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47화 조언
“네, 네가 여기엔 어쩔 일이야?”
“문자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받아서 지수 언니에게 절화 걸어서 물어봤어.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지 이게 뭐야.”
“아니... 그렇게 아픈 건 아니고.”
“아픈 게 아닌데 이렇게 침대에 누워 있어?”
“......”
진지하게 따지듯 묻는 설아의 말에 성민은 순간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아 버렸다.
“아침에 오빠 안색이 별로 안 좋아보여서 조금 걱정스러웠었는데 많이 아픈거야?”
“아니야. 아픈 거. 그리고 왜 바보 같이 울어?”
“나 진짜 많이 놀랐단 말이야 이 바보야!”
순간 설아가 성민의 목을 끌어안으며 강하게 안겨왔다. 갑작스럽게 품에 안겨오는 설아를 보며 성민은 당황스러웠지만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설아 앞에서 차마 당혹스러워 하는 행동을 보일 수는 없었다.
“진짜 아픈 거 아니야. 그냥 조금 피곤해서 잠시 쉬고 있었던 것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울지 마.”
목을 끌어안고 있는 설아의 등을 어루만져주며 성민이 최대한 침착하게 설아를 달래주었다.
“정말로 많이 아픈 거 아니야?”
“아니야. 나 약 먹고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비타민제 먹고 쉬고 있는 거라고.”
“진짜지?”
“그래, 진짜야.”
“오빠 아프면 말해? 혼자 그렇게 앓고 있지 말고.”
“알았어.”
그제야 설아가 목을 감고 있던 팔을 놔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설아의 눈가에 흘러내린 눈물을 보자 안쓰러워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바보같이 왜 우냐?”
“오빠가 아파보이니까...”
“그게 걱정 되서 눈물이 나왔던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빠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이렇게 한 달음에 달려온 것도 대단한데 이렇게나 걱정을 해주다니.
‘애가 정말로 날 많이 생각해주고 있구나.’
이렇게나 자신을 생각을 하고 있는 설아를 보자 성민은 묘한 감동을 받았다. 물론 설아가 자신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오는 설아를 보니 성민은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괜히 자신 때문에 설아를 울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 몸이 아프면 말 할 테니까. 그렇게 눈물 보이지 마, 알았지?”
“응.”
“참, 지금 쉬는 시간 다 지나가는 거 아니야?”
“괜찮아. 아직 조금 여유 있어.”
“하지만 교실 까지 시간 조금 걸릴 텐데.”
“조금 혼나면 돼.”
“그러면 안 되지. 나 때문에 혼나는 걸 볼 수 없잖아.”
“그래도 나 좀 더 오빠하고 있고 싶은 걸.”
“있고 싶다고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걱정되잖아. 오빠는 괜찮다고 해도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 걸.”
“설아야...”
“선생님에게 조금 혼나는 것 보다 오빠의 상태가 나에겐 더 중요해.”
“나에게 바부탱이 거리면서 설아 넌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게 어디 있냐?”
“그럼 오빠도 나에게 바보라고 해. 이게 바보 같은 행동이라면 나 충분히 바보가 될 수 있는 걸.”
“......”
설아의 이런 말에 성민은 잠시 동안 그런 설아를 바라보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설아의 말에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설아가 정말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를 위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이런 설아가 성민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며 설아가 자신을 이성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마음도 든 것일지 모른다.
‘미친놈... 설아가 그렇게 본다고 오빠가 돼서 흔들려선 안 되는 거잖아.’
성민은 그런 자신의 마음에 대고 속으로 스스로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설아가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왜 그래 오빠...?”
아무말없이 자신을 바라만보고 있는 성민의 시선에 설아가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아니, 그냥... 네가 정말로 오빠를 위해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연한 걸...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오빠니까.”
“나의 오빠?”
“응, 나의 오빠.”
말이 좀 묘하게 들릴 수 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피를 나눈 유일한 남매에다 설아는 성민에게 있어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었으니까.
‘여동생...’
맞는 말이다.
설아는 자신에게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다. 그리고 같은 피가 흐르는 남매이자 혈육이었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사이.
설아와 자신은 그런 관계였다.
“그러네.”
성민이 작게 웃음을 지었다.
“설아 너도 나에게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니까.”
“오빠.”
성민이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설아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성민아.’
조금 전 설아의 모습을 보고 귀엽다느니, 사랑스럽다느니 하는 마음을 품었던 자신의 가슴을 성민은 애써 억누르며 진정시켰다. 나의 오빠라는 설아의 말에 성민은 다시금 자신과 설아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정말로 가봐.”
