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69화 계곡(5)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마무리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함께 먹었으니 당연히 치우는 것도 도와서 같이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이 나자 다희가 설아를 바라보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밤은 저기 텐트에서 둘이 자는 거야?”
“네.”
“뭔가 무흣하네?”
놀리듯이 말하는 다희의 말에 설아는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크기가 조금 작아 보이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을 수 있잖아.”
“어쩌면 일부러 작은 걸 들고 온 걸지도 모르지?”
수정이와 슬기까지 옆에서 거들며 놀리듯 말하자 설아의 뺨이 그대로 붉혀졌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그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 일부러 저걸로 가져왔지?”
“아닌데요. 집에 텐트가 저거 하나뿐이라서 가져왔을 뿐인데요.”
“에이... 다 알면서 뭘 그렇게 빼고 그래?”
“빼는 거 아닙니다.”
“에이...”
옆구리를 꾹꾹 찔러대는 치호의 행동에 성민은 철판을 깔고 그러지 않다고 대답을 했다. 그렇게 정리 작업을 끝내면서도 치호는 아직 어리니까 함부로 진도 빼면 안 된다는 둥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데 성민은 그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다시 흘릴 뿐이었다.
“그럼 저희 가볼게요.”
“그래~!”
“내일도 아침 같이 먹자.”
“불편하지 않아요?”
“불편할 게 뭐 있어? 오늘도 너희들 때문에 더 시끌벅적하고 재밌었는데.”
“그럼 그럴게요.”
“잘자~”
손을 흔드는 그녀들에게 설아 역시 인사를 하고 성민과 함께 텐트로 돌아왔다.
“나 옷 갈아입을 테니까 안으로 들어오면 안 돼.”
“알았어.”
위에 티를 입고 있다고 하지만 설아는 지금 비키니 수영복 차림이었다. 이대로 잠을 청할 수는 없는 일인지라 먼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저긴 같이 자지 않는 모양이지?’
커다란 텐트 두 개를 준비해 온 걸 보면 아마도 세명씩 갈라서자는 것으로 보였다. 즉 함께 자는 것은 자신과 설아가 유일했다.
‘그래서 그 형이 나보고 그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은 거구만.’
왜 그렇게 진도가 너무 빠르다느니 하는 일장연설을 하며 그런 얘기를 했는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부러워서 그런 게 분명했다.
‘하긴 나라도 부러웠을 거야.’
자신도 치호의 입장이었으면 조금 크기가 작아 보이는 텐트에 딱 붙어 잔다는 것이 못내 부러웠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되자 성민은 확실히 설아와 자신의 진도가 빠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남매가 사귄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겠지만.’
하지만 그것도 다 무마 할 수 있는 게 바로 설아와 자신의 관계였다.
설아와 자신이 친남매라는 것을 저들이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예상 할 수 있는 성민이었다.
“이제 들어와도 돼.”
그때 텐트 안에서 설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에 성민이 닫혀 있는 지퍼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설아는 여전히 힌 티를 입고 있었는데 하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바지는?”
“안 입으려고.”
놀랍게도 설아는 하의실종이 아닌 정말로 아래엔 팬티만 입고 있는 차림새였다.
“어차피 우리 둘이서 잘 건데 상관없잖아.”
“하지만.”
성민이 잠시 저쪽의 텐트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다들 텐트 안으로 들어간 듯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일 없다니까.”
재차 이어지는 설아의 말에 성민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젖은 옷을 갈아입었기에 이대로 자도 상관이 없는 성민이었다. 그렇게 랜턴의 불을 끄고 자리에 누으니 겉으론 좁아 보여도 그래도 나름 불편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여기서 혼자 자면 공간 정말로 넉넉하겠다.”
“그러게. 둘이 누워도 생각보다 그렇게 좁다고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야.”
설아가 판을 들어 성민의 허리를 휘어 감았다.
“아...좋다.”
“놀러오니까?”
“응. 오빠는 안 좋아?”
“안 좋을 리가 있겠냐?”
“나하고 와서 좋은 거지?”
“놀러오는 거 자체가 좋지.”
순간 설아가 손을 움직여 성민의 옆구리를 꼬집어 버렸다.
“아야. 너 왜 내 허리를 꼬집고 그래?”
“오빠가 놀리니까 그렇지.”
“내가 언제 놀렸어.”
“난 그 대답을 원한 게 아닌데 오빠가 다르게 말 했잖아.”
“그럼 어떤 대답을 원했는데?”
“그야...”
설아가 말을 하다말고 그대로 허리를 허리를 감으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말 못해.”
“왜 말을 못하는데?”
“몰라.”
강하게 허리를 끌어 안은 채 얼굴을 파묻은 설아의 행동에 성민이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성민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안겨 있는 설아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물컹함에서 뭔가 살결이 닿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애 브래지어 안 했나?’
비키니를 벗고 갈아입으면서 그대로 노브라도 티만 입은 듯 했다. 브래지어를 한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에 짐작해선 안 되지만, 가만히 느껴보면 안 한 게 분명 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성민은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빠.”
