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8화 이유를 알다
언제나 장난기 넘치는 성민의 모습이 아니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성민의 얼굴은 단단히 화가 나있다는 것이 분명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차가운 얼굴을 현준은 본적이 없었다. 성민이가 자신에게 주먹질을 했다는 것도 나무나 충격이지만 이렇게 차가운 얼굴을 보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가 왜 지금 이렇게 화가나 있는지 현준은 다음으로 이어진 말에 알 수가 있었다.
“왜 그랬냐.”
“......”
성민을 올려다보던 현준이 시선을 돌렸다. 도저히 그의 얼굴을 바라 볼 수가 없었다. 그때 다시금 성민의 말이 이어졌다.
“왜 설아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눈물을 흘리는지 말 해봐.”
“설아가... 울었다고?”
시선을 피했던 현준의 얼굴이 다시 성민에게로 향했다. 그럴 수밖에. 충격을 받은 것은 보았지만 눈물까지 흘렸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다.
“현준아.”
울었다는 말에 다시금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현준을 보며 성민이 그렇게 이름을 불렀다.
“지금 네 모습을 보면 마치 그것도 예상하지 못 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맞아?”
“......”
현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걸 예상하지 못 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현준아. 친구야...”
“......”
“내가 말 했잖아. 설아 잘 부탁한다고. 너 믿는다고. 현준이 너니까 내가 믿고 밀어준 거라고.”
그랬다. 분명히 그랬었다. 설아를 위하는 성민의 마음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는 현준으로써 밀어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고개 돌리고 있지 말고 말을 해봐. 왜 설아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는지.”
“......”
“그렇게 고개만 돌리고 있지 말고 말을 해보라니까?”
계속해서 말이 없는 현준을 보며 성민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너 그러고 있는 게 내가 더 화가 난다는 거 알아?”
“헤어...지자고 했어.”
“뭐?”
성민은 자신이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둘이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헤어진단 말인가. 그것도 이제 막 사랑을 꽃 피울 연애초기에.
“너 설아 사랑한다며. 좋아한다면서.”
설아가 현준에게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성민은 놀랐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여동생이 베프를 좋아한다는데 말이다. 그래서 한 동안 지켜보았었다. 그때는 그렇게 지나갔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오고 나서도 여전히 현준을 좋아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보다못 한 성민이 나선 것이다. 현준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현준 이 녀석도 설아를 좋아 한단다.
그래서 고심 끝에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기로 마음먹었다.
현준이라면 설아와 잘 사귀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녀석이고 남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나는 녀석이니까. 그런 녀석이니까 설아를 잘 챙기고 위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성민은 두 사람을 밀어주었다.
“나 그 말 너에게 들은 거 며칠 안 됐다는 거 아냐?”
얼마 전에도 물어봤었다.
진짜 설아를 좋아하는 게 맞냐고 말이다. 현준은 망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망설이긴 했지만 말이다.
성민이 걸음을 옮겨 다시 벤치에 몸을 앉혔다.
“꼴사납게 그러고 있지 말고 여기 앉아.”
아직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현준에게 성민이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시선을 피하고 있던 현준이 잠시 동안 그러고 있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겨 벤치에 몸을 앉혔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
현준은 벤치에 앉아서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설아에게 헤어지자고 한 이유가 혹시 지수 때문이야?”
“어, 어떻게?”
순간 당황한 현준이 말을 더듬으며 성민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랬다.
이런 불길한 예감.
빌이 먹게도 이런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 였냐. 둘이 만나기 시작 한 거.”
“며칠...안됐어.”
“설아 만나기 전이야?”
“아니.”
“그럼?”
“설아에게 고백 받은 그날 저녁.”
성민은 고개를 돌려 그런 현준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 말은 설아에게 고백 받은 그날 밤에 지수의 고백을 받아줬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너 진짜 웃기는 녀석인 거 알아? 설아 좋아한다 고백 받아 놓고는 또 지수 고백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할 수가 기가 찼다. 고백을 두 번이나 받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처도 그 두 번을 다 받아드리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차마 하지 못 할 나쁜 짓이다. 하지만 지수의 고백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자신 앞에서 그렇게 눈물을 글썽이는데 마음이 아파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지수에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결국 설아를 차버렸다. 그런데 그런 설아가 집에 돌아가서 눈물을 흘렸단다. 자신의 그 말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준에게 성민이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지수도 알고 고백 한 거냐.”
“그건 아니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준이 지수를 변호하듯 고개를 들며 부정했다. 순간 자신의 행동에 아차 싶었던 현준 이었지만 말은 계속했다.
“지수도 내가 설아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걸 몰랐어. 그리고 차마 용기 내어 눈물을 글썽이며 고백을 해오는 그런 지수를, 그 마음을 거절 할 수가 없었어.”
“그럼 설아는?”
“......”
“네가 고백을 받아줘서 너하고 데이트 한다고 오빠인 나보고 옷을 봐달라며 그렇게 좋아 들떠있던 설아는 뭐가 돼?”
“......”
“내 여동생은 가슴아파하든 말든, 눈물 흘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냐?”
“아니야.”
“뭐가 아닌데.”
“설아 걔는 명랑하고 밝은 애니까. 그래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 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단 말이야.”
