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7화 왜 그래?
“데이트 재밌게 하고 있으려나?”
어느덧 저녁 7시가 다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오지 않는걸 보면 참으로 재미나게 보내고 있는 듯 했다.
“현준이 녀석도 그렇고 설아도 그렇고... 둘다 처음이니까 어색한 게 많을 거야.”
성민이 알기로 현준 또한 여자친구를 사귄 경력이 없었다. 설아는 당연히 그러했고. 둘다 첫 데이트이니 아마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해도 어색하고 그럴 것이다. 그저 친구 여동생이나 오빠 친구로 만날 때, 혹은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로 만날 때는 다른 법이다.
“애휴~ 나도 어서 여친을 만들어 봐야 하는데...”
막상 생각을 하고 보니 혼자인 자신이 조금은 처량해 보이는 성민이었다. 전에는 솔로에 대해서 별 생각 없었는데 오늘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여동생인 설아와 친구인 현준이 데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여친 없는 놈은 살겠나~”
생소한 이 기분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투덜거리며 앉아 있던 성민은 문득 현준과 지수가 떠올랐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보지만 두 사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수 보면 걔도 현준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보였어.’
현준이 주변에서 맴도는 것을 보면 분명 그게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현준이와 얘기하다 보면 가끔 얼굴을 붉히는 것도 그렇고.
‘정작 그놈은 그걸 못 느끼는 것 같지만.’
장난스레 현준이 좋아하냐고 지수에게 놀리듯 말하면 당황하는 그녀였지만 현준은 그저 그걸 즐겁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성민이도 잘 안다. 현준이가 그쪽으로 둔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설아를 좋아하고 있다고 했으면서도 설아가 자기한테 관심 있어 하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연애에 둔감한 놈이었다. 하지만 성민은 설아가 얼마나 현준에 대해서 오랫동안 좋아하고 지켜봐 왔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보다 못 해 현준에게 물어봤던 것이다. 설아가 너 좋아하는 것 같았고. 그러자 현준은 당황하며 놀랐다. 이어 우물쭈물 하다가 자신도 사실 좋아했었다고 말을 해온 것이다. 그때 느꼈다. 이놈은 정말로 둔한 놈이라고.
‘둔하긴 해도...’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착하다고 해야 하나. 친구들이 힘든 일이 있으면 잘 못 넘어 가는 녀석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질 나쁜 애들에게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성민이 도와주었었다. 공부는 좀 그래도 싸움에서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리고 현준이 곤경에 처했던 것도 설아를 구해주기 위해서 였다. 그걸 설아에게 들은 성민은 정말로 현준에게 고마움을 표했었다. 아마 그 후부터 였던 것 같다. 설아가 현준에게 관심을 보였던 것이. 성민이 생각하기에 그게 맞을 것이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그러고 보면 그 녀석 여자애들에게 은근히 인기 많단 말이야.”
지수도 그렇고, 그리고 유람이 또한 현준을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물론 현준이 녀석은 그걸 잘 못 느끼는 듯 했다. 그쪽으로는 완전 둔한 녀석이니까. 말해주기 전 까지는 모를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현준이와 지수의 사이가 서먹해 진 것처럼 보였다. 그게 나쁜 쪽은 아닌 듯 했다. 분위기가 그러 했으니까. 오히려 지수는 현준을 대하는 게 좀 더 조심스러워 졌고 현준은 지수를 똑바로 마주 하는 걸 어색해 하는 듯 했다. 마치 지수처럼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전엔 그러지 않았던 놈이다.
그래서 느낌이 좋지가 않다.
두 사람 사이가.
하지만 설아의 고백을 받아 주었다는 것, 그것에 초점을 잡았다. 자신이 녀석을 잘 못 보지 않았다면 사람 마음을 함부로 가지고 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답을 망설였어도. 당황하는 모습에 불길함을 느꼈어도 성민은 자신의 친구인 현준을 믿기로 했다. 자신보다는 생각이 깊은 녀석이 현준이었다. 적어도 친한 친구의 여동생의 마음을 가지고 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설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으니까.
“밥이나 먹자~!”
찝찝한 생각을 그렇게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성민은 밥을 차려 먹기 위해 싱크대로 향했다. 밥통을 열어보니 밥은 충분한 상황. 이어 냉장고를 열어보는데 먹을 만한 반찬이 안보였다.
“라면이나 끓여먹을까.”
그렇게 결정을 내린 성민이 냄비에 물을 올리고 사다 두었던 묶음 라면을 꺼내 봉지를 뜯어 두 개를 꺼냈다.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으니까.
뜨거운 김과 함께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가루스프와 채소스프 두 개를 넣고 이어 기름에 튀겨진 각진 라면 두 개를 냄비에 투하했다. 뚜껑을 닫고 3분 정도 기다린 후 다시 뚜껑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 올라왔다.
이어 면발이 완전히 익게 몇 분 더 끓이면서 젓가락으로 면발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탱탱하게 만든 후 조리를 끝냈다. 간단히 김치를 꺼내놓고 그렇게 간편한 저녁식사를 이어갔다.
후루룩-!
입안에서 느껴지는 탱탱한 면발과 라면 특유의 인공감미료의 감칠맛이 입맛을 돌게 했다.
“간단하게 먹기엔 라면이 최고라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라면 두 공기를 비운 후 밥까지 말아먹고 식사를 끝낸 성민이 마무리로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니 어느덧 8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시간 참 잘 가네.”
그 후로 소화도 시킬 겸 근처 공원에 나가 1시간 정도 땀 흘리며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이어 샤워를 하고 나니 9시가 반이 넘어 가고 있었다.
“전화라도 한 번 해봐?”
