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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225화 (225/236)

〈 225화 〉 [짐꾼] 마지막 날

마왕성까지 남은 마을은 두 곳.

이곳들만 넘어가면 바로 마왕성이다.

그래, 정말로 끝이 다가오는 것이다.

마왕성이 가까워질수록 용사의 성장도 제법 눈에 띠였다.

“…확실히 많이 달라졌네요.”

“조금 더 어른이 된 느낌?”

마지막 마을로 향하는 도중, 세리아와 아린은 내 가슴에 달라붙어 그렇게 한 마디씩 얹었다.

“어떻게 생각해?”

“…….”

내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유니에게 말을 걸자 그녀가 입을 우물거렸다.

“…역시 내가 방해였던 거야.”

또 저러는군.

저러면서 또 자기비하에 들어갈 거 같아서 나는 그녀를 슬쩍 내 품으로 끌어당겼다.

“아….”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응?”

“응….”

그녀는 내 품에 안기자 방금 전 고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사르르 녹아 얌전한 얼굴로 돌아왔다.

“주인님, 오늘은 괜찮으신가요?”

“음….”

아린이 묻는 것은, 요즘 점점 이상해지는 내 모습을 우려해서 한 말이리라.

확실히 마왕성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무언가가 이상해지는 느낌이 든다.

매일 꿈에서 마왕이 된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요즘 자꾸만 마왕이 되면 뭘 할지 같은 이상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한다.

마치 누군가 나를 멋대로 조종하고 있는 듯한 감각.

불쾌하기 짝이 없다.

“괜찮아. 그보다 너희는 그런 걱정 할 필요 없다니까.”

생각하는 건 주인의 몫이다.

내 생각에 보태는 것 정도는 가능해도, 노예가 주인을 걱정한다니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려주었다.

“하읏♥”

“누구부터 해줄까?”

내 말에 셋의 시선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너희들끼리 정해.”

나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침낭에 누웠다.

셋은 자기들끼리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유니는 은근슬쩍 내빼는 척 하면서 참가하고 있었다.

여전히 내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리아나 아린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무슨 방식으로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먼저 온 것은 유니였다.

그러고보니 아직 반지가 남아있는데.

슬슬 써볼까.

“옷 벗고 올라와.”

“…….”

그녀는 여전히 부끄러운지 살짝 고개를 돌리며 옷을 벗었다.

새까만 그녀의 장미.

이제는 어딜 봐도 붉은 부분이 남아있지 않다.

유니는 쭈뼛거리며 내 위에 올라타고 살며시 내 자지를 안으로 받아들였다.

“하윽…♥”

그렇게 내 것을 끝까지 받아들인 유니가 조금씩 허리를 흔들고, 그녀의 정신이 몽롱해졌을 때쯤 나는 반지를 하나 꺼냈다.

“유니, 이거 기억나?”

“흐읏… 하윽…♥ 그, 그거….”

유니의 시선이 내가 든 반지로 향했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그녀의 감정을 확인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할래?”

“흐읏, 그, 그걸 왜….”

“원래 네 거였으니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나 내가 허리를 흔들자, 신음을 내면서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필요는 없지?”

“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용사 앞에서 버리고 와.”

“…응?”

유니뿐만 아니라 세리아와 아린도 나를 바라봤다.

“최대한 잔인하게… 비참하게 만들고 와.”

“…주인님?”

세리아가 불안한 듯 나를 바라봤다.

“세리아, 아무래도 또….”

“그런 것 같네.”

둘은 그렇게 얘기를 하며 슬그머니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의사….

“…싫어.”

“뭐?”

그녀들이 사전에 정한 대로 내 입을 막기 전에, 유니가 먼저 대답했다.

“에릭은… 이제 그런 짓을 해도 신경쓰지 않을 거야.”

“…….”

“그러니까 그럴 필요 없어.”

“…그렇지.”

그녀의 말대로다.

그보다 방금 전에 내가 했던 말은….

“돌아오셨나요?”

“화가 날 지경이군.”

방금 전에 한 이상한 말.

분명 내가 생각하고 내 입으로 뱉은 말이지만 너무나도 위화감이 컸다.

“…주인님.”

“마왕 같은 거 안 할 거니까 이상한 걱정하지 마.”

“그래도….”

“할 필요 없어.”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둘의 말을 막았다.

이건 그녀들이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그녀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유니, 방금 한 말은 잊고 그냥 계속해.”

“…알았어.”

아무래도… 마왕성에서 내가 무슨 짓을 벌일 것 같기는 한데.

***

“…루엘라.”

그리고 다음날, 마침내 끝이 나리라 생각했던 여정은 그녀의 등장으로 하루 미루어지게 되었다.

“보낼 수 없어. …마왕님이 무의미하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거든.”

루엘라.

그녀가 우리의 앞을, 더 정확하게는 용사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루, 루엘라?”

“갑자기 왜….”

