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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223화 (223/236)

〈 223화 〉 [용사] 루엘라

“여기부터 실질적으로는 마왕성이에요.”

에르티나는 그렇게 말했다.

마왕성에 바로 인접한 마을.

도시…라기에는 너무 작다.

“제법 클 줄 알았는데.”

세리아가 중얼거린 것처럼, 정말 보잘 것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삼엄한 경비도 없고, 군사기지라거나 그런 특이한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사람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 빈 마을인가요?”

“…아니었는데, 다들 물린 모양이네요.”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발생할까봐 따로 대피시켰다는 말인가?

지루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을 일으켰으면서 이런 세심한 배려를 하는 척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왕은 그런 존재에요. 일관된 행동양식이 존재하지 않죠.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대로 살아갈 뿐….”

욕망에 충실한 존재.

그건 그야말로….

내 시선이 제렌에게 닿았다.

“음?”

그가 시선을 눈치 챘는지 나를 바라봤다.

“…그 말, 믿고 있겠어요.”

마왕이 되지 않겠다는 그의 말.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확답을 받아두고 싶었다.

“물론이지.”

그의 양 옆에 세리아와 아린이 섰다.

마치 그를 지키는 듯한 모양새에 나는 그녀들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잠시, 아주 잠시 그들 옆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 유니와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곧장 시선을 돌려버렸다.

이제 그녀와 나는 타인이다.

그저 같은 파티원일 뿐인 존재.

“…….”

유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볼 수 없었지만, 나는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하실래요?”

“…바로 가죠.”

설마 이제 와서 무슨 짓을 하겠냐만은, 그래도 마왕성이 코앞인데 그곳에서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요. 그보다….”

“…더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겠죠.”

아직 마땅한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애초에 이렇게 쉽게 고민한다고 나올 문제도 아니고, 굳이 답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낭비할 생각도 없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아무 준비 없이 갔다가는 이전과 똑같은 결말이….”

“그럼 좋은 방법 있어?”

세리아는 내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아. 그렇지만… 더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감인가요?”

아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느낌이 그래.”

“불확실한 말이지만… 저는 모르겠네요. 가장 확실하다고 여겼던 것마저 흔들린 지금,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여신이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멀쩡한 모습이다.

제렌이 그녀를 달래줘서 그런 걸까.

안색이 조금 어두운 것을 빼면 그녀의 상태는 크게 이상해보이지는 않았다.

유니는….

“…할 얘기 있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가자.”

우리는, 마을 안으로 발을 디뎠다.

마왕성은 마을의 중앙에 있었다.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음울한 성이 예전부터 존재했었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성은 그대로지만… 위치는 달라요. 아마 매번 위치만 달라지는 거겠죠.”

에르티나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후자에 가깝겠다.

“내부 구조는 제가 기억하고 있으니, 달라지지 않았다면 곧장 중심부까지 갈 수 있….”

그녀의 말이 끊기자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왕성으로 향하는 길목.

우리의 맞은편에 루엘라가 서있었다.

“…루엘라.”

“이제 와서 무슨 짓이죠?”

에르티나는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당신이 그렇게나 사랑하는 마왕 본인의 명령인데, 거부할 생각인가요?”

“…아니.”

그녀는 침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마왕님이 바라신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확실히 예전보다는 누그러진 태도였다.

그렇지만 정말 우리를 막아설 생각이 없었다면, 이렇게 길 가운데에 서있지도 않았을 터.

나는 여차할 경우를 대비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나는 묻고 싶은 거야.”

그렇게 말하며 루엘라는 나를 바라봤다.

“방법은 있어?”

“…무슨 방법이요?”

“굴레를 벗어날 방법.”

구체적인 방법은 없다.

사실 지금도 헛된 짓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시시각각 솟아난다.

방법도 없이 대체 뭘 하려고?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타당한 말이다.

아무 대책도 없이 들어가는데 성공할 리가 없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가야만 한다고 느꼈다.

“없어요.”

“그럼 보낼 수 없어.”

“…왜죠?”

내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그녀가 표정을 굳혔다.

“…마왕님이 무의미하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거든.”

“루엘라, 당신….”

“에르티나, 너도 한 때는 마왕님에게 복종하려 했잖아? 방해하지 마.”

이건 그녀의 마지막 충성심인 것일까.

충성이라기에는 다른 감정이 많이 섞인 듯 했지만, 적어도 그녀가 마왕의 헛된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다시 용사가 패배하고 새로운 마왕이 나타난다면, 마왕님은 대체 뭘 위해 살아오신 거지?”

“…….”

“나에게 보여줘. 네가 마왕님과 마주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불필요하다.

이런 곳에서 그녀와 싸우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다들 물러서줘.”

나는 전투를 준비하는 그녀들을 말렸다.

“…뭐?”

“혼자서 싸우실 필요는 없어요!”

“저런 거랑 상대할 틈….”

그녀들이 당황하며 한 마디씩 거든다.

맞는 말이다.

지금의 내가 그녀를 상대할 필요도 없고, 굳이 단 둘이서만 승부를 봐야할 이유도 없다.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 이해해주려는 거야.”

“뭐라구요?”

루엘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마왕을 헛되이 죽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지?”

내 말에 에르티나가 무언가를 느낀 듯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루엘라도 내 말에서 느낀 바가 있었는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나는 용사로서 그녀의 바람에 응답했다.

“그 바람, 내가 들어줄게.”

“…하하.”

루엘라는 힘없이 웃었다.

“처음으로… 용사다운 모습을 보는 군요.”

그리고는 잠시 에르티나를 힐끗 쳐다본다.

“역시 당신인가요?”

“…아니.”

“그래요.”

그녀는 에르티나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루엘라의 팔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 새까만 스태프가 그녀의 손에 쥐인다.

