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78화 변했어
“조심해서 돌아가~!”
“다음에 보자!”
애들과 인사를 한 후 돌아선 성민이 설아와 나란히 걸었다.
“오늘 재밌었지?”
“응.”
“햐~ 워터파크에 오랜만에 갔는데 진짜 간만에 스릴 있게 놀았어. 같은 물놀이지만 계곡에서 노는 것과 워터파크에서 노는 건 정말 다르단 말이야.”
계곡도 재밌었지만 오늘 애들하고 워터파크에서 논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파도풀도 그렇고 놀이기구들도 정말 스릴 있고 짜릿했다. 다음에 또 같이 가도 괜찮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설아 넌 뭐가 재밌었냐?”
“다 재밌었어.”
“그래도 제일 재밌었던 놀이기구 있을 거 아냐? 워터슬라이드도 진짜 짜릿하고 스릴 넘쳤지만 메가스톰인가 그거 재밌더라.”
생긴 지 얼마 안 된 놀이기구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인기가 많을만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해 탔다. 버스엔 사람들이 있어서 떠들던 것을 중단하고 뒷쪽 둘이서 앉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설아가 창가에 앉았다.
창밖에 시선을 둔 채 쳐다보고 있는 설아를 뒤로 하고 성민도 잠시 눈을 붙였다.
하루종일 떠들고 놀다보니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깜빡 잠이 들었다.
“흐음?”
“다 왔어, 오빠.”
“씁... 그래?”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낸 성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문이 열리고 내려선 성민은 설아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현관문으로 향해 도어락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회사일로 바쁜 아버지는 항상 늦게 오거나 야근을 한다. 또는 지방이나 해외 출장도 잦아서 집에 없을 때가 많은데 내일 출장이 잡혀 있어 얼마동안 집을 떠나게 된다.
거실의 불을 켠 성민이 설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설아 너 먼저 씻을래?”
“오빠.”
“응?”
“갑자기 왜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왜 그러냐니.”
“오늘도 그래. 오빠 알고 있었잖아. 지수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오빠하고 같이 타고 싶었다는 거. 그런데 왜 현준 오빠하고 타겠다면서 나선 거야?”
“아니 그건 거기서 봤듯이 현준이하고 지수 좀 골려줄려고 일부러...”
“그럼 그 전에 있었던 일은?”
“그전에 무슨 일? 그것 말고는 워터파크에서 별다른 일은 없었잖아?”
설아에게 그게 거슬렸다고 해도 그걸 제외하면 별다른 일은 확실히 없었다.
“내가 묻는 건 오늘 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며칠 동안 오빠가 나에게 보여준 태도 때문에 그러는 거야.”
“태도라니? 내가 어떻게 했기에 그래?”
“오빠 깨우려고 뽀뽀를 하려고 할 때도 그렇고 소파에서도 피하면서 녹차를 쏟았잖아.”
“그건 갑자기 그러니까 당황해서 그런 거지.”
“그럼 그 후에는 왜 전처럼 날 대해주지 않아? 벌써 내가 질렸어?”
“야, 질리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럼 왜 나하고 더 이상 자려고 하지 않아?”
깨우려고 뽀뽀를 할 때 일어난 건 넘어가줄 수 있다. 소파에서도 당황해 녹차를 쏟은 것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빠의 행동은 똑같았다. 스킨십을 하려해도, 신호를 보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거부할 뿐 더 이상 안아주지 않았다.
“그럼 나하고 왜 더 이상 스킨십을 하지 않으려 그러는 거야?”
“그건 설아 네가 오해를 하는 거야.”
“증명해봐”
“증명?”
설아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키스를 기다리는 설아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던 성민은 잠시 주저하다가 천천히 다가가 입을 맞췄다.
“봐 됐지?”
그리곤 보란 듯이 웃는데 설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오빠 변했어.”
“뭐가? 이번엔 확실하게 뽀뽀했잖아.”
“계속 그렇게 나올 거야?”
“어?”
“그날 무슨 일 있었지.”
“뭐가?”
“나 목욕할 때 오빠 밖에 나갔다 왔잖아. 처음엔 오빠 말대로 산책하고 온 줄 알았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해. 갑자기 한 밤중에 왜 산책을 나가?”
그날 이후로 오빠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설아는 느꼈다.
계곡에서 돌아오기 전 까지 전혀 그렇지가 않았었다.
