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화 우린...남매야
“어?”
순간 성민은 저도 모르게 설아에게 반문을 했다.
“오빠... 희정이 언니 고백 받아 줄 거냐고 물었어.”
“잠깐, 네가 그걸 어떻게...?”
자신이 희정이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것을 설아가 알고 있자 성민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자신하나뿐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 설마 그날.”
순간 성민은 그때 자신과 희정이가 가는 것을 설아가 따라와 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그날 나 집에 가지 않고 오빠 따라 갔어.”
“가라고 했는데 왜 따라 온거야?”
그날 성민은 분명히 말했었다. 먼저 집에 가라고. 그런데 설아가 뒤를 밟았다는 말에 성민은 당연히 따지듯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걱정 되니까. 갑자기 술을 먹고 온 그날 뒤로 매일 같이 혼자서 멍하니 생각하고 그랬잖아. 그래서 걱정이 되고 신경이 많이 쓰였어. 그래서... 그렇게 따라 갔던 거야.”
“그럼 설아 너 그동안 알고서 모르는 척 했던 거야?”
“......”
말은 없었지만 그게 무언의 긍정이라는 것을 성민은 알고 있다.
“오늘 늦은 것도 희정이 언니 때문이지?”
“그래.”
설아가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순수하게 인정했다.
“오늘도 교문 앞에서 희정이 언니하고 오빠가 둘이서 같이 가는 걸 봤어.”
“우릴 봤다고?”
“오늘 뿐만이 아니야. 희정이 언니가 찾아온 그 다음날부터 매일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걸 봤어.”
“뒤에서 몰래 그걸 봤다고?”
“......”
성민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설마하니 설아가 그렇게까지 지켜보고 있었던지는 몰랐다.
“오빠, 희정이 언니 고백 받아 줄 거야?”
그때 설아가 다시 성민에게 물음을 던졌다.
고백을 받아 줄 건지, 안 받아 줄 건지.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어. 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설아 네가 본 것 처럼 요즘 고민이 많아.”
성민 역시 희정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동안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신을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속 다가오는 희정을 보고 있으면 당혹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희정이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면서 눈을 맞췄을 때 성민은 저도 모르게 그런 희정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그때서야 성민도 깨달았다.
자신이 아직 희정이를 완전히 잊은 게 아니라는 걸.
그저 마음 한 쪽에 묻어두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오빠.”
“왜?”
“그동안 갑자기 친근하게 대하는 내 행동에 오빠 많이 놀랐다는 거 알아.”
“......”
성민은 설아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진짜 놀랐었으니까.
설아의 접근과 행동에 성민은 진짜 놀랐었다.
물론 그동안 설아 하고 사이가 나빴단 것은 아니었다. 다만 늘 티격태격하며 핀잔을 주었던 설아의 행동이 완전히 달라졌고, 먼저 손을 잡는 행동이나 하나하나 챙겨주는 것이 그전의 행동들과 달라서 많이 당황스러워 했었다.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오빠가 날 위하고 있었다는 걸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오빠가 날... 이만큼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 정도로 위해주고 있었구나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물론 전에 설아가 한 번씩 말한 적은 있다.
오빠가 날 많이 위해주고 있으니까라고.
그런데 이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성민도 예상하진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또다시 달라진 내 행동에 오빠를 혼란스럽게 하고 걱정 끼쳤던 것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성민은 얼마 전 저기압이었던 설아의 모습을 아직도 기업하고 있다. 기분이 나아졌다 싶으면 다시 달라지는 게 여자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싶었던 날들이었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오빠 알아?”
“아니.”
설아가 말해주지 않아서 잘 알지 못 한다.
그저 자신의 그 말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유추했을 뿐이다.
“오빠...”
그때 설아가 다시 성민을 불렀다.
“오빠, 희정이 언니 고백... 안 받으면 안 돼?”
“뭐?”
“희정이 언니 고백, 안 받아 줬으면 좋겠어.”
“너 지금 그게 무슨...”
순간 성민은 보았다.
지금 설아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촉촉이 젖은 듯 보이는 설아의 눈동자는 그동안 성민도 잘 보지 못 했었던 그런 눈빛이었다. 슬퍼서 바라보는 것과는 달랐다. 오빠를 위한다며 하나하나 챙겨주면서 보여주었던 그 눈빛과도 달랐다.
그날, 갈비찜을 만들어 주고 먹을 때 그때 잠깐 보았었던 그 눈빛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성민은 저 눈빛이 친숙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희정이 자신을 저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어... 그날 오빠가 내 손을 잡아 주었을 때 당황스러웠단 말이야. 나... 오빠가 갑자기 미워져서 그랬던 게 아니야.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야. 갑자기, 갑자기......”
