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짐꾼] 유혹
눈을 뜨고 일어나니 이미 나 빼고는 전부 기상한 상태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주인님.”
“앗, 주인님.”
세리아와 아린이 일어난 나를 보고 쪼르르 달려와 인사했다.
유니는 무엇을 하나 봤더니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있었나 봐요.”
“그래?”
아린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그녀의 눈에 무언가 자국 같은 것이 남아있었다.
눈물 자국인가.
“울었냐?”
“읏… 아, 아냐.”
그녀는 눈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설득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이리와.”
“…….”
유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내 손이 닿을 거리까지 오자 나는 그녀를 끌어당겨 내 품에 안았다.
“…이럴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안고 싶었을 뿐이야.”
유니는 내가 손을 놔준 뒤에도 잠시 동안 안겨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떨어진 뒤, 둘의 반응을 보니 묘하게 꽁해있길래 결국 그녀들도 한 번씩 안아줬다.
“헤헤…♥”
둘은 내 가슴에 머리를 부비면서 한참을 안겼다.
결국 늦게 내려가서 에르티나의 눈총을 사기는 했지만, 뭐 이정도는 어쩔 수 없지.
***
“저기, 주인님….”
“응?”
그리고 다음 마을로 이동하던 도중, 아린이 문득 말을 걸었다.
“주인님은… 마왕이 되지 않으실 거죠?”
불안해하는 눈치다.
살짝 살펴보니 세리아와 유니도 우리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이미 대답을 했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 불안이 가시지는 않는 모양.
“그래, 그런 거 관심 없어.”
사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미 알아버리지 않았는가.
지금의 마왕이 너무 오래 살아서 죽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아니, 그럼 나도 그 자리를 받으면 오래 살다가 지겨워서 죽고 싶어 한다는 거 아냐?
그딴 삶은 별로 살고 싶지 않은데.
죽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도 죽지를 못한다니, 이게 사람 사는 게 맞냐?
아, 사람은 아니지 참.
아무튼 다른 걸 다 제쳐두고 나는 그것 때문에라도 별로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다.
“다행이에요.”
아린은 정말로 안도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잘 생각해두라고.”
내가 그녀의 엉덩이를 콱 쥐면서 그렇게 말하자 아린이 신음을 흘렸다.
“하읏…♥”
마왕이 죽은 뒤의 일.
내가 마왕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튼 그 굴레도 끝이 난다는 얘기겠지.
사실 조금 찝찝한 점은 남아있다.
내가 하기 싫다고 그냥 안 할 수 있을까?
고작 그런 정도로 끝이 날 거라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유지되지도 않았을 텐데.
그리고… 앞의 마왕들은 이전의 마왕들이 오랜 삶에 지쳐 자살을 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자리에 앉은 것이다.
과연 다들 좋아하며 앉았을까.
어쩌면,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자리에….
“주인님?”
아린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음… 별 거 아냐.”
제길, 영 느낌이 안 좋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아린, 세리아, 유니.”
“네?”
나는 그녀들을 불렀다.
유니는 날 돌아보지 않았지만, 잠시 멈칫한 것으로 보아 듣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만약 내가 나중에 이상한 소리를 하면 듣지 마.”
“…네?”
이상한 소리를 하는 나를, 세리아와 아린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도 이상한 소리를 하고 계시는데요.”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키득 웃었다.
“아무튼 간에.”
“후후… 네.”
그들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 말이니까, 아무튼 잘 지켜주겠지.
유니는….
“무슨 생각이야?”
“말 그대로야.”
“…알았어.”
그녀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는 것 같았지만, 금방 떠오르지는 않았는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일단은 된 건가.
만약 내가 무언가에 조종당하거나 그딴 처지에 놓인다면 이걸로 그녀들이 눈치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만큼 기분 나쁜 건 또 없으니까.
그 말은 곧 내 여자들도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차지한다는 소리 아닌가.
그런 뭔지도 모를 것에게 넘길 수는 없지.
