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1화 잠 못드는 밤
설아가 생각지 못 한 고백을 한 그날 밤.
성민은 잠을 설치지 못 한 정도가 아니라 잠을 아예 자지 못 했다.
여동생의 고백이다.
그걸 듣고 잠을 편히 잘 수 있을 리가 없다.
좋아한다니, 자신을 오빠로써가 아닌 이성으로 좋아한다니. 성민에겐 너무 충격적이었다. 학교에서 자신과 설아를 두고 얘기하는 애들의 말에 성민은 눈살이 찌푸려졌을 지언정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었다. 물론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라 설아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성민은 당당했다. 친근하게 지내는 자신과 설아를 두고 그렇게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고 해도 둘은 당당했으니까.
자신은 여동생으로써 설아를 챙겼고, 설아 역시 자신을 오빠로써 좋아했었다. 현진이를 좋아했던 걸 보면 알 수가 있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저번 그일 덕분에 좋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것만 보더라도 설아 역시 자신을 오빠로써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좋아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일이 있은 뒤에 설아가 친근하게 대했고 사이가 많이 가까워졌으니 성민으로써도 장담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설아가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것은 너무나 충격이었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저런 마음을 먹게 된 거지.’
성민으로써는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평소대로 설아를 계속 위해주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하고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여동생으로써 자신이 잘 챙겨주고 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집안일이나 그런 쪽은 설아가 알아서 다 잘하지만 문제가 생기거나 아픈 일이 있으면 언제나 곁에 있어주었다.
동생이니까. 성민에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니까.
그 사이에 설아와 몇 번 문제가 있긴 했었다. 왜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 거냐고 화를 내며 말했던 설아. 그런 다툼이 있기도 했으나 성민은 나름 잘 해결하려 노력했었다.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하고 더 좋아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게 잘 못 된 것일까.
성민으로써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날 밤, 성민은 잠을 자지 못 하고 밤을 새우게 되었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출근을 하시기 위해 나서는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온 성민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이 일찍 깨게 됐어요.”
“그래?”
“예.”
“참, 네가 일어난 김에 말하는데 아버지 지방에 다녀올 일이 있어 일요일 늦게 쯤에서 서울에 올라올 것 같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녀석...”
집을 자주 비우는 자신에게 어릴 때부터 투정 한 번 부리거나 하지 않았던 성민이었다. 그래도 장남이라고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성민이 기특한 아버지였다.
“요즘엔 설아가 빨리 일어나더니 오늘은 그래도 피곤한지 안 일어났더구나.”
“네...”
“여동생 잘 챙기고.”
“걱정 마세요.”
“그럼 다녀오마.”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배웅한 성민이 잠시 동안 현관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설아의 방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자고 있을까.’
그렇게 바라보다 걸음을 옮겨 설아의 방으로 향한 성민이 문 앞에 멈춰 섰다.
혹시 자고 있을지 몰라 살며시 열어 확인해 보려던 성민이 결국 잡고 있던 손잡이를 다시 놓았다.
“......”
잠시 동안 설아의 방문 앞에서 서있던 성민은 결국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와 다시 침대에 누은 성민은 어제 설아가 했던 말을 생각하다 밤을 지새 서 그런지 자신도 모르게 잠시 선잠이 들고 말았다.
순간 울리는 폰 벨소리에 눈을 뜬 성민은 그때서야 자신이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어느덧 8시가 다되어 가고 있는 상황.
아침 식사는 거르고 당장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에 가야 했다.
하지만 성민은 교복으로 갈아입기 전에 다시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언제나 자신보다 먼저 준비하고 움직였던 설아다. 그런데 지금 거실은 너무나 고요했다. 걸음을 옮겨 설아의 방문 앞으로 다가간 성민이 멈춰 섰다.
손을 들어 노크를 하려다 말고 잠시 동안 그렇게 서있다 문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돌려 문을 열었다.
아직도 설아는 자고 있을까.
