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85화 간호
“들어가서 쉬거라.”
“아니에요, 저 오빠 옆에 더 있을게요.”
“......”
침대에 누워 있는 성민이와 그런 성민의 곁을 지키겠다며 밤을 샜으면서도 옆에 있는 설아를 보면서 찹찹한 표정을 지었다. 성민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출장을 가 있었음에도 바로 올라왔던 것이다. 물론 중요한 프로젝트여서 중단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나중에 결국은 다시 내려가 봐야 한다. 물론 성민이의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면 빠질 각오도 하고 올라왔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했었다.
머리가 까지고 피가 흘러 뇌손상을 의심해 봐야한다며 검사도 했지만 다행히 크게 상한 곳이 없어 보여 일단 MRI나 검사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지 3일째 였지만 산소마스크를 끼거나 하는 그런 중태의 상황은 아니었다. 곧 정신도 차릴 수 있을 거라고 하니 정말 다행이었다.
옆에서 성민을 지키고 앉아 있는 설아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병실을 빠져나갔다.
“왜 이렇게 누워 있는 거야... 정신 차려야지 오빠......”
성민을 바라보는 설아의 눈빛이 상당히 어두웠다.
설마하니 거기서 자신을 쫓으려다 교통사고를 당 할 줄은 몰랐다. 너무 충격이라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만약 이 사고로 크게 잘 못 되었다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성민의 사고 소식을 들은 현준이와 유람 그리고 지수가 서둘러 병원에 왔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안도했지만 셋 모두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특히나 성민을 바라보는 지수의 표정은 정말 충격을 크게 받은 것처럼 보였었다.
그리고 혼자서 따로 찾아온 지수와 설아는 어젯밤 대화를 나누었었다.
-성민이가 사고를 당한 게 정말 설아 너에게 가다가 그런 거야?
교통사고를 당한 게 설아에게 가다가 그렇게 당한 것이라 했었다. 일단 사고를 낸 운전자와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보험 처리를 하는 등 좋게 합의를 보고 진행했는데 이번 사고는 운전자의 잘 못으로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설아에게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부분에서 지수는 크게 걸렸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러 찾아온 듯 보였다.
-왜 그날 오빠를 찾아와서 마음을 흔들어 버린 거예요?
-뭐?
-언니가 그렇게 찾아와서 오빠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저하고 다투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오빠가 저렇게 된 건 언니의 잘 못도 있는 거란 말이예요.
-......
-만약 오빠가 정말 잘 못 되었다면 어쩔 뻔 했어요? 언니가 책임 질 수 있어요?
설아의 차가운 말에 지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마치 성민이 저렇게 사고를 당해 누워 있는 게 정말 자신의 탓인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언니, 그거 알아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언니가 현준 오빠를 좋아해서 고백해 나에게서 빼앗아 갔다고 해도 전 그런 언니의 마음을 탓하지 않아요. 언니는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을 뿐이고 그 상대가 현준 오빠였을 뿐이에요. 빼앗은 건 나에게 상처였지만 그 감정을 탓하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니까요.
지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 하고 그런 설아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게 어제의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설아는 희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설아에게 사고 소식을 들은 희정은 바로 병원에 찾아왔다. 그리고 누워 있는 성민을 보며 믿을 수 없어 했다.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았다.
어쩌다가 성민이가 저렇게 됐냐는 물음에 자신을 잡으로 오다가 저렇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말도 덧붙였다.
-전 언니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어요.
-나?
-결국 오빠와 내가 트러블이 생긴 게 언니가 그날 밤 찾아온 게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니에게 찾아가던 길이었어요. 오빠를 흔들었으니 언니가 좋게 말한다면 오빠의 그런 마음을 다시 안정시켜 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사고의 원인이었어요. 오빠는 아무래도 내가 나간 이유를 알아차려서 나에게 급히 달려온 것 같거든요.
-......
-서로 좋아하는 그 마음이 남매라는 것 하나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가요?
-난... 그런 걸 바란게..
-언니가 바란 게 아니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만약 오빠가 정말 잘 못 되었더라도 언니는 그런 말을 할 건가요?
희정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수와, 그리고 희정이와 모두 대화를 나눈 설아였다.
물론 그 두 사람에게 따진 설아였지만 미안한 마음도 컸다.
자신이 그렇게 나가지 않았다면 오빠가 잡으로 오지도 않았을 거고 그럼 이런 일을 겪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오빠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나 컸다.
“미안해 오빠... 내가 잘 못 했으니까 일어나 줘..”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그저 편안하게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정말 자고 있는 것이라 착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인데 그러질 못 하고 있는 것이.
무사하게만 깨어나길 바라고 또 바랐다.
설아는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성민의 곁에 붙어서 간호를 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자신을 잡으러 오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그럴진데 설아에게 오빠인 성민은 특별하다. 그래서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제정신을 잡고 있는 게 힘들었다. 만약 무사하지 못 했다면 정말 정말 정신이 아찔했을 것이다.
그렇게 화장실이나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성민의 곁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정성스럽게 옆에서 간호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오빠, 괜찮아?!”
