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저급한 유혹(2)
비몽사몽한 채로 소리에 이끌려 더듬더듬 잡으니까 누군가 잡은 듯 잠깐 저항하더니, 이내 놓쳐서 손쉽게 뽑혔다. 의아하게 생각한 순간의 반발은 바로 충전 중이던 잭이 떨어지면서 생긴 사고. 누가 이 시간에 토크를 하는지 궁금한 것과 별개로 미간은 졸음을 달래느라 찡그리고 있었으나 짜증까진 나지 않았다.
─2019년 6월 2일 일요일─
by특별공수
[자?]_오전 1:01
"…."
그러나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하자 신경질적인 기분이 치솟다 눌러 담아두곤 이 시간에 왜 연락을 했는지, 난 어떻게 답을 할지 고민하는 차에.
[난 떡볶이 안 먹으니까 둘이 먹을 만큼만 사와]_오전 1:02
하며 대답도 하기 전에 1이 사라졌다.
새벽에 무슨 토-크를…할 거면 내일 아침에 하던가.
1_오전 1:02_[그래]
별로 대답하긴 싫었지만, 일단 봤으니까 해주는 대답. 희진이가 말했던 것처럼 그냥 실수만 하고 만다면 양반이지,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하-…."
사람 앞에서는 소심해서 생각도 못 했던 짜증이란 감정이 얘한테는 이상하게 잘만 생겨서 아무리 여친의 언니라지만 선은 지켜달라고 말하고픈 마음.
"…."
하지만, 답변하려다가 차마 전송을 누르지 못하고 썼다 지웠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누워버렸다.
"실례합니다."
어제의 기억을 되살리며 헤매지 않고 찾아가 벨을 누르니까 희진이가 가벼운 차림으로 반겨주었다.
"어서 와 오빠. 밖에 엄-청 덥지?"
구름이 적어서 그런지 햇빛은 상냥하지 않아도 바람은 선선했기에 그리 덥진 않았지만, 그 차이는 피부로 확 느껴져 들어오자마자 체감되는 서늘한 온도.
"화…어제보다 덥긴 한데, 배고프지? 미안, 좀 늦어버렸어…."
주말이기도 하고, 한가로이 늦장 부리다 열두 시가 되기 전 부랴부랴 출발하여 도착해 떡볶이집에서 겨우 주문했었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도 있거니와 이미 음식을 먹고 있어도 무난한 시각이라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던 마음.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간에 토-크로 늦어서 미안하단 사과를 보내니까 괜찮다는 대답과 몹시 더우니 천천히 오란 말에도 편치 않았다. 그래서 문을 열기 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털어내 애써 괜찮은 척.
"웅-! 헤헤헤, 기다렸잖아 오빠. 보고 싶어서…."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천진난만한 미소로 맞아주더니 이내 보고 싶단 말을 할 때 다분히 의도적으로 떡볶이에 시선을 옮긴다. 이래서야 떡볶이를 두고 한 말인지 나를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게끔 일부로 중의적인 표현을 써서 놀리는 분위기.
"하하, 그래?"
희진이의 말투를 곱씹어 보면, 놀리는 것을 기반으로 깔고 있으나 은연중 장난이니까 똑같이 장난으로 받아주길 바라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이런 걸 보고 티키타카라고 하던가?
인연이 오래 가려면 주고받는 식의 대화가 즐거워야지, 마냥 놀리기만 하거나 당하기만 하면 질려서 머지않아 서로 식상해질 거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 여기저기를 찾아보는데, 소극적인 성격이라면 조금은 직설적으로 굴어도 괜찮다는 연애의 팁을 봤었다. 당초에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웃을 수 있는 장난이 무엇인지 모르겠어도.
"큼-…."
곧 목을 가다듬고 민망할 준비를 하며 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나, 나도! 희진이가 보고 싶어서!! 달려왔, 어…."
하지만, 막상 이론과 실전은 달라 마음만 급해져 버벅대며 우렁찼다가 창피한 감정이 팍하고 치솟자 선회하듯 작아지는 목소리.
"…그랬어."
아까 주문했던 떡볶이가 언제 나오나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의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졌다. 저질러놓고 후회한다는 말이 딱 이런 거겠지.
"푸-훕…! 이히히 그게 뭐야아 오빠-. 아, 전에 내가 한 말 신경 써 준 거지? 기특해라-. 그러니까 이제 들어와. 배고푸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표현이 잘 되지 않았어도 무난히 받아주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며 서둘러 신발을 벗고 뒤따라갔다.
"대-따 많이 사 왔네? 너-무 좋아!"
들고 있던 봉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자 희진이가 내용물을 꺼내 비닐을 푸니까 푸짐한 양을 확인하며 활기를 띤 얼굴. 이것만 해도 족히 이만 원어치는 되지만, 배달해서 먹는 것에 비하면 푸짐하고 적당히 매콤해 맛있기까지 했다. 그래선지 문을 열어줬을 때부터 지금까지 흔한 장난 하나 먼저 치지 않는 집중력. 그만큼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증거였다.
