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38화 신경쓰여
그렇게 1교시가 시작 되고 또 다시 한주를 시작하는 수업이 시작 되었다. 이젠 다음 주까지만 오면 여름방학이라 이런 생활도 다음 주까지만 하고 당분간은 안녕이라고 하더라도 수업 시간은 언제나 지루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도 결국엔 시간은 가는지라 그렇게 1교시가 지나 2교시를 넘어 결국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식사를 끝내고 자판기에 들러 음료수 캔 하나를 뽑아 운동장으로 나와 나무그늘 벤치로 향했다. 어제까지 찜통더위 속에서 몸을 푹 지지다보니 그 좋아하는 축구도 오늘을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다. 다른 애들 노는 걸 지켜보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그늘에 앉아 캔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볼에서 차가운 음료수 감촉이 느껴졌다. 놀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뒤에 설아가 서있었다.
“너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고 왔어?”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거야. 오빠 음료수 마시고 있길래 나도 하나 뽑아서 왔어.”
그러고는 앞으로 걸어 나와 성민의 옆 자리에 몸을 앉혔다.
“더워서 여기서 쉬고 있던 거야?”
“교실에만 있는 건 따분하니까.”
“하긴 그렇긴 해.”
딸칵.
음료수 캔을 딴 설아가 두 어 모금 마셨다. 그러는 사이 남은 캔 음료를 다 마신 성민이 나중에 갈 때 버리기 위해 구겨서 옆에 놔두었다.
“더우면 오빠 내꺼 더 마실래?”
“아니, 괜찮아. 그보다 설아야.”
“응?”
“나중에 집에서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이왕 지금 본 김에 물어볼게.”
“어떤 거?”
“너 말이야. 만약에 애들이 보자고 하면 볼 생각이 있어?”
“애들이라고 하면 현준이 오빠하고 지수 언니, 유람이 언니 말이야?”
“응.”
“갑자기 그걸 왜 묻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못 볼 건 없다고 생각해.”
“진짜?”
“응, 내가 피할 이유는 없으니까.”
“내가 얘기 꺼냈다고 해서 꼭 보려고 할 필요는 없어.”
“아니야, 비록 동아리까지 나오긴 했지만 이젠 그때와 비교하면 나아졌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오빠를 보며 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야?”
“사실 이번 주 수요일에 오랜만에 다 모였으면 한다고 해서.”
“동아리실에서?”
“아니, 그날은 동아리실에 가지 않고 밖에서 노는 거야.”
“알았어.”
“알았다는 말은 그렇게 하겠다는 애기야?”
“응.”
바로 수긍 할 줄은 예상 못 했던 성민은 조금 의외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바로 대답하니까 놀란 거야?”
“조금...”
“그럴 필요 없어. 난 정말로 이젠 괜찮으니까.”
“하지만 그때 설아 넌...”
“오빠.”
설아가 성민의 말을 끊었다.
“나 말했잖아. 지금 내가 좋아하는 건 바로 오빠라고.”
“......”
“현준이 오빠는 지수언니하고 사귀고 있을 테니까 잘 사귀라고 해. 난 이제 두 사람 사귀는 거에 대해서 크게 관심 없으니까.”
“......”
“그러니까 수요일에 다 같이 만나는 거에 크게 거북스럽거나 하지 않아. 지금 내 관심사는 오로지 오빠니까.”
직설적으로 말하는 설아의 얘기에 성민은 대답도 하지 못 하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놀라거나 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한 설아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
이런 말을 자신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오후수업을 듣는 내내 성민은 설아에 대한 생각으로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젠 정말로 저런 말을 하는 것에 전혀 망설임이 없는 듯 보이는 설아의 태도가 신경이 쓰였다.
이러다 우려스러운 일까지 바라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오후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시간을 보낸 성민이 당번이 아니어서 종례시간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저기 성민아.”
“응?”
그때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지수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잠시만 나하고 얘기 좀 할 수 있어?”
“얘기?”
“응.”
“못 할 건 없지.”
애들을 피해 조용한 장소로 이동한 성민이 지수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라는 게 뭐야?”
“현준이 한 테 들었다며.”
“너한테 얘기 했다는 거?”
“응.”
“들었지.”
잠시 그런 성민을 바라보던 지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갑자기 그 얘기를 다시 너에게 꺼내면 기분 나빠 할 것 같아서 얘기를 안 했었는데 현준이에게 들었다고 하니까 네가 기분 나빠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기분 나빠 할 거라는 얘기가 뭐야?”
“그때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모른 채 따졌던 거 있잖아. 그거...사과할게. 그런 일이 있었는 줄도 모르고 널 불러내서 화냈던 거 미안해.”