그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설아가 고개를 들어 다시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붙어서 자니까 기분이 어때?”
“어떠냐니.”
“난... 많이 설레는데.”
“전에도 같이 잤었잖아. 어릴 때도 그런 적 많았고.”
“그때랑 지금이랑은 다르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로에 대해서 아무런 자각이 없었을 어린 시절은 한 때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 별다른 감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가 오셔서 나갈 수 없어 설아의 방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긴 하였지만 그 역시 새벽에 돌아가 버렸으니 어중간 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저 사람들이 보기엔 우린 완전히 남녀의 사이잖아. 오빠와 여동생이 아니라.”
“......”
확실히 그랬다.
저들은 자신들을 남매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연상 연하의 커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런 곳에 남녀 들이서 온다면 커플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었다. 설마 남매가 텐트 하나만 가지고 계곡에 놀러와 오붓하게 시간을 가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지금 우릴 남매라고 생각 할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어. 그래서 더 설레는 것 같아.”
지금 설아가 말하는 바가 남녀의 관계로써 이렇게 함께 누워 있는 것을 뜻했다. 둘 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렇게 보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을 말이다.
“아까 다희 언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우리들 어디까지 나갔냐고 물어봤어. 그러더니 한 발 더 나아가 작게 묻는데 나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어.”
“왜?”
“오빠하고 거기까지 간 거냐고 물어서.”
“......”
확실히 저런 얘기를 남에게 들으면 부끄러울 만 했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둘이 사귄다는 것을 밝힐 수 없는 입장이라 저런 말을 들을 상황도 없었다. 둘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어떻게 사귄다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 헌데 여기서 그런 질문을 받게 되었으니 당연히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성민을 바라보며 설아가 그렇게 작게 속삭였다.
“그 질문은 연인에게나 묻는 말이니까. 나 정말로 오빠와 사귀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어.”
“......”
설아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성민 역시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설아 보고 자신과 끝까지 간 거냐고 물었다니. 다른 남매에게 이 소리를 했다면 기겁을 할 일이었지만 둘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다희 역시 둘의 관계가 남매임을 알면 전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겠지만, 남매라고 밝힐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을 할 수도 없었어.”
“당연하지. 남매라고 어떻게 말해.”
“그거 말고.”
“그럼?”
“알면서 왜 물어 바보야.”
되묻는 자신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핀잔을 주는 설아의 말에 성민은 그제야 무엇을 말함인지 알아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러면 뭔가 까진 것 같잖아. 그래서 키스 정도 까지만 했다고 했어.”
“그 말을 믿어?”
“텐트하나에 같이 자는 거 보고 반쯤은 믿지 않는 것 같긴 했어.”
키스 정도만 했다는 애들이 한 텐트에 같이 잠을 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설아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을 것이었다.
“알았어, 라며 웃었으니까 분명 그럴 거야.”
부끄러워서 제대로 밝히기 꺼려 한다는 것쯤으로 생각 했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낮에 어땠어?”
“응?”
“물 밖에서 말이야...”
“정말로 좋았지.”
“정말?”
“응, 설아 너 비키니 입은 모습 보니까 정말로 주체 못 하겠더라. 뒷모습도 너무 섹시한게 내 동생이 맞나 싶더라니까.”
“뭐야, 그러면 그동안 별로 안 예뻤다는 소리야?”
“아니야. 평상시 설아 네 모습도 정말로 예쁘지. 다만 비키니 입은 모습 보니까 섹시해 보였다는 소리야.”
“그래서 할 때 더 기분 좋았어?”
노골적으로 묻는 설아의 말에 성민은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을 해주었다.
“당연하지.”
“아쉽겠네.”
“응?”
“내일부터는 비키니를 입어도 위에 티를 입고 다녀야 하니까.”
“상관없지 않나?”
비키니가 수영복이고 해변에서 다 그렇게 입고 다니는데 전혀 티를 입을 필요가 없었다.
“바보야.”
“야, 그만 좀 꼬집어. 따가워죽겠네.”
“오빠가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잖아.”
“네가 무슨 생각이 없다는 말이야.”
“그럼 생각한 사람이 왜 위에 티를 입는지 모르는 거야?”
설아의 말에 성민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나에게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이 바보야.”
“......”
부끄러워서 그랬는가 싶었는데 설마 그 때문일 줄은 몰랐던 성민은 설아의 핀잔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계곡에 온 것도 이런 걸 노리고 온 거란 말이야.”
이제야 설아의 속뜻을 알아들은 성민은 왜 자신에게 핀잔을 주는지 이해가됐다.
“오빤 아직도 날 여동생으로만 보고 있는 거야?”
“그, 그건 어니지...”
“말을 더듬는 거 보니까 맞네.”
“......”
새침하게 성민을 바라보던 설아가 쓴웃음을 짓더니 성민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난 오빠가 여동생이 아닌 이성으로써 대해주었으면 좋겠어.”
“......”
“난, 오빠를 친오빠가 아닌 남자친구로써 대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