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타념(1)
확인해볼까? 어떤 헛소리를 보냈는지.
알아서 나쁠 것은 없다고 마음먹기까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내 딴에는 노심초사하며 천고의 끝에 결정하니까 살며시 차단했던 목록을 풀자 오후에 없앴던 토-크방이 나타났다.
by특별공수
[잠깐 할 말이 있어]
[야야]
그러면서 확인하는 내용은 별거 없어서 내가 왜 확인했나 싶은 생각.
[진짜 차단했냐?]_오후 2:49
[겨우 이 정도에 삐지긴]
[이래서 동정은 안 된다니까]
[대줄 때 먹어]
[동정 자지 걸레 보지한테 차이고 후회나 하지 마라]_오후 2:50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오르는 말투에 사람 신경 긁는 것이 아주 타고난 모양이다.
"하…, 자자."
이런 거에 정신 소모하면 좋은 거 없었기에. 머리를 비워 스마트 폰을 충전시키는 곳에 놓고서 누워 눈을 감았다.
잠귀가 밝다는 점이 아무 소리에나 깬다는 거라서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운 여름밤 에어컨의 열대야모드조차 조심스러운데, 새벽에 깨니까 짜증이 부스럭거리듯 올라와 이런 지끈거림을 유발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속으로 화를 내기 위해 확인하자 빛을 내뿜는 화면. 이거 참 눈살 찌푸려지게 눈부셨다.
─2019년 6월 5일 수요일─
by특별공수
[오늘 데이트라며?]
[동정은 좋겠네]_오전 12:15
"이런, 씨…."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차라리 특정 시간에 울리지 않게 설정할까?
1_오전 12:16_[이런 늦은 시간에 연락하는 건 누구에게나 실례니까 비상시가 아닌 이상 가급적 하지 말아줘씀 좋겠어]
갑자기 밝아진 탓에 동공이 안정을 찾는 사이 눈을 감고서 답장을 치다가 무심코 오타를 확인하지 않고 전송을 눌러버렸다.
by특별공수
[ㅋ]_오전 12:16
"믙…!?"
그리고 온 한 글자는 너무나 짧고 굵어서 그런지 새벽에 잠이 확 깨게끔 하는 효과.
[괜히 지랄하지 말고 늦었으면 잠이나 자] ◎ ▶
"……하-아…."
상대할수록 그냥 한숨만 나온다.
[ ] ◎ #
속에서 해주고 싶은 말을 실컷 적다 읽고는 재빨리 지우니까 생기는 공백. 녀석이 왜 저러지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1_오전 12:16_[됐고, 용건이나 말해]
그냥 다시 차단이나 할까 싶다가도. 이러는 이유나 알고 싶어 일방적이던 대화에 껴들었다.
by특별공수
[그냥]
[동정이 설레서 잠 못 들까 봐 상대해주려고 했지]_오전 12:17
"……?"
혹시 미친 건가? 그게 아니면 이 시간에 이럴 이유가 있을 리가….
여친의 지인이랑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맞고, 가족이라면 더 친해져야 하는 게 맞는데. 이건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어졌다.
오전 12:17_[그딴 게 용건이면 다시 차단할게]
제대로 된 답변이 오지 않는다면 주저 없이 차단하려고 대기 중인 손가락.
by특별공수
[이게 용건은 아니지]
[차단을 다시 풀은 건 희진이가 걸레인가 궁금해서 그런 거지?]_오전 12:17
"…읓!"
이딴 인간 차단하고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사실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다. 헛소리라 치부하고 넘기려 해도 가족의 말이니까 마냥 그렇게 넘어가기 그래서 어디 말이나 한번 듣고 판단해보자는 게 내 생각. 그간 괜한 생각에 쉽게 떨치지 않은 단어라서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오전 12:18_[말해봐]
긍정의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듣는다는 태도가 부정은 아니라는 증거.
by특별공수
[ㅋㅋ 귀엽긴]
[그게 그렇게 궁금했어?]_오전 12:18
아니꼬운 말투에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일단 참아 본다.
[부탁해봐]
[그럼 대답해줄게]_오전 12:18
결코 쉽게 말해주지 않겠다는 의도에 원하는 게 단지 내가 부탁하는 자세인지, 아니면 다른 건지에 드는 고민. 진짜 알고나 있겠냔 생각과 과연 내가 희진이의 과거를 캐도 되는가에 대한 도의적 양심 사이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오전 12:18_[사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혼자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아 일단 한번 떠보기로.
by특별공수
[진짠데?]
[희진이 갱뱅 사진 보내줄까?]_오전 12:19
갱뱅? 그게 뭐지?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인터넷에다 검색했다.
