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7화 귀청소
식사를 끝내고 언제나처럼 설아는 설거지를 했다. 물론 그동안 성민 역시 집안 청소를 했다. 원래라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지만 거실은 매일 같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닦았다. 설거지까지 설아가 하는데 혼자서 집안일을 안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거지가 끝나면 설아는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왜 그래 오빠?”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 나온 설아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당황하는 성민을 보고 의아한 듯 물음을 던졌다.
“그, 그거 말이야.”
“그거라니?”
“너도 그렇고 나도 다 컸잖아.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들고 가면 부끄럽지...않냐?”
조금 어색해 하며 말하는 성민을 바라보던 설아가 무엇 때문에 저러는지 알고는 웃음을 지었다.
“변태.”
“뭐어?”
그러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리는 설아.
“야, 야! 잠깐만 변태라니! 너 지금 내가 이상한 생각 했다는 거냐?!”
변태라는 한 마디에 성민이 언성을 높이며 항변을 했지만 이미 들어가 버린 설아에게선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쟤는 진짜 부끄럽지도 않나?”
오빠가 거실에 턱하니 앉아 있는데 다 큰 처녀가 버젓이 갈아입을 속옷을 내보이고 들고 가다니. 설아와 자신과 아버지의 빨래는 가려서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어머니가 그렇게 했었고 하는걸 봐왔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식으로 빨래를 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도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가려서 빨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놓고 저렇게 갈아입을 속옷을 내보이고 다니다니.
‘내가 오버 하는 걸 수도 있지.’
가족이고 오빠이니 편하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 자신이 너무 거기에 예민 하게 반응 할 것일 수도 있었다. 요즘에 설아를 보고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학교에서의 일도 그렇고.
“쫄보가 다 됐구만...”
이런 골로 예민하게 반응 하는 자신이 문뜩 한심하게 느껴지는 성민이었다. 변태라는 말에 순간 욱 해서 항변하듯 말했지만 이젠 이까짓 일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다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그렇게 티비를 보고 있는데 얼마 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촉촉이 젖은 머리를 닦으며 나오는 설아를 볼 수 있었다.
“오빠.”
“어?”
힐끔 설아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귀를 후비며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성민은 설아가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쳐다보았다.
“손가락으로 귀 후비지마. 그러다가 손톱에 상처 나면 염증 생기잖아.”
“야, 그걸로 염증생기면 이 나라 인구 절반 이상이 귀에 염증 달고 살겠다.”
실없는 소리에 그렇게 말한 성민이 다시 티비에 시선을 돌렸다. 잠시 동안 그런 성민을 바라보던 설아가 방으로 들어갔다.
‘잘만 되네 뭐.’
설아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성민은 웃음을 지었다. 이런 자신을 보면 왜 웃는가 싶겠지만 조금 전 성민은 설아를 예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대했기 때문이다. 당황해서 되묻는 것이 아닌 원래 자신이 말투와 분위기로 설아에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예민하게 굴지도 말고 당황하지도 말아야지.’
까짓 거 여동생이 손을 잡으면 어떤가.
남매 사이가 좋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그리고 어릴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주 잡고 다니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니 확실히 자신이 예민하게 군 것 같았다. 그렇게 티비를 보고 있는데 잠시 후 설아의 방문이 열렸다. 머리를 다 말렸는지 축축했던 긴 머리가 뽀송하게 말려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설아가 옆에 몸을 앉혔다.
“이거 오라버니가 재밌게 보고 있으니까 다른데 채널 돌릴 생각 마라.”
“걱정 마 그러지 않을 테니까.”
“그래, 그래야 착한 동생이지.”
“그보다 오빠.”
“응?”
“여기에 누워봐.”
“누으라니?”
성민이 고개를 돌려 설아를 바라보았다. 설아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
“누워봐. 내가 오빠 귀 청소 해줄 테니까.”
아까 전에 이쪽으로 올 때 보지 못했었던 물건이 설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제 귀 안 가려운데?”
“그래도 누워봐. 나 오빠 귀지 청소 하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내가 봐줄게.”
“아니, 소리도 잘 들리고 괜찮다니까?”
“오빠.”
“어?”
“오빠는 내가 귀지 청소 해주는 게 싫어?”
순간 시무룩해지려는 설아의 표정과 말투에 성민은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오빠 귀 청소 해주는 거 싫다면 안 할게.”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순간 성민이 가려는 설아의 손목을 잡았다.
“야, 내가 언제 싫다고 했냐? 사람 말은 끝가지 듣고 가야지.”
“여기 누워 오빠.”