잠시 후 종소리가 울리자 성민은 설아를 보내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괜찮은 거지?”
“응, 나도 곧 교실로 돌아갈게.”
“알았어. 혹시라도 몸이 안 좋으면 문자해야 해?”
“그럴게.”
여전히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설아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돌려 커튼을 젖히고 나가 양호실을 나섰다.
다시 침대에 몸을 뉘운 성민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위험한데...”
설아가 자신을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많은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 설아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성민은 언젠간 다른 사랑이 찾아 올 때까지 자신이 잘 절제해서 오빠로써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설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성민은 한 번씩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프다는 얘기에 한 달음에 달려와 눈물을 글썽이는 설아를 보니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에 종이 울렸음에도 망설이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만 했다. 저런 설아의 모습을 옆에서 계속 보게 된다면 자신이 정말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양호선생님인가?’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 한 것 같은데 인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면 아무래도 살며시 열고 들어온 듯 했다. 그러다 발소리가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 성민이 상체를 일으켜 커튼 너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인영이 커튼을 젖히며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지수였다.
“네가 여기엔 어쩐 일이야?”
“몸은 괜찮아?”
“어, 어... 이제 곧 나도 교실에 돌아가려고.”
가까이 다가온 지수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앤 또 표정이 왜 이래?’
성민은 침대에 걸터앉아 뭔가 생각을 하는 듯 보이는 지수의 얼굴에 뭔가 모를 긴장감을 느꼈다.
“저기 성민아.”
“어?”
“너 말이야. 지금 내 말이 정말로 이상하게 드릴지 모르지만, 이런 말 해선 안 된다는 거 알지만 지금 너에게 꼭 물어봐야 할 것 같아.”
“물어본다니 어떤 걸?”
“내 질문에 오해하지 말아줘. 너 기분 나쁘라고 하는 얘기는 아니니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성민은 일단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너, 혹시 설아 좋아하니?”
“뭐, 뭐?!”
순간 성민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반문했다.
“오해하지 마. 정말로 너 기분 나쁘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야,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거 헛소문이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알아, 알고 있어. 그래서 이렇게 묻는 거야. 적어도 성민이 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믿고 있으니까.”
“......”
“아까 전에 너하고 설아는 모르겠지만 나 둘이서 하는 얘기를 엿들었어.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에서 들려오는 얘기를 듣게 됐어.”
지수의 말에 성민은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성민이 넌 설아를 그렇게 보지 않는 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보기엔 설아는 널... 이성으로써 좋아하고 있는 거 같아.”
“......”
“성민이 너 역시 그걸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내말 틀려?”
“......”
자신의 말에 대답이 없는 성민을 보며 지수는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지수는 마음이 무거워지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저 생각했던 것과 그게 사실로 드러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성민이 너는 아니라고 하니까 다행인데, 절대 설아가 원한다고 해도 그 이상의 선은 넘지 마. 그건 해선 안 되는 짓이야.”
“......”
“너하고 설아는 남매야. 지금도 이렇게 애들이 수군거리는데 정말로 그런 일을 벌이게 된다면 정말로 큰일인거잖아. 솔직히 말해 설아가 널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도 충격이 커. 만약 성민이 너도 그렇다고 했다면 나 정말로 소름 돋았을 거야.”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랑한다고 해도 이루어지면 안 되는 관계가 있는 법이다. 인륜을 저버리는 짓이며 상대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성민과 설아의 관계가 그러했다. 한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 남매. 가족으로써 좋아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을 바라보아선 안 되는 사이가 바로 남매사이였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성민이 너도 잘 알거라고 생각해. 현준이에게 들었어. 네가 설아를 정말로 많이 아낀다고. 그리고 그게 여동생으로써 위하는 마음일거라는 걸 난 믿고 있어. 그러니까 성민아. 설아를 위해서도, 그리고 널 위해서도 절대 다른 마음먹지 마. 네가 정말로 설아를 위한다면, 오빠라면 그렇게 해야 해.”
“......”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성민을 바라보던 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에게는 내가 잘 말해 둘 테니까 좀 더 쉬다가 와. 난 이만 가줄테니까.”
그러고는 지수는 성민을 놔두고 조용히 양호실을 빠져나갔다.
지수가 가고 다시 혼자가 된 성민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동안 설아 하고 단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을 때와는 다르게 지수가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