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72화 걸려온 전화
친구들 하고 오랜만에 방학을 맞아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친구들이 방학도 했고 주말을 맞아 같이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희정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창이와 헤어지고 큼맘 먹고 성민이에게 고백을 했는데 대차게 까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찾아갔다가 성민을 만나지 못 하고 동생인 설아에게 통보를 받았다. 자신 때문에 오빠가 정말 힘들어하고 있다고. 그 후로 성민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락을 해보았자 좋게 없다는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희정은 여전히 성민이를 잊지 못 했다. 만약 잊을 수 있었다면 주창이와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가지 말까 생각했다가 이대로 지내다가는 기분만 더 꿀꿀해 질 것 같아 영화 보러 갈 거냐는 물음에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집을 나서 번화가에 나왔다.
정말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성민이를.
그리고 함께 있는 설아를.
“희정아 왜 그래?”
갑자기 걸음을 멈춰서는 희정의 모습에 의아해서 물었다.
“응?”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저 만치 앞서 걸어가는 성민과 설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희정은 친구들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겨 영화관 건물로 들어섰다.
“영화는 너희들끼리 볼래?”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친구들의 물음에 희정이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그래서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꼭 지금 해야 하는 일이야?”
“응...미안해. 다음에 영화 같이 보자.”
“알았어, 그럼.”
“급한 일이라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진짜 미안해.”
친구들에게 사과한 희정이 그렇게 건물을 빠져나와 설아와 성민이 사라진 길목을 달려갔다. 지금 달려가면 두 사람을 놓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 자신의 생각대로 두 사람은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신호를 기다리며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설아는 오빠인 성민에게 팔짱을 낀 채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어떻게 보면 참 사이좋은 남매사이로 보일 수 있지만 희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브라더 콤플렉스.
성민을 만나기 위해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 우연히 엿들은 말이다.
아마도 설아와 같은 반 여학생 같았는데 하교를 하는 길에 얘기를 나누는 걸 엿들었었다.
설아가 친 오빠인 성민을 정말 좋아한다는 걔 대화의 주 내용이었다. 그리고 친구의 뺨을 때렸던 내용하며 브라더 콤플렉스가 정말 맞는 거 아니냐는 등의 말들을 들었었다. 처음엔 희정은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중학교 동창이면서 좋아하는 성민의 여동생인 설아를 저런 식으로 흉을 본다는 건 당연히 희정의 입장에서는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설아의 몸이 약했던 것을 알고 있고 성민이 그런 여동생인 설아를 정말 잘 챙겼다는 것도 알고 있어 더 그러했다.
그때는 그렇게 흘러넘겼었다.
그리고 집으로 찾아갔다가 설아와 만나 대화를 나눌 때 희정은 정말 설아가 자신이 알던 그 설아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충격을 받았었다.
물론 오빠인 성민이 자신 때문에 마음 적으로 힘들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설아의 반응이 정말 사나웠다.
마치 자신을 경계하는 것 같다고 할까.
여동생으로써 오빠를 위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경계의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저 모습.
마치 사귀는 연인처럼 성민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설아의 모습은 희정이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모습이었다.
둘 사이가 좋다고 해도 희정이 기억하는 설아의 모습은 늘 오빠인 성민에게 잔소리하며 핀잔을 주던 모습들이었다.
절대 먼저 저렇게 달라붙어 팔에 껴안거나 달라붙어 애정을 과시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설아가 오빠인 성민과 사이가 안 좋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희정이 기억하는 설아는 절대 오빠인 성민에게 저런 닭살 돋는 애정행각을 할 성격이 아니었다.
신호가 바뀌자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성민과 설아.
들키지 않게 두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희정도 따라 걸어갔다.
‘어딜가는 걸까.’
사이좋게 걸어가는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정말 궁금했다. 집으로 가는 것은 아닌 게 확실해 보인다.
조용히 들키지 않기 미행하여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 본 희정이 목격한 것은 옷가게와 상점들이 즐비한 그런 거리였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들어선 곳은 여성복 매장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고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 매장 안이 보일 수 있는데 까지 접근했다. 들키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고 안을 살필 수 있는 곳 까지만 접근해서 살펴보았다. 그러자 저 안쪽에서 여름 신상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누는 성민과 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매장 점원이 다가와 얘기를 하는 것도 볼 수 있었고 이어서 맞춰보는 것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10여분 동안 살펴보던 설아와 성민이 다시 나오려고 하자 뒤로 물러나 눈에 띄지 않게 거리를 벌렸다.
그 후로도 설아와 성민이 여러 옷가게를 둘러보며 쇼핑을 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걔 중에 하늘색 짧은 주름치마와 흰색 프릴소매형식의 산뜻한 분위기의 티까지 샀는데 둘이 같이 대보았던 것이 아마도 상하의를 맞춰서 사는 것 같았다. 상큼하고 귀여운 외모의 설아와 아주 잘 어울리는 복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산대로 가서 카드로 결제를 하는 성민과 종이백에 포장해서 담아 건네주는 것을 받아들고 가게를 나섰다.
이어서 다음으로 향한 곳은 빙수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두 사람이 들어가는 걸 확인 하고 희정 역시도 시간차를 두고 안을 살펴보기 위해 갔다가 저 안쪽 창가자리에 앉아 있는 설아와 성민을 볼 수 있었다. 살펴보니 오른쪽 구석진 자리에 앉으면 기둥과 사람들로 인해 눈에 잘 띌 것 같지 않아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혼자서도 먹기 충분한 작은 빙수를 하나 주문하고 폰을 꺼내 하는 척 하면서 설아와 성민의 분위기를 살폈다.
