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8화 또다른 만남
“너무 많이 먹었나...?”
한 두 잔만 먹고 끝내려고 했는데 어느사이엔가 거의 한 병을 다 비워버렸다. 18살이면 이제 아버지에게 약주 배울 때가 됐다며 주던 때가 있었지만 이렇게 먹지는 않았다. 노는 애들 사이에선 몰래 담배를 피우듯이 술 또한 그런다고 하지만 성민은 그러지 않았다.
실제로 그쪽과도 거리가 멀었다.
주창이하고 한 참 어울릴 때나 잠깐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던 적은 있어도 담배나 술을 다른 애들 처럼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
잠시 후 알림판에 뜬 것 처럼 버스가 도착했고 성민이 올라탔다.
이미 10시가 지나도 한 참이나 지난 시간.
간만에 만난 주창이와 이런저런 애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훌쩍 가버렸던 것이다.
‘진짜 어지럽네.’
마실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버스를 타고 있으니 알딸딸한 것을 넘어 머리가 많이 어지러웠다. 양주가 세다고 하는데 그래도 술을 제대로 마셔 본적이 없으니 자신이 얼마나 취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버스 안에서 결국 그렇게 졸다가 성민은 내릴 곳을 지나칠 뻔 했다.
급하게 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난 성민이 순간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차가 갑자기 정차하면서 쏠린 탓도 있지만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영향이 큰 듯 했다. 그렇게 차에서 내린 성민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희정이 말이야. 사실 너 좋아 했었다더라.}
주창이가 자신에게 했었던 그 말.
“알고 있어.”
하지만 성민은 그런 주창이의 말을 듣고도 크게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희정이가 자신을 좋아 했었다는 것을 성민이는 몰랐던 게 아니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민이는 그걸 알고 있었더라도 그때 희정이에게 고백을 하지 않았다. 주창이는 자신 때문이라고 그랬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때 자신이 고백을 했었더라면 희정이는 분명 받아 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 함에도 성민은 그때 고백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집으로 가고 있는데 폰이 울렸다.
품에서 꺼내 확인을 해보니 다른 누구도 아닌 설아였다. 통화 버튼을 누른 성민이 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오빠 어디야?]
“지금 집에 가고 있어.”
[집에 와보니 오빠가 없어서 전화했어.]
“금방 갈 거야.”
[알았어. 조심해서 들어와.]
“어.”
그렇게 통화를 끝낸 성민이 다시 폰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어제 헤어졌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주창이와 헤어지기 전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계속해서 성민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직도 희정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말.
“그 녀석 때문에 기분만 심란해 졌네.”
걸음을 옮기던 성민이 손으로 머리를 헝크리며 중얼거렸다.
도어 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성민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그런 성민을 설아가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며칠 전 저기압으로 보였던 그런 설아의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늦...”
말을 하다말고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성민을 보며 설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오빠 술 먹었어?”
“응. 조금 먹었어.”
그러고는 방으로 향하는데 설아가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 한 채 뒤따라 들어섰다.
“술을 왜 먹은 거야? 오빠 그런 거 일제 손 안 댔잖아.”
“어쩌다보니 먹게 됐어.”
“어른이 주는 건 괜찮다며 사장님이 준거야?”
전에 아버지가 오빠에게 약주 한 잔 따라 주었던 것을 떠올린 설아가 그렇게 물음을 던졌다.
“아니. 그냥 먹었어.”
“그냥 왜? 어떻게?”
“글쎄다...”
장난스럽게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성민이었지만 설아는 전혀 웃지를 않았다.
“오빠 혹시 나 때문에 그래?”
“너 때문이라니?”
“네가 오빠에게 안 좋은 행동을 해서 그렇게 마셨던 거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닌데 왜 술을 마셔?”
“주창이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걔가 주는 거 조금 마셨어.”
“주창이 오빠 만나고 온 거야?”
“어.”
“그래도 그런 거, 준다고 해서 오빠 함부로 먹거나 하지 않았잖아.”
“오랜만에 만나서 한 두 잔 주는 거 먹다보니 그렇게 된 거야.”
“진짜 그거뿐이야?”
“그래, 다른 이유 없어.”
“......”
잠시 동안 그런 성민을 바라보던 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오빠 말 믿을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술 같은 거 먹지 마.”
“그래.”
“물 한잔 줄까?”
“아니, 나 그냥 쉬고 싶어.”
그러고는 침대에 누워버리는 성민의 행동에 설아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문을 열고 방을 나온 설아가 걸음을 옮기다 말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방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저렇게 취한 채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오빠라서 그런지 설아는 많이 신경이 쓰인 듯 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성민은 그렇게 가만히 눈을 깜박이며 벽을 바라보다 몸을 바로 했다.
“답답하네...”