아무리 데이트라 해도 9시가 넘어서도 오지 않는 걸 보니 조금은 걱정이 된 성민. 전화라도 해볼까 싶어 폰을 들었지만 혹시나 방해하는 걸 수도 있어 다시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였다 닫혀 있던 현관문이 도어 락 누르는 소리와 함께 열린 것은.
“여~생각보다 늦었는데? 쿡쿡쿡! 현준이 그녀석하고 의외로 데이트하는 재미가 쏠쏠 했었던 모양...”
집으로 들어서는 설아를 향해 성민이 장난스레 말을 걸다말고 그대로 멈칫하고 말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설아는 신발을 벗자마자 성민을 지나쳐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달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콰당-!
문을 닫는 소리도 컸다.
설아 가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는 성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가만히 문 쪽을 바라보았다. 비록 순식간에 방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얼핏 보였던 얼굴과 행동을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순간 성민의 마음에 애써 지워버렸던 불안감이 크게 엄습해 왔다.
똑똑-
“야, 갑자기 그렇게 들어가는 게 어디 있냐?”
성민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가벼운 말로 안에 들어간 설아에게 노크를 하며 말을 걸었다.
“데이트 어땠는지 이 오라버니에게 보고를 해줘야지 동생아~!”
그러면서 문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지만 예상했던 대로 잠겨 있다.
“설아야?”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며 물어보았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는다.
“야, 윤설아."
똑똑-
다시 노크를 하며 불러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거기까지.
성민은 더 이상 부르지 않고 곧장 주방싱크대로 향해 송곳을 가져와 문손잡이 구멍에 넣고 꾹 눌렀다.
철컥.
그러자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성민은 침대에 엎드려 누워 있는 설아가 눈에 보였다. 순간 멈칫 했지만 성민은 다시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야~ 현준이와 데이트 어땠는지 오라버니에게 보고를 해야지 이대로 빼기냐?”
“......”
여전히 엎드려 있는 상태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말이 없는 설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나에게 말해주기 부끄러워서 그래?”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 본다.
“야, 지금...”
“나가 오빠.”
설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베개에 파묻혀 있어 작게 들린다.
“너 그렇게 빼면 오라버니 섭섭...”
“나 지금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줘.”
여전히 베개에 파묻혀 있었지만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설아야. 윤설아.”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란 말이야!”
“......”
성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엎드려 있는 설아의 어깨를 잡고 힘으로 일으켜 세웠을 뿐이다.
그리고 보았다.
설아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눈물을.
빨갛게 충혈 된 채로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설아의 눈물을.
“너 왜 우는데.”
“나가라고 했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거야.”
“뭐 때문에 우는건데.”
“오빠와 상관없는 일이야.”
설아가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현준이 그 녀석이야?”
“아니야.”
“너 한 테 뭐라하기라도 했어? 싸운 거야? 왜 그래?”
“그런 거 아니란 말이야!”
“......”
“그런..거....아니란...말이야.”
다시금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 하고 설아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를 들썩였다.
성민은 그런 설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말없이 그렇게 바라보았다.
“괴로울 텐데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
그렇게 말을 전했다.
그 말만 남기고 성민은 설아의 방을 나와 문을 닫아 주었다.
이어 성민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더니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웃음기는 없었다.
“하아...”
설아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현준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한 숨을 내쉬었다. 사귀는 걸 다시 생각해 보자는 자신의 말에 충격을 받은 설아의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보기 힘들어 현준은 그만 그 자리를 그대로 벗어나고 말았다. 그 표정을 더 마주 했다가는 얼굴도 들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백을 해줬는데, 받아주는 자신을 보고 기뻐하며 좋아라 해주었는데.
‘나란 놈은 도대체...’
하지만 그렇게 웃는 설아보다,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지수를 생각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자신 같은 놈을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라 해준 지수가 너무나 가엾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차마 지수에게 말을 하지 못 할 것 같았다.
‘내가 정말로 설아를 좋아하기나 한 걸까.’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힘이 들었다.
위이잉-
그때 책상에 놔둔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을 해보니 다른 누구도 아닌 성민.
순간 받는 것을 망설인 현준이었지만 내일이면 어차피 학교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어 있었다.
폰을 들어 통화버튼을 누른다.
[여~ 전화 받았네?]
“으, 응...”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전화 너머의 성민의 목소리는 밝았다.
[오늘 데이트 재밌었냐?]
“으, 응...”
아무래도 모르는 걸까.
설아가 아직 아무 말 안 했을 수도 있었다.
[지금 집에 가는 길이냐?]
“집인...데?”
[그래? 잘 됐네. 나 너희 집 근처거든? 데이트 어땠는지도 들을 겸 해서 잠깐 얼굴 보자.]
“지금?”
[그래 이놈아. 그럼 이 몸은 10분 안에 도착 할 것 같으니까 저번에 만난 벤치 앞에서 보는 걸로 하자.]
그러고는 현준이 뭐라 말을 하기 전에 통화가 끝이 났다.
‘10분?’
성민을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좋지 않은 현준이었다.
그렇게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덧 시간이 10이 더 지났다. 순간 아차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폰하고 지갑을 챙긴 후 방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 1층에 내려와 정문을 나서 놀이터 벤치로 향하니 앉아서 기다리는 성민이 눈에 들어온다.
앉아 있던 성민도 자신을 발견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냐?”
성민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안해 늦어서.”
“미안하긴. 그보다 현준아.”
“응?”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해야겠다.”
“무슨...”
“이빨 나간다 악물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민의 주먹이 그대로 현준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퍼억-!
강한 충격이 왼쪽 뺨에 전해져왔고 현준이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이 멍했지만 자신이 성민에게 주먹을 맞았다는 사실에 더 놀라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성민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차갑게 굳어 있는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