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짐꾼-224화 (224/236)

〈 224화 〉 [용사] 마지막 밤

“…님.”

누군가 나를 부른다.

“용사님!”

눈을 뜨니, 조금 전의 그 길목이 아닌 어느 집의 침대 위에 내가 누워있었다.

“일어나셨군요!”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그렁그렁 흘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잠들어계셨는지 아세요? 자그마치 100년….”

“…뭐하시는 거예요?”

내 손을 잡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는, 누가 봐도 세라였다.

“에이, 재미없기는.”

그녀는 방금 전까지 전부 연기였다는 듯 휙 표정을 바꿔버렸다.

“저 혹시 잠든 건가요?”

“음, 정확히 말하면 기절한 상태라고 봐야겠죠.”

기절….

그래, 루엘라를 쓰러뜨린 후 나도 기절했구나.

“아, 그….”

“알고 있어요.”

세라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루엘라가 줬던 구슬이 깨졌거든요.”

구슬?

“일종의 통신기기 같은 건데, 이게 깨졌다는 건 그것을 운용할 마력이 더 이상 그녀에게 남아있지 않다는 소리겠죠. 항상 필요 이상으로 마력을 쓰지 않던 그녀가 그렇게까지 몰린 상황이라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생각나는 건 하나 뿐이네요. 그리고 당신은 기절했을지언정 멀쩡하게 살아있죠.”

“그렇군요.”

세라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죽었나요?”

“…아마도요.”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었다.

“…바보.”

이야기를 다 들은 그녀의 감상은 이러했다.

“아마 그녀는 보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무엇을요?”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녀는 복잡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마왕님이 죽기로 결심을 했으면, 저희들은 그것을 막지 못해요.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루엘라처럼 조금씩 방해하는 정도죠.”

마왕이 죽음을 준비하면서, 루엘라는 이별을 대비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국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왕님이 죽는 것을… 그녀는 보고 싶지 않았겠죠.”

“그렇군요….”

“그래서 바보 같다는 거죠.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명령은 같이 죽어달라는 말이 아니었는데.”

결국 그녀는 같이 죽기를 바란 것이다.

어떠한 식으로든 최후를 맞이할 마왕과 함께 죽기 위해.

“자기 명령도 안 듣는 여자를 죽어서도 좋아해줄지, 참.”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농담하듯 웃었지만, 역시 동료가 죽어서 그런 것일까?

세라의 미소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슬퍼보였다.

“아무튼 이제 당신을 가로막을 건 아무 것도 없군요.”

“…네.”

남은 것은 마왕뿐.

“좋은 방법은 있는 거예요?”

다들 한 번씩 물어보는 질문.

계획 같은 것은 없고, 그저 느낌에 따라 마왕성까지 찾아왔지만….

“아마도요.”

이제는 무언가 알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정말요?”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

“정말 그 생각을, 아무도 못해봤을까요?”

“제가 무슨 생각하시는 지 아시나요?”

“아뇨, 모르지만… 그냥 해본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쿡쿡 세라는 웃었다.

“뭐, 괜히 기죽이려는 건 아니었고… 조심하라는 말이었어요.”

“네.”

그녀 나름의 응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세라는 이런 사람이니까.

“…흐응.”

“왜, 왜요?”

갑자기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순간 당황해서 몸을 뒤로 젖혔다.

“아뇨, 왠지…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서요.”

“거, 건방지다니….”

“후후, 제가 당신 같은 어린애한테 간파당할 정도로 미숙하지는 않는데 말이죠.”

서, 설마 내가 잠깐 했던 생각을 간파한 건가?

내 얼굴이 살짝 붉어지자 그녀는 꼬리로 내 볼을 쿡 찔렀다.

볼을 찌른 세라의 꼬리는 조금씩 밑으로 내려오더니 내 옷 사이로 슬쩍 들어와 더 밑으로 내려갔다.

“윽!”

“오, 제법….”

“하, 하지 마요!”

내가 그녀의 꼬리를 잡고 휙 빼내자 그녀가 야릇한 신음소리를 냈다.

“거기 약하거든요.”

“…….”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반응에 나는 잠시 얼어버렸다.

“아하하하! 여자랑 처음 자보는 것처럼 굴기는.”

그녀는 재밌다는 듯 꼬리로 계속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

“뭐… 아무튼, 내일이면 다 끝나겠네요.”

“……네.”

어쩔 수 없이 마왕성 앞에서 하루 묵게 생겼네.

원래라면 오늘 다 끝내고 싶었는데.

“다음에… 과연 다음에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세라가 몸을 홱 돌리자, 내 앞에서 그녀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꿈이 흩어진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올게요.”

나는 죽을 수 없다.

죽지 않는다.

***

“일어나셨군요.”

현실의 침대 속.

나는 에르티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여긴….”

“바로 옆에 있는 빈 민가에요.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잠시 신세를 지고 있죠.”

대피했다는 그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의 집인 듯 했다.

어쩐지 여관치고는 생활감이 느껴지는 방이다 싶었다.

“읏….”

“힘드시면 조금 더 누워계셔도 괜찮아요.”

“아, 아뇨. 딱히 아프거나 하지는 않아요.”

이건 아프다기보다는… 잠시 뻐근한 것 뿐이다.

“저기, 제가 정말로….”

에르티나는 내 뒷말을 기다려주었다.

“…루엘라를, 쓰러뜨렸나요?”

“네, 그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서 소멸시키는데 성공했죠.”

그녀는 덤덤하게 그렇게 말했다.

