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6화 데이트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순간 당황한 현준은 뭐라 말을 하지 못 하고 성민을 바라보았다.
“전에 네가 그랬잖아. 설아가 너 좋아하는 거 같다고 하니 너도 사실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랬지...”
“설아 말이야. 너 정말로 좋아하는 거 같거든.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보는 거야. 너 진짜 내 여동생 좋아하는 거 맞아?”
전에는 현준은 이런 질문에 말을 했었다. 나도 사실 네 여동생에게 관심 있었다고. 좋아 한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야? 왜 대답이 없냐?”
“어?”
“너 설마 이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딴생각 했냐?”
“딴 생각은 무슨, 그런 거 안 했어.”
“어쨌든 그건 넘어가고. 말 해봐. 좋아하는 거 맞아?”
성민은 다시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였다. 자신이 고백을 받아주자 눈물을 흘리던 지수의 모습, 그리고 조금 전의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었다는 말과 다시금 살짝 눈물을 보였던 모습까지.
“왜 또 말이 없냐?”
순간 아차 싶었던 현준이 입을 열었다.
“으, 응... 맞아.”
“역시 그렇지?”
웃음을 지은 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잘 알거야. 내가 설아 얼마나 위하는지에 대해서.”
“응, 알고 있지.”
전에 그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해주지 않고 지금까지 마음속에 혼자 담아두고 있었다면서.
“돌아가신 어머니하고 약속이었어. 나 이 얘기 너 말고 아무한테도 한 적 없다. 내가 널 진짜 친구로 생각해서 그런 거야.”
“응...”
“잘 해줘. 너 믿고 내가 밀어 준거니까.”
그러고는 강하게 어깨를 두 어 번 두드려 준 후 성민은 그렇게 발길을 돌렸다. 현준은 그런 성민의 뒷모습을 복잡한 심정으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렇게 성민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현준은 가방을 내려놓고는 의자에 몸을 앉혔다.
“왜 그때 지수 얼굴이 떠오른 걸까.”
설아를 좋아하냐고 했을 때, 현준은 그렇다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 했다. 물론 어제의 그 사건 때문에 미안한 마음에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현준은 지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이 가는 건 설아일텐데 왜...’
마음이 너무나 복잡했다.
“오빠 어디 다녀온 거야?”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성민을 향해 방문을 열고 달려 나온 설아가 다짜고짜 물어왔다.
“프라이버시 모르냐?”
“혹시 어제처럼 이상한 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이상한 거라니. 남자라면 한 번씩 다 보고 하는 거라니까?”
“오빤 진짜 뻔뻔한 거 같아.”
“뻔뻔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걸 말하는 거야.”
어제 그런 모습을 보이고도 이렇게 당당히 철판을 깔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한 편으론 참대단해 보이는 설아였다.
“그것 보다 빨리 와봐.”
“뭔데?”
갑자기 팔목을 잡고 잡아끄는 설아의 행동에 성민이 힘없는 사람처럼 딸려갔다. 그렇게 설아의 방안으로 들어가니 옷 여러 벌이 나열되어 있었다.
“일요일에 이중에 어떤 옷을 입고 나가면 좋을지 봐줬으면 해서.”
“옷 봐달라고?”
“응. 데이트가 처음이라서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단 말이지?”
턱을 쓰다듬으며 바라보던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 오라버니가 넓은 아량으로 한 번 봐주도록 할게.”
“오라버니는 무슨. 그럼 거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줘. 입고 나와 볼 테니까.”
“그냥 대보는 게 아니고?”
“대보면 자세히 모르잖아. 왜 싫어?”
“좀 귀찮긴 하지만... 알았어. 첫 데이트니까.”
“고마워!”
“그럼 기다릴 테니까 입고 나와라.”
설아의 방에서 나온 성민이 침대에 가방을 던져 놓고는 걸음을 옮겨 소파에 몸을 앉혔다.
‘확실히 좋아하긴 좋아하나봐?’
설아가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처음 봐서 성민은 기분이 생소했다. 그런 설아가 귀여워 보여 웃음이 다 나왔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현준아... 친구야. 나 너 믿는다.’
설아를 좋아하는 거 맞냐고 했을 때 성민은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우물쭈물 거리는 현준을 보았을 때 자신의 불길함이 사실이 아니길 빌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현준은 분명 좋은 친구였으니까. 그렇게 애써 불길함을 떨쳐버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설아가 나왔다.
“오빠, 어때?”
문을 열고 나온 설아가 성민의 앞에 섰다. 생각을 끝내고 나온 설아를 바라보았는데 체크무늬 짧은 치마와 목선이 예쁘게 나있는 흰색티. 그 위에 조화로운 색상의 가디건을 입었는데 귀여우면서도 풋풋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상해?”
가만히 바라기만 하고 별다른 말이 없는 성민을 두고 설아가 다시 물음을 던졌다.
“응?”
순간 저도 모르게 반문을 한 성민을 보고 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상하냐구~!”
“아.”
“뭐야 오빠? 딴생각 했어?”
성민의 시원찮은 대답에 뾰루퉁해지는 설아.
“딴 생각은 무슨... 나름 괜찮네.”
“그럼 잘 어울린다는 소리야?”
“그게 처음이니까 아직 잘 몰라. 다른 것도 입어봐.”
“알았어.”
