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11화 흠칫!
설아의 말 대로였다.
이렇게 학교를 같이가면서, 아니 나란히 걸으면서 손을 잡았던 적은 초등학교 때, 그것도 저학년 때뿐이었다. 그 후로는 주변 아이들이 놀리기도 했고 커가면서 성민이도, 그리고 설아도 더 이상 손을 잡는 것을 기피했다. 물론 싫다고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손을 잡이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초등학교 저학년 때나 잡았던 손을 다시금 잡은 것이다.
그것도 깍지를 낀 채.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설아의 손의 감촉이 생생하게 다 느껴졌다. 깍지를 끼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것보다 성민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어색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손을 빼기에도 애매했다. 만약 자신이 손을 뺀다면 지금보다 더 상황이 이상해질게 뻔하니까. 결국 그렇게 깍지를 낀 채로 버스 정류장까지 왔다.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을 힐끔 거리는데 성민은 그것도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학교에 가는 버스가 도착하고 타기 전 설아는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그제 서야 성민은 긴장을 풀며 편안한 한 숨을 내쉬었다.
‘설마 버스에 내린 후에도 깍지를 끼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건 곤란하다.
자신의 반 친구들이, 또는 설아의 반 친구들이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남매가 손을 꼭 잡고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이라니.
분명 이상하게 볼게 뻔했다.
다행이도 설아는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깍지를 끼지는 않았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 학년도 틀리고 반도 달라 그렇게 헤어지기 위해 멈춰 섰다.
“오빠 나중에 봐.”
“그, 그래...”
성민은 어색하게 그렇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복도로 걸어가는 설아의 모습을 성민은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그때 저만치 앞서 걸어가던 설아가 이쪽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에 성민도 따라 웃어주었다.
그렇게 설아를 보내고 성민 역시 계단을 올라가 반으로 향했다.
드르륵-!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온 성민의 눈에 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현준과 지수, 그리고 유람이 같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현준은 성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눈치를 보았다.
“성민이 너 웬일로 지각안하고 일찍 왔네?”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거는 성민을 향해 지수가 그렇게 말했다.
“나라고 매일 지각하는 줄 아냐?”
“하긴... 매주 지각은 하지만 매일 지각하지는 않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한 지수가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거봐. 이렇게 지각안하고 오니까 얼마나 좋아? 안 그래 유람아?”
“응, 맞아.”
“나 피곤하니까 이제부터 말 걸지 마라.”
“피곤하다니? 너 어제 또 이상한 거 봤지.”
“그런 거 아니다.”
“사실대로 말해~”
“그런 거 아니라니까.”
계속해서 실토하라는 지수의 말에 성민이 귀찮은지 엎드리고는 가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하지만 지수를 그런 성민을 더욱더 의심쩍다는 듯 바라보았다.
“정말로 아니야?”
“그래 아니야.
“흐음... 너 그러니까 더 수상...”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 순간 고개를 치켜든 성민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고 떠들던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순간 묘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지수는 물론이고 유람, 그리고 현준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제야 성민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머리를 거칠게 헝크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간다.”
호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성민이 그렇게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교실을 빠져나갔다.
“서, 성민이 쟤 왜 저래?”
유람이 놀란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젠장.’
교실을 나와 터덜터덜 복도를 걸어가는 성민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교실에 들어서기 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동하려 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특히 지수는 설아가 고백 했다는 것을 모른 상태로 고백을 하였다고 했었다. 따지고 보면 지수 잘 못은 없었다. 하지만 설아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에 지수 또한 원인제공자였기에 생각과 다르게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화장실을 다녀와 교실로 들어간 성민은 자신을 바라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자리로 이동해 앉아 그대로 엎드렸다.
지수도 그렇고 유람이도 그런 성민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놔둔 것이다.
‘그일 때문이겠지.’
하지만 현준은 성민의 신경이 날카로운 이유가 어제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도 좋게 볼 수가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현준 역시 표정이 좋지 못 했다. 죄책감 때문에.
성민의 저기앞은 수업은 물론이고 점심시간 그리고 학교를 마치는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성민은 스스로 저기압이라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지수나 유람이, 그리고 현준은 성민이 저기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현준은 신경을 건들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그리고 그건 동아리실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선배.”
혜진이 설아와 함께 들어서며 그렇게 인사를 건네 왔다.
“어서들 와.”
유람이 함께 들어서는 혜진과 설아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렇게 자리에 몸을 앉히는 혜진과 유람이를 지수 역시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현준은 설아의 얼굴역시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어 했다.
“뭐야 너희들?”
그에 지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 뭐가?”
“왜 그렇게 서먹해 보여? 서로 인사도 안 주고 받고.”
언제나 밝고 명량했던 설아 여서 더 눈에 띄는 걸까. 별다른 말이 없는 모습에 지수가 그렇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먹하긴... 아, 안 그래 설아야?”
어색하게 웃으면서 현준이 설아에게 인사를 건네자 설아는.
“네, 맞아요. 현준 오빠하고 제가 서먹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 속에 공부를 시작했다.
‘도대체 애내 둘 다 왜 이래?’
하지만 지수는 성민이도 그렇고, 설아도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렇게 동아리활동도 끝나고 8시가 다되어 갈 때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가던 대로 버스 타는 곳 근처에서 성민과 설아는 애들과 헤어지고 정류장으로 향했다.
