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14화 질문
다음날도 성민은 여느 때처럼 학교에 등교를 했다. 물론 설아 역시 함께였다.
집을 나와 등교를 하면서 4일 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 역시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매일 매일 이렇게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고 남매사이가 참 좋아 보인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당연히 그 말은 칭찬으로써 한 말이겠지만 성민에게는 좀 당황스럽게 다가왔고 설아는 웃으면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은 듯 했다.
그렇게 손을 잡고 가는 것은 버스를 타기 위한 정류장까지였다. 버스 안에서는 당연히 손을 잡고 있는 게 이상하게 보여 그러지 않는 게 당연했고 학교 근처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 손을 잡지 않는다. 성민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학교에 등교를 한 성민이 교실로 들어서자 유람이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지수 역시 힐끔 바라보는 게 보였는데 뭐라 인사를 해오지는 않았다.
성민 역시 그럴 거라 예상은 했다.
설아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눈빛만 보아도 둘 사이에 좋은 얘기가 오고 갔을 거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자리로 이동해 가방을 풀고는 몸을 앉혔다.
평소와 다름없는 출석체크와 아침조회 시간이 지나가고 그렇게 학교생활이 시작 되었다. 1교시, 그리고 2교시 등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게 마련이고 3교시를 넘어 4교시,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간단히 식사를 끝낸 성민이 현준을 불렀다.
“나하고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러고는 현준의 말은 듣지도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성민이었다. 현준 역시 갑자기 자신에게 보자고 하는 성민을 보고 긴장을 한 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갔다. 그런 둘의 모습을 지수와 유람이 나가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싸웠던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건가...’
지수가 어제 얘기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는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느낄 수가 있다.
설아와 성민이 나가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들어오는 지수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가 않았다. 뭔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랄까. 그래서 성민은 물론이고 유람이도 지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못 했다. 지수의 표정을 보고 좋은 얘기가 오고 가지는 않았을 거라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자신을 불러 낸 성민을 보면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현준이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 역시 적지가 않다.
그렇게 성민이 현준을 데리고 간 곳은 어제 지수와 대화를 나누었던 다용도실이었다.
복도는 물론이고 밖으로 나가도 다른 학생들이 있을게 뻔하니 이곳으로 온 것이다.
여긴 방해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긴장 할 거 없어.”
뒤 따라 들어서 교실 문을 닫고 걸어오는 현준을 보고 성민이 한 말이다.
“다만 너한테 물어볼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
“물어 볼 거?”
“그래.”
다행이 어제 일로 자신에게 안 좋을 소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걱정하던 일이 아니어서 조금은 다행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는 않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인해 믿고 밀어주었던 성민의 신뢰를 깨버렸고 설아에게 상처를 주었으니까.
“그날 내가 가고 설아가 왔을 때 너 얘기 했냐?”
“얘기라...니?”
“왜 헤어지자고 했는지에 대해서.”
그날 처음으로 자신에게 주먹을 날렸던 성민의 모습과 그 느낌을 아직도 현준은 잊지 못 하고 있었다. 그날 자신 때문에 설아가 울었다는 말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사과를 했었다.
그날 자신과 성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잠시 뜸을 들이던 현준이 성민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말 했어.”
“지수 때문에 그런 거라고?”
“어.”
아마 그랬을 걸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들으니 이제 확실해졌다.
“그거 말고는 또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어?”
“다른 얘기?”
“그래.”
물론 했다.
자신 때문에 설아와 성민의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하지만 그 얘기를 성민에게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설아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고 자신도 그러겠다고 했었다. 이건 자신을 믿고 설아와 사귀게 밀어준 성민의 신뢰를 깨버리는 것에 이어 또 한 번 저지른 자신의 잘 못이다.
“하지 않았어.”
그래서 차마 그 얘기를 성민에게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그러 했다간 정말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깨질 것 같았으니까. 물론 지금도 그 믿음이 있을까 싶었지만. 하지만 현준의 입장에서는 나름 변명의 여지가 있기는 했다. 성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아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면 둘 사이는 정말로 좋게 흘러가지 않았을 테니까. 현준은 그걸 원치 않았다. 자신의 잘 못은 잘 못이고, 사이가 좋던 남매 사이가 그렇게 멀어지면 둘 에게 정말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지만.
“진짜냐?”
성민은 그런 현준에게 다시 물음을 던졌다.
“으, 응...”
그런 성민의 재차 던지는 물음에 현준은 그렇다고 얘기를 했다.
눈치를 보며 말을 더듬는 게 조금은 의심스러운 성민이었지만 지금만 이런 게 아니라 그날 이후로 계속 눈치를 보고 있어 그렇게 크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알았어. 그리고 지금 너에게 말하는 거지만 솔직히 아직도 기분이 풀린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나쁜 의도로 그러지는 않았다는 건 알고 있어. 다만 설아가 울었기 때문에 더 화가 났을 뿐이야. 부탁도 했으니까.”
“......”
안다. 현준도 충분히 그걸 알고 있다. 다 자신의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다.
