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60화 방학식 (60/85)



〈 60화 〉60화 방학식

다음날 교실문을 열고 들어선 자리에 앉자 지수하고 유람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오늘은 학교 왔네?”

“당연히 와야지. 방학식인데.”


“몸은 좀 괜찮아?”


“응,  먹고 폭 쉬었더니 나아졌어.”

고개를 끄덕이며 성민이 거뜬하다는 듯 대답하자 현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제 깜작 놀랐어. 아침조회 시간이 다되도 갑자기 학교에 오지 않으니까. 거기다 문자도  읽고 전화도 안 받으니 오죽하겠어?”

“미안하다. 아침에 일어나까 머리가 어지러워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래도 이렇게 나아진 모습 보니 다행이다야.”

“그러게.”

다행이라는 현준이를 보면서 성민은 그저 쓴웃음만 지어줄 뿐이었다. 어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성민은 차마 사실대로 말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이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가  일에 대해서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참, 성민아 설아는 괜찮아?”


“설아?”


“혜진이가 그러던데, 설아도 아파서 학교에 못 왔다고.”


어제 결석을 한 것은 당연하게도 성민이 뿐만이 아니라 설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응, 감기몸살이 심해서... 아무래도 나한테 옮았나봐.”

“조심  하지.”

“전 날에 기침을 조금 했는데 그때 옮았나봐. 내 불찰이지 뭐.”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자신의 양심에 찔렸지만 사실대로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이렇게 둘러댈  밖에 없었다. 그러다 성민은 지수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아침조회 시간이 다가왔고 잠시 후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놈 오늘은 빼먹지 않고 등교했네?”

“이번 학기 마지막인데 와야죠.”


“학교  올것 같으면 아침에 연락을 하라고 했는데 왜 안 했냐?”

“그게 몸이 너무 아파서 말이에요. 그래서 조금 늦게 보내게 됐어요.”

“그래?”


몸이 너무 아프다는데 뭐라고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1교시 끝난 후에 연락이 되었고 오늘이 이번학기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넘어가주기로 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 명  명 출석체크를 끝낸 후 학생들을 둘러본 담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은 너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학식이다. 수업도 없고 식만 올리고 가니까 다들 기분 좋지?”


“당연하죠!”

“이미 애들하고 약속도 잡아 놨어요!”

“욘석들아. 네년이면 너희들도 수험생인데  궁리만 하지 말고 준비 잘해.”

“놀 땐 놀고  땐 하라고 한 건 쌤이었던 거 같은 데요~”

“오늘이 노는 날이라는 얘기냐?”

“방학식이고 불금에다 일찍 끝나니 놀아야죠!”

순간 여기저기서 애들의 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담임역시도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어쨌든 방학이라고 늦잠 자지 말고 다들 알차게 보내라. 봉사활동도 하면서 점수 관리도 하고.”


“예~!”

수업도 없고 방학식만 하고 끝나서 그런지 애들의 목소리는 모두 활기찼다.

“아침조회는 이걸로 끝내기로 하고 곧 방학식이니까 다들 준비해라.”


그때 성민이 손을 들었다.

“뭐냐?”


“혹시 운동장에 나갑니까?”

“교실.”


짧게 한 마디 하고 문을 열고 담임이 나가자 여기저기서 애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렇게 찌는 듯 한 더위에 운동장에서 방학식을 하면 그건 그것대로 고역이 아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다. 운동장에  나가도 돼서.”


현준이 안도하며 기쁨의 말을 내뱉자 성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오늘 같은 날씨에 나가는 것 자체가 확실히 고문이 아닐  없었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교실에서 방학식을 하게 되었으니 운이 좋았다.


저마다 아이들이 떠드는 가운데 지수와 유람이 다가왔다.


“우리 오늘 놀러갈래?”

“놀러?”


“식만 올리고 일찍 끝나니 딱 좋잖아.”


유람이의 의견에 현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나도 그 생각 했는데. 지수 넌 어때?”

“나도 괜찮아.”


“성민이 넌.”

“나? 나야 뭐... 특별한 스케줄이 있는  아니니...”


“설아는 성민이 네가 보내 볼래? 혜진이 한테는 내가 문자 보낼 테니까.”