아니면 혼자서 먼저 학교에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다툼이 있었던 다음날에도 아침식사는 차려져 있었지만 설아는 말없이 아르바이트를 갔었다. 지금 역시 그때처럼 그럴지도 몰랐다.
살며시 문을 연 성민이 그렇게 방안을 확인했다.
그리곤 성민은 볼 수가 있었다.
침대 벽에 기대어 팔로 다리를 감싼 채 모운 상태로 양 무릎에 엎드려 앉아 있는 설아의 모습을.
“서, 설아야...”
그런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
하지만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설아에게선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너 설마... 계속 그러고 있었던 거야?”
긴장 된 목소리로 성민이 다시 그렇게 물어다.
“......”
하지만 이번에도 설아에게선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설아...”
“가버려.”
다시 이름을 부르는 그때 설아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신경 쓰지 말고 학교에 가.”
“......”
성민은 그런 설아의 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가버리란 말이야.”
“......”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설아의 말에도 성민은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바라봤는지 모른다. 마치 학교에 가지도 않을 것처럼 보이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어제 내가 네 고백을 안 받아줘서 그래?”
“......”
“지금 그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
“......”
“말 해봐. 정말로 그것 때문에 그래?”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설아가 얼굴을 들어 성민을 바라보았다.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설아의 눈은 얼마나 울었던 것인지 충혈 되어 있었고 눈물자국이 다 보일지경이었다.
“나도 알아... 나도 안단 말이야. 이러면 안 된다는 거......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해도.. 요즘엔 계속 오빠만 생각나고 가슴이 떨리는 걸 어떡해? 이젠 오빠를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걸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야!”
“......”
“나도 알아. 오빠하고 내가 남매라는 걸. 학교에서 우릴 보고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더 무시하려 했어... 그래서 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나가려했단 말이야.”
하지만 설아는 희정을 보는 순간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막상 오빠에게 정말로 여자가 생기려는 듯 보이자, 깊은 상념에 빠져 있는 오빠를 보게 되자 설아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대로 만약 오빠가 희정이 언니의 고백을 받아드리면 더 이상 자신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을까봐.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될 까봐 겁이났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곧 질투로 변하기 시작했고 빼앗기고 싶지 않은 감정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그때서야 설아는 정말로 인정하게 되었다.
어제 집에 서둘러 오면서 인정하게 되었다.
자신은 오빠를 정말로 사랑하게 됐다는 걸. 다른 구누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걸.
설아가 침대에서 내려와 섰다. 그러고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성민의 곁으로 다가가 살며시 허리를 끌어안으며 품에 안기었다.
“나...무서워 오빠.”
“......”
“오빠를 좋아하게 돼서..나 무서워......”
“......”
“내가..잘할게.....”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던 설아가 고개를 들어 성민을 바라보았다.
“지금보다...지금보다 내가 더 오빠에게 신경쓰고...잘..할...테니까...제발..희정이 언니에게 가지마.”
“......”
“나 어제 오빠가 차갑게 말하는 거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어. 정말로 슬펐단 말이야...”
“설아야...”
성민이 자신을 올려다보며 흐느끼듯 말하는 설아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정말로..오빠..좋아하게 된 것 같단말이야... 그러니까 오빠....제발.”
허리를 감고 있던 설아가 성민의 옷깃을 강하게 쥐었다.
“제발..어제처럼...그런..말...하지말아...줘.”
새벽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더 이상 나올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설아에게서, 성민에게 애원하는 설아의 충혈 된 두 눈에서 다시 눈물이 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 정말 오빠..좋아하게 되었으니까...”
“......”
“나...무서워...오빠......”
“......”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듯 말하는 설아를 바라보며 성민은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저, 그저 그런 설아의 머리를 감싸 조심스럽게 안아 줄 뿐이었다.
“오빠...”
그런 성민의 허리를 더욱더 강하게 끌어안고 있는 설아의 손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