설아는 말을 잊지 못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을 바라보는 오빠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그날 희정이 언니가 오빠에게 고백을 하는 거 보고 나 깨달았어. 내가 느꼈던 게 뭔지. 내가 느낀 혼란이 어떤 건지. 그 뒤로 더 이상 무시 할 수가 없었어.”
설아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게 잘 못 된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계속해서 밀어냈다. 아닐 거라고. 그럴리 없다고.
하지만 그날 희정이가 고백하는 모습을 본 설아는 더 이상 밀어 낼 수가 없었다.
“오빠, 아무래도 나... 나 말이야......”
“말하지 마!”
순간 성민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설아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설아는 오빠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 오빠를 사랑하게 된 거 같아.”
하지만 그런 오빠의 모습에도 설아는 자신의 마음을 사실대로 밝혔다.
“여기가... 그날 뒤로 오빠만 보면 여기가 두근거려.”
가슴에 손을 얹어 그렇게 다시 말을 이었다.
“오빠만 보면 여기가 두근거린단 말이야. 이러면 안 된다는 거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설아가 지금 하고 있는 말에 성민은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민은 설아를 여동생으로써 좋아했으니까. 그동안 이상한 얘기를 나누고 그런 소리를 들었어도 성민은 언제나 당당했다. 그건 순전히 헛소리들이었으니까.
잘 되길 빌었을 뿐이다
동생이니까. 성민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니까. 그래서 성민은 동생이 행복했으면 했을 뿐이었다.
“지, 지금 뭐라고 했어?”
“오빠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단 말이야! 지금 내가 좋아하는 건 오빠란 말이야!”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자신의 되묻는 말에 소리치며 심정을 밝히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 정말로 오빠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말한 설아가 결국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달려 들어가 버렸다.
설아가 들어가고 혼자 남게 된 성민은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말했어.”
방에 들어온 설아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서있었다.
그날 고백을 받는 오빠를 보고 설아는 그 자리를 떠났지만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희정이 언니가 오빠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 보다 오빠가 고백을 받았다는 것에 도저히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려 했는데, 그러려고 했는데 그날 이후로 잘 되지가 않았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희정을 보고 설아는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하교를 하는 오빠에게 달라붙어 웃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려왔었다.
그리고 오늘.
전화도 받지않고 문자도 되지 않는 상황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다가 정말로 오빠가 희정이 언니와 사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설아는 확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았다.
자신이 오빠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말이다.
멍하니 서있던 성민이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그리곤 힘없이 침대에 몸을 앉혔다.
성민의 얼굴은 여전히 멍했으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지금 자신이 들음 말이 사실인가 싶었다.
설아가 눈앞에 서있었다면 어쩌면 또 다시 되물었을 수도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들은 설아의 말이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으니까.
성민은 그렇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멍하니 그렇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노크소리와 함께 살며시 문이 열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민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설아가 충격을 받은 듯 여전히 멍하니 앉아 있는 오빠를 보았다.
“내 고백이 그렇게 충격인거야?”
“......”
“계속 그렇게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을 정도로 충격인거야?”
설아가 걸음을 옮겨 성민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살며시 몸을 앉혔다.
“나, 정말로 많이 혼란스러웠어.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서.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아닐 거라 생각해서 더 그랬는지 몰라. 하지만 이젠 확실하게 알고 있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설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성민의 손등을 잡았다.
“나, 오빠를 사랑해.”
“지금 그 말... 진심이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성민에게서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응.”
대답하는 설아의 얼굴을 성민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우리가 남매라는 걸 알고서 얘기하는 거야?”
“......”
“지금, 지금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 모르겠어.”
“......”
“설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말이 현실인지 믿기지가 않는다는 소리야.”
“오빠를 혼란스럽게 할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도저히 숨길 수가 없어.”
“뭐?”
숨길 수가 없다는 설아의 말에 성민이 다시 반문했다.
“지금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오빠가 희정이 언니에게 가버릴 것 같으니까.”
“......”
“내 마음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오빠 희정이 언니에게 갈 거잖아!”
설아가 잡고 있는 성민의 손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지금은 혼란스러울지 모르지만... 지금 오빠가 혼란스러울지 모르지만, 나처럼 시간이 지나면 나아 질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오빠......”
순간 설아가 잡고 있는 손을 빼내는 성민.
“우린 남매야.”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채 그렇게 현실을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설아가 순간 손으로 입을 막더니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뛰쳐나가 버렸다.
콰앙-!
“......”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으흐흑!”
성민의 방을 나온 설아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흐흐흐흑!”
들어온 그 자리에서 힘없이 주저앉은 설아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