"뭐야…? 이게."
한 명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성과 돌아가면서 집단으로 성관계를 하는 행위….
희진이가? 정말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내용에 충격을 받아 정신 차리기도 전에 계속 울리는 알람.
[머리를 조아리며 간절히 부탁해봐]
[희진이가 걸레라는 확실한 증거니까]
[간곡히 부탁하면 생각해볼게]_오전 12:19
사진…난교? 하나도 아닌 여러 명의 남자하고…희진이가.
전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내용.
[알려줘] ◎ ▶
알고 싶지 않았던 일이지만, 구태여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알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 ] ◎ #
그냥 알려달라고 하면 부탁처럼 간단히 알려주지 않을 거다. 간절히, 간곡히?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써야 할까.
[알려주세요] ◎ ▶
성의를 보여달라고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아 짤막해지는 예의. 이젠 혹시나 하는 바람의 몰카란 개념을 제외하기로 했다. 이 정도로 장난을 치면 아무리 희진이라도 화는 나니까. 만약 그렇다면 똑바로 따져야만 할 일. 이런 내용은 가볍게 넘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고민하며 쓰다 지우길 반복. 겨우 드는 결심은 찌질했던 스스로가 생각해도 제법 큰 결단이라 자찬할만한 거였다.
1_오전 12:22_[필요없어]
어차피 과거의 일이다. 아니, 과거의 일일 거다. 지금은 나랑 교제 중이니까 만나는 건 나뿐일 거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믿어야 했다.
by특별공수
[오오]
[동정이 웬일이야?]_오전 12:22
[이제 와서 멋진 척인가?]_오전 12:23
계속해서 깔보는 대화에 잇속은 없어 차단할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1_오전 12:23_[됐으니까 이것만 말해]
녀석의 말엔 과거인지 현재인지 알 수 없는 어조라 가지는 의문.
오전 12:23_[지금 만나는 남자는 나뿐이지?]
과거는 과거의 일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과거를 가지고 의식하면 절대 순탄치 않을 거라 배웠다. 인터넷 글이기에 무조건 다 믿는 건 아니라 걸러서 듣지만, 열에 하나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가 있어서 생각이 났다.
by특별공수
[ㅋㅋㅋ뭐야?]
[그런 게 궁금한 거야?]_오전 12:23
녀석이 비웃어도 좋았다. 여자의 비밀을 알지 않으려면 끝까지 묻지 않는 것이 맞았다. 그렇지만, 이것마저 알고 가지 않으면 내가…도저히 견디지를 못할 것만 같았다.
[후-음]
[어쩔까?]_오전 12:24
어쩔까는 무슨 어쩔까.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전혀 신빙성이 없어 지금까지 거짓말만 했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었다.
오전 12:24_[장난치지 말고 알려줘]
약 올리며 사람 골리는 거야 백 보 양보해서 좋지만, 함부로 지껄이는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지는 알아야 속이 편해질 거 같았다.
by특별공수
[음..]
[싫어]_오전 12:24
"이런 씨…!"
결국, 녀석에게 놀아난 꼴이라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차단하려고 움직이는 손가락.
[그렇게 궁금하면 내 방으로 와]
[증거가 있으니까]_오전 12:24
증거.
"…."
아예 거짓말이라 치부하고 차단하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끝내 차단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1_[알았어]
1_오전 12:25_[집에 놀러 가는 날 갈게]
이걸로 녀석이 원하는 대로 방에 가겠지만, 나는 이상한 짓 할 생각 없이 오로지 희진이에 대해서. 지금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뿐이다.
by특별공수
[ㅋ]
[그래]_오전 12:26
단지 그러려는 거뿐이다.
도착했다는 토-크를 남기고 시간이 남아 예매한 영화 말고 다른 건 뭐가 있나 구경. 그러기도 잠시라 캐릭터 상품을 사주면 좋아할 거 같아서 돌연 기뻐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씁쓸히 뒤돌며 안타까움에 쓴웃음.
"하아-…."
선물이라.
이제 한 달이 넘어가지만, 기념일은 한 달보다 백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학생의 신분에 용돈 말고는 모아둔 것도 크게 없어서 부모님께 기대는 실정. 조금 한심하다.
"…후-우."
뺨을 꼬집어 현실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것도 오늘은 하지 않았던 까닭은 인정하기 싫어도 새벽의 이상한 대화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괜스레 마음만 뒤숭숭해졌다. 이대로라면 희진이를 제대로 쳐다보기 어려울 것 같았고….
"하-……."
과연 온전히 대면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에 한숨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짠-!"