산책하고 온 그 이후로 오빠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
“말해.”
“아니 말 할 것 없이 그날 산책을 다녀온 게...”
“말하라고!”
신경질 적으로 소리치는 설아의 말에 순간 성민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찾아온 잠시간의 정적.
가만히 성민을 똑바로 바라보던 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소리쳐서 미안해, 오빠. 하지만 난 듣고 싶어.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오빠의 태도가 갑자기 그렇게 달라진 건지. 속이려고 하지 마. 사실대로 말해 줬으면 좋겠어.”
“......”
성민은 대답을 하지 못 했다.
그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왜 말을 못 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나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거야? 오빠 나가서 누구 만나고 온 거야?”
“설아야...”
“누구야? 누굴 만나고 왔기에 그래? 내가 알 면 안 되는 사람이야.”
“설아야 난...”
“혹시.. 희정 언니야?”
순간 멈칫 하는 성민의 모습에 설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희주 언니를 만나게 맞나 보네.”
생각나는 사람이 몇 없어 그냥 찍어 본 건데 맞아 떨어진 것이다. 제일 처음 희주에 대해서 이름을 꺼낼 줄 몰랐던지라 성민은 그만 멈칫 하고 말았던 것이다.
“희주 언니가 무슨 말 했어? 혹시 또 오빠에게 다시 만나달라고 애원이라도 했어? 그래서 오빠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거야?”
그날 설아는 확실하게 말했었다.
우리 오빠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라고.
면전에 대고 대놓고 확실하게 말해서 설아가 아는 희주 언니라면 분명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말해 오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성민의 모습에 노려보던 설아가 폰을 꺼내들었다.
“알았어, 오빠가 말하지 않겠다면 직접 들을게.”
“희정이는 잘 못이 없어.”
“뭐?”
“너와 날 위해서 충고를 해주었을 뿐이야. 설아 네가 말하는 것처럼 만나 달라거나 그런 얘기를 한 게 아니야.”
“오빠와 나에 대해서 무슨 충고를 했다는 거야?”
“그건...”
“사실대로 다 말해.”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설아의 눈빛은 상당히 진지했다.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고집이 눈빛에서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설아야.”
시선을 피했던 성민은 다시 설아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러는 게 정말 너와 나를 위한 일인 걸까?”
“그게 무슨 뜻이야?”
“나도 잘 알고 있어. 설아 네가 날 많이 좋아한다는 걸. 그리고 잠든 사이 설아 네가 나에게 한 행동에 대해서도 충분이 이해해. 그 정도로 날 좋아하게 됐으니까 그런 행동도 한 거겠지. 하지만 설아야. 정말.. 정말 이러는 게 너와 나를 위한 걸까...?”
“오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내 말.. 똑바로 들어. 난 설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은.. 지금은 나에 대한 엇나간 사랑이 커서 받아드리기 쉽지 않겠지만 분명 시간이 지난 후엔 분명 후회하는 일이 생길거야.”
처음엔 성민역시도 설아가 자신을 남자로 보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고백을 받아주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설아가 자신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그런 행위를 했고, 결국에 자신이 쏟은 녹차로 인해 깊게 잠들지 않아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설아가 했던 말.
다시는 자신을 보지 못 할 것 같다는 그 얘기에 더 이상 설아의 행위를 막기가 힘들었다.
벌어진 일.
결국 일은 벌어졌고 이렇게 된 거 자신도 설아의 마음을 좋게 받아드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느 순간 자신 역시도 설아를 ‘여자’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계곡에 갔을 땐 설아가 정말 여친이 된 것 같아 즐거웠다.
그 형들과 누나들하고도 정말 즐겁게 놀았다.
그러면 다 괜찮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금새 찾아왔다.
희정이가 하는 얘기들을 듣고 성민은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을 느꼈다.
설마하니 희정이가 자신과 설아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진 희정이의 말은 양호실에서 지수가 자신에게 했던 충고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과 설아는 남매라는 것.
설아는 네 여동생이라고.
그러니 절대 해선 안 되는 잘 못 된 선택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네가 오빠이니만큼 설아가 설혹 잘 못 된 길로 빠져들려 해도 중심을 잡고 타일러야 한다고 했었다.
진정으로 설아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네가 잘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희정이의 그 말은 성민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설아야. 난 우리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타이르다 말고 성민은 그대로 말을 멈추고 말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설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민을 노려보던 설아가 그대로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