드디어 성민이 정신을 차렸다.
잠시 후 성민이 깨어난 것을 확인한 간호사가 담당의사를 찾으러갔고 곧 병실로 들어선 의사가 성민을 살펴보았다. 그러는 사이 연락을 받은 아버지역시 서둘러 병원으로 왔다. 그렇게 성민의 상태를 살펴보고 의사와 아버지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오빠...?”
설아가 긴장된 목소리로 작게 불렀다.
성민역시도 그런 설아를 긴장 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설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뭔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정말... 나 못 알아보는 거야?”
설아의 물음에 성민이 어색해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가 내 여동생이라 이 말이지. 내가.. 오빠고?”
“......”
충격을 받은 설아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그때 병실의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왔다.
“뭐래요?”
설아가 아버지에게 물었고 성민이 역시도 긴장 된 눈빛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머리에 충격을 받아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일 수도 있다는 구나. 일단 검사는 해봐야겠는데 대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돌아올 때가 많으니까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구나.”
“어떻게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부분기억상실증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조차 몰랐다.
“강한 충격을 받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구나.”
설아는 마음이 정말 아팠다.
오빠가 자신을 기억조차 못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던 것이다. 자신이 성민이고 여동생이 있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알고는 있는데 컷을 때의 기억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의 부분적인 기억만 하고 있다는 거다.
그날 오후 성민은 검진을 받았는데 다행히 자잘한 외상의 상처들만 있을 뿐 장기가 손상대거나 하는 큰 부상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바닥에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쳤고 그로인해 다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거기서 충격으로 인한 뇌의 손상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무사히 깨어나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기억상실증이란다.
너무 충격이라 설아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검사상으로는 다음주에 퇴원해도 좋을 정도의 몸 상태라는 말은 그나마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설아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 하는 성민을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물이 마시고 싶다고 하면 떠다주고 주스도 따주었다.
그런 설아의 보살핌에 성민은 내심 긴장하면서 바라보았다.
어렷품이 어릴 때 기억으로는 자신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여동생은 작고 연약한 아이이지 이렇게 성숙한 여자애가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지 못 할 정도로 몸이 약하고 잔병치례를 하고 늘 집에서 생활을 해야 했던 그런 작은 소녀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설아였다.
“오늘 정말 날씨 좋다. 그렇지?”
“응...”
창밖의 푸른 하늘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오빠 나가고 싶지 않아?”
“그래도 돼?”
“내가 물어 봤는데 산책해도 된다고 들었어.”
“그럼... 나가볼래?”
“응.”
그렇게 성민은 정말 오랜만에 병원을 나서 밖으로 나갔다.
병원 주변에 만들어진 작은 산책로를 걸으며 거니는 성민의 표정은 여전히 어색함과 긴장감이 묻어나 있었다.
“오빠.”
“응?”
“왜 그렇게 눈치를 봐?”
“아, 아니...”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성민의 행동에 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나하고 있는 게 어색해?”
“조금.. 그렇긴 해.”
분명 자신의 여동생이고 이름이 설아인 것도 맞는데 기억속에 있는 자그마한 애와 눈앞에 있는 이 여자애는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민이 긴장하는 것은.
‘진짜 예쁘다...’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이 여자애가 너무 예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긴장이 되고 어색했다.
그 연약하고 자그마한 여동생 설아가 자신이라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없으니 그저 낯선 예쁜 여자애로만 보일 뿐이었다.
두근두근.
그리고 이상하게 이 여자애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뛰었다.
“오빠.”
“어, 어?”
“뭐야, 지금 딴 생각 한 거야?”
“아니야.”
“아닌데 그렇게 시선을 피해?”
“그, 그런거 아니라니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성민의 행동에 설아가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살며시 팔을 뻗어 성민의 손을 잡았다.
순간 성민은 등골에 전기가 이는 것처럼 찌릿했다.
“오빠...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말라니..?”
“오빠가 날 기억 못한다고 해도 나 괜찮아. 내가 그만큼 오빠에게 잘하면 되니까. 나 때문에 오빠가 사고가 난 거니까. 내가 정말 잘할 게.”
그리곤 자신을 바라보며 생긋 미소를 짓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심장이 크게 떨렸다.
산책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성민이 혼자 침대에 앉아 있었다.
설아는 꽃병의 물을 갈아주러 갔다.
‘왜 기억이 안나는 걸까.’
자신의 여동생이 맞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전혀 컸을 때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어릴 때의 기억들뿐이고 컸을 때의 기억은 드문드문 부분적인 기억 밖에 없었다.
그 기억 속엔 저 설아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옆에서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설아의 모습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모습이 완전 천사나 다름없었다.
미소도 너무 예쁘고 어떻게 저런 여자애가 있을까 싶었다.
‘미치겠네.’
아무리 여동생이라고 해도 자신의 머릿속엔 자그마한 어린 여자아이의 기억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낯설었고 예쁜 이성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남자친구 있을까.’
저렇게 예쁜데 분명 남자친구가 없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가 않은 성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