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61화 방학식(2)
“혜진이하고 설아가 늦네.”
“우리가 너무 빨리 끝난 거야.”
“하긴 그렇지?”
현준이 역시도 설마하니 담임선생님이 그렇게 간단히 방학식을 끝낼 줄은 몰랐다. 거기다 교장선생님 훈화시간에 조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는 것도 그렇고 생각하는 방식이 남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렇게 빨리 끝난 방학식은 처음이었다. 하교를 하는 학생들도 보면 일등으로 교문을 나선 것이 반 아이들이었다. 이제야 다른 반이나, 다른 학년 애들이 하나 둘 나서는 것을 보면 확실히 방학식이 빨리 끝난 것은 맞았다.
“성민아.”
“어?”
“너 설아에게 말 했어?”
“어떤 거?”
“다다음주에 우리 워터파크 가기로 한 거 말이야.”
“아, 맞다.”
깜박 했다는 듯 한 늬앙스의 말에 유람이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성민이 너 물어보는 거 까먹고 있었지?”
“아니 까먹을려고 한게 아니라... 미안해.”
“너도 정말...”
“아파서 그런 거 같은데 봐줘 유람아.”
고개를 가로젓는 유람이의 모습에 현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중재에 나섰다.
“그래 유람아. 설아오면 그때 물어보면 되지 뭘.”
지수역시 이렇게 나오자 유람이도 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학교에 오지 못 할 정도로 아팠던 것도 사실이니 그걸 걸고 넘어 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애들을 바라보면서 성민은 그저 미안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차마 설아와 있었던 일 때문에 잊고 있었다고 사실대로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저 쪽에서 걸어오는 혜진이와 설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기온다!”
유람이도 곧 이쪽으로 오는 두 사람을 발견 한 듯 했다. 그 말에 현준이와 지수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저쪽에서 걸어오며 혜진이가 반갑게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아야...’
하지만 성민은 혜진이가 아닌 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설아 역시 자신을 쳐다보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오빠.’
교문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성민을 시선을 설아가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시간으로 보면 오빠와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대였으나 설아는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저 오빠 동생 사이가 아닌 관계. 이성, 남녀의 관계로 서로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오빠의 시선이 그저 여동생으로써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설아는 묘한 설레임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요, 선배. 생각보다 늦게 끝났어요.”
“아니야, 우리가 빨리 끝난 건데 뭘.”
지수가 괜찮다는 듯 말하자 혜진이가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자, 그럼 가볼까?”
“버스, 지하철?"
“당연히 지하철이지. 버스보다는 에어컨이 잘 나오니까.”
“좋아, 그럼 지하철타고 가자.”
다 정했다는 듯 그렇게 모두 함께 걸음을 옮겨 학교를 나섰다.
“설아야, 다다음주에 혹시 약속 있어?”
“다다음주요?”
“응, 그날 우리 워터파크에 가기로 계획했거든.”
“정말이요?”
“응, 성민이가 물어보기로 했었는데 그만 깜빡했다지 뭐야, 그래서 지금 물어보는 거야. 혹시 약속이라도 잡혀 있어?”
“아니요.”
“다행이다. 그럼 갈 수 있는거네?”
“저야 괜찮은데 언니, 오빠들은 다 갈 수있는거예요?”
“물론이지. 우린 이미 다 빼놨어. 성민이도 그렇고.”
그에 설아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설아가 새침하게 성민을 바라보았다.
“오빤, 그 얘길 들었으면 바로 나에게 말해야지.”
“아니 나도 모르게 깜빡해서...”
“뭐야 오빠. 만약에 나 그날 약속이라도 잡으면 어쩔 뻔 했어? 정말 이런 쪽에서는 오빠는 영 믿음이 안 간다니까.”
“믿음이 안 간다니. 너 그게 오빠에게 할 말이냐?”