루엘라라도 옆에 있었다면 이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물어볼 텐데, 요즘 그녀는 무엇을 하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마왕이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무언가 또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역시 자지교육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 가죠.”
용사의 말에 오늘의 행군이 멈췄다.
슬슬 마왕성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꿈도 비슷한 것만 꾸는 느낌이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자꾸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느낌이다.
이쪽을 고르라고.
당연히 나는 이쪽을 고르게 되어있다는… 그런 느낌으로.
“후우….”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좀.”
침낭을 깔다가 세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얘기는 아직 그녀들에게 하지 않았다.
굳이 할 이유가 없어서기도 했지만… 안 할 이유도 없긴 하군.
오늘도 꾼다면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유니.”
“으, 응….”
그녀는 쭈뼛거리며 몸을 가리고 다가왔다.
“이제 와서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요.”
“그, 그치만….”
“자, 주인님께 보여드리죠.”
아린이 그녀의 뒤에서 유니의 양손을 치워 나에게 몸을 드러내게 했다.
“흐읏….”
그녀가 허벅지를 부비적거리면서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원래 여기 앉혀서 하려고 그랬는데, 저 모습을 보니 저대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앞에 섰다.
“다리 조금 벌려봐.”
그녀의 허벅지를 툭툭 치면서 말하자 유니가 살짝 다리를 벌렸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들고 선 채로 그녀와 밀착하며 자지를 안에 삽입했다.
“하극…♥”
유니의 손이 내 가슴에 닿는다.
처음에는 밀어내려는 듯, 그렇지만 나중에는 손이 어깨를 넘어 내 등으로 향한다.
꾸욱.
그녀가 나를 안으면, 그것은 유니가 솔직해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 기분이 어때?”
“흐읏, 흐으….”
그녀는 입으로 대답하지 않지만, 몸으로는 대답을 하고 있다.
꾸욱.
그녀의 질이 내 자지를 꾹 누르면서 도망치지 못하게 날 압박하고 있다.
동시에 내 등에 두른 그녀의 팔도 나를 끌어안고 있다.
“후후… 유니도 참.”
“욕심쟁이라니까.”
그녀들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유니는 몸으로 나를 독점하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물론 그럴 수야 없지만.
그래도 그녀의 마음을 채워주어야겠지.
나는 공허한 그녀의 마음에 내 정액을 가득 부어주었다.
“하그읏…♥”
부르르륵! 부르륵!
“흐으, 흐읏….”
“자, 이제 그만.”
애타게 기다리던 아린이 그녀를 나에게서 떼어놓았다.
잠시 유니의 원망하는 듯한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순서로 따지면 저희가 먼저거든요?”
“또 선배 행세하려는 거야?”
“세, 세리아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니와, 평소처럼 투닥거리는 둘을 보며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대로가 좋아.”
“네?”
“아, 아냐.”
입밖으로 나와 버렸네.
꿈속에서 보던 그녀들은 지금과는 다른 또 퇴폐적인 미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그녀들이 더 좋은 것 같다.
역시 그쪽 제안은 못 받겠는 걸.
***
“크흣….”
그래서 이건가.
나는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마왕님….”
“하아, 어서….”
세리아와 아린.
그 둘이 화려한 방에 놓인 거대한 침대 위에 누워있다.
나를 바라보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마왕님….”
“저의, 마왕님…♥”
둘을 바라보는 내 뒤로, 누군가가 스윽 나타나 팔을 걸쳤다.
“사랑하는… 나의 당신.”
차가운, 동시에 무척이나 음울하고 맑은 소리가 들렸다.
“당신을 위해 준비해봤어요.”
내 귓가에 속삭이는 이는 유니.
나를 애증하는, 나의 노예이자 신부다.
“마음에 드시나요?”
“…그래.”
이제는 이런 식으로 유혹을 하려고 드는가.
굴레인지 뭔지, 참 유치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뭐, 그렇지만 유치한 건 유치한 거고.
차려준 밥상을 거절할 필요는 또 없지.