“저희도 몰랐던 사실이네요. 설마 이번 대가 아닌 이전의 문양까지도 이용할 수 있었다니. 그것도 별다른 교류 없이도요.”

그녀의 말은 너무나 덤덤했다.

마치 모르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에르티나 씨는….”

“제 걱정을 해주시는 건가요? 괜찮아요. 아는 사람이 죽는 모습은 많이 봤거든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그녀의 말에는 상당한 무게가 담겨있었다.

그녀들은 우리와는 달리 전쟁터에서 직접 지휘를 하며 돌아다녔다고 했지.

분명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봐왔을 것이다.

여러 번 대화도 나누고, 나름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그래서 세라도, 에르티나도 그렇게까지 동요하지 않는 걸까?

“후후, 적을 걱정해주시는군요.”

“아….”

사실 우스운 일이기는 하다.

루엘라는 원래 쓰러뜨려야할 적이었고, 마지막까지 우리를 막아선 명실상부한 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그것도 내 손으로 끝을 냈다는 사실이 무언가 가슴에 남았다.

“어쩌면 이게 그녀가 바라는 최후였을지도 모르죠.”

“…네.”

세라에게 들었던 대로, 그녀는 마왕과 함께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잠시 우리는 루엘라를 생각하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그 남자를 바라보더군요.”

“…그랬죠.”

소멸하기 직전,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뒤의 누군가를 향해있었다.

“그건, 새로운 마왕을 바라보는 것이었을까요?”

뒷이야기를 못 보고 가는 것은 아쉽다고, 루엘라가 말했다.

그녀가 보고 싶었던 뒷이야기란, 과연 어떤 것일까.

제렌이 마왕이 되어 다시 한 번 굴레를 반복하는 미래?

아니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미래?

“…글쎄요.”

어쩌면 루엘라와 그 사이에 무언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무언가 미묘한 감정이 오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연 그가 새로운 마왕이 될 것인지 아닌지다.

“그는 뭘하고 있죠?”

“다른 집에 있어요. 여기는… 조금 좁거든요.”

확실히… 그리 넓은 집 같지는 않다.

“신혼부부의 집이었나봐요.”

“…그, 그렇군요.”

신혼부부의 집에 남녀 단 둘이?

에르티나가 그런 생각으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왠지… 조금 낯부끄럽다.

“왜 그러세요?”

“네? 아, 아뇨, 그냥….”

나 혼자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부끄러웠다.

“더우신가요? 창문이라도 열까요?”

“아, 아뇨! 괜찮아요!”

그녀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기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말렸다.

“그렇군요…. 아무튼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오늘은 쉬었다가 가죠. 마왕도 잠든 사이에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네, 그렇겠죠.”

설마 이제 와서 갑자기 나를 죽인다거나 그러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오늘은 이만 편하게 쉬세요. 제가 옆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네… 어, 네?”

뭐, 뭐라고?

“네?”

“어… 아니, 음….”

잘못 들었나?

그렇지만 그녀는 자리에 붙박인 듯 앉아 나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에르티나 씨도 이만 쉬러….”

“쉬고 있어요.”

아니, 그게….

“제 걱정은 말고 편히 쉬세요.”

“…네.”

아니, 설마 계속 저러고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녀의 강요 아닌 강요에 못 이겨 슬쩍 다시 눈을 감은 나는 금세 잠들고 말았다.

***

그리고 다음 날 내가 일어났을 때, 그녀는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살짝 졸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여기서 안 움직였구나.

왠지 신경 쓰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적어도 잠시라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나는 잠에서 깼으니까, 대신 에르티나를 침대에 눕혔다.

“으음….”

그녀의 옷 사이로 큰 무언가가 보인 것 같았지만, 아니, 나는 보지 않았다!

얼추 그녀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는데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아, 그… 드, 들어오세요.”

집주인도 아닌데 들어오라니.

생각해보니 찾아올 사람은 정해져 있는데, 순간 당황해서 또 존대가 튀어나갔다.

“…그게, 늦게까지 안 나오길래….”

쭈뼛거리며 들어온 인물은 유니였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기가 거북한지 살짝 시선을 깔고 있었는데, 고개를 잠깐 든 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 미안. 곧 나갈게.”

“…….”

“유니?”

그녀의 크게 뜨인 눈이 부르르 흔들렸다.

왜 그러지?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닌 그 뒤를 향해 있었다.

뒤….

무심코 시선을 따라 내린 나는, 침대에 누운 에르티나와 그 머리맡에 누가봐도 잠자다 일어난 나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아아! 이, 이건…!”

아니, 생각해보니 그녀와 나는 더 이상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이렇게 외도를 들킨 사람처럼 변명할 필요가 없다.

“…벼, 별 거 아냐. 내가 쓰러져서 간호를….”

“그, 그렇구나….”

유니는 어색한 얼굴로 얼굴을 살짝 붉혔다.

“…우, 우리가 하겠다고 말했는데 본인이 거절했거든. 자기가 한다고….”

“그, 그래?”

유니는 계속 그녀를 힐끔거리더니 결국 문 뒤로 슬쩍 물러섰다.

“그,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

“아, 응….”

쿵.

방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으음… 아, 어머…? 미안해요, 잠들었나보네요.”

그리고 그녀가 나간 뒤에야 뒤늦게 에르티나가 일어났다.

“저를 대신 눕혀주신 건가요? 고마워요.”

그녀는 나를 보고 생긋 웃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었나요? 표정이 이상하신데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괜히 더 신경 쓰이네.

왠지 방금 일어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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