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35화 나를 의해주는 사람 (35/85)



〈 35화 〉35화 나를 의해주는 사람

“자, 많이 먹어 오빠.”

설아가 반찬 하나를 집어서 성민의 숟가락 위에 얹어 주었다. 밥 위에 올라가 있는 고기반찬과 함께 입으로 가져가 우물거리며 씹어 삼킨다.

“이번엔 어떤 거 집어 줄까?”

생긋 웃음을 지으며 물어오는 설아.

“이제 반찬은 내가 알아서 집어먹을 테니까. 설아 너도  먹어.”

자신은 벌써 반이나 먹을 동안 설아는 아직 한 숟갈도 입에 대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반찬을 집어서 계속해서 숟가락에 올려다주기만 하고 있었다.

“오빠 먹는 거 보고.”

“계속 그렇게 보면 부담스러운데...”

“많이 부담스러워?”

“아니, 그 정도 까지는 아니야.”

“그럼 됐어.”

그리곤 생긋 웃는다.

그런 설아에게 다시 뭐라고 입을 열려다 포기하고 계속해서 밥을 이어 먹었다. 설아의 음식 솜씨는 나무랄 대가 없을 정도로 일품이다. 그래서 사실 맛은 없지 않았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분명 좋은 아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성민이었지만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까 전에 설아가  말을 듣고 성민은 확실히 깨달았다.

설아가 자신을 이성으로 보고 있는  생각 이상으로 깊게 자리 잡았을 지도 모른다는 걸.

자신 앞에서 대놓고 빼앗길 수 없다느니 하는 그런 말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그리고 희정이를 만나러 간 것도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으로써 찾아간 것이라는 건 솔직히 말해 충격이었다. 설마 희정이를 만나러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갑자기 무슨 생각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설아의 물음에 상념에서 깨어난 성민이 다시 남은 밥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결국 설아는 성민이 밥을 다 먹기 전까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성민이 식사가 끝나고 나서야 설아가 식사를 했다.

성민이  먹고 나서 식사를 시작한 설아 여서 저녁식사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며 늦게 끝이 났지만 성민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지금 이 상황이 그저 심각하게 생각 되어 질뿐이었다.

소파에 앉은 성민이 폰을 꺼내 확인을 했다. 거기엔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희정의 짧은 문자가 와있었다.

이미 설아가 만나러 내려갔을 때 희정이 상처를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 물론 헤어지자는 자신의 말에 이미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자를 보니 설아가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없었다.

“차 마셔 오빠.”

언제나처럼 식기들을 치우고 설아는 차 두 잔을 준비해서 가지고 왔다. 건네주는 찻잔을 받아든 성민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빠 내일도 아르바이트 가?”

“아르바이트?”

“인형 탈 알바말이야.”

“아아...”

물론 내일도 가기로 되어 있었다.

전번 주 성민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아주 흡족해 한 사장님이 다음 주에도 또 오라고 했었던 것이다. 다른 알바는 구하지 않을 테니까 10시까지 오면 된다고 했었다.

“오라고 하긴 했어.”

“그럼 내일 아르바이트가겠네?”

“아마도...”

이런 기분에서 과연 아르바이트를 잘 할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빠 아르바이트 하는 거, 나하고 약속 때문에 하게  거잖아. 방학 때 놀러가기로 했으니까.”

“응.”

“오늘은 나도 아르바이트 쉬었지만 내일부터는  나갈 거야. 그래야 오빠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고개를 두 어  끄덕인 성민이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일하는 데는 카페라서 에어컨도 틀어져 있고 시원해서 괜찮은데 오빠는 너무 덥겠다.”

“그 대신 일당을 많이 주잖아.”

“그래도 그러다 몸 상하면 어떻게 해?”

“그 정도로 몸 상하지 않아. 내가 어떤 놈인데...”

“하긴... 오빠는 신체는 타고 났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성민은 운동 쪽으로는 정말로 발군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운동회 때 반대표로 달리기에 나가는 건 다반사였고 실제로 입상도 한 적이 있었다. 체육선생님에게  공부발고 운동 쪽으로 가는 게 맞을거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던 성민이었다.

“오빠, 그 일 기억나?”

“응?”

“나 초등학교 3학년 때, 몸이 너무 허약해서 밖에 잘 놀러가지도 못 했잖아. 놀이터에 갈 때도 엄마가  상 오빠랑 같이 가게 했구.”

“그랬었지.”

그때 설아의 몸은 너무 약해서 외출을 하는 대도 조심조심해야 했다. 병원신세를 정말로 많이 져서 거의 실내에서만 생활을 해왔었다. 학교에 갈 때도 둘이 꼭 손잡고 가게 할 정도였고 성민 역시 어릴 때부터 그래서 그걸 당연하게 여겼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손잡고 가는 건 하지 않게 되었다.