나는 손을 뒤로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음, 이건 그대로군.
“너는 왜 거기서 가만히 서있지?”
“…원하신다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뒤에서 옷을 벗었다.
옷과 살결이 스쳐 사락거리는 소리가 내 가슴을 간지럽혔다.
“…얘들아, 비키렴.”
“흥.”
둘은 입술을 내밀며 불만을 표했지만, 그녀가 시킨 대로 순순히 가운데에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털썩!
가운데에 누운 그녀는 아무런 옷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순백처럼 새하얀 그녀가 나에게 팔을 뻗었다.
“자… 이리 오세요.”
“그래, 그럼.”
나는 속으로 비웃음을 삼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읏….”
유니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그녀를 갈구했다.
나는 세 여자에게 둘러싸인 채 그녀들의 체온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서늘한 밤이었다.
그러나 꿈에서 일어난 뒤에는 현실에서 세 여자의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팔자 좋으시네요.”
“…루엘라?”
어디서 또 갑자기 나타난 건지, 천막 안에 루엘라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차분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유니의 모습이 아닌 그녀의 원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참 오랜만이네.”
“…그렇죠.”
어딘가 기운이 없다.
그녀를 의아한 기색으로 바라보자 루엘라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당신은, 마왕이 될 건가요?”
“아니.”
루엘라는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까?
화를 낼지도 모르고, 아무 소용없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웃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응?”
“제가 화를 낼 줄 아셨나요?”
루엘라는 잠든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왕님을 위해서는 당신이 새 마왕이 되어야하지만….”
그녀는 잠시 말을 고민했다.
“마왕이 되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거든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니까?”
“그것도 있죠. 그렇지만….”
루엘라는 자기 손을 꾹 맞잡고서 말했다.
“불합리한 죽움을 강요당하거든요.”
“…그런가.”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리고 저희도 그런 불합리한 죽음을 지켜봐야만 하고요.”
마왕은 죽고 싶어도 자신의 사명을 다할 때까지는 죽지 못한다.
다음 마왕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만 하는 사명.
이래서야 뭐가 마왕인가 싶지만, 운명이 그렇게 되어있는 것이다.
새 마왕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본인은 용사의 손에 최후를 맞이해야만 한다.
그것이 모든 마왕들의 운명.
루엘라는 그런 마왕의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걱정한 건가?”
“…이상한 생각 마세요. 저는 그냥 선배로서 충고를 드린 거니까요.”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냥 갈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이 얘기만 하고 싶어서 잠시 찾아온 거예요.”
그녀의 말에서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네, 마지막.”
그녀의 눈에서는, 무언가 결의 같은 것이 엿보였다.
“용사의 자격을,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어요.”
“…….”
그녀는 내 접근을 거부했다.
유니가 아닌 그녀 본인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것도 그래서겠지.
유니의 모습으로 찾아오면 목적을 잊고 나한테 안길 것이라 생각한 것이리라.
나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아닌 듯 했다.
“…그럼 안녕히.”
“잠깐.”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렇지만,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하지?
나는 그녀의 편도 아니고, 하물며 그녀의 연인… 혹은 주인조차 아니다.
“저한테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루엘라는 그렇게 말하며 천막 밖으로 반쯤 몸을 내밀었다.
“제 마음에는 언제나 한 분밖에 계시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좀 너무하군. 나는 들어있지도 않은 건가?”
내가 농담 삼아 그렇게 말을 하자, 잠시 분위기가 풀어진 것인지 루엘라도 피식 웃었다.
“모르죠. 어쩌면… 끄트머리에 당신이 몰래 앉아있었을 지도.”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천막 밖으로 나섰다.
천막의 입구가 다시 닫히면서, 동시에 그녀의 인기척 또한 사라졌다.
다시 넷만 남은 천막에서, 나는 달아나버린 잠기운 탓에 잠시 앉아있었다.
마왕.
마왕이라….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차피 다시 잠들기는 시간도 애매한 것 같고.
나는 그렇게 남은 시간을 조용히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