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6화 수군거림
“오빠!”
교문 앞에 서서 폰을 만지며 기다리고 있는 성민을 본 설아가 그렇게 서둘러 달려갔다. 폰을 만지고 있던 성민은 오빠라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는데 이쪽으로 달려오는 설아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나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진짜야? 수상쩍은데?”
“이런 걸로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냐?”
“그야 모르지~ 날 배려해주려고 그런 말을 할지.”
“뭐어?”
“농담이야. 어서 가 오빠.”
생긋 웃음을 지으며 앞서 걸어 나가는 설아를 보고 성민 역시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당번이 아닌 날에는 이렇게 빨리 돌아갈 수 있어 좋은 거 같아, 그치?”
“그렇긴 하지.”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 진거 같지 않아? 정말로 여름이 부쩍 다가온 거 같애.”
“맞아.”
“교실에서도 더워서 선풍기는 물론이고 에어컨도 켰다니까? 오빠반도 에어컨...”
말을 하다말고 설아는 성민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 모습에 시선을 돌려 뭘 보는 건지 확인했다. 그러자 두 명의 여학생이 눈이 마주쳤는데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러고는 서둘러 자기 갈 길을 가는데 그 모습에 설아가 다시 시선을 바로 했다.
“오빠 우리 반 애들 보고 있었던 거야?”
“쟤네들 너희반이냐?”
“응. 그런데 왜 처다 본 거야?”
“아까부터 우리 쪽 보고 계속 수군거려서 말이야.”
“쟤네들이?”
“어.”
“그냥 본거겠지 뭐. 그보다 오빠 반에는 에어컨 키지 않아? 특별하게 우리 반만 켠 건 아닌 것 같은데. 날씨 진짜 덥잖아.”
“당연히 켰지.”
“역시 그렇지? 이제 진짜 여름인가 봐~ 기말고사도 저번 주로 끝났고... 이제 7월이네?”
설아의 말대로 날씨는 진짜 많이 더워졌다. 그리고 최근 들어 매미가 우는 소리도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여름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고. 곧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오자 차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서는 특별히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학생들도 많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근처 정류장에 도착해 내려섰을 때 설아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오빠.”
“응?”
“우리 여름방학 때 놀러가지 않을래?”
“놀러가자고?”
“응. 나 이번 7월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 할 거거든. 이미 자리도 알아봐 뒀어. 중학교 친구 삼촌이 운영하는 카페인데 이번에 한 달 동안 거기서 하기로 했어.”
“알바자리도 알아 놨단 말이야?”
“당연하지~ 여름방학인데 집에서 보낼 수는 없잖아. 오빠는 집에서 보낼 참이었어?”
“딱히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치... 뭐야 그게?”
“놀러 가면 어디 가려고?”
“음... 바다도 좋고. 계곡도 좋고... 워터파크도 괜찮아.”
“결국엔 물놀이가 하고 싶다는 거야?”
“여름엔 물놀이가 빠지면 섭섭하잖아~! 그리고 작년에 나 비키니도 샀었는걸?”
“뭐어?!”
비키니라는 말에 성민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반문했다.
“뭘 그렇게 놀래?”
“다, 당연히 놀랐지. 너 저번에 비키니 입은 모습 못 봤는데?”
“같이 물놀이를 한 적이 없으니 오빠가 어떻게 알겠어? 그리고 있잖아 오빠.”
“뭐가?”
“나 작년에 비키니 입었을 때 사이즈가 좀 컸거든? 그래서 조금 헐렁한 감이 있었어.”
“그런데?”
“나 잠깐 방안에서 입어 봤었는데 이번에 사이즈가 딱 맞는 거 있지?”
“가만 사이즈라면...”
“당연히 가슴사이즈지.”
“야, 야... 그런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냐?”
“뭐 어때? 오빠에게 말하는 건데.”
당황하는 성민을 보고 설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오빠 혹시 이상한 생각 한 거 아니지?”
