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44화 억누르기 힘들어
‘또 설아 하고 문자 주고받나?’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폰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성민을 보면서 지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 성민이 문자를 주고받는 게 설아가 아닐 수도 있으나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설아일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는 게 이렇게 의식을 하지 않았을 때도 성민은 설아와 상당히 많은 문자를 주고받았었다. 물론 이런 것 역시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행동 중에 하나였으나 지수는 이런 것도 그렇게 엮는다며 어이가 없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점심시간 역시 성민은 자주 폰을 확인했다. 틈날 때마다 문자가 왔는데 둘이 무슨 할 얘기가 많은 것인지 의아 할 정도였다.
“성민아.”
“응?”
“무슨 문자를 그렇게 재밌게 주고받아?”
“아, 이거? 별거 아니야. 그냥 쓸데없는 얘기.”
“그래?”
“어.”
그러면서 다시 문자를 보내는데 슬쩍 바라보니 역시 주고받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설아였다.
슬쩍 본 거라서 무슨 내용을 주고받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설아 얘도 참 힘들겠다. 매일 너 깨워주랴 밥 챙겨주랴. 성민이 너 설아에게 정말로 고마워해야 해.”
“나도 충분히 고맙다고 하고 있어. 특히 요즘에 아르바이트 때문에 더 피곤 할 텐데 6시쯤에 기상을 하니.”
“6시에 기상을 한 다고?”
“어, 내가 말 안 했었나?”
“오늘 처음 듣는데?”
“그, 그래?”
순간 당황한 성민이었지만 그보다 지수는 설아가 6시 전에 기상한다는 말에 놀라워했다.
“아니 왜 그렇게 빨리 일어나는 거야? 등교 시간은 8시 30분까지인데.”
자그마치 30분의 등교 여유시간을 둔다고 치면 2시간 먼저 일찍 일어나는 셈이었다. 6시면 지수 자신도 아직 자고 있을 시간. 그 때쯤에 설아가 일어난다는 말에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얘긴데 그렇게 놀라하는 거야?”
그때 다가온 유람이가 의아한 얼굴로 물음을 던져왔다.
“설아가 6시쯤에 기상한다고 해서.”
“6시? 설아가 그 시간에 일어난다고?”
“응.”
“왜? 6시 전이면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거 아니야?”
놀라워하는 유람이의 말에 성민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해도 식사 준비 한다고 그 시간에 일어나네?”
“그럼 설아가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게 식사 준비 때문이야? 그런데 설아 진짜 억울하겠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데 지각을 그렇게 많이 하면.”
“그건 나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해야 할 정도가 아니지 그 정도면. 거기다 설아는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지 않아도 그대로 지각처리 되어 버리잖아.”
“어제 설아가 충분히 투덜거릴만 했네.”
유람이가 오빠를 깨워 주는 걸로 투덜거렸던 설아의 말이 전적으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데 지각을 많이 한다면 설아로써는 상당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설아도 참 대단하다. 그런데도 성민이 너 깨워주고 밥 차려주고 하는 거 보면.
“그, 그렇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성민의 모습을 지수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라면 설아 처럼 그러지 못 할 텐데. 거기다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어서 늦게 들어온다며? 거기다 숙제까지 다 하고 자면 12시 넘어서 잘 텐데 6시 전에 기상하면 설아 많이 피곤하겠다.”
유람이의 말대로였다.
지수 역시도 설아처럼 하라고 하면 얼마가지 않고 그만 둘 게 뻔했다. 거기다 그런 자신의 노력도 몰라주고 계속 지각을 한다면 더욱더. 유람이가 설아를 대단하게 보는 게 전혀 이상 할 일이 아니었다. 설아처럼 저러려면 노력정도로 부족했다.
저런 생활 패턴을 매일 가져가려면 확실하게 동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자신을 그렇게 잡아 둘 수밖에 없는 그런 동기가.
‘만약 설아가 정말로 성민이를 좋아하는 게 맞다면.’
그렇다면 그게 동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냥 오빠라서가 아니라, 그 앞에 사랑하는 이라는 말이 붙으면 확실히 달라 질 수 있는 동기가 될 수는 있었다. 설아가 정말로 성민이를 이성으로써 많이 좋아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한 번 이런 쪽으로 생각을 하고 가정을 하게 되자 여기에 살을 붙이고 이야기를 부풀려 나가는 자신을 보자 지수는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마치 설아와 성민이 그렇고 그런 사이로 스스로가 몰고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다른 애들과 자신이 다를 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생각을 도저히 떨 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지수는 그 생각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었다. 당번이어서 교실에 남아 청소와 뒷마무리를 하게 된 지수는 그런 자신을 돌아보며 창밖에 저 만치 교문으로 걸아 나는 성민을 보면서 지수는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계속해서 이런 생각만 하게 되니 나도 진짜 안 되겠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루 종일 이쪽으로 생각이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보면 정말로 한심해 보이는 지수였다. 교문으로 걸어가는 성민의 뒷모습을 보니 지수는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막 몸을 돌리려는데 순간 그런 성민에게 달려가는 여학생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앞서 걸어 나가는 성민을 따라 잡아 그대로 팔짱을 끼는데 그 모습에서 지수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팔짱을 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설아였기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걸음을 옮기며 웃으면서 입을 여는데 금세 교문을 나가 두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말로 망상에 불과한 게 맞을까.’