순간 언제 시무룩해졌냐는 듯 금세 다시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아 허벅지를 두 번 두드리는 설아였다. 성민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설아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워 티비를 바라보았다.
“아프면 말 해?”
조심스럽게 귀 안을 살펴본 설아가 귀후비개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성민의 귀지를 찾아 제거하기 시작했다.
‘느낌이 이상한데.’
티비를 보고 있지만 성민은 전혀 그쪽으로 신경이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설아의 다리에 배고 귀를 청소해주고 있는 이 상황이 편하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귀지 청소를 해준 적이 없었던 설아 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모습이라니.
“오빠 귀 청소 진짜 안하나 보다. 너무 더러워.”
“시끄러. 소리만 잘 들리면 되는 거지.”
“그래도 한 번씩 면봉으로 닦아내던지 청소를 해줘야 하는 거야. 오빠는 혼자서도 잘 하지 못 할 것 같으니까 앞으로는 내가 한 번씩 이렇게 청소해 줄게.”
그래도 처음으로 받는 서비스라 그런지 귀안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돌아 누워봐.”
“돌아 누으라고?”
“응, 반대쪽도 해야지.”
“반대쪽은 다음에 하면 될 거 같은데...”
“한 쪽만 하고 끝내면 안 돼. 양쪽 다 청소를 해야지.”
설아의 완강한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성민이 돌아누웠다. 그러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아까 전엔 티비를 향한 쪽이라서 눈을 뜨고 있었지만 이젠 설아의 몸을 바라보고 있는 쪽이었다. 눈을 감고 있어 그런지 귀를 청소하는 느낌과 행동이 아까보다 더 잘 전해지는 듯 했다.
“고마워 오빠.”
“뭐가...?”
갑자기 귀를 청소하던 설아가 고맙다는 말에 작게 되물었다.
“동아리 나 때문에 나온 거 알아. 그리고 학교에서도 그렇고 언제나 신경 쓰게 만드는데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려 하잖아.”
“동아리는 원래 나랑 잘 맞지도 않았어. 내가 이 학교에 정말 어렵게 들어오긴 했지만 공부는 역시 나하고 잘 맞지 않는 거 같으니까. 그리고 네가 신경 쓰게 만들다니 이상한 소리 하지마. 그런 거 없으니까.”
“응...”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한다는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런 행동 안 하니까 그것도 오해하지 말고.”
“알았어...”
“전에 그건 나 때문에 일이 엉켰으니까 당연히 내가 책임지기 위해서 행동에 나섰던 거야. 그거 때문에 설아 널 오히려 더 화나게 했었던 것 같지만.”
“......”
“오빠로써 당연한 행동을 한 거니까 이상한 생각 할 거 없어. 그 정도는 해줘야 오라버니지 않겠냐?”
그렇게 말한 성민이 설아의 허벅지에 배고 있던 머리를 들었다.
“귀지 청소 다했지? 그럼 나 피곤해서 먼저 잔다.”
그러고는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성민이었다.
“나도 모르게 황설수설 해버렸잖아.”
입맛을 다신 성민이 침대로 걸어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갑자기 뜬금없이 고맙다니. 물론 설아 혼자 동아리를 나가게 할 수 없어 같이 나온 거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후 성민은 가방을 들고 나서려는 현준에게 다가갔다.
“동아리가냐?”
“응.”
“하루 정도는 빠져도 괜찮지? 기말 시험도 끝났잖아.”
“무슨 일이라도 있어?”
“일은 모슨... 간만에 너하고 피시방 가려고 그러지.”
“피시방?”
“기다려 봐.”
성민이 걸음을 옮겨 지수에게 다가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뭐라고 대화를 주고받더니 다시 돌아왔다.
“지수도 허락했으니까 가자.”
“......”
그러고는 나가버리는 성민이었다. 고개를 돌려 지수를 바라본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성민아.”
“왜.”
“오늘은 같이 집에 안가?”
“걔 아르바이트 갔잖아.”
“아르바이트?”
“응, 중학교 친구 삼촌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오후타임 한다더라.”
“그랬구나.”
매일 같이 설아하고 하교를 했던 성민이 왜 갑자기 피시방에 가자고 했는지 의아스러웠던 현준이었지만 이해가 되었다.
“지수하고는 잘 되 가냐?”
“어?”
자신의 말에 순간 움찔하며 반문하는 현준을 보고 성민이 피식 거렸다.
“걱정하지 마. 이제 그걸로 널 쪼을 생각 없으니까.”
“으, 응..”
“뭐... 물을 필요도 없이 너도 그렇고 지수도 알아서 잘 하겠지.”
성민은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현준이었다.
“네가 보기에 어떠냐?”
“뭐가 말이야?”