“뭐, 뭐?! 이상한 생각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진짜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알았어. 그렇다고 해줄게.”
“그렇다고 해줄게가 아니라 진짜 그렇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열 내지마, 오빠.”
“......”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설아를 보면서 성민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젠 이런 얘길 자신에게 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내일 모래부터 오후 타임에 들어가기로 해서 안타깝지만 오빠하고 같이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 그리고 주말에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풀로 하기로 했어.”
“그, 그래?”
“응. 그래서 말인데 오빠 섭섭한 거 아니지?”
“뭐가 말이냐?”
“나하고 같이 하교 하지 못 해서 말이야.”
“괜찮아. 혼자서 집에 가면 되는 거지 뭐. 걱정하지 마.”
걸음을 옮기던 성민은 갑자기 설아가 멈춰 서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멈추는 거야?”
“오빠.”
“어?”
“오빠 그렇게 말하면 나 정말로 섭섭하다는 거 알아?”
“섭섭하다니?”
“내가 오빠 입장이었으면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야.”
정말로 맘 상했다는 듯 말하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니 난 나쁜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닌데?”
“오빠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그렇지 않은데...”
“뭐?”
“내일 모래부터 이제 따로 가야하니까 마음이 안 좋다고, 난... 당연히 오빠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나보네?”
시무룩해 보이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이 갑자기 소리 내어 웃음을 지었다.
“아, 아하하! 야~ 그것도 모르냐? 당연히 농담이지~! 나도 사실 얼마나 섭섭한데? 하지만 그렇게 섭섭한 티를 내면 네 마음이 편치 않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렇게 쿨하게 말하는 거지.”
“정말로 그래?”
“당연하지~ 이 오라버니가 거짓말 하는 거 봤냐?”
“음...”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던 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번엔 믿어 줄게. 하지만 오빠 장난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나 정말로 마음 상했었단 말이야~”
“알았어.”
“약속이야?”
“그래.”
그제야 다시 생긋 웃음을 지은 설아가 성민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그대로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그럼 가 오빠.”
“으, 응...”
이젠 당연하다는 듯 깍지를 껴 오는 설아의 모습에 성민은 여전히 적응을 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방에 가방을 놔둔 성민이 교복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옷을 전부다 갈아입고 나오니 잠시 후 설아가 문을 열고 나왔다.
“오빠 먼저 씻어. 난 저녁 먹고 씻을 게.”
그러고는 곧장 주방으로 향하는 설아였다. 손을 깨끗하게 씻은 후 냉장고를 열어 익숙하게 저녁을 차릴 반찬 재료들을 꺼내는데 도마를 준비하고 칼을 물에 씻는 설아에게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음음~음~~!”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성민이 걸음을 옮겨 화장실로 들어섰다. 세면기로 향해 물을 털어 가볍게 세수를 하는데 잠시 동안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처다 보고 있다가 다시 세수를 하고 걸려 있는 샤워기를 잡고 머리에 뿌렸다.
성민이 그렇게 씻을 동안 설아 는 익숙하게 소고기콩나물국에 계란 후라이. 그리고 오이를 잘게 썰어 냉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요리를 해오다 보니 이젠 정말로 능숙해진 설아였다. 밥통을 열어 밥을 확인하고는 새롭게 쌀을 씻은 뒤 짐을 올렸다.
“금방 밥 차려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오빠.”
씻고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오는 성민을 향해 설아가 그렇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온 성민이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다 말고 다시 잠시 동안 멍하니 있었다.
{맞다니까?}
{진짜 그렇지?}
{남매가 저렇게 매일 같이 붙어 지낼 수가 있는 거야? 나도 남동생이 있는 입장으로 절대 저럴 수가 없는데.}
{설아 쟤가 이상한 거야. 어떻게 오빠를 저렇게 좋아 할 수가 있대?}
{애들이 말하는 대로 브라더 콤플렉스가 맞나봐.}
하교를 하던 중간에 뒤에서 수군거리며 들려오는 그 말 들. 성민은 자신들을 두고 수군거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설아의 이름이 나왔을 때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러자 애들이 조금 당황한 빛을 보였고 이어 설아가 처다 보자 손을 흔들더니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우리 반 애들만 그런 게 아니 었나 본데.’