둘이서 뭔가 잡담을 하는 것 같아보였는데 새침하게 바라보다가도 금세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내가 정말 괜한 오해를 하는 걸까.’
지금까지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은 그저 사이좋은 남매 관계 그 이상이었다. 가게를 나오면서 다시 팔짱을 끼는 것도 그렇고, 지금 저 두 사람의 분위기도 일반적인 남매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까워 보였다.
그때 희정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설아가 빙수를 떠서 성민에게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알던 설아라면 성민에게 절대 저렇게 해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성민역시 설아의 저런 행동을 크게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연인사이의 관계처럼 자연스럽게 설아가 떠먹여주는 것을 맛있게 먹었다. 이어서 설어가 자신도 먹여 달라는 듯 귀엽게 입을 벌리는데 성민이 떠서 그런 설아의 입에 먹여주었다.
그러자 받아먹은 설아가 미소를 지으며 성민을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것으로 오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애정이 느껴졌다.
‘정말 설아가...’
두근두근.
희정의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혹시나 하던 마음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희정이 그대로 가게를 나섰다.
해가지고 어두운 저녁이 되어서야 서야 성민은 설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오빠.”
“즐거웠다니 다행이네.”
“그리고 선물 너무 고마워. 나 잘 입고 다닐게.”
종이백을 품에 감싸 안으며 기뻐하는 설아의 모습을 보니 성민역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큰맘 먹고 산거니까 아껴서 입어.”
“그럴 거야. 다음 주에 놀러갈 때 이거 입고 갈까?”
“워터파크에 갈 때?”
“응! 평범한 날에 입는 것 보단 그런 날에 입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그렇게 해.”
“오빠 먼저 씻을래?”
“당연히 나 먼저 씻어야지~ 오늘 내가 얼마나 에스코트하는데 고생을 했는데.”
“오빠 말하는 게 마치 데이트하기 싫은데 일부러 응해준 것처럼 들린다?”
“들리는 게 아니라 진짜 그런 거야. 에구... 삭신이 다 쑤시네.”
“뭐얏!”
얄미운지 가볍게 쳐오는 설아의 손을 뒤로 물러서 피한 성민이 검지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동생아~ 이 오라버니를 치려면 그 정도 속도로는 어림없단다~ 그럼 난 씻으러 가야 하니까 다음 기회를 노리거라~”
그리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향하는 성민의 모습에 설아가 혀를 내밀었다.
“못 됐어 정말.”
쏴아아~
쏟아지는 샤워기를 물줄기를 맞으며 성민은 더운 여름의 열기를 씻어냈다.
‘이제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여동생인 설아를 여친으로 바라보는 것.
현실적으로 해선 안 되는 생각이고 관계였지만 이미 선을 넘어 버린 상황이다. 여기서 더 부정을 해보았자 무엇이 달라질까.
그리고 그날이 다시 온다고 해도 성민은 설아를 말릴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거부하면 더 이상 얼굴을 마주 할 수 없을 거라던 설아의 그 말.
그게 너무 충격이어서 설아를 거부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자신을 생각하는 설아를 어떻게 거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여동생이어서 그렇지 설아는 충분히 귀여운데다 예뻤다. 만일 여동생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사귀었을 것이다.
거기다 하나하나 자신을 위하는 설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을 떠나서 오빠를 생각하는 애정과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데 어느 오빠가 그런 여동생을 싫어한단 말인가.
‘오늘 나가길 잘했어.’
기분 좋게 샤워를 끝낸 성민이 수건으로 몸을 닦고 팬티만 입은 후에 거실로 나왔다.
“설아야~ 오라버니 다 씻었으니까 너도 씻어~”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며 설아가 나왔다.
“오빠 깨끗하게 씻었어?”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깨끗하고 청결한 남자인지 모르냐?”
“모르겠는데?”
“너 대체 날 뭘로 보고 그런 말 하는 거야?”
“그러게 평소에 잘 씻고 했으면 내가 안 이러잖아~”
“너 지금 그런 식으로 내 청결함을 왜곡하는 거냐?! 이거 쉽게 넘어가선 안 되겠는데?!”
“왜곡이 아니라 사실이거든요? 그리고 나 씻으러 들어갈 거니까 말거지 마세요~”
그리곤 바로 욕실로 들어가 버리는 설아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성민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 했던 말에 복수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뻐서 봐준다. 나도 정말 착하다니까.”
큰 맘 먹고 선심을 쓰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방으로 들어온 성민이 코드를 꼽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머리가 다 말라가는데 그때 거실 집전화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시하고 계속 말리던 성민은 끊이지 않고 울리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헤어드라이기를 끄고 거실로 나섰다.
“여보세요.”
수화기를 들어 말을 하니 대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다시 물어보지만 이번에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전화를 했으면 말을...”
[성민아.]
그때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성민은 순간 멈칫했다.
[성민아... 나야.]
다시 이어지는 말에 성민은 전화를 건 상대가 희정이라는 걸 알았다.
“어, 어...”
[나 지금 너희 집 앞이거든? 나와 줄 수 있어?]
집 앞이라는 말에 순간 말을 못 했던 성민은 잠시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잠시만 기다려.”
그리곤 통화를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그날 설아가 나갔다 온 뒤로 희정이는 다시는 연락을 하거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대체 왜 지금 다시 나타나 전화를 했단 말인가.
그것도 폰이 아닌 집전화로.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성민은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거실로 나왔다.
설아가 샤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욕실을 잠시 바라본 성민이 현관문으로 향해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