그럴 가치가 있긴 한데."

혹시 예쁘다고 한  배려해서 상대적으로 단맛이 덜하니까 사진만 찍고 자기가 먹으려고 앞에 둔 건 아닐까…하고.

"후-움…어떻게 할까?"

입으로는 고민스러웠어도 손은 이미 주무르기만 하던 스마트폰을 고이 잡아 예쁘게 찍히는 구도를 잡고 있었다.

"잠깐만 오빠."

화면에 잡힌 케이크는 실물과 차이가 없어도 화면의 관점이 불만이라 이리저리 트는 팔과 어깨와 상체 또는 허리.

"어떻게 찍어도 예쁘네. 굳이 오빠가 도와주지 않아도 될  같아."

저번처럼 접시에 손을 대서 음식이 돋보이게 살짝 든 다거나 할 필요 없이 케이크 하나만 나오게 할 셈이라 구태여 도와주려는 손짓을 사양했다.

'찰-칵 찰-칵'

한 장, 두 장.

"오빠. 우유 조금 뒤로 빼줄래? 응. 됐어. 이번엔 티슈. 포크 케이크랑 닿지 않게 아슬할 정도로 가까이 놓아줘. 응. 좋아."

라고 했던 주제에 실컷 요구하고 부려먹으니까 오히려 오빠도 표정이 밝아졌다.

"됐어 오빠. 고마워."

원체 이런 상태의 음식이지만, 식는다고 맛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니라서 내키는 대로 찍다가 대략 수십 장 정도 찍으니까 오빠에게 끝났다고 보내는 신호. 그러다 오빠가 포크로 케이크를 먹기 위해 절단….

"아, 오빠 잠시만. 이거 좋다."

케이크가 가장 적은 면적인 부위를 포크 옆면으로 잘라서 찍어 내린 형태가 느낌 있어서 친구들에게 사진 자랑 하려다 말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됐어. 잘했어 오빠."

먹으려다 멈춘 보람이 있게 끝에 찍은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오늘의 자랑용 사진은 이걸로 정했다고 속으로 정하며 얼마나 잘 나왔나 살피는 사진.

"히히히-있지 오빠."
"…응?"

이렇게 두고 보니까 오빠가 앙증맞게 입을 벌려 막 삼키려고 케잌을 입술에 가져다 댄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하나만 더-…."
"응-, 좋아."

이랬다저랬다 귀찮은 부탁에도 흔쾌히 들어주는 오빠에게 고마우면서도 욕망에 충실한 손끝. 겸사겸사 프로필로 바꿔 남친이랑 카페에서-란 태그를 붙이면 몹시 흡족할  같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챙겨주는 모습에 감동이라 갓 세 입에 배가 불렀다. 그것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입짼 우선 한 입 먹고 희진이가 케이크 절반을 처리할 때까지 먹지 않는  보고 직접 입에 떠먹여 준 희진이의 배려 덕분에. 물론 자기도 해달라는 표정으로 눈을 빛내서 사이좋게 떠먹여 줬지만, 창피함에 누가 쳐다보나 신경 쓰였어도 전혀 싫지 않았다.

"오빠."

단지 안타까운  이렇게 행복할 때에 그 녀석의 토-크가 신경 쓰여 잠깐잠깐 이상한 생각으로 속이 편하지 않다는 사실 하나. 마음은 콩밭이라고, 여친과 대화 중에 잘도 상념에 빠진 와중에 부르니까 용케 돌아오는 정신이었다.

"응?"

또 떠먹여 주려는 걸까 하는 기대감에  눈빛을 설마 알아차렸을까? 익숙하지 않아 여전히 부끄러웠지만, 음흉한 속마음에 싫지 않아서 명백하게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무슨 고민 있어?"

"어…!?"

그러다 뜻밖의 소리에 스쳐 가는 온갖 원인과 어쩌면 이란 생각.

"응? 고민?"

짧지 않은 정적에 마냥 없다고 잡아뗄 수 없을 만치 들켰단 걸 드러낸 말투라 움찔하는 행동까지 완벽해서 추궁하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할 자신이 없어졌다.

"항상 바보처럼 실실 웃을 때가 귀여웠는데, 지금은 뭔가 아니야."

바보 같다니…순박해서 보기 좋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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