"후-흥."
이렇게 기뻐하니까 덩달아 흘러나오는 미소. 솔직히 싼 것보단 돈이 더 들더라도 맛있고 좋은 걸 사주고 싶었다. 현실은 그럴 재력도 없어서 괜한 허영심이겠지만,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그 정도 해주고 싶은 욕심이야 당연한 거겠지.
"기다려 오빠, 포크랑 음료수 가져올게!"
떡볶이는 먹을 수 있게 내용물을 드러냈는데, 정작 식기가 없어 다급하게 주방으로 달려간다.
"나도 가치, 와-오…."
혼자 들고 오기 힘들까 봐 같이 따라가려다, 가벼운 옷차림에다 노출 면적이 넓은 뒤태에 도우려던 의지가 허물어진 대신 눈만이 쫓다가 문득 차리는 정신.
"크-흠, 컿…!?"
그런 자신을 자각하곤 헛기침으로 누그러뜨려 누가 본 건 아닐까 괜히 주변을 살피니까 실제로 나를 보는 인영이 있어서 당황했다.
"쿠-훕…."
큭-!
여기서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존재에게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아, 안녕…."
재밌는 구경을 했는지 냉큼 비웃는 녀석에게 더 어색해지기 싫어서 하는 인사.
"…그래, 안녕 광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체육복 차림에 내려앉은 다크써클로 피곤한 기색 역력한 얼굴을 하며 살짝 끄덕인다. 그것이 마치 스마트폰 화면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유아처럼 순수하면서도 꾸밈없이 직설적인 표정이라 어제의 무례함을 마저 이어가고 싶었던 모양.
"…큼-."
녀석이 나타나자 분위기마저 껄끄러워지곤 딱히 할 말도 없는지 주변이 썰렁해진다. 존중이 없는 상대와 대면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게 마냥 피하기만은 어려워서 떨떠름함에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
그러나 방금 나눈 대화가 전부인지 녀석의 입은 움직일 생각 없이 굳게 닫혔다.
"…흠."
무척이나 고맙게 어떠한 화제도 꺼내지 않으니까 녀석을 따라 서서히 멈추는 입술. 혹여 대화를 시도할까 봐 눈을 피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실의 구조가 티비 있는 곳을 빼면 세 면 다 문이 뚫려 있어서 여닫는 거 없이 지나다니기 좋아 보이는 구조.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으면 뒤에서 슬그머니 다가와도 모를 거 같았다.
"……쩝."
그러다 입맛 다시는 소리에 반쯤 감은 눈의 동공이 어딜 향하는가 봤더니 보기만 해도 침이 삼켜지는 맛깔스러운 떡볶이를 향하고 있어서 내심 기가 차는 마음.
먹고 싶은 건가? 새벽에 그런 토-크를 보내놓고?
잠결에 짜증이 울컥하던 새벽 기분이 떠올라 녀석을 무시하며 먹기 좋게 놓인 떡볶이 말고 튀김이랑 순대, 오뎅과 김밥을 차례대로 테이블에 배치하니까 옆에서 놓이는 쟁반 위의 컵과 음료들.
"와-! 존맛탱. 개쩔. 종류별로 대박. 치즈 대박."
평소 지나치게 활발하긴 해도 이렇게나 언어를 편하게 구사하는 건 처음 본다. 확실히 상기 된 기분이란 건 알 수 있어서 아마 녀석이 들으라고 유난을 떠는 듯한 모습.
"언니도 먹을래?"
희진이가 컵을 하나 내 앞으로 옮기고, 남은 하나를 자기 앞에 옮기면서 멍하니 쳐다보는 눈길에게 권했다.
"-…."
그러나 별 감응 없는 눈초리. 이미 나는 새벽에 안 먹겠다는 의사를 통보받았기에 그 사실을 말하려다 녀석을 보니까 괜히 참견하기 싫어져서 본인이 직접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찰나에 든 생각이지만, 아마도 맞을 거 같은 예상. 먹지 않겠다고 고집 피우려는 녀석에게 선수 쳐 먹고 싶게끔 희진이가 유도하는 거 같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타당성 없는 추리에 불과했어도. 딱히 유추하지 않아도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사회성 없는 언니가 괜한 아집을 부려 잘 먹지 않으니까, 그런 기색 내비치기 전에 동생이 먼저 먹을 수 있게끔 신경 써주는 그런….
"……아니."
추론이야 어찌 됐든 역시나 싶은 대답이 나왔다. 여기서 어제 이미 안 먹겠다고 했단 내용을 발언해봤자 구태여 끼어드는 모양새라 묵묵히 있던 것이 정답.
"정말? 화재 난 떡볶이집인데? 치즈도 뿌려졌는데?"
