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26화 아르바이트
“맛있게 드세요.”
나온 커피를 가지고 물러나는 손님을 보면서 인사를 한 설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이라 아직 이른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 한산했다. 평일에는 오후파트에만 하지만 주말에는 오전 오후 같이 했다. 9시까지 와서 가계 문 여는 것을 도우고 이렇게 영업을 시작한다. 주화 역시 설아와 같은 시간대에 근무를 하고 있어 주말역시 함께했다.
‘이상하네...?’
주화는 설아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 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까지는 괜찮아보였던 설아가 오늘 역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깊은 고민을 하는 듯 보였고 한 번씩 생각에 잠긴 듯 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주화는 설아에게 안 좋은 일이 있냐고 묻지를 않았다. 자신만의 착각일 수 있는 일이고 말하지 못 할 고민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 할 수 있는 건 하루 사이에 저렇게 근심이 묻어나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닐게 분명해 보였다.
‘설마 성민 오빠하고 싸운 걸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아가 저렇게 고민에 빠졌었던 것도 다 오빠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확정 지을 수도 없는 일이라 쉽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주화는 일하는 동안 설아의 상태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슨 일 있어?”
점심시간이 되고 식사를 끝낸 주화가 남은 휴식시간을 이용해서 설아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성민 오빠 일이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너 지금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서 그래.”
“괜찮아. 오빠하고 사이좋은데 뭘......”
“......”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설아였지만 그런다고 오전동안 지켜본 주화의 걱정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설아는 주화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괜찮다고 했지만 일하는 내내 지켜본 결과 주화는 설아에게 정말로 무슨 일이 있다고 확신했다. 오후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제법 많이 몰려와서 일하느라 바빴지만 주화는 유독 설아의 행동이 너무 적극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일을 하면서 고민을 잠시 동안 잊겠다는 것처럼.
그렇게 오후 내내 설아는 정말로 열심히 일했다.
“후아! 수고하셨습니다!”
저녁 7시가 넘어서 일이 끝난 성민이 쓰고 있던 인형 탈을 벗으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자, 물 마셔.”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건네주는 물잔을 받은 성민이 빠르게 두어 모금 마시고는 다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냈다.
“역시 냉수가 최고네요.”
“이런 알바 많이해봤나 봐?”
“아니요, 오늘 처음인데요.”
“그래? 그런데 그렇게 부끄럼 없이 그렇게 잘 할 수가 있어?”
“제가 원래 그렇게 낯을 가리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 일하는 거 보니까 아주 마음에 들더라.”
웃음을 지으며 말한 사장님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자, 받아.”
“감사합니다~!”
“15장 넣었어.”
“12만원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가 하는 거 보고 세장더 넣은 거야.”
“햐~ 사장님 정말로 인심 좋으신데요?! 우리나라에 사장님 같은 분만 있으면 정말로 일할 맛나겠습니다~!”
“말하는 것도 청산유수구만.”
처음엔 고등학교2학년이라는 말에 뺀질거리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데다 싹싹하고 밝아보여서 마음에 드는 사장님이었다. 성민이 덕분에 오픈 첫날 보다 오늘 손님들이 더 많이 온 듯 했다. 지금도 가게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부쩍 이고 있었다.
목소리가 우렁찼고 전단지를 나눠주면서도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끌려고 노력하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었다. 가게 앞에서 할 때는 안쪽까지 목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내일 또 올 수 있어?”
“내일이 문제겠습니까?! 그 다음 주에도 불러주시면 바로 오겠습니다~!”
“녀석... 어쨌든 수고 많았어. 내일도 10시까지 오면 돼.”
“예! 제시간에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그 사이 저 말고 다른 알바 넣으면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마. 얼마 안 됐지만 인형 탈 알바들 중에 너만큼 목소리 큰 놈은 못 봤으니까.”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이야, 욘석아.”
“그렇습니까? 후후후! 그럼 수고하십쇼~!”
“그래.”
기분 좋게 웃음을 지으며 가게를 나서는 성민을 보면서 사장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알바가 아니라 나중에 직원으로 채용해서 가르치고 싶을 정도로 사람 이목도 끌줄 아는데다 싹싹하고 활기찬 애였다.
“찜통이네 찜통이야.”
땀으로 완전히 쩔은 상태로 가게를 나선 성민은 해가 저물어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여름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그런지 해가 상당히 길어진 상황이었다. 하루 종일 땡볕에 인형 탈을 쓰고 서있으려니 정말로 쩌 죽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성민은 그러함에도 정말로 열심히 일했다.
오늘 잘 해야 내일 또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다행이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물론이고 만원을 더 넣어서 10만원을 넣어준 사장님이었다. 땀으로 쩔은 성민이었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집에 가서 바로 샤워해야지.”
