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25화 마음속에서
“저기 말이야.”
잠시 동안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성민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나, 내일부터 아르바이트 하려고.”
“......”
“설아 너도 이렇게 제대로 하고 있는데 나만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그래서 주말 아르바이트 하려고 말이야. 내가 알아 본 곳이 몇 곳 있는데 그 중에 인형 탈 알바가 일당이 괜찮더라고.”
“......”
“그래서 내일 가볼 생각이야.”
“......”
“내 말 듣고 있어?”
“응?”
“뭐야? 지금 딴 생각 하고 있었던 거야?”
“아, 아니야.”
“너 말 더듬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야.”
시선을 돌려버리는 설아를 보고 성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그래서 내일 나도 아르바이트 하려고.”
“응.”
그 후로 다시 별다른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보통이면 여기서 다른 얘기로 더 이어질 텐데 그러질 못 했다.
‘뭐지? 아까 전엔 분명해 괜찮았던 거 같은데 왜 다시 저기압인 거야.’
문자도 그렇고 당황하는 자신을 두고 놀리던 설아를 보고 성민은 이제 괜찮아 졌구나라는 걸 확신했다. 아까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아침과 비슷하게 대답도 시큰둥하고 목소리도 작았다.
“오늘 나 체육시간에 축구 했거든? 거기서 무려 다섯 골이나 넣었어. 반대항전이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역시 내 실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니까? 설아 너도 이 오라버니가 하는 걸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응...”
“아 글쎄 반 여자애들이 그런 날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니까?”
“응.”
“......”
보통은 이렇게 말하면 받아 치는 게 정상인데 또 다시 응이라는 설아의 말에 성민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 속에 둘은 집에 도착했다. 성민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동안 먼저 들어간 설아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나아졌던 게 아니었나...?’
문이 닫힌 서랑의 방을 보면서 성민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 오늘 마중을 나간 것도 설아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생각 했던 것 보다 더 좋지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으로 들어온 설아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려놓고는 힘없이 침대에 몸을 앉혔다.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 거야.’
지금 설아의 기분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빠인 성민이 손을 잡는 순간 저도 모르게 긴장을 했고 순간 적으로 심장이 크게 뛰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두근거림이 잦아 들 생각을 하지 않고 집에 도착 할때까지 이어졌다.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 오빠에게 들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도 설아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 게 잦아들지 않는 거야?’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에 설아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히 아침에 한 번도 잡지 않은 오빠가 갑작스럽게 먼저 손을 잡고 깍지를 껴서 놀라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물론 학교에 와서도 계속 뛰어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안정을 찾았다.
그래서 분명 그 때문일 거라 생각했는데 또 다시 지금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손을 잡았던 그 순간 찾아온 긴장감이 전심을 감싸고 있는 듯 했다.
지금까지 오늘 처럼 이런 적이 없었던 설아는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노크소리와 함께 문 너머의 오빠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설아야, 괜찮아?”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본 설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씻으러 나오지 않기에 걱정 되서 그래. 지금 옷 갈아입는 거 아니면 잠시 들어가도 되냐?”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드 한 오빠의 말에 설아가 바로 대답을 했다.
“아니야. 나 지금 나갈거야. 그리고 나 지금 옷 갈아입고 있으니까 문 열지마.”
“그, 그래. 알았어.”
잠시 후 성민이 물러갔는지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문을 바라보는 설아의 표정은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어떻게 기분을 풀어주지... 문제네.”
20분이 넘었는데도 나오지 않는 설아를 보고 성민은 정말로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어제 그 일로 상당히 마음이 상한 게 분명해 보였다. 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걸 티내려 하지 않는 것 같았으나, 금세 기분이 다시 다운되어 버리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방에 들어가 버리는 행동이나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는 모습을 보면 감정이 쌓인 게 분명히 있는 듯 했다.
그날 이후로 사이가 많이 좋아졌는데 이렇게 되니 상당히 골치가 아픈 성민이었다. 저 상태에선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해도 건성으로 들을 것이 뻔한 데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닫혔던 문이 열리고 설아가 나왔다.
“저기 설...”