술을 처음으로 많이 마셔봐서 그런 걸까.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별로 좋지 못 한 성민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젠 정말로 평소처럼 돌아온 듯 보이는 설아가 성민을 향해 웃으며 물음을 던졌다.
“무슨 생각해 오빠?”
“어?”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해 보여서.”
“아니,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데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어?”
“진짜 별거 아니니까 그렇게 의아해 하지 않아도 돼.”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성민이었지만 설아는 여전히 그런 성민의 옆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는 학교생활을 보내고 집에 가기 위해 교실을 나선 성민이 그렇게 교문을 나섰다.
그때 어깨를 두드리는 행동에 성민이 고개를 돌려 봤는데 거기엔 설아가 웃으면서 서있었다.
“너 여기서 뭐해?”
“오늘 아르바이트 쉬는 날이잖아. 그래서 오빠하고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쉬는 날이 오늘 있어?”
“응, 그런데 나 교문 옆에 서있었는데.”
“진짜? 이거 미안한데.”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뭐. 그보다 어서 가자 오빠.”
“그래.”
오랜만에 같이 하교를 해서 그런 걸까. 설아는 묘하게 기분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걱정도 되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술을 먹고 들어 온 다음부터 저렇게 며칠동안 생각에 잠기는 모습에 설아는 걱정도 걱정이지만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오빠, 우리 돌아가는 길에 마트 들렸다가자. 오빠가 갈비찜 해줬으니까 오늘은 내가 보답하는 차원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 줄게.”
“진짜냐?”
“응.”
“알았어.”
그렇게 버스정류장을 가면서d 설d아는 이런 저런 많은 얘기를 성민에게 꺼냈다. 괜히 심란했던 자신의 마음 때문에 오빠를 걱정 끼친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에 더 그런 듯 해 보였다.
그렇게 한 참 웃으며 대화하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오빠를 보고 설아가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그래 오빠?”
“......”
설아는 자신의 물음에도 대답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는 오빠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거기엔 단발머리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 한 명이 이쪽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 여자를 보고 설아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희정이... 언니?’
옛날엔 정말로 자주 어울리고 했었는데 여고로 진학하면서 멀어졌던 언니였다. 그렇게 설아가 놀란 듯 바라보고 있는데 오빠가 자신을 불렀다.
“설아야.”
“응?”
“미안한데 먼저 집에 들어가.”
“오빠...?”
그렇게 말을 하고는 성민이 걸음을 옮겨 희정에게로 다가갔다. 아니, 그대로 지나쳐 걸어갔다. 그 뒤를 희정이 몸을 돌려 따라 걸어갔다.
우두커니 서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설아는 순간 뭔가를 알겠다는 듯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설마 오빠가 며칠 동안 저랬던 게 희정이 언니 때문에...?”
그저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방금 전의 오빠를 보면 아마도 맞는 듯 해 보였다.
그렇게 되자 설아는 집으로 가질 않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걸음을 옮겨 근처 공원으로 들어선 성민이 벤치에 몸을 앉혔다. 그 옆에 희정이 말없이 앉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동안 말이 없다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성민이었다.
“왜 왔어.”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게 말해야겠어?”
“난 별로 생각이 없었으니까.”
“저기 성민아...”
“......”
“나 말이야. 주창이하고 헤어졌어.”
그렇게 말한 희정이 고개를 돌려 잠시 성민을 바라보았다.
“헤어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
여전히 말이 없는 성민을 희정이 다시 바라보았다.
“너 별로 안 놀라는구나?”
“......”
“내가 왜 주창이하고 헤어졌는 줄 알아?”
“......”
“나 말이야... 나......”
그때 성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게.”
그리곤 그 말만 남기곤 걸음을 옮겼다.
“너 실은 알고 있었잖아.”
뒤에서 들려오는 희정의 외침에 걸음을 옮기던 성민이 발을 멈칫 했다.
“내가 너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 알고 있었잖아!”
“......”
“내가 왜 주창이하고 만났었는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리고 지금 이렇게 찾아온 것도...”
희정이 걸음을 옮겨 성민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팔을 들어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정말로 너 많이 좋아했었던 거 같아. 그때 내가 했었던 말은 많이 반성하고 있어. 사춘기이기도 했었고... 질투가 나서. 한 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그렇게 말했던 거뿐이야.”
희정이 성민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나... 정말로 너 많이 좋아해, 성민아.”
“......”
성민은 그런 희정의 말에도 그저 말없이 그렇게 서있었다.
‘어, 어떻게!’
제법 커다란 소나무 뒤에 몸을 숨겨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설아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묘한 분위기의 두 사람에 설아는 긴장 한 채 바라보았었다. 헌데 설마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 했다.
“희정이 언니가...”
너무 충격이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