그녀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한 듯 했지만, 나는 그녀와 했던 마지막 대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끝을 맞이할 생각이군.

그녀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마왕을 위해서.

“그 바람, 내가 들어줄게.”

그리고 그런 루엘라에게, 용사는 홀로 맞서기로 했다.

“…에릭.”

용사다운 그의 모습에 유니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아쉽나?”

“…아니, 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녀는 용사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마주봤다.

“이제는… 괜찮아.”

“그래, 그거면 된 거지.”

오롯이 혼자서 그녀를 상대하겠다는 용사의 요청 때문에, 우리는 조금 떨어져서 둘의 전투를 바라봤다.

“이길 수 있나?”

루엘라는 죽여도 죽지 않는거 아니던가.

용사가 그녀의 몸을 베어도, 그녀 자체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그녀가 온전히 죽기 위해서는….

“이길 거에요.”

우리와 멀리 서있던 에르티나가 그렇게 말했다.

“용사는, 이길 겁니다.”

“…그래.”

“당신은 이길 수 있나요?”

그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이길 수 있냐라.

과연 이길 수 있나?

쿠웅!

“에릭!”

도중에 용사가 우리 쪽으로 밀려났다.

유니가 다급히 그를 부축하러 다가갔지만 용사는 그런 그녀를 말리고 홀로 일어섰다.

그의 눈.

그리고 루엘라의 눈.

어딘가 비슷해 보이는 점이 있었다.

“왜 너도 그렇고, 다들 사서 고생을 하려는 거지?”

루엘라도 이해가 안 간다.

왜 결론이 자기가 죽는 쪽으로 나는 것이지?

용사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

왜 그런 그녀의 제멋대로인 부탁을 들어주려 하는 거지?

그래서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용사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그녀에게 달려갔다.

“…진짜 바보들이군. 이해할 수 없어.”

그렇지만 그는 에르티나의 말대로 이겼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루엘라의 장미를 잠시 자신의 팔에 이식해 이를 통해 그녀의 마력을 모조리 소진시켜버린 것이다.

하늘로 치솟은 검은 마력이 다 떨어질 때, 루엘라도 마지막을 맞이했다.

바보가 이긴 것이다.

바보가 졌고.

루엘라는 그 몸이 완전히 부서지기 전, 나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눈은 나를 걱정하는 듯 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원.

***

“어쩔 수 없네요.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가 가죠.”

“숙소는….”

“다 빈 집이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조금 실례하도록 하죠.”

여관은 없나.

하긴, 이런 시골인데 없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적당한 집에 자리를 잡았다.

“…용사님, 괜찮을까요?”

아린이 그가 있는 집 방향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에르티나가 간병하겠다잖아? 우리가 가면 더 싫어할 걸.”

“…….”

유니는 말없이 아린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그 쪽은 에르티나가 잘 하겠지. 간섭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렇게 해주자고.”

에르티나는 자기가 그를 지켜볼 테니, 우리보고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아마 나, 혹은 그녀들 중 누군가가 무언가 저지르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럴 일 없다고 해주고 싶지만, 솔직히 이제는 자신이 없다.

당장 어제도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뱉지 않았던가.

“일찍 자자고.”

“네에.”

깨어 있으면 또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할까봐, 오늘은 일찍 자기로 했다.

그녀들도… 나도… 아무튼 내일은 가장 중요한 날이 될 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꿈은 여느 때와 동일한 꿈이었다.

“…후회하시나요?”

마물이 된 유니가 꿈에서 그렇게 물었고,

“아니.”

꿈속의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지랄 났네.

꿈에서 깬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안 나오는 걸 보니, 아직 못 일어난 거 아닐까요?”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마왕성으로 향할 마지막 채비를 갖추었다.

다들 잔뜩 긴장한 상태로 골목에 나와 기다리는데, 둘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를 않았다.

“한 번 보고 올게요.”

세리아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그녀 대신 유니를 보냈다.

“내, 내가?”

“갔다 와.”

“……알았어.”

그녀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둘이 빌린 집에 들어갔는데, 잠시 뒤 얼굴이 빨개진 채 다시 나왔다.

“뭐야?”

“…곧 나올 거야.”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애꿎은 돌멩이만 발로 툭툭 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냐?”

“…딱히.”

노골적으로 신경 써달라는 태도같이 느껴져, 나는 잠시 세리아와 아린을 바라봤다.

휙휙.

둘은 자꾸 봐주지 말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너무 봐주긴 했지.

나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둘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죠.”

마침내 준비를 마친 에르티나와 용사가 나왔다.

그가 뱉은 한 마디에, 그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용사뿐만 아니라 다들, 잔뜩 긴장한 채였다.

다들 그런 불안감을 안고 있는 가운데, 이상하게도 나는 별 긴장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가야할 곳에 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 또 내 의사가 아닌 무언가가 개입하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 불안한 예감을 느끼며, 나는 그들을 따라 마왕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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