“그럼 기대해볼게요.”

그녀의 스태프가 나를 겨냥함과 동시에, 나는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다.

쿠웅!

곧장 무형의 충격파가 내 몸을 덮친다.

하지만 예상했다.

나는 넘어지지 않도록 자세를 잡고, 힘을 집중해 그것을 부수었다.

쨍그랑!

“많이 능숙해졌군요. 빨라지기도 했고.”

이번에는 그녀를 향해 뛰어드는 내 다리를 무언가가 낚아챘다.

그 때 봤던 검은 넝쿨인가.

순간적으로 자세를 잃고 비틀거리는 나에게 그녀는 다시 충격파를 쏘아냈다.

쿵!

이번에는 넘어졌다.

“에릭!”

“…오지 마.”

나는 뛰어들려는 유니를 한 손으로 제지했다.

“왜….”

“내가 해야 하니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대답했다.

“왜 너도 그렇고, 다들 사서 고생을 하려는 거지?”

유니의 뒤에 서있던 그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제렌. 그 남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겠지.

자신의 욕구로만 살아가는 당신은, 알 수 없을 거야.

“제가 용사니까요.”

그렇게 답해주고,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루엘라에게 뛰어들었다.

“…진짜 바보들이군.”

내 뒤에서 그가 그렇게 중얼거린 듯 했다.

“이해할 수 없어.”

이걸 이해한다면, 그도 나와 한 발짝 같은 길로 다가서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그는… 나와 반대니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고작 이건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마왕성에 들어갈 수…!”

검에 신성력… 아니, 이제는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지만, 익숙해진 그 힘을 두르고 그녀와, 그녀를 감싸고 있는 모든 방어막을 벤다.

쿠웅!

나를 향해 날린 충격파를 베고,

나를 붙잡은 넝쿨을 불로 태우고,

터엉!

그녀를 보호하는 방어막을 베었다.

“읏….”

당황하는 루엘라를, 나는 베었다.

더 이상 고민은 없었다.

쿠득!

그녀의 몸 어딘가에 걸려 내 검이 멈췄다.

“후읏… 빠르네요.”

그러나 루엘라는 태연했다.

이것으로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아니, 하지만 그녀의 몸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던가?

그녀의 피와 살을 대신할 살아있는 인간이….

설마!

“어차피 당신과 그 남자 외에는… 필요 없어요.”

검을, 다시 뽑아야…!

내가 검에 힘을 주어 뽑아내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스태프를 그녀들에게 겨누었다.

루엘라의 팔이 멈추고, 물에 베이고, 열로 녹아내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를 죽이려면… 그녀를 멈추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보여주세요.”

루엘라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마법을 발동시킨다.

발동한 뒤에는 늦는다.

그녀들이 최대한 이를 늦추려고 시도하지만, 어차피 의미 없을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다른 방법.

그녀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그런 방법이…!

“흐윽…!”

셋 중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더 늦으면 안 된다.

생각하지 말고, 바로 행동으로!

번쩍!

그 순간, 나와 루엘라의 문양이 동시에 빛났다.

“엇, 뭐…?”

루엘라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넘어져버렸다.

“윽…! 힘이….”

내 팔에 원래라면 없어야 할 다른 꽃이 잠시 피었다.

분홍빛으로 빛나는 그 꽃은, 루엘라와 나 사이의 존재하지 않을 통로를 억지로 비집고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힘을 빌려올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루엘라를 공격할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빌려온 그녀의 힘을, 모조리 하늘로 쏟아버렸다.

쿠구궁!

검은 힘의 파동이 하늘로 마구 솟구쳤다.

“무슨, 무슨 짓을….”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루엘라였지만, 곧 내가 하려는 짓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얼굴이 굳어버렸다.

“다, 당신….”

루엘라의 힘을 빌려온다는 것은, 결국 그녀의 힘을 대신 사용한다는 것.

나는 루엘라가 가진 마력을 모조리 소진시킬 계획이었다.

“윽….”

그녀는 간신히 스태프를 겨누며 막으려고 했지만, 내가 그녀의 힘을 계속해서 빼앗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제대로 마법이 발동되지를 않았다.

“흐읏….”

그녀는 상체가 푹 고꾸라지려는 것을 간신히 지탱하고서 나를 바라봤다.

“…알고 계신가요? 마력을 전부 쓰고 나면 제가 죽는다는 거?”

그런가.

그 사실은 몰랐다.

흑마법으로 육체를 수복하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본체는 따로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유지하는 마력까지도 소진되어버린다는 뜻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그녀의 힘은 빠져나가고 있다.

“그만둘까요?”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그녀는 소멸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사실상 루엘라가 바라는 증명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

그녀가 바란다면 나도 여기서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그녀는 초연하게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기로 했다.

“해볼 건 다 해봤고… 마왕님이 먼저 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네요….”

그녀의 시선은 잠시 내 뒤의 누군가를 향했다.

“뒷이야기를 못 보는 건….”

쩍!

그녀의 피부가 갈라졌다.

“조금 아쉽지만요.”

쩌억!

그리고 마침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하늘로 치솟는 힘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도 완전히 갈라졌다.

“…….”

그녀는 조금 아쉽다고 말했지만, 루엘라의 얼굴에서는 그러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이렇게 되기를 바랬다는 듯, 그녀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 죽은 거야…?”

세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루엘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또한 그녀의 몸에는 한 줄기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비워냈다.

아마도 그녀의 영혼이 담긴 본체의 힘까지도… 전부.

“루엘라….”

내 뒤에서 에르티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우….”

내 팔에는 더 이상 그녀의 문양이 남아있지 않았다.

애초부터 일시적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시야가 흔들린다.

아무래도 조금, 무리한 것 같은데.

달려오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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