“할 말이지~”
지지 않고 받아 치는 설아의 말에 성민이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설아야 그만해. 성민이가 몸살 때문에 아파서 잊은 것 같은데 봐줘...”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설아가 성민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다음엔 그런 거 있으면 확실하게 말해.”
“걱정 마. 난 원래 이런 쪽에 철저한 사람이라고.”
“오빠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 성민이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아오... 저걸 그냥......!”
“참아 성민아.”
분에 못 이겨 하는 성민의 모습에 급하게 웃으며 말리는 현준이었다. 거기다 대고 설아는 한 발 더 나아가 혀를 내밀며 약을 올리는데 그에 혜진이 까지 나서서 만류해야 했다. 당연히 성민이는 다시 날뛰었고 현준이는 말리는데 애를 썼다.
“두 사람 정말로 못 말린다니까. 안 그래 지수야?”
“응...”
유람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지수였지만 속으로 느끼는 감정은 미묘했다.
‘설아는 성민이를 이성으로써 좋아 하잖아. 그런데 저 모습은...’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젠 지수는 설아가 성민을 오빠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늘쌍 봐오던 성민과 설아의 모습이었지만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양호실에서 보았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앞에서 좋아하는 티를 내기 싫어서 그런 걸까?’
여러 생각이 든 지수였지만 알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지수와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성민.
‘설아 애 진짜 대단하네...’
성민은 설아가 이러는 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애들 앞이니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핀잔을 주고 하는 행동이 연기라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성민은 속으로 설아를 보면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설아가 저렇게 행동하니 자신 역시 그 분위기에 티격태격 하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정도로 설아의 연기가 너무나 뛰어났다.
그러다 성민은 고개를 돌려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는 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마음이 걸리는 성민이었다.
왜냐하면 지수는 설아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게 연기라는 것을 눈치 챘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설아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도 말 그대로 안심이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현준이와 유람이, 그리고 헤진이와 다르게 설아와 성민이, 그리고 지수는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번화가로 향했다.
오전이고 이른 시간에 끝난대다 시간이 많아 오랜만에 다 함께 영화표를 끊었다. 여름이면 당연히 공포영화가 재격이라 도시괴담을 소재로 한 이번에 새로 개봉을 한 영화표를 끊었다. 평가도 나쁘지 않았고 볼만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어서 그걸로 정한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려면 1시간이라는 시간이 남아서 그렇게 다시 밖으로 나와 보드게임장으로 향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에 맞춰 나와 극장으로 향해서 상영관으로 들어갔고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성민은 맨 왼쪽에 앉았고 그 옆에 설아가 앉게 되었다. 잠시 후 극장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한 여자가 누군가에게서 도망가는 듯 급하게 골목길을 달려갔고 잠시 후 기괴한 소리와 함께 묘령의 여인이 나타나 그 여자를 덮쳤다. 그 순간 여자는 잠에서 깨어났고 식은땀을 닦으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저주를 받으면 꿈에서 귀신이 나타나고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귀신분장이 섬뜩하고 중간에 놀래키는 게 많아 여기저기서 관객들의 비명이 한 번식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성민은 도저히 영화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묘하게 긴장 된 채로 앉아 있던 성민이 고개를 힐끔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설아는 똑바로 스크린을 바라보며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설아의 모습과는 다르게 설아의 왼손은 아무도 보지 못 하게 의자 아래에서 성민의 손을 잡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팔을 건드리는 느낌에 바라보니 그건 설아의 손이었다. 이어 설아는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와 자연스럽게 성민의 손에 깍지를 꼈던 것이다. 그게 아까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설아는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시선은 스크린에 향해 있었다.
다시 성민이 시선을 바로 했을 때, 깍지를 끼고 있는 설아의 손에 힘이 들어가 강하게 쥐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시선을 돌려 바라봤지만 여전히 설아는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자신이 고개를 돌리자 바로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는 것은 분명 쳐다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분명했다. 묘한 긴장감 속에 성민은 그렇게 설아의 손길을 느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설아는 깍지를 끼고 있는 성민의 손을 놔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