나오자마자 설아는 곧장 씻으러 들어가 버렸다. 이쪽에 시선도 주지 않고 가는 모습에 성민은 말을 하다 바라보기만 했다.
“이거 진짜 심각한데?”
생각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다.
‘오빠 얼굴을 바로 못 보겠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더욱 걸음 거리를 빨리해 들어와 버린 설아는 지금 자신의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과 상황이 혹시나 들킬 가 싶어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런 자신의 행동이 답답한 설아였지만 지금으로써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샤워를 하면서 설아는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잠깐만.”
샤워를 끝내고 문을 열고 나온 설아가 바로 방으로 향하는 모습에 기다리고 있던 성민이 불렀다.
“나 머리 말려야 돼.”
성민을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한 설아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이번엔 성민 역시도 마음을 먹은 것인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문을 열고 따라 들어갔다.
“어제 내 말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했던 거야?”
“그런 거 아니야.”
헤어드라이기 코드를 꼽고 머리를 말리려는 설아의 팔목을 성민이 잡았다.
“그게 아니라면 기분이 왜 그렇게 안 좋은 거야?”
“이거 놔. 나 머리 말려야 한단 말이야.”
“사람이 말을 하면 똑바로 보고 대화를 나눠야지.”
성민이 옆으로 이동해 설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설아는 고개를 반대로 돌려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나한테 화 많이 났어?”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그렇게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계속 시선을 피한 채 말하는 설의 행동에 성민이 결국 어깨를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이 마주친 설아는 당황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 멀리 말려야 하니까 빨리나가!”
“자, 잠깐!”
이어 소리치며 일어나 성민을 밀어 밖으로 내쫓아 내고는 문을 닫아 버렸다.
순식간에 밀쳐 밖으로 나와 버린 성민은 이 상황이 그저 황당스럽기만 했다.
‘바보같이...’
성민을 쫒아 내고 다시 자리에 앉은 설아는 이런 자신의 행동을 탓했다. 어깨를 잡고 마주보개 하는 행동에 순간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런 걸로 당황은 했을 지언 정 이렇게 밀쳐서 쫓아낼 필요는 없었다.
이런 자신의 행동을 탓하고 있는 설아의 얼굴은 왠지 붉혀져 있는 듯 해보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설아의 방에서 쫓겨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는 성민은 조금전 일과 어제 일을 생각하다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그렇게 밀쳐서 쫒아 낼 줄은 생각지 못 했다.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다니 너무 한 거 아냐?”
답답한 마음에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던 설아의 행동에 잠시 투덜거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자신의 어떤 말에 상처를 받아 저렇게 설아가 저기압일까에 대해서 생각에 빠지는 성민이었다.
결국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성민은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 하니 어느새 시간은 8시 40분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성민은 곧장 문을 열고 나왔는데 거실은 조용했다.
“설아야?”
걸음을 옮겨 설아의 방으로 이동해 노크를 해보지만 들려오는 건 침묵 뿐.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확인해보니 설아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9시까지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주말에는 9시까지 가야 한다고 했었던 설아 였다. 그걸 기억해낸 성민은 지금시간이면 설아가 없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통 주말에도 늦잠자면서 굶으면 안 된다고 깨워서 밥을 차려주었던 설아였다. 그런데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나간 것만 봐도 역시 심각하게 봐야 할 일이었다.
“생각해봐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발길을 돌려 답답한 기분을 떨쳐내려 냉수 한잔 마시러 싱크대로 향하다 순간 식탁에 시선이 갔다. 식탁에는 차려진 음식들과 벌레 들어가지 말라고 덮어 놓은 밥상덮개가 있었던 것이다.
“나 먹으라고 차려놓고 간 거야?”
평소와 다르게 깨우지도 않고 그냥 나가버린 설아.
분명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정도로 상당히 저기압으로 보였는데 이렇게 설아는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 반찬을 만들고 접시에 덜어서 먹기좋게 식탁에 차려놓고 나갔던 것이다.
혹시나 싶어 밥통을 열어보니 밥 또한 어제 남은 밥이 아니라 갓 지은 새 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