지수의 마음은 너무나 복잡했다.
그날 저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설아는 싱크대로 걸어가 확인을 했다.
“오빠 저녁 챙겨 먹었구나?”
“어. 네가 신경을 쓰는데 안 먹을 수가 있겠어?”
학교에서 애들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설아가 정말로 힘들겠구나라는 걸 느낀 성민은 저녁을 두 밥그릇이나 먹었다. 물론 반찬이 맛있었기에 잘 넘어갔다.
“그럼 내 생각 때문에 밥을 먹었다는 거네?”
“아,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검지손가락으로 콧등을 긁으며 말하며 조금 쑥스러워 하는 오빠를 설아가 웃으며 바라보았다.
“기다려 오빠.”
방으로 들어간 설아가 교복을 갈아입고는 다시 나와 주방으로 향해 뜨거운 물을 얹었다.
“설아 너 씻어야 하지 않아?”
“오빠 차 한 잔 타줄 시간 정도는 있어.”
“그러지 않아도 돼. 이러니까 꼭 내가 너 부려먹는 거 같잖아.”
“아니야,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걸?”
이렇게 말을 하니 성민으로써도 더 이상 거절하는 게 힘들었다. 그렇게 성민이 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설아는 녹차 두 잔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망설이는 듯 하던 설아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조심스럽게 쌓여 있는 가루로 만든 약을 오빠가 마실 차에 넣어 뜨거운 차에 잘 녹을 수 있게 저어 주었다.
‘오늘만이니까... 오늘만......’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설아가 차 두 잔을 가지고 거실로 향해 약을 탄 찻잔을 성민에게 넘겨주었다.
“오늘 아르바이트 하느라 수고 많았어.”
“오빠가 웬일이야?”
“응?”
“원래 그런 말 안했잖아.”
“그, 그랬었나?”
“응.”
오늘 애들하고 했던 말이 신경 쓰여 여러모로 행동과 말로 나오는 성민이었다. 조금 당황해 하는 오빠를 보면서 설아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오빠.”
“고맙다니 뭐가?”
“나 신경써줘서.”
“고마울 거 없어. 설아 네가 날 위해서 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뜻이야?”
“그렇잖아. 아르바이트 때문에 더 피곤 할 텐데 좀 더 신경 써서 반찬이랑 만들어 놓는다고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 거잖아. 그거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지.”
“오빠...”
감격 한 듯 바라보는 설아의 시선에 성민이 당황해했다.
“야, 그렇다고 감동받을 것 까지는 없잖아? 그냥 사실대로 말한 게 다인데.”
설아가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 이렇게 바라보는 설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아니야 오빠. 나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해.”
“어?”
“오빠가 인정해준 거잖아. 나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했었잖아. 그랬는데 오늘 이렇게 오빠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워.”
“......”
자신의 이런 말에 정말로 기뻐하는 듯 보이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뭐라고 저리 감격스럽다는 것인지 성민으로써는 그런 설아가 조금은 가엽게도 보였다. 그리고 한 편으론 오빠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설아가 귀여워 보였다.
그러다 문뜩 설아가 예쁘긴 정말로 예쁘구나라는 걸 느꼈다. 예전에 고백을 여러 번 받았다며 자신에게 자랑을 했었는데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빠?”
“어?”
“뭘 그렇게 뚫어져라 처다 봐?”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설아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에 성민이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안 되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설아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 나까지 그럴 수는 없잖아. 정신 차려 인마!’
이럴수록 자신이 더 똑바로 중심을 잡고 오빠로써 정신을 차려야 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이상한 쪽으로 여동생을 바라보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을 올려다보는 설아가 귀엽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차를 다 마시고 설아가 설거지를 하러 간 사이 성민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상하다.’
성민은 몸이 나른하면서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축 처지는 느낌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머리도 조금 멍하고 몽롱한 게 누으면 바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몸이 또 왜 이러지.’
아까까지는 분명 괜찮았었던 성민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제처럼 몸이 나른하면서 몽롱한 자신을 보며 의아함을 느낀 성민이었다.
‘오빠가 그렇게 말하면 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는 걸.’
설거지를 하면서 설아는 조금 전에 성민이 한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이이 한 일은 네가 한 것이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딴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 있는 얘기였으나 설아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자신의 노력이 오빠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설아는 정말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주는 오빠가 설아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마음 같아선 당장 오빠에게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설아는 애써 그 마음을 눌러 참았다. 조금만 참으면 마음껏 오빠와 키스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