곧이어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 했고 두 사람은 별다른 말없이 그렇게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참을 달려 집 근처 정류장에 당도하자 벨을 눌렀고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내려섰다.
흠칫!
그때 성민이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다시 놀란 시선으로 설아를 바라보았다.
“학교 근처에서도 손잡고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오빠?”
설아는 성민이 왜 흠칫 놀라는지 모르는 것일까. 그렇게 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다.
“하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설아가 다시 성민을 향해 웃어주었다.
“그럼 가 오빠.”
“으, 응...”
아침에만 그럴 줄 알았는데 지금도 설아의 행동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성민은 교복을 갈아입고 씻으러 들어갔다. 설아 보고 먼저 씻을 거냐고 물어보니 오빠 먼저 씻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머리를 감고 세면세족을 하고 나오니 맛있는 냄새가 맡아졌다.
싱크대 쪽을 바라보니 설아가 국을 끓이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 후라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요리를 하다말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던 것인지 설아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더니 역시나 따스하게 웃어주었다.
“오빠 배 많이 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밥 금방 차려줄게.”
그러고는 다시 요리를 하는데 방으로 들어온 성민은 기분이 뒤숭숭했다.
‘도대체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성민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설아의 행동은 성민을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설거지를 하려는 성민보고 괜찮다며 자신이 하겠다고 하거나 차를 한잔 타서 가져다주는 등의 행동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날 하루 동안 성민은 설아의 행동에 여러 번 당황했다.
그리고 그런 설아의 행동은 성민의 생각과 다르게 그날 하루만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난 목요일, 지수는 매일 같이 저기압으로 보이는 성민을 보다 못해 동아리실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에 엎드리려는 성민에게 입을 열었다.
“성민아 나하고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해.”
그러고는 나가는데 순간 아이들이 전부 처다 보았고 현준은 긴장 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머리를 헝클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성민이 지수를 따라 나갔다.
그때 동아리실로 걸음을 옮기던 혜진과 설아가 문을 열고나서며 굳어 있는 지수와 인상을 찌푸리며 따라가는 성민을 보고는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저 두 사람 어디 가는 걸까?”
혜진이 궁금증을 드러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먼저 들어가 혜진아.”
“설아야?”
갑자기 두 사람을 따라가는 설아를 보며 혜지가 놀란 듯 바라보았다.
그렇게 지수를 따라 다용도실로 사용하는 빈 교실에 들어선 성민이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할 얘기 있으면 빨리 말해.”
성민의 그런 태도에 더 기분이 나빴을까. 지수가 따지듯 물었다.
“도데 체 뭐가 문제야?”
“뭐가?”
“왜 그렇게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매일 같이 틱틱 대는 건데?”
“나 그런 적 없어.”
“아니, 너 월요일부터 오늘 지금도 그러잖아. 그리고 현준이 한 테는 또 왜 그래?”
“현준이가 뭐?”
“너희들 엄청 친하잖아. 그런대 왜 그렇게 찬바람이 쌩쌩 부냐고. 현준이가 너한테 잘 못 한 거라도 있어?”
“그런 거 없어.”
“그런데 왜 그렇게 현준이 한 테 차갑게 구는 건데? 현준이에게 물어봐도 다 자기 때문이라고만 하고 아무리 현준이가 잘 못 했다고 해도 너 그렇게 행동하는 거 너무하는 거 아니야?”
“뭐라고?”
순간 성민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맞잖아. 싸웠으면 해결을 보려고 해야지 왜 그렇게 심술부리듯 틱틱 대냐고. 그거 안 좋은 행동이라는 거 몰라?”
순간 성민은 그런 지수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 말았다.
“그만 하자. 지금 너하고 그런 얘기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나가려는 성민의 팔을 잡았다.
“나 얘기 아직 다 안 끝났어.”
“그만하자니까?”
“뭐가 그렇게 불만이인지 말 해.”
바라보는 성민에게 지수가 그렇게 쏘아 붙였다.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며 참은 성진이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아니라고 했어.”
“그런 거 아닌데 왜 그렇게 현준이에게...”
“언니 그 손 놔요.”
그때 였다.
교실 문이 열리더니 설아가 안으로 들어서며 지수의 말을 자른 것은.
지수는 물론이고 성민 역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빠 팔 잡고 있는 그 손 놔요.”
가까이 다가온 설아가 그렇게 말했다.
지수는 설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잡고 있던 팔을 놔주었다.
“설아야.”
놀란 성민이 차갑게 굳어 있는 설아를 불렀다.
“오빤 동아리실로 돌아가.”
하지만 그런 성민에게 설아는 보지도 않고 돌아가라 말했을 뿐이다.
다시 뭐라고 입을 열려던 성민은 설아의 눈동자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현준을 만나고 돌아오던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처럼.
“알았어.”
지금 분위기로 봐서 자신이 나서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은 성민이 그렇게 설아의 말대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설아는 지수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지금 언니 우리 오빠에게 얼마나 상처 입히는 말을 한 줄 알아요?”
“상처 입히는 말이라니?”
“안 그래도 힘들어 괴로워하는 우리 오빠에게 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잘 못은 오빠가 한게 아닌데.”
“너 갑자기 찾아와서 지금 무스...”
“왜 우리 오빠한테 그렇게 소리 치냐고 묻고 있잖아요!”
“서, 설아야...”
지수는 자신에게 소리치는 설아에게 당황스러워 뭐라고 말을 하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바라보는 설아가.
경멸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