“설아 하고 지금 나 말이야.”
“......”
말이 없어진 현준을 보고는 성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네 앞에서 설아 얘기는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내 주변 놈들 중에 가까이서 설아와 나를 오랫동안 본 사내 녀석은 너 밖에 없어서 말이야.”
잠시 동안 그렇게 말없이 걷던 현준이 얘기를 꺼냈다.
“네가 묻는 게 애들 시선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래. 며칠 전에 또 들었거든. 나하고 설아를 두고 수군거리는 걸.”
“그때 너 말 때문에 반 애들 많이 조심하던 거 같던데.”
“우리 반 녀석들 아니야. 설아의 반 애들이 그랬던 거지.”
순간 현준이 놀란 듯 바라보았다.
“걔네들이 설아를 두고 뭐라고 하는지 아냐?”
“뭐라고 했는데...?”
“브라더 콤플렉스란다. 그런 얘기가 걔네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나보더라고.”
“......”
“최근 들어 나도 걱정스럽긴 해. 요즘 들어 설아와 매일 같이 붙어 지냈으니까. 그런 소문이 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지.”
설아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을 했었지만 성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설아 까지 그런 소리와 시선을 받으며 학교를 다닌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사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이렇게 따로 가게 된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그러면 그런 시선을 덜 받을 테니까.”
그렇지만 성민은 설아가 왜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알고 있어 마냥 편하게 받아 드릴 수는 없었다. 물론 설아의 그 생각이 안 좋다는 건 아니었다. 남매가 사이좋게 지낸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 설아의 행동은 남들이 보기에 남매 그 이상의 모습으로 보이기 충분한 행동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반 아이들이 자신과 설아를 두고 그런 수군거린 것을 들었을 때 느꼈고 설아의 반 여자애들이 브라콘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확실히 깨달았다.
“사실 저번 일로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그때 네 모습보고 꺼내선 좋지 않을 것 같았거든.”
“무슨 얘긴데?”
“네가, 설아를 여동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는 걸 들었어.”
“뭐어?”
순간 성민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현준을 바라보았다.
“매일 같이 설아하고 문자를 주고받고 마치면 네가 설아 기다리거나 설아가 너 기다렸다가 같이 가잖아. 창문에서 그런 네 모습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걸 들었어. 저 녀석 여동생을 여동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 아니냐고.”
현준은 성민이 이 얘기를 알게 되면 상당히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에 많이 망설였었다. 아니, 하지 않으려 했었다.
“누가 그딴 개소리했냐?”
“어?”
“걱정하지 마. 이걸로 허튼짓 하지 않을 거니까. 다만 그런 헛소리를 내뱉은 놈이 누군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네가 왜 나에게 이 얘기를 꺼내는 걸 망설였는지도 충분히 이해하니까.”
잠시 주저하던 현준이 입을 열었다.
“수찬이.”
“그 뺀질이?”
“어.”
“그 놈일 줄 알았어. 그때 경고를 줬는데도 안 보이는 곳에서 그딴 개소리를 짓거렸단 말이지?”
현준은 순간 성민이 내일 학교에서 수찬이를 패버리는 성민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번엔 그래도 너그럽게 넘어갈게. 이걸로 해코지하면 네가 고자질 한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다음에 또 그딴 개소리 운 나쁘게 듣게 되면 말 해줘. 한 번은 넘어가더라도 두 번은 못 넘어갈 테니까.”
“그, 그래...”
현준이는 성민이의 말에 긴장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말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렇게 살벌한 눈빛에 차가운 얼굴 표정은 그때 그 일이 있은 후 자신에게 주먹을 날릴 때 말고는 최근에 본 적이 없었다.
그때도 성민이 정말로 많이 참았다는 것을 현준은 잘 알고 있다. 그때 설아를 도와준다고 안 졸은 좋은 일에 휘말렸을 때 나서준 성민이가 그 일이 설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 놈들에게 찾아가 저질렀던 행동들을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성민은 처음으로 경찰서에 갔었다. 소년원에 들어 갈 뻔 했던 성민의 아버지가 나서서 겨우 막을 수 있었다.
지금도 현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설아는 그 사건을 좋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친구 때문에 나서준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그렇게 심하게 할 필요가 있었나 했었던 것이다. 성민의 말 때문에 설아에게 왜 그렇게 심한 행동을 했었는지 속내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진 않았었지만 그때 찾아온 설아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그 일에 대한 내막까지도 전부 설아에게 말해주었었다.
성민이 설아를 얼마나 위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자신 때문에 사이가 멀어지는 걸 원치 않았기에 그렇게 그 일에 있었던 뒷이야기까지 전부다 설아에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