“어...”

쇠불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곧장 문자를 보내는 현준이었다. 그에 성민이 역시 설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보내고 얼마뒤 바로 답장이 왔는데 오빠가 그러고 싶다면 자신은 상관 없다는 얘기였다.

“혜진이는 괜찮다는데 뭐래?”


“설아도 알겠다더라.”

“그러면된 거네?”


“잘됐다!”

기뻐하는 유람이를 바라보던 성민이 순간 지수와 눈이 마주치자 또 다시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왜 이렇게 찔리는 거야.’


평상시처럼 바라보면 되는 일인데 지수와 있었던  때문에 양심이 찔리는 것인지 도저히 똑바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늘 일정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종이 울리고 잠시  다시 담임선생님이 들어서자 모두들 자리에 착석했다.


오늘은 수업이 없고 방학식을 올리는 날이라 곧장 티비를 켜고 채널을 맞췄다. 방송부원의 목소리와 함께 곧이어 방학식이 시작되고 그 사이 담임선생님이 가지고 온 유인물들을 돌려 받은 학생들은 총 방학 일수와 주의 사항을 읽었다.

그렇게 예정된 식이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이어졌는데 이번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와 앞으로 미래를 위해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꾀나 길게 이어지는 훈화에 당연히 하나 둘 지루해 하며 조는 아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는데 담임선생님은 웬일인지 조는 아이들을 깨우라고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놔두었다.

그렇게 장작 30분이 넘는 긴 훈화말씀이 지나가고 드디어 방학 잘 보내라는 마무리 발언 후 끝이나자 졸았던 학생들 까지 다시 정신을 차리며 생기를 띤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것으로 20...]

여름방학식이 끝났다는 방송부원의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리모컨으로 티비를 꺼버리는 담임선생님이었다.

“훈화말씀 끝나니까 바로 일어나는 거 봐라... 그렇게 지루했어?”

“지루한 정도가 아니라 수면제에요.”

“수면제라... 틀린 말은 아니지.”


야단을 치지 않고 공감 한다는 듯 말하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미 들을거 다 듣고 유인물로  봤으니까 긴말은 하지 않는다. 네년에 수험생인거 잊지 말고 다들 방학 알차게들 보내라. 이상 방학식 끝!”


“선생님 최고!”


“우리 담임이 짱이라니까!”

“우리 담임은 반말이고 욘석아.”

“죄송해요, 쌤!”

간단명료하게 끝내는 모습과 주고 받는 말에 여기저기서 기쁨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이어져 나왔다.

“반장.”

자리에서 일어난 진수가 경례를 시키자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청소안하냐?”


다들 집에 갈 준비를 하는 모습에 성민이 의아한 듯 물음을 던졌다.

“어제 대청소했잖아. 그래서 오늘은 바로 가.”

“그래?”

“마지막으로 주번이 문단속만하고 가면 돼. 오늘 주번은 할 일 없는거지 뭐.”

“잘 됐네.”

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애들과 교실을 나갔다.

“교문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거기서 기다리면 될 거야.”

현준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교문으로 향했다.



‘오빠 반은 벌써 방학식이 끝난 건가?’

담임선생님의 말이 이어지고 있는 한 편 창밖을 바라보던 설아는 교문 쪽에보이는 익숙한 얼굴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수 언니와 유람이 언니, 그리고 현준오빠와 오빠까지. 그렇게 네 명이 서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길어 질  같은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설아는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가운데 오빠인 성민을 다시금 바라보니 금세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오늘도 저번처럼 행동해야겠지?’

자신과 오빠가 사귀는 것은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은 설아역시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저번처럼 평소의 자신이 오빠를 대했던 것 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막상 예전에 자신이 했던 행동대로 오빠에게 잔소리를 하고 티격태격 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생각하니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때는 오빠를 그저 오빠로만 생각했으니 그런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런 관계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숨기지 않아도  일인데...’


만약 자신과 오빠가 친남매가 아닌 그저 아는 선배와 후배사이였다면 오늘 사귄다고 밝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설아는 너무나 안타까웠고 아쉬웠다.

‘오빠와  남매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밝혀서는 안 되는 사랑. 그게 지금 설아와 성민의 관계이자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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