그렇게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며 성민이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8시도 안 되었으니 설아가 돌아오려면 잃은 시간이었다.
평일엔 11시까지 해서 주말에도 11시까지 하는 줄 알았었던 성민이었다. 하지만 설아 말로는 저번에 주말은 9시에 출근해서 10까지 한다고 했었다.
“저녁 먹지 말라고 했으니 안 먹었겠지?”
설아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오늘 저녁은 먹지 말고 들어오라고 일러두었었다. 왜 그러냐고 묻는 답장이 없어도 먹지 않고 올 거라 생각하고 성민은 버스를 타고 집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걸음을 옮겨 근처 마트로 향했다.
“보자... 사야할게 소갈비하고...양파, 당근...대파에...맛술..뭐가 이렇게 살게 많아.”
미리 저장해 주었던 식재료를 하나하나 보며 성민이 코너를 돌면서 재료들을 샀다. 채소나 고기 등 싱싱한 걸 골라야 하는데 자주 장을 보지 않아서 과연 잘 고르는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다만 보기에 싱싱해 보이는 것 위주로 골라서 샀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한 성민이 봉지를 들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옷과 속옷을 준비해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대충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후 성민은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식재료들을 모두 다 꺼내어 하나하나 포장 되어 있는 것을 풀었다.
식재료와 조리기구 까지 풀 셋팅을 해둔 후 바로 요리에 들어가는 성민.
“보자 먼저 해야 할게...”
하나하나 자세히 조리법을 본 성민이 먼저 갈비에 서툰 솜씨로 칼집을 내어 물에 담궈 핏물을 뺐다. 그 사이 씻을 대파를 도마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썰어갔다. 칼질을 한 게 오랜만이라 이것 역시 어색한 성민이었다.
그렇데 썰은 대파와 마늘, 후추 등을 준비해 놓고 피가 빠질 동안 기다리면서 간장, 맛술, 양파, 참기름, 후추, 생강 등을 적절하게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그 사이 어느 정도 핏물이 빠진 소갈비를 처음 준비 해놓은 대파와 마늘, 후추 등을 넣고 끓는 물에 15분간 데친 뒤 흐르는 물에 잘 씻은 소갈비를 놓고 압력밥솥을 준비해뒀다.
보통은 전기밥솥을 이용하는 편인지라 싱크대를 뒤져 옛날에 썼었던 구식 압력밥솥을 찾아 꺼냈다.
“아오...먼지. 이거 씻어야겠는데......?”
어머니가 살아생전 요리 할 때 썼을 것으로 보여 오랜 묵은 먼지가 쌓여 있을 터였다. 그렇게 물로 깨끗하게 씻은 뒤 갈비와 만들어준 양념장을 넣고 센 불에 올렸다.
“휘유~!”
갈비찜은 처음 만들어봐서 이게 참 손이 많이 가는 요리구나 싶은 성민이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성민이 그렇게 치익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삐이이-!
길게 김이 나오면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불세기를 줄인 뒤 다시 십여분을 더 끓였다.
그러는 사이 당근 등 먹지 좋은 크기로 썰어 놓은 채소들을 바로 투입 할 수 있게 준비해둔 성민이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어느 정도 완료 되어 뚜껑을 열어 썰어 둔 채소들을 모두 다 넣고 다시 한 번 불을 올렸다.
“다음에 갈비찜 하나봐라.”
먹을 땐 몰라도 만드는 건 참으로 귀찮고 힘든 성민이었다.
“벌서 10시가 넘었네?”
궁시렁 거리다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10시 15분이 넘어가는 시간.
“처음이라 너무 오래 걸렸나?”
설아처럼 요리에 능숙했으면 지금보다 더 빨리 만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삐 소리가 나고 불세기를 조절해 10여분을 더 끓였다.
“됐다~!”
정확히 30분이 되었을 때 성민은 불을 끄고 닫혀 있는 압력밥솥을 열었다.
“햐~! 냄새 죽인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도는 성민이었다. 점심을 먹었어도 열심히 일하고 저녁을 아직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픈 상황이라 그런지 더 군침이 돌았다.
“어디 국물 맛 좀 볼가.”
조심스럽게 국자로 국물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앗 뜨거! 젠장!”
챙그랑!
너무 급하게 먹었던지 뜨거운 국물에 결국 국자를 떨어트리며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바로 물 컵에 냉수를 받아 입안을 헹구어 봤지만 입천장이 너무나 따가운 성민 이었다.
“아오 바보같이 진짜...!”
후회를 해도 이미 늦은 법.
그렇게 다시 찬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채 바닥에 흘린 국물을 닦아 내고 국자를 들어 올렸다.
