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9화 단호하게
“야, 내가 바를게.”
“아침에는 내가 발라 준다고 했잖아. 사양할 거 없어.”
다음날 아침 식사를 끝내고 씻고 나온 성민이 방으로 들어가자 구급상자를 들고 따라 들어온 설아였다. 머리를 말리다 말고 성민은 그렇게 앞에 앉아 자신의 무릎 상처에 소독약을 바른 솜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연고를 바르는 설아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처쯤은 딱지 생기고 며칠 지나면 저절로 나아.”
“그렇게 가볍게 넘기다가 상처가 덧날 수 있는 거야. 오빠는 이런 면에서 좀 더 꼼꼼해 져야 해.”
“그런데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전에?”
“그래. 그때도 축구하다 까진 적 몇 번 있었는데 그때는 잔소리만 했지 약을 발라주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 그때랑 지금은 달라.”
순간 당황하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이 작게 웃음을 지었다.
“다르다라... 과연 뭐가 다를까? 난 모르겠는데?”
“몰라. 아무튼 달라.”
“그러니까 뭐가 다르냐니까요? 갑자기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데 어떡하나?”
설마 이런 질문에 설아가 당황 할 줄은 몰랐던 성민이었던지라 재미가 있었는지 계속해서 설아를 골려 주었다.
“그래서 오빠는 싫어?”
허나 다시 한 번 물어오는 성민에게 설아는 더 이상 당황하는 것 없이 반대로 물음을 던졌다.
“싫은 건 아니지. 다만 궁금하잖아~ 그때랑 다르다고 하니까.”
역시 성민 역시 이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설아가 반격을 해오자 다시금 농담 섞인 목소리로 되돌려 주었다.
“그때는 얄미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오호~? 얄미웠지만 그렇지 않았다라... 그게 다르게 본다는 이유냐?”
“그래. 전에 내가 말했잖아. 오빠가 날 얼마나 위해주고 있는지 이제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나도 오빠를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 이제 됐어?”
“그...정도면 됐지.”
설아의 직설적인 말이라서일까. 성민은 더 이상 농담으로 대답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어젯밤에 말한 것처럼 저녁에 약 잘 발라. 나 돌아와서 확인 할 거야. 안 발랐으면 나 오빠에게 화낼 테니까 각오해.”
그러고는 다시 꺼냈던 소독약과 솜, 그리고 연고를 구급상자에 담아 뚜껑을 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기다릴 테니까 옷 갈아입고 나와.”
“알았어.”
성민의 대답을 끝으로 몸을 돌려 그렇게 문 밖으로 나가버리는 설아였다.
“오빠도 참 이런 걸로 농담을 하고 싶을까?”
거실로 나와 서랍에 다시 구급상자를 넣어 놓으면서 설아는 아까전의 성민의 농담을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이럴 때 보면 정말로 얄밉단 말이야.”
전에는 이렇게 실없이 이어지는 놀림에 자주 투닥 거렸다.
“조금만 진실 되게 대해주면 되는데...”
하지만 이제 설아는 그런 얄미운 모습이 전혀 싫지는 않았다. 전에 몰랐을 때는 그저 자신을 놀리기 위해 저러는 걸로 생각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아까 전에도 구급상자를 들고 따라 들어갔을 때 부담스러워 하던 것을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전엔 상처를 입었을 때 약 좀 바르고 다니라며 잔소리를 했을 지언정 발라주지는 않았었다. 지금 자신의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 오빠인 성민이 당황하고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이젠 설아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그걸 무마하려고 저렇게 더 농담하며 놀리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성민이 교복을 다 갈아입고 가방을 들고 거실로 나오자 둘은 나란히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하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설아가 피곤 한지 하품을 했다.
“피곤하면 더 자.”
“괜찮아. 조금 더 일찍 일어나는 건데.”
“아버지도 너한테 그랬다며. 요즘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거 아니냐고.”
맡고 있는 프로젝트 때문에 6시 출근 하시는 아버지를 마중한 설아 였다. 그것만 보더러도 얼마나 일찍 일어나는지 알 수가 있는 일이다.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는 아버지는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아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하고 바로 나선다. 그래서 6시 전에 일어나지 않으면 보기 힘든데 설아는 이틀 동안 아버지에게 잘 다녀오시라고 했으니 확실히 많이 빨리 일어나는 편이다.
“출근하시는 아빠에게 인사도 하고 좋지 뭐.”
“대충 집에 있는 반찬으로 먹으면 되는 데 말이야... 먹을 만 한 게 없으면 라면을 먹어도 되고.”
엘리베이터 도착 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올라타 1층을 눌렀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래도 피곤하잖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알았어, 그럼.”
여기서 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안 성민이 입을 닫아 버렸다.
[1층입니다.]
잠시 후 도착 음이 들리자마자 문이 열렸다. 1층에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가 두 사람을 보고 옆으로 비켜섰고 탈 수 있게 서둘러 내려주었다. 정문을 지나 밖으로 나가자 어느새 설아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깍지를 껴온다.
“오빠.”
“응?”
“이제 이렇게 손잡고 가는 거 당연하게 생각되지 않아?”
“넌 그래?”
“응. 매일 같이 이렇게 잡고 가니까 정말로 익숙해졌어. 오빠는 아니야?”
“글세...”
“뭐야 그 대답은?”
“아니, 싫은 건 아닌데 이렇게 잡고가면 뭐라고 할까...”
“뭐가?”
“사람들 그 시선 있잖아.”
“시선이 왜?”
올려다보는 설아의 시선에 성민이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 할 거 아니야.”
“오빠하고 날?”