"왁!?"
바로 뒤에서 놀라게 하는 소리에 황급히 넘어지듯 나아가는 두 걸음.
"아하하하, 귀여워."
상큼한 목소리에 귀엽다고 말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라 금세 표정을 밝게 하곤 뒤를 돌아보았다.
"많이 기다렸어 오빠?"
아니나 다를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묻는 희진이.
"아니, 나도 방금 왔어."
토-크로 도착했단 글을 남긴 게 대략 오 분 전이지만, 실제로 만나기로 한 시간은 십 분 후라 기다렸다고 할 거까지야.
"근데 오빠. 한숨은 왜 쉰 거야?"
"어? 한, 숨…?"
한심하게 구는 모습을 보였는지, 직접적으로 묻는다. 순수하게 궁금해서 하는 질문에 대답이 곤란하여 얼버무리려 해도 서투른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아 차라리 짓궂어도 좋으니까 장난을 쳐줬으면 하는 심정.
"혹시…."
어쩌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들켰나? 아니 그럴 리는 없는데. 혹시 녀석이 이실직고했나?
"돈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어쩌면 나랑 희진이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일부러 그딴 행탤….
"……어?"
혹여 녀석과의 대화나 야릇했던 상황을 물고 늘어지면 어떤 변명을 할까 고민하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주제가 나와서 순간 멍해졌다.
"아아아-, 아니…!"
아니, 여념이 있는 거지. 평소라면 돈에 대해 아쉬운 생각을 했겠지만, 그것보단 녀석의 말이 내게 혼란을 줘서 즐거운 데이트임에도 침착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야. 그, 돈 문제가 아니고…."
아니고는 무슨…그래서, 사실을 말하려고?
영화 예매한 것을 보면 확실히 4DX로 가장 비싼 표는 맞아서 굳이 했다면 무리한 건 맞지만, 이미 예매도 다 했고 팝콘에 저녁까진 먹을 수 있게 돈을 모아놨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돈 문제라 치고 넘어갈까?
"미안해 오빠. 내가 너무 무신경했나 봐."
"…엉?"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고에 멍해지게끔 다시 한번 충격을 주는 발언. 사과한다면 되려 희진이에 대해 나쁜 생각을 했던 내가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라면 녀석이 했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져 차분해지는 마음.
"너무 오빠에게만 부담을 준 거 같아. 그러니까, 팝콘이랑 밥은 내가 살게."
어쩌다 보니 나에게 좋아지도록 대화가 흘러간다.
"읗…괜찮, 은데…?"
자기가 말해놓고선 확신 없는 떨림. 돌연 순조롭게 진행되는 터라 번잡스럽던 머릿속이 거짓말처럼 텅 비었다.
"으-응, 아니야 오빠. 여태까지 따지고 봐도 내가 너무 돈을 안 쓴 거 같아."
이거야말로 서프라이즈라면 서프라이즈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희진이가 덜 쓰면 덜 썼지 적게는 쓰지 않았었다. 더군다나 내가 약속을 잡았으니 당연히 전부 낼 생각이었는데….
"그럼, 그럴까?"
인터넷에서 본 사례 중 떠보려고 자기가 돈 내겠다며 속이는 행위를 봤어도 희진이는 그럴 애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여기서 고집을 부린다면 애써 말한 희진이를 무안하게 하는 꼴이 된다.
"웅!"
이런 사랑스러운 여친의 배려에 감사 인사도 꺼내지 않아 속으로 하고는 바보같이 웃으며 진짜 그래 줄 거냐는 뜻을 품은 대답. 새벽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생각에 늦게 잠들었는데, 그런 마음가짐 가졌던 것이 미안하게끔 하는 배려에 정말 고마워졌다.
"히히힣-."
끝으로 혹시나 한 심정에 눈을 바라보니까 안심되게 전혀 거짓이 아닌 듯한 밝은 웃음.
"고, 고마워."
덕분에 녀석이 했던 발언 따위 잊을 수 있어서 편안해졌다.
"그럼 이제 팝콘 사러 가자! 오빤 무슨 맛 좋아해?"
그렇게 활기찬 얼굴로 어깨를 들썩이더니 어느새 잡혀 있는 부드러운 손. 바깥이라서 껴안는 것은 물론이고 손잡는 것마저 눈치 보는 나와 달리 아무렇지 않게 이끌며 앞장서서 걸었다.
생각보다 유치하지 않고 재밌어서 확실히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원작과 제작사가 원체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평일 시간대가 아니었거나 미리 예매하지 않았다면 볼 엄두도 나지 않았겠지만, 그나마 봤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