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29화 받아줄거야?
“다녀왔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온 성민은 집안이 조용한 것을 느꼈다. 그래서 돌아보니 설아가 아직 안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트에서 아직 안 돌아왔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 입고 있는 교복을 벗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춰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잠깐 동안 멍하니 서있기도 했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도어 록 누르는 소리가 열린 문틈 사이로 작게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온 사람이 설아라는 것을 성민은 알 수가 있었다.
“오빠 먼저 와있었네?”
“마트다녀 온 거야?”
“응, 기다려 금방요리 해줄게.”
주방에 사가지고 온 봉지를 놔두고 방으로 들어가는 설아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던 성민이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그렇게 씻고 있는 와중 성민이 또 잠시 멈칫했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 미안해... 하지만 나...... 그동안 정말로 너 보고 싶었어.}
뒤에서 껴안은 상태로 희정이 한 말이 다시금 성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생각하지 말자.”
애써 떠오르는 생각을 무시하며 씻는데 열중하는 성민이었다.
“이야~! 웬 삼계탕이야? 벌써 초복이야?”
“꼭 복날에만 먹으라는 법은 없잖아. 그리고 오빠 닭요리 좋아하니까...”
“역시~ 내 동생 밖에 없다니까?”
웃음을 지은 성민이 후추와 소금 간을 치고는 국을 떠먹어보았다.
“일품이다. 합격!”
“많이 먹어~”
웃음을 짓는 설아를 뒤로 하고 그렇게 성민은 열심히 고기를 발라 먹었다.
“쩝쩝...!연한..게...쩝....맛있네......!”
국물만큼이나 당연히 고기육질의 맛도 좋았다. 베어 물 때마다 나오는 육수가 감칠맛을 돌게 했다. 설아는 맛있게 닭고기를 발라먹는 성민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햐~ 잘 먹었다.”
“다음에 먹고 싶으면 말해. 또 해 줄 테니까.”
“진짜? 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난 성민이 거실로 향하는 것을 확인 하고 설아도 남은 음식을 마저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끝낸 후 차 두 잔을 타서 가지고 왔다.
“여기.”
“잘 마실게.”
건네주는 차를 받아든 성민이 입김을 불어 한 모금 마셨다.
“오빠.”
“응?”
“희정이 언니 만나서 무슨 얘기 나눴어?”
“희정이?”
“응. 그 언니 진짜 오랜만에 본거 같은데... 고등학교 올라가고 나서 한 번도 못 봤던 거 같아.”
“나도 오랜만에 본 거야.”
“그렇구나... 참, 그 언니 주창이 오빠하고 사귀고 있지 않아? 둘이 정말로 잘 어울리는 거 같던데.”
“......”
설아는 순간 오빠가 말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두 사람 정말로 잘 어울리더라. 지금도 잘 사귀고 있으면 좋겠다...”
“저기 설아야.”
“응?”
“우리 희정이 얘기는 그만 하면 안 될까.”
“왜? 무슨 일 있었어?”
“일은 무슨...”
“그런데 오빠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뭐가 어때서 그러냐?”
“좋아 보이지가 않아서.”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러고는 갑자기 설아의 머리카락을 헝클이는 성민.
“뭐야 오빠?”
“네가 귀여워서 그런다.”
“치... 귀엽긴.”
그 후로 설아는 더 이상 희정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다른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잠깐만.”
그러다 폰을 꺼내 뭔가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하는 성민.
그 모습을 설아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방으로 들어온 성민은 침대에 걸터앉아 희정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오늘 갑자기 찾아와 많이 놀라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 주창이하고 헤어지면서 많이 생각했어. 그저 너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찾아온 게 아니야. 이젠 내 마음 더 이상 숨기지 않을 생각이야. 성민아, 이젠 망설이지 않을 거야. 그렇게 결심 했으니까. 그러니까 날...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성민은 잠시 동안 그대로 문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며칠동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성민은 교문앞에서서 기다리는 희정을 볼 수가 있었다.
“성민아!”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성민을 보고 희정이 밝은 표정으로 불렀다.
“너, 매일 이렇게 찾아오는 거 지겹지도 않냐?”
“지겹긴~ 널 보러 오는 건데 왜 지겹니?”
순간 주변 학생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성민이 조금 무안했던지 걸음걸이를 빨리했다.
“부끄러워?”
“부끄럽긴...!”
“그런데 왜 그렇게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걸까?”
“나 원래 이렇게 걸어.”