그러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데 그쪽을 가만히 바라보던 성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미쳤구만. 여동생 옷 한번 예쁘게 입고 나온 거 보고 멍하니 바라보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설아다. 그런데 넋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가만히 바라보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당황스럽고 황당한 성민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때 다시 옷을 갈아입은 설아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이건 어때?”
이번엔 짧은 청반바지에 레깅스, 그리고 치수가 조금 크게 입는지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흰 티를 입고나왔는데 그 모습에 성민은 다시 잠시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까전과는 또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전히 풋풋한데 청반바지에 늘씬한 다리 라인을 살려주는 레깅스를 입으니 뭔가 섹시한 느낌도 들었다.
“어떠냐니까~”
“나름 괜찮네...”
“이것도 괜찮아?”
“다른 거 또 입고 나와 봐.”
“오빠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지?”
“그래. 보고 있어.”
미심적다는 듯 바라보던 설아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데 성민이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나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여동생을 보고 설레다니...!’
조금 전엔 저도 모르게 설아를 보다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그 정도로 성민의 취향저격이었다. 설아는 물론 몰랐겠지만 여동생 보고 설렌 자신이 참으로 충격인 성민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른 옷들을 입은 모습도 한 번 보고 싶은 성민이었다.
‘오빠니까 봐주는 거다. 오빠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동생보고 설렌 자신을 다시 한 번 자책하며 그렇게 스스로를 안정시켰다. 그 후로도 성민은 여러 번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성민의 대답은 다 비슷했다.
“치...오빠 뭐야?”
“뭐가.”
“괜찮다고만 하고 도대체 뭘 입고 나가라는 소리야?”
“진짜 괜찮던데.”
“장난치지 말구 진지하게 말 해줘.”
“야, 장난 아니라니까? 진짜 너하고 다 잘 어울려서 한 말이야. 특히 두 번째로 입고 나온 패션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기도 해서 내 스스로도 놀랐...”
말을 늘어놓던 성민은 순간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는 급하게 입을 닫았지만 바라보니 이미 설아의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그, 그러니까 내말은 잘 어울린다고.”
“으, 응... 봐줘서 고마워.”
그 말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설아를 보고 성민은 다시 뭐라 말하려 잡으려다 입맛을 다셨다.
“오빠도 참 여동생보고 설렌다니 무슨 말 하는 거야.”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설아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설렌다니...”
지금까지 성민은 물론 이고 다른 이에게도 한 번도 들어 본적도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오빠가 여동생한테 하기에는 이상한 단어이기도 했다.
교복을 갈아입고 씻은 후 밥을 먹을 때 아까전의 소동으로 조금 서먹하기도 했지만 금세 성민의 장난으로 인해 평소대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성민이 다시 데이트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다.
“첫 데이트니까 일요일에 나가면 긴장하지 말고 가볍게 놀아. 대려 이것저것 신경 쓰다 이상해지기만 할 테니까.”
“응, 그럴게.”
“설아야.”
“왜?”
“현준이가 그렇게 좋냐?”
“뭐어?”
“현준이가 좋냐고.”
“모, 몰라.”
당황하며 서둘러 밥을 입에 쑤셔 넣는 설아를 보면서 성민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다음날인 토요일이 지나고 드디어 일요일 날이 밝았을 때 처음 입었던 옷인 치마와 티, 그리고 가디건을 입은 설아가 성민의 앞에 섰다.
“나 그럼 다녀올게 오빠.”
“그래 조심해서 즐겁게 갔다와.”
“응.”
집을 나서는 설아를 배웅해준 성민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자신의 앞에서 옷 좀 봐달라며 패션쇼를 했던 설아. 그리고 현준이의 당황하는 모습과 부끄러워 하는 지수를 떠올리던 성민이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가 내쉬었다.
“괜찮겠지.”
버스를 타고 번화가의 약속장소로 나온 설아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현준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음을 다잡고 그렇게 현준에게 다가간 설아가 웃음을 지었다.
“많이 기다렸어요, 오빠?”
“아니. 나도 조금 전에 왔어.”
“그렇구나...”
“그럼 우리 갈까?”
“네!”
그렇게 설아는 현준과의 첫 데이트를 가졌다.
처음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데이트를 해서 그런 걸까.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한다든지, 그리고 영화를 볼 때도 참으로 즐거웠고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다 문득 설레인다는 말에 오빠의 성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동생 보고 설레인다니.
‘오빠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래.’
생각만 해도 이상하고 부끄러워 애써 기억을 떨쳐내고는 다시 데이트를 즐겼다.
“그래서 말이죠, 내가...”
한 참 걸어가며 말을 하던 설아는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현준을 보고는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현준 오빠?”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뭔가 이상했지만 그냥 넘겼다.
그렇게 이것저것 함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오늘 정말로 재밌었어요, 오빠.”
버스정류장 앞까지 바래다 준 현준에게 설아가 즐거웠다며 마음을 담아 소감을 밝혔다.
“즐거웠다니 다행이네.”
“오빠도 즐거웠어요?”
“응.”
“다행이네요.”
생긋 웃음을 지은 설아가 그렇게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저 가볼게요.”
“저기 설아야.”
“네?”
막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려는데 현준이 불러 멈춰 세웠다.
“저기 말이야.”
“네? 왜요?”
잠시 망설이는 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현준이 결심을 했는지 말을 꺼냈다.
“우리... 사귀는 거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될까?”
설아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순간 놀라 표정으로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멍하니 물어오는 설아의 시선을, 현준은 그 눈동자를 바라 볼 수 없어 그렇게 고개를 돌려 피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