성민과 함께 놀이터에 간 설아는 오랜만에 놀러나온 거라 너무나 즐거웠다. 하지만 놀이터에 나왔다고 딱히 놀 것은 없었다. 친구들도 없었고 모래장난을 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활달했던 성민은 오랜만에 동네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던 애를 봐서 그런지 다른 초등학교 고학년 애들이 혼자 놀고 있는 설아에게 다가와 관심을 보였는데 긴장하며 자신들을 경계하는 설아에게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놀렸었다.

결국 설아는 놀림에 울음을 터트렸고 그걸 본 성민이 다가와 결국 대판 싸움이 벌어졌었다. 자식과 함께 놀이터에 나왔던 한 아주머니가 그걸 보고 놀라 달려와 말리지 않았다면 코피가 난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오빠 코에 피나...}

{이까짓 거 괜찮아.}

아주머니에게 받은 휴지를 말아서 코에 쑤셔 박아 넣은 성민은 개구쟁이처럼 웃었었다.

{그보다 설아 넌 다친대는 없어?}

{응.}

{앞으로 그런 일 생기면 울지 말고 바로 오빠에게 말해. 모두 혼내줄 테니까.}

{진짜?}

{당연하지! 아까 받지? 오빠가 저 녀석들에 이렇게 얍얍! 해서 혼내주는 거.}

{응, 오빠 진짜 대단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면 오빠에게 말해!}

{응.}

{그럼 집에 가자.}

그러고는 성민이 설아에게 손을 내밀었었고 설아는 그런 오빠의 손을 기분 좋게 잡았다.

“그때 정말로 오빠 대단하고 멋있었는데...”

“그랬었나......?”

그때 성민은 설아를 울린 그 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동화책에서 보았던 그런 왕자님 같았어.”

“왕자님이라니... 오버가 심하잖아.”

“아니야, 그때 난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그때 설아는 오빠라면 모두다 자신의 오빠처럼 행동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나중에 가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뿐만이 아니야. 언제나 오빠는 나에게 그랬어. 밖에 나가서 놀고 싶었을 텐데 나를 돌봐야 해서 집에 있었던 적도 많았고.”

옛날 일을 회상해보면 오빠는 언제나 자신 때문에 즐겁게 밖에서 뛰어놀거나 한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았다. 집에 혼자 있기 심심했었던 설아가 나가려는 성민을 잡았었고 그런 설아를 보고 성민 역시 고민하다가 나가지 않은 적이 많았었다.

‘오빠...’

설아가 옆에 앉아 있는 성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갑자기 설아가 말없이 바라보자 무안해졌던 성민이 어느 정도 식은 차를 한 번에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아야, 오빠  새고도 아직 잠자지 않아서 피곤하거든? 그래서 말인데, 이만 들어가서 자야겠어.”

“응.”

웃음을 짓는 설아를 보고 성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해 컵을 씻어내곤 다시 엎어 두고는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서면서도 성민은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설아의 눈빛에 부담감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을 바라보는 설아의 시선이 너무나 노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밤을 새고도 이제야 침대에 누운 성민은 그러고도 한 참을 뒤척인 후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닫혀 있던 성민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소리가 나지 않게 안으로 들어온 인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설아. 곤히 잠들어 있는 성민을 확인하고는 설아가 다시 문소리가 나지 않게 닫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걸음을 옮겨 성민의 곁으로 다가온 설아가 침대에 걸터앉아 잠들어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깊이 잠들었네.’

엎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숙면에 취한  보이는 오빠를 보면서 설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당연히 그럴지 몰랐다. 밤을 새고도 밤늦은 시간에 돼서야 잠을 청하게 되었는데 피곤하지 않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오빠.’

잠들어 있는 성민을 가만히 바라보던 설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뺨을 어루만졌다.

‘현준이 오빠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난 지금도 오빠란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 했을 거야.’

 곁에 있으니까. 항상 옆에 있으니까 그걸 당연시하게 여겼는지도 몰랐다. 그때 현준이 자신에게 말을 해주지 않았었다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었다면 설아는 아직도 오빠에게 핀잔을 주거나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

정말로 소중한 것은 늘 잃은 뒤에야 그게 나에게 없어선   소중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고 한다.

설아는 그걸 늦지 않게 깨닫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나만을 위해주었던 우리 오빠...’

뺨을 어루만지던 설아가 조심스럽게 성민의 입술로 이동해 엄지로 어루만졌다. 그런 성민의 입술에서 설아는 시선을 떼지 못 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까지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 말없이 성민을 내려다보던 설아가 어느새 천천히 고개를 숙여 성민의 얼굴로 다가가고 있었다.

점점 거리는 가까워져갔고 바로 눈앞에서숨결이 느껴질 때.

몰캉한 감촉이 느껴진다.

오빠의 입술.

자신의 입술과 오빠의 입술이 맞닿았다.

첫키스.

지금까지  번도 하지 못  설아의 첫키스의 상대는 이렇게 성민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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