희진이가 거부에도 지지 않고서 녀석에게 재차 물어보며 떡볶이가 든 통을 살짝 기울여 보여줬다.
"………어."
두어 번의 설득에도 끄끝내 관심 없다는 태도. 희진이가 오기 전에 잠깐 보여줬던 관심은 그저 식욕과 관련 없는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생각과 다르게 떡볶이를 싫어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래? 그럼 오빠랑만 먹지 뭐."
자매여도 입맛은 다른지 자꾸 거절하니까 살짝 토라진 듯 내뱉는 말. 여기서 변변찮게 입이라도 놀리지 않은 자신이 다행이었다.
"오빤 뭐 마실래?"
가족으로써 같이 먹잔 제의도 한 번 이상 권했으니 의무를 다한 희진이가 내게 가져온 주스와 우유를 가리키며 물었다.
"우유로 부탁할게."
아무래도 떡볶이다 보니 주스보단 구미가 당기는 우유. 망설임 없이 고르자 조합상 그럴 거 같다는 표정으로 컵에 따라주곤 자-하며 건네주길래 조심스레 받았다.
"영화…골라 줄까?"
그대로 내려놓지 않고 홀짝이려다 언제 곁으로 왔는지 왼편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리길래 히익 놀라 들썩이는 어깨. 가득 따르지 않은 덕분에 다행히도 흘리진 않았다.
"안돼! 언니는 또 이상한 남자 나오는 애니메이션이나 볼 거잖아. 오빠도 있는데 그런 거 진-짜 싫어!"
다시 한번 목부터 축이려 컵을 들었다가 다급히 내려놓는 건 단호히 내지르는 희진이에게 놀랄뻔해서. 뭐라고 해야 하나…반박하는 모습이 언니에게 너무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그럼…뭐 보려고?"
나와 희진이만 있는 시간에 녀석도 합석할 생각인지 관람할 영상물에 대해 궁금해한다. 조금 껄끄러웠지만, 여기서 언니에게 잘 보여야 나중에 부모님께 잘 말해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잠깐.
"언니가 그건 왜? 같이 보려고?"
녀석과 있다 보니 희진이가 유난히도 틱틱거리는 행동이 빈번했다. 처음엔 본인이 주의를 줄 만큼 이해해달라고 말했으면서, 희진이야말로 너무 언니를 나무라는 터라 중간에 끼인 나만 곤혹스러워 지어지는 억지 미소. 분명 입꼬리 주변 근육이 심히 보기 안 좋게 주름졌을 거다. 그렇다고 이런 희진이를 제지하자니 외동이라 말릴 여지가 없는 건 이렇다 할 경험담이 없었기에. 그렇기에 공연히 입 놀리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
평소보다 살짝 높아진 언성이라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해진 녀석의 반응은 그저 말없이 끄덕이는 거.
"후-, 그래…."
은근히 방해받는 기분을 받으면서도 그런 언니에게 이 이상 화를 내긴 그랬는지 작게 한숨을 뱉어냈다.
"배는 안 고프고?"
그제야 우리끼리만 먹는 게 신경 쓰였던 건지 끼니에 대한 걱정 한 마디. 함께 보는 것에 대해서 크게 이견이 없었지만, 혹시 먹지도 않고서 본다는 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주스."
그렇게 권하던 떡볶이는 싫다면서 음료는 금방 대답.
"하…알았어. 컵 가져올게."
귀찮다는 듯이 일어나 떠나는 표정엔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닌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런 희진이를 보며 속으로 언니 때문에 힘들겠네 하고 적잖이 위로하며 남겨진 컵에다 무엇을 따르려 고민하는 차.
"히-익!?"
뺨에 느닷없이 물기를 머금은 듯한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 황급히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쿠-훕-!"
당황스러움에 무슨 일인가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녀석을 보니까 입맛을 다시며 혀로 적시는 입술.
"…맛있어 보이네."
이미 맛 봤잖아! 혀로 내 뺨을 핥았잖아!!
당한 다음에 볼을 매만지는 손길은 이후에라도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한 반사적인 방어 동작일지도 몰랐다. 아무렴…놀란 눈동자는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녀석을 향해 연신 왜? 어째서란 눈길을 보냈으니까.
"모해 오빠?"
그러던 중, 삼 인용 소파에 원래 희진이가 있던 자리로 침범하여 도망쳐서 그런지 앞서 있었던 일을 모르는 희진이가 컵을 들고는 의아해했다.
"아, 그…! 미리 컵에다 따라 주려고 했는데, 뭐 마실지 모르니까 고, 고민하고 있었어…하하!"
웬지 사실대로 말하면 희진이가 녀석에게 한바탕 뭐라 할 거 같아서 적당히 얼버무리곤 양쪽의 눈치를 살피며 제자리로 살며시 돌아가는 엉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