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79화 만나다 (79/85)



〈 79화 〉79화 만나다

“너  자고 거실에서 뭐하는 거냐?”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있는 성민을 보며 말했다.

“이제  거예요.”


“시간도 늦었는데 늦게까지 티비보지 말고 너도 들어가서 자거라.”

“예.”

방으로 들어가려던 아버지가 다시 성민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 지방에 출장 가는 거 알지?”

“알고 있어요.”

“말 안 해도 잘 하겠지만 설아  챙겨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럴게요.”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잠시 바라보던 성민이 다시 고개를 바로 해 티비를 보았다.


사실 티비는 그냥 틀어놓은 것이지 별 재미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 티비에서 뭘 하든지 관심도 안 갔다.


성민의 시선이 설아의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간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자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 과연 잠이 올까.


그렇지 않겠지.

방으로 들어가기 전 자신을 노려보던 설아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떠오른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눈빛과 눈물이 설아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아...”

가슴이 답답했다.



밖에서 나누는 대화 소리가 다 들렸다.


-말 안 해도 잘 하겠지만 설아 잘 챙겨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럴게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와 오빠의 대화 소리.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뒤이어 문 너머에서 작게 울려왔다.

문에서 시선이 거실 쪽으로 이동한다.

아까전의 대화를 보면 오빠는 아직도 거실에 있는 게 분명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속으로 그렇게 말해본다.


서로 아껴주기로 했으면서  자신에게 그런 상처 되는 말을 하는 것이냐고. 아침에 자신의 뽀뽀를 피하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가볍게 그런 식으로 놀리는 적이 여러  있었으니까.


하지만 또 다시 뺨에 입맞춤을 하려 할  피하면서 녹차를 흘렸을 때 느낌이 쌔 했다. 그렇게까지 자신의 뽀뽀를 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빠는 아니라고 하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후로도 스킨십을 피하거나 회피하려 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그랬다. 계곡에 놀러 갔을 때 문제가 있었던 걸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날은 계곡을 다녀온 다일 일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거기서 만난 언니오빠들하고도 재밌게 놀았다.

오빠하고 트러블이 날 일은 없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산책.

갑자기 왜  시간에 산책을 다녀온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가만 보면 산책을 다녀온 후로 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날이 계곡을 다녀온 당일이기도 해서 처음에 계곡에서의 일을 의심했었던 거다. 그리고 오늘이 결정적이었다.


워터파크에서의 오빠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면서도  더 오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자신과의 거리를 선을 넘지 않는 선 안에서 대했고 행동했다. 그리고 튜브 라이드를  때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서도 일부러 현준 오빠의 핑계를 대면서 거리를 두었다.


지수 언니가 현준 오빠와 함께 타고 싶어 했던 것처럼 자신 역시 오빠와 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대도 태연하게 지수 언니하고 타는 거 괜찮냐고 물었었다.

너무나 태연하게.

 후에 지금의 사단이 벌어졌다.

자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희정 언니는 대체 오빠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자신과 오빠를 위한 충고를 해주었다고 했었다.

희정이는 잘 못이 없다고 그랬었다.


‘오빠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단지 충고만 해주었을 뿐인데 오빠가 그런 슬픈 눈빛을 짓고 있단 말인가. 자신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보인단 말인가.


도저히 잘 못이 없다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심한 말을 한  분명했다.


상처 되는 말을 했을 게 틀림이 없었다.

그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이것도  수법 일  있었다.


주창이 오빠하고 헤어지기까지 한 상황이다.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고 쉽게 포기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다 눈에 보이는  같았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약해져선 안 돼.”

눈가에 묻어 있는 눈물을 닦아냈다.

여기서 자신이 약해지면 모든  다 희정 언니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선 안 된다. 뜻대로 되게 놔둘 수 없었다.

현준 오빠는 지수 언니에게 그렇게 빼앗겼지만.


절대 오빠만큼은 자신에게서 빼앗아 갈  없다.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기는 건  번이면 충분했다.