역시나 지수가 할 말이라는 게 사과가 아닐까 생각했었던 성민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그걸로 걱정했었던 거야? 괜찮아. 그 일은 그때 다 끝난 거니까.”
“그렇다고 해도...”
“만약 아직도 그걸로 꿍해 있다면 내가 너희들하고 잘 지내고 있겠냐?”
성민의 말에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로 여전히 기분이 상해 있었다면 성민과 자신들의 사이는 여전히 틀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아 마음에 상처 입힌 것도 미안해.”
“너 설아가 고백 했었다는 거 몰랐다며.”
“정말로 몰랐어. 알았다면 고백하지 않았을 거야.”
그땐 정말로 지수는 몰랐었다.
그저 용기를 내어 찾아가서 현준이에게 말했을 뿐이었다. 만약 설아가 고백 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현준이에게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지수는 죄책감을 느꼈다. 괜히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현준이를 붙잡은 것 같았고 그 때문에 설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 같았다.
“나한테 사과하지 않아도 돼. 나보다 상처를 받았던 건 설아였으니까.”
“응...”
지수 역시 설아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리고 설아가 동아리실을 나간 것도 사정을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설아의 입장이었어도 도저히 얼굴 보는 게 힘들었을 테니까.
“그땐 지수 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했어도 솔직히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어. 결국에 그 때문에 설아가 상처를 받았었으니까.”
왜 자신에게 툴툴거리며 저기압의 모습인지 그때 지수는 알 수가 없었다. 현준이에게 그렇게 차갑게 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오히려 그 정도로 넘아 간 성민에게 고맙기만 했다.
지수가 알고 있는 중학교 때의 성민이라면 그 정도로 넘어갈 리가 없었을 테니까.
“오늘 점심시간에 말이야. 설아 하고 얘기를 나눴거든?”
“점심시간에?”
“응, 수요일에 다 같이 보는 거 알겠다더라.”
“설아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어.”
“그랬구나...”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만나겠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얘기는 이걸로 끝이지?”
“응...”
“애들 기다릴 테니까 동아리실로가봐. 나도 이만 갈 테니까.”
“응.”
“그럼 내일보자.”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는 성민을 바라보던 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성민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지수를 바라보았다.
“용서해줘서 고마워.”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지수를 보면서 쓴웃음을 지은 성민이 다시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성민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수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 서서 처다 보았다.
학교 건물을 나와 교문을 나서는데 성민은 갑자기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인영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아야?”
먼저 아르바이트 때문에 갔을 줄 알았던 설아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해?”
“오빠 기다리고 있었어. 하도 안나오길래 전화라도 한 번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나오는 게 보였어.”
“아르바이트는?”
“시간 보면 아직 여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러고는 설아가 성민의 옆으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 순간 지나가는 애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설아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중간에 헤어져야 하는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거기까진 함께 갈 수 있으니까.”
당황하는 성민을 보며 설아가 재촉하듯 입을 열었다.
“어서가 오빠.”
“으, 응...”
그렇게 설아의 반 아이들로 보이는 시선 속에서 성민은 걸음을 옮겼다.
“그거 알아 오빠?”
“어떤 거?”
“오늘은 희정이 언니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는 거.”
그러고 보니 오늘은 희정이가 교문 앞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 말을 알아듣고 이제 찾아오지 않으려나봐.”
성민이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았다. 설아가 어떤 말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다행이지 오빠? 더 이상 언니가 오빠를 힘들게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
대답을 하지 않는 오빠를 보고 설아는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넘어가주기로 하고는 더 이상 그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이제 다음주면 방학이고 아르바이트도 끝이 나네.”
여름방학을 대비해서 한 달 동안만 하기로 했으니 다음주 까지만 하면 이제 오빠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것도 끝이 였다.
“설아야.”
“왜?”
“학교 앞에서는 이렇게 붙어서 가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맞아. 원래 그랬었어.”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팔짱을 끼는 거야?”
“이미 오빠와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고 있잖아. 그러니 팔짱끼는 것 정도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뭐?”
“그렇잖아. 같이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데 여기서 팔짱을 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그렇게 되면 오빠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거 아니야?”
“......”
“거기다 그런 시선들 때문에 미래가 걱정스럽다면 그걸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된다는 걸 오빠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어.”
그러면서 설아가 팔짱을 끼고 있는 성민의 팔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더욱더 끌어 당겼다.
“중간에 헤어져야 해서 아쉬운 거 같아...”
점심시간에도 느꼈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설아의 말과 행동이 점점 더 대담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설아를 보면 당연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성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