"풋...!“
성민의 말에 희정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그냥... 네가 웃겨서.”
그렇게 말한 희정이 성의 옆으로 바짝 붙어다가갔다.
“저기 성민아.”
“응?”
“우리 노래방갈래?”
“갑자기 웬 노래방?”
“오늘 너하고 가고 싶어서. 가자 우리~ 응? 오늘도 그냥 집에 갈 거 아니지?”
팔을 잡은 희정이 귀엽게 애교를 부리며 성민을 졸랐다.
“너 혹시 약속있어?”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됐네. 우리가~!”
그러고는 성민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끌고 가는 희정이었다.
얼떨결에 노래방에 와버린 성민이 자리에 몸을 앉혔다.
“먼저 신청 할래?”
“아니, 너 먼저 불러.”
“알았어~!”
그러고는 희정이 신청한 노래는 윤하의 기다리다라는 노래였다.
“못 불러도 뭐라하지마?”
“그런 걸로 뭐라 안 해.”
목청을 가다듬은 희정이 그렇게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반주가 흐르고 희정의 작은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댈 사랑하게 된 거죠~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 있죠~
한번 누구도~ 이처럼 원 한적 없죠...“
잔잔하게 반주가 깔리면서 부르는 희정의 목소리는 노래에 따라 차분했고 부드러웠다. 그렇게 화면을 보며 노래를 부르던 희정이 고개를 돌려 성민을 바라보았다.
“그댄 내가 아니니 내 맘 같을 수 없겠죠~
그래요 내가~ 더 많이 좋아 한 거죠~
아홉 번 내 마음 다쳐도 한 번 웃는게 좋아~
그대 곁이면 행복한 나라서...”
성민은 자신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희정을 보고 저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노래가 자신을 생각하며 부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성민을 바라보며 부르다 희정이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천년 같은 긴 기다림도 그댈 보는게 좋아~
하루 한 달을~ 그렇게 일년을~”
점점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향하면서 희정의 목소리도 애절해지며 감정이 이입되어 있었다.
“오지 않을 그댈 알면서 또 하염없이 뒤척이며~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들죠...”
다시 잠시간의 반주가 흐르자 희정이 몸을 돌려 성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댈 위해 아끼고 싶어~ 누구도 줄 수 없죠~
나는 그대만 그대가 아니면~
혼자인 게 더 편안 한 나라 또 어제처럼 이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예요......!”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다시 반주가 잔잔하게 흘렀다.
그러는 사이에도 희정은 여전히 성민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답장이 없지...”
중간에 폰을 꺼내어 확인을 한 설아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문자를 보낸지 조금 시간이 됐는데도 오빠에게 답장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아직까지 보지도 않고 있었다.
“왜 그래 설아야?”
“응?”
“아까부터 뭘 그렇게 자꾸 확인해?”
“오빠에게 답장이 없어서.”
“답장?”
“응. 문자 보낸지 조금 됐는데 아예 보지도 않고 있어.”
“바빠서 그런 거 아니야?”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늦게까지 문자 안 본적 없었단 말이야.”
“그러면 전화라도 해봐.”
“전화?”
“응.”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설아가 성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신호음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것은 바랐던 오빠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소리샘 연결 음 뿐이었다.
“안 받아?”
“응.”
설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폰을 바라보았다.
그날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설아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정말로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집에 오니 다행히 오빠는 와 있었다.
“뭘 그렇게 숨을 헐떡거려?”
“나 오빠에게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했잖아.”
“걱정?”
“문자를 보내도 보질 않구... 전화를 해도 받질 않으니까...”
“맞다... 전화 해준다는 걸 그만...”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성민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 있어?”
“응?”
“오빠 저번부터 계속 혼자 생각에 잠기고 매일 그러잖아.”
“그런 거 아니야.”
“희정이 언니 때문이야?”
“......”
“맞지? 오빠 희정이 언니 때문에 그러는 거.”
“설아야. 그 얘기는 저번에 그만 하기로 했었잖아.”
“왜 그만해? 오빠 희정이 언니 때문에 그러는 거 맞잖아.”
“너 계속 그럴래?”
“계속 뭐?”
잠시 동안 그런 설아를 바라보던 성민이 머리를 헝클렸다.
“옷 갈아입고 씻어. 시간 늦었어.”
“말해. 계속 뭐?”
“오빠가 그만 하자고 했지.”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성민의 모습에도 설아는 지지 않고 바라보았다. 묘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설아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오빠, 희정이 언니 받아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