그때 도어 록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거실로 들어서는 설아가 보였다.
“뭐해?”
거실로 들어선 설아가 주방에 있는 성민을 보고 물음을 던졌다.
“뭐하긴 이 오라버니가 갈비찜을 만들고 있는 중이지.”
“갈비찜?”
“그래~ 빨리 씻고 나와라. 아주 기똥차게 맛이 죽이니까.”
잠시 동안 그런 성민을 바라보던 설아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이젠 시선은 피하지 않네.”
여전히 찬바람이 부는 듯 했지만 그래도 어제처럼 시선을 피하지 않는 설아였다.
그렇게 설아가 방으로 들어간 사이 성민은 큰 그릇에 완성한 갈비찜을 국자로 덜었다. 이어 냄비받침을 식탁에 준비해 두고 조심스럽게 그릇을 그 위에 놔두었다. 이어 접시와 수저를 세팅하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꺼내어 준비해 두었다.
“어서 씻고 와라 동생아!”
문을 열고나선 설아를 향해 성민이 그렇게 말했다.
대답도 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간 설아를 기다리며 성민은 냄은 식재료와 갈비찜을 만들면서 더럽혀진 싱크대를 정리했다.
정리를 끝내는 동안 샤워를 하고 나온 설아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밥만 놔두면 끝이...아니라. 뼈 담을 그릇도 놔둬야지.”
빈 그릇 큰 거 하나 더 준비해두고 투명한 비닐봉지로 쌓아 옆에 놔두었다. 나중에 모아둔 뼈를 봉지 채로 들기 편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주걱으로 밥 두 공기를 퍼서 각자 자리에 놔두자 방문이 열리며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설아가 나왔다.
“다 끝났으면 어서 앉으시오.”
성민의 능청스러운 농담을 들으며 말없이 설아가 자리에 몸을 앉혔다.
“냄새 죽이지 않냐? 냄새뿐만이 아니라 맛도 죽일 거다 아마.”
설아가 가만히 갈비찜을 바라보았다.
“늦은 저녁이지만 맛있게 먹어봐. 이 오라버니가 간만에 솜씨를 발휘 했으니까.”
“......”
“이거 내가 오늘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사온거야.”
설아가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갈비 하나를 그릇에 옮겨 고기를 발라 한 입 먹었다.
“맛 죽이지?”
“그저 그래.”
우물거리며 먹은 설아의 품평에 성민이 인상을 찡그렸다.
“야, 그래도 이럴 땐 맛있다고 해줘야지~!”
입천장이 데여서 제대로 맛을 보지 못 했던 성민이 직접 국물을 떠서 맛보았다.
“뭐... 그렇게 맛있지는 않네.”
냄새는 참 군침이 도는데 역시 맛이 좀 별로였다. 설아의 품평은 틀리지 않았다. 그때 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야.”
그렇게 말한 후 더 이상 별다른 얘기 없이 갈비찜을 먹었다. 조금 먹다 말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배가 고팠던 것일까 설아는 정말 맛있게 갈비를 잘 먹었다.
“너 배 많이 고팠냐?”
“그렇진 않아.”
“그런데 그저 그렇다면서 잘 먹네?”
“이거 날 위해서 만들어 준거잖아.”
“어?”
“그러니까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는데...?”
“억지로 먹는 거 아니야.”
“......”
그렇게 말하곤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설아의 시선에 성민역시 잠시 동안 그대로 가만히 설아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다시 시선을 돌린 설아가 마저 식사를 했다.
‘뭐지...?’
하지만 성민은 여전히 그 상태로 의아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에 자신을 바라보던 설아의 눈빛이 뭔가 평소와 좀 달랐던 것이다.
기분이 나빠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그런 눈빛도 아니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전 처다 보던 시선이 평소와는 분명 어딘가 달라보였다.
그저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설아는 충분히 맛있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만들어 준거니까...’
생일마다 일찍 일어나 되도 않는 솜씨로 발휘해서 생일상을 차려 주었던 오빠.
하지만 오늘은 자신의 생일이 아니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서툰 솜씨로 갈비찜을 만들어 차려주었다. 그것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왜 그런지 설아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의 행동 때문이라는 것을.
‘오빠가 날 위해서...’
문자를 받고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저도 모르게 내심 기대를 했었던 설아였다. 이런 자신의 마음에 잠시 당황 했었지만 떨쳐내진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바로 맡아졌던 음식냄새.
자신이 느끼는 이 복잡한 떨림에 대해서 애써 무시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았지만, 주방에 서있는 오빠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며 말을 했지만.
설아는 자신을 위해 주방에 서있는 오빠를 보자마자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순간 찾아오는 설레는 마음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