“그래.”
“오해하라고 해.”
“뭐?”
순간 성민이 저도 모르게 발검을 멈추고 말았다.
“너, 지금 그 말 무슨 뜻이야?”
“어차피 그 사람들은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잖아. 오빠하고 나를 오해하든 말든 상관없잖아?”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뭐가 그게 아니야?”
“너하고 난 남매잖아. 그런 오해 받으면 기분 나쁘지 않냐?”
반에서 자신과 설아를 두고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성민은 기분이 나빴었다. 오빠로써 여동생을 챙기는 걸 두고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안 좋았다.
“왜 기분 나빠야 하는 거야?”
“왜 기분 나빠야 하냐니.”
“오빠하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인 거 아니야?”
“물론 그렇지만 학교에서도 일이 있었고 설아 너와 날 두고 보는 시선들 중에는 꼴사납다는 그런 특유의 눈빛이 있잖아. 마치 커플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침에 이렇게 깍지를 끼고 등교를 하다보면 여러 시선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 아침부터 닭살 질이냐는 듯 불쾌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말 그대로 그 사람들의 눈빛은 꼴사나운 커플을 바라보는 시선이라 할 수가 있었다.
“난 오빠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라고 생각해. 여동생하고 오빠가 사이좋게 손잡고 학교 가는 게 뭐가 나빠? 난 그거 잘 못 됐다고 보고 있어. 남매라도 좋으면 손잡고 갈 수 있는 거고 깍지를 낄 수도 있는 거지 왜 주변 시선을 신경 써야 해?”
“보통은 사이좋아도 다 큰 남매가 그러지는 않잖아.”
“오빠.”
고개만 성민에게 돌린 채 말하던 설아가 이젠 똑바로 마주 바라보았다.
“보통 남매들이 그런다고 해도 우리도 그래야 해? 오빠는 그렇게 생각해?”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
“전에도 말 했잖아. 나 그런 시선 신경 안 쓴다고. 왜 그런 사람들 신경을 써 가면서 행동해야 해? 손잡고 가는 게 나쁜 게 아니잖아. 오빤 왜 손 잡는 것 까지 그렇게 의식을 하는 거야.”
“그건...”
차마 성민은 그때 수군거리면서 들었던 브라더 콤플렉스라는 말을 설아에게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절대 좋은 뜻에서 했을 리가 없었고 듣는 설아의 입장에서도 반 친구들이 그런 얘기를 자신을 주도 했다는 것에 상당히 기분 나쁠 터였다.
“아무튼 앞으로는 조금 조심했으면 좋겠어.”
“그럼 손잡고 가지 말자는 얘기야?”
“아니,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학교근처에서는 그래도 오빠가 많이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서 잡지는 않아. 하지만 여기서 까지 그렇게 보면 나 정말로 상처받을 거야.”
“설아야.”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이젠 학교 마치고 같이 하교도 못 하잖아.”
“알았어...”
“그럼 가 오빠.”
잠시 대화가 길어지며 지체 됐던 발걸음을 그렇게 옮겼다. 손을 여전히 잡고 있었고 깍지를 낀 상황이다.
그런데 아까보다 깍지를 끼고 있는 설아의 손힘이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잡은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그럼 나중에 문자 줄게, 오빠.”
“알았어.”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성민을 바라본 설아가 그렇게 몸을 돌려 반으로 행했다. 그때 계단에서 올라오며 이 모습을 바라본 애들이 있었다.
“아까 들었어?”
“나중에 문자를 주겠다니... 저런 말 하는 거 부끄럽지 않나?”
“난 징그러워서 저런 말 못 할 거 같은데...”
“그게 정상이야. 설아 재가 이상한거지......”
“어제도 그렇게 폰을 잡고 쉬는 시간마다 문자 주고받았었잖아? 그거다 친오빠에게 보낸 게 분명할거야.”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을 해.”
순간 앞서 걸어가던 설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거리를 두고 소곤거리면서 오던 설아 반 여학생들이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던지 다 들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저, 저기 설아야... 그게 아니라......”
“오빠하고 문자하는 게 어때서? 그게 뭐? 너희들 나하고 오빠를 두고 이상한 얘기 한다는 거 알아. 남매가 친하게 지내는 게 뭐가 나빠? 왜 그렇게 말을 하는 건데?”
“그게 아니라...”
설아의 이런 말에 한 친구가 여전히 당혹스러워 하며 난처해했는데 그 옆에 있던 애는 오히려 표정이 안 좋아졌다.
“솔직히 그렇잖아. 남친도 아니고 어떻게 친오빠하고 하루 종일 문자를 주고받고 할 수 있어? 누가 봐도 이상한 거 아니야?”
“너 뭐라 그랬어?”
“남친도 아니고 친오빠하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냐고 했어. 혹시 설아 너 오빠를 이성으로 보고 있는 거 아니야?”
“야, 야 그만해...”
“아니 맞잖아? 매일 같이 오빠랑 같이 붙어서 등교하고 마치자마자 기다렸다가 둘이서 하교하고. 아무리 봐도 이상하게 생각 할 수밖에...”
짜악-!
따귀를 때리는 울림.
걸음을 옮겨 다가가더니 그대로 설아가 뺨을 때려버린 것이다. 순간 지나가던 학생들이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애들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순간에 뺨을 맞은 애가 충격을 받은 듯 한 얼굴로 설아를 바라보았다.
“너, 너 지금 내 뺨 쳤어?”
“왜? 한대 더 처 줄까?”
“......”
뭐라 말을 못 하고 기가 차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그 애를 설아가 차갑게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