두 번은 경험하기 싫다.


그러기 위해선 절대 약해져선 안 된다.

절대.



“흐음...”


다음날 눈꺼풀을 비추는 따가운 햇살에 인상을 찡그리던 성민이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 덧 아침 7시가 넘어 있었다.


아버지가 6시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선다는 것을 알고 알람을 맞춰 놨는데 잠결에 끊거 같았다. 적어도 출장을 가는 날에는 배웅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 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살며시 문이 열리더니 설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일어났네?”


“어?”

“아버진 아까 전에 출근하셨어. 아침은 내가 챙겨드렸고 배웅 잘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어..어...”


“오빠도 어서 아침 식사하러 나와.”

그리곤 생긋 웃은 설아가 방을 나갔다.

‘뭐지?’

어제와 또 분위기가 달라진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당혹스러웠다. 분명 자신 만큼이나 힘들고 괴로워하고 있을 설아 인데 지금 모습은 평소의 설아와 전혀 다른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밤사이에 심경에 변화라도 있었던 것일까.


 수가 없었다.

일단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설아는 이미 먼저 식탁에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맞은편 자리에 몸을 앉혔다.

“시원하게 냉국 끓였으니까 날씨가 더워 입맛이 없어도 먹을 만 할 거야.”

“어...”

대답을 하면서도 성민은 설아의 얼굴을 살폈다.

눈물이 고인 채 방으로 들어갔던 모습은 온데 간데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오해를   같은 기분이었다.


별다른 대화가 오고가지 않는 상황에서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설아가 입을 열었다.


“오빠 오늘 집에 있을 거야?”

“응?”

“약속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아, 없어.”


“나 아침 먹고 조금 있다 밖에 나갔다 올게.”

“약속이라도 있어?”


“응. 그래서 다녀오려고.”

마치 어젯밤 그 심각했던 일은 자신이 꿨던 꿈처럼 하나도 거론 되지 않았다. 설아의 모습은 전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국 먹을만 해?”

“어, 괜찮아.”

“괜찮다니 다행이네.”


성민은 내심 설아의 속내에 대해 알고 싶었으나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괜히 자신이 먼저 꺼냈다가 분위기가 상당히  좋게 흘러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한 건가?’

당장에 자신들의 관계를 예전처럼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이미 선을 넘어버린 상황에서 완벽히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할 수 있는대 까지 노력은 하고 싶은 성민이었다.

사실 지수와 희정이었기에 이 정도의 충고에서 끝난 거지 이런 얘기가 외부로 퍼졌다가는 어떤 사단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나 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었다.


 그대로 지수에 이어 희정이에게 들켰다는 것과 진지하게 조언과 충고를 하는 말을 들으면서 다시   이 현실로 자신을 끌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 설아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무조건 받아 주어선 안 되는 게 아닐까.

잘 못  길로 가려는 것을 알고서도 받아주면서 거기에 응해주는 것만이 위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되돌린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성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작게 울리는 방울소리에 창밖을 응시하고 있던 희정의 시선이 정문으로 향했다. 들어온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설아가 아니었다.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약속시간은  되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걸까.’

설아에게서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았다.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만났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게 성민의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희정은 고심 끝에 설아의 만남을 응하기로 했다. 성민이게 찾아갔을  이미 이러한 만남 역시 한 번쯤은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드때 다시금 방울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려 정문을 바라보니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이어서 누군가 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이 커졌다.


바로 설아 였기 때문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설아가 희정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그리곤 맞은편에 몸을 앉혔다.

“먼저 나와 있었네요?”


“응.”

“일부러 구석진 자리에 앉은 거예요?”

“대화하기엔 이런 자리가 좋으니까.”


설아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언니를 보자고 했는지 알아요?”

“성민이 때문이 아니야?”


“알고 있네요.”


희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그리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얼마 전에 우리 오빠 만나러 찾아왔었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