사실 얼마 전에 반 애들이 자신과 설아를 두고 수군거리는 것을 들은 성민은 곧장 가서 으름장을 놓았었다.
내가 안 듣는 곳에서 그딴 개소리 짓거리지 말라고.
그러자 당황한 애들이 고개를 끄덕였었지만 성민은 그때서야 자신과 설아를 두고 애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보다는 사이가 괜찮아진 현준이에게 물어보니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동아리를 나간 것을 두고도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했었다. 유람이 역시 현준이의 말에 동의 했었고 지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성민이도 그렇고, 현준이, 지수, 그리고 유람이까지 동아리를 나오긴 했지만 사이가 그때보다 더 나빠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암묵적으로 그 일을 거론하지 않기로 했고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사이가 회복된 상태다. 다만 설아가 여전히 냉기를 풍기고 있어 분위기가 좋지는 못 했던 것이다. 동아리를 나온 것도 설아 혼자서 나가는 걸 볼 수가 없었기에 성민이 고심 끝에 함께 나가게 된 것이다.
‘확실히 좋지가 않아.’
자신의 반 애들도 그렇고, 설아의 반 애들도 이걸 두고 수군거리고 있는 게 이젠 확실해졌다. 설마하니 설아의 반 애들까지 그러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 했었다.
여러 생각으로 그렇게 고민에 잠겨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설아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빠 앉아서 뭐해?”
“어?”
“어서 나와. 밥 다 차렸으니까.”
“벌써?”
“20분도 훨씬 넘었는걸?”
“지, 진짜?”
“응. 어서 나와 오빠.”
그러고는 다시 거실로 나가는데 성민은 자신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렇게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식탁엔 따끈따끈 하게 익은 밥 한 공기와 국과 반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자리에 착석한 성민이 그렇게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날씨가 너무 더운 거 같아서 에어컨 틀었어.”
“잘했어. 밖 같은 이미 여름 날씬데 뭐.”
“그렇지?”
“응.”
“이번에 여행이나 놀러 어디로 갈지 오빠도 잘 생각해봐. 난 계곡이든 바다든, 워터파크 어디든 상관없으니까~”
“우리 둘이서 가자고?”
“응, 왜?”
“아니 그냥.”
“오빠는 나하고 둘이서 가는 거 싫어?”
“싫긴.”
“나 이 말 그냥 한 거 아니야. 정말로 오빠하고 방학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아르바이트 하는 거란 말이야.”
“응...”
“그러니까 오빠도 잘 준비해야 돼?”
밥 한 숟갈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던 성민이 다시 수저를 내려놓았다.
“저기 설아야.”
“왜?”
“너 말이야. 반에서 아무 일 없어?”
“일이라니.”
“애들이 이상한 말을 수군거린다거나 그런 거 말이야.”
설아가 눈을 깜박이며 가만히 성민을 바라보았다.
“오빠.”
“응?”
“갑자기 왜 그런 말을 물어보는 거야?”
“아니, 그냥... 별 뜻은 없어.”
설아는 아직 모르고 있는 걸까 싶어 성민이 어물정 넘어갔다.
“나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오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하지만 이어진 설아의 말에 성민의 표정이 다시금 변했다.
“설아 너도 알고 있었구나?”
“혜진이에게 들었어. 나하고 오빠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거. 하지만 방금 전에 말 했듯이 난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 오빠하고 내가 친하니까 샘나서 그런 게 뻔 하니까. 그러니 오빠도 거기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해.”
“하지만 설아...”
“밥 먹어 오빠.”
“......”
“갓 지은 밥이라서 식으면 맛이 없어. 국도 마찬가지고.”
그러고는 숟가락으로 국을 떠서 먹은 설아가 성민을 바라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많이 먹어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