“설아에게 사과는 했냐?”
“했어.”
“됐어 그럼.”
그렇게 말한 성민이 몸을 돌렸다.
“저기 성민아.”
그때 현준이 다시 불러서 멈춰 새웠다. 걸음을 멈춘 성민을 바라보던 현준이 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하다.”
성민은 잠시 고개를 돌려 현준을 바라보았다. 저번처럼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이 떨리는 게 다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 말 한마디.
딱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렇게 성민은 교실을 나갔다. 혼자 남게 된 현준은 그렇게 성민이 나간 교실 문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설아가 저렇게 행동하는 게 나에게 미안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현준과 대화를 끝내고 나온 성민은 달라진 설아의 모습은 현준과 대화를 하고 난 후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으로썬 그것 말고는 생각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준은 왜 헤어지자고 말을 했는지 사실대로 말을 했다고 했었다. 설아가 현준에게 그렇게 차갑게 대하는 이유도 이젠 확실히 알았다.
물론 헤어지자고 했으니 좋게 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았으니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게 뻔했다.
‘그럼 그날 새벽엔 왜 그렇게 화가나 있었던 거지?’
그건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현준을 찾아가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만 살갑게 대하는 설아를 보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벽까지 기다렸던 설아에게 사과를 한다고 그렇게 달라 질 수가 있을까.
여전히 의문이긴 했지만 지금으로써는 현준에게 사실을 들은 설아의 생각이 변했을 것이라는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일단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까지 들은 성민은 당연하게도 동아리실로 향했다. 그리고 설아 역시 혜진이와 함께 왔다.
하지만 분위기는 어색했고 말도 별로 나누질 않았다. 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시간이 동아리실 안에서 흘러갔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성민은 역시나 설아가 차려준 저녁을 같이 먹고 시간을 보냈다. 설아가 설거지를 할 동안 성민은 청소를 했다.
“수고 했어 오빠.”
청소를 끝내고 소파에 앉는 성민에게 설아가 타가지고 온 차를 건네주었다.
“수고 랄게 있어? 늘 하던건데.”
어색한 분위기나 그런 걸 느끼지 않으려 성민은 평소처럼 설아를 대했다.
“오빠.”
“응?”
“내일 약속 있어?”
“약속?”
“응, 없으면 같이 영화 보러 갔으면 해서.”
갑작스러운 제안에 성민은 순간 말을 못 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뭐... 스케줄을 봐야 겠지만 느낌으로는 약속이 없을 것 같기도 한데 있을 수도 있어.”
딴에는 침착하게 대답을 한다고 했지만 말하는 내용이 본인이 듣기에도 좀 이상했다. 하지만 설아는 그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확인해봐.”
“지금?”
“응.”
“......”
순간 성민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스케줄 확인해볼 것도 없었다. 약속이라는 걸 잡은 기억도 없는데.
“나중에 보고 얘기해 줄게.”
“지금은 안 돼?”
다시 재차 물어오는 설아.
똑바로 바라보는 설아의 눈빛 때문일까. 성민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있지도 않는 스케줄 보는 척을 하기 위해 방에 들어가 시간을 재고 있는 성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약 1분여의 시간이 흐른 후 성민은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다행이도 큰 건은 없는 것 같다.”
“그럼 내일 영화 보러 갈 수 있는 거네?”
“뭐, 뭐... 그런 셈이지.”
“잘 됐다.”
다행이라는 듯 활짝 웃는 설아의 미소.
순간 성민은 속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곁으로 표현하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조금 당황스러워 할 뿐이다.
그렇게 그날 어떨 결에 잡혀 버린 설아와의 데이트(?)에 잠자리에 든 성민은 있다고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와 여러 생각으로 밤잠을 설쳐야 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설아가 얘기 했던 대로 11시 쯤 되어서 방으로 들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렇게 거실로 나와 기다리니 설아 역시 잠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럼 가 오빠.”
“으, 응...”
성민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설아를 보고 적잖이 당황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설아가 입고 나온 옷이 ‘설렌다’는 말실수를 하게 만들었던 그 코디였기 때문이다.
둘이서 오랜만에 영화를 같이 보러 나온 것도 느낌이 이상한데 저 옷을 입고 나온 것에 성민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왜 저 옷을 입고 나왔을까. 어떤 생각으로. 자신이 당황하는 걸 설아는 모를까 하는 그런 의문.
그런 여러 생각으로 영화를 보면서도 내용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영화를 다보고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거리를 함께 걷는데 설아가 영화 감상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에 성민은 나쁘지 않았다면서 중간 중간 기억나는 내용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역시 마지막 장면에...”
“오빠.”
기억나는 내용과 엔딩장면을 섞어 얘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설아가 성민의 말을 자르며 불렀다.
“왜?”
당연히 자신을 부르는 설아에게 반문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걸음을 멈춘 설아가 성민과 눈을 맞췄다.
“지금도 설레?”
“어?”
순간 저도 모르게 다시 반문을 한 성민.
“지금도 날 보면 그때처럼 설레?”
“......”
이번엔 성민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