순간 성민은 또 다시 현준의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릴 뻔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설아가 그렇게 힘들어 할 줄은 몰랐다고...크흐흑......!”
말을 하고 있는 녀석이. 혼자서 말하는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민은 현준 이 녀석에 대해서 잘 안다. 베프니까. 오지랖이 넓고 친구가 힘들어 하는 것을 쉽게 못 지나치는 녀석이다. 저 눈물이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내 앞에서 설아 얘기 꺼내지도 마라.”
성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미안하다.”
그때 뒤에서 현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미안하다 성민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현준이 성민에게 사과를 해왔다.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야. 설아지.”
“크흐흐흐흑!”
성민은 그렇게 울고 있는 현준을 내버려 두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현준 오빠에게 간 게 분명해.’
집을 나선 설아가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한 참을 울었던 설아는 자신에게 미안하다 말을 하고 나갔던 오빠에게 괜히 화풀이를 한 것 같아 사과를 하려 눈물을 닦은 후 방을 찾아갔었다. 그런데 노크를 해도 말이 없어 열어보니 오빠는 방에 없었다. 그때서야 설아는 아차 싶었다. 오빠가 현준 오빠를 찾아갔을 것이라는 것을. 오빠가 혹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그래서 이렇게 서둘러 집을 나왔다. 오빠를 말리기 위해.
그렇게 초조한 마음에 버스 정류장 도착 소리가 들려왔고 설아가 차에서 내렸다. 그렇게 막 현준이 사는 아파트로 달려가는데 이쪽으로 걸어오는 오빠가 눈에 들어왔다.
“설아?”
성민은 버스를 터라 가기위해 걸어가다 이쪽으로 달려오다 멈춰선 설아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가까이 다가온 설아가 입을 열었다.
“오빠 현준 오빠 만나고 왔어?”
놀란 표정을 지었던 성민은 차가운 설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니지?”
“......”
성민은 말이 없었다.
“오빠 정말...”
순간 설아의 눈빛이 경멸어린 시설로 변했다.
“설아야.”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그랬어!”
“......”
“나 미치는 꼴 보기 싶어서 그래?!”
“......”
“그거 알아? 나 진짜 오빠에게 실망했어.”
그러고는 설아는 그대로 성민을 지나쳐갔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설아는 그렇게 달려 나갔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았다. 그렇게 아파트에 도착한 설아가 집으로 찾아갔는데 현준이 나갔다는 것이다. 다시 전화를 하며 1층에 내려와 아파트를 나서는데 걸어 들어오는 현준과 마주쳤다.
“현준 오빠...?”
“네가 왜 여길?”
“오빠 울었어요?”
생각지도 못 한 설아의 모습에 현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울었다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현준 오빠. 우리 오빠 때문에...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 정말로 미안해요.”
사과를 해오는 설아의 바라보던 현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오히려, 오히려 사과를 할 사람은 나야.”
“네?”
“성민이에게도, 그리고 설아 너에게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아는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실망이라고?’
예기치 못한 만남.
집에서 울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설아가 눈앞에 나타날 줄은 전혀 생각지 못 했다. 그렇게 눈앞아 나타난 설아의 눈동자는 차가웠고, 말은 비수가 되었다.
그 눈동자. 그 말은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경멸어린 눈동자.
설아가 자신을 그렇게 바라 본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 가슴이 아팠다.
버스를 기다리던 성민은 다시 몸을 돌려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저히 집에 돌아가 돌아온 설아를 똑바로 마주 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성민이 떠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오는 설아의 얼굴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현준 오빠가 그랬을 줄은...’
자신에게 사실대로 다 털어 놓은 현준의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배신감도 느꼈다. 헤어지자고 한 이유가 지수 언니 때문이라니. 자신의 고백을 받아 들였으면서도 지수 언니의 고백을 받아들이다니. 너무 충격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오빠 성민에 대한 이야기. 그 얘기를 전부들은 설아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돌아서 발걸음을 옮기는데 현준이 다시 불렀다.
{성민이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오빠만큼 설아 널 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돌아서는 설아에게 현준이 불러서 멈춰 새운 뒤 마지막에 한 말은 자신 때문에 성민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미안해. 미안해 오빠.’
버스를 기다리는 설아는 마음이 아려왔다.
그동안 자신을 놀리고 그렇게 장난만 치던 오빠였는데, 그렇게 실없이 웃으며 장난을 많이 치는 그런 오빠였는데 그래서 얄미운 적도 많았다. 그랬는데.
자신을 그렇게 생각을 해주고 있을 줄 몰랐다. 그리고 어머니하고 그런 약속을 했었다는 것도.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자 올라탄 설아가 마음을 다잡았다. 돌아가면 사과를 해야겠다고. 그렇게 아파트 근처 정류장에 도착해 내려선 설아가 곧장 집으로 향했다. 5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내려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
“오빠, 안에 있어?”
설아가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빠?”
다시 불러보지만 역시 돌아오는 건 조용한 침묵.
설아가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잡고 돌아보았다. 오빠방의 불은 꺼져있었고.
안엔 아무도 없었다.
당황한 설아가 이곳저곳을 찾아보아도 성민은 없었다. 다시 현관으로 가서 보니 아까 미쳐 신경 쓰지 못 했던 신발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둘러 폰을 꺼낸 설아가 성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성민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