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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215화 (215/236)

〈 215화 〉 [용사] 굴레

우리가 도착한 다음 도시는 루엘라의 부하들이 관리하는 도시라고 했다.

“그렇지만 딱히 별 일이 있지는 않을 거예요. 여기부터는 마왕의 직속령이기도 하니까요.”

루엘라의 영향이 미치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마왕의 영향력이 더 강하다는 말이었다.

마왕….

곧 그와 마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를 죽이는 것이 목표지였지만 설마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고, 그녀들의 말로 미루어보았을 때 여기에 여신의 개입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찝찝하기도 했다.

이런 나의 고민이 표정에도 드러난 것인지 에르티나는 헤어지기 전 나를 보며 말했다.

“내일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내일요?”

어차피 내일 하루는 쉬려고 했으니 상관없지만, 그녀의 표정이 무척 진지했다.

“마왕을 만나기 전에, 제가 아는 것을 다 얘기해드릴게요.”

에르티나는 모든 진실을 전해줄 각오를 다졌다.

“…네.”

그리고 아마 그 사실은 분명 충격적인 것이겠지.

나는 그 사실에 긴장하면서 다음 날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덕분에 꿈자리도 조금은 뒤숭숭했다.

***

다음 날, 나는 에르티나를 만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곧 도착할 거예요… 아, 다 왔네요.”

그녀가 나를 데려간 곳은 무척이나 허름한 건물이었다.

아니, 허름하다는 말로 표현해도 되는 걸까?

그보다는 버려진 건물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아무도 관리를 안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건물이 망가지는 것을 방치한 듯한, 그런 묘한 악의가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무언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한데….

“여긴 교회에요.”

“교… 회요?”

이 다 무너져가는 건물이?

듣고 보니 지붕이 없어 그렇지 교회처럼 보이기는 했다.

듣지 않았더라면 결코 몰랐을 것 같지만.

“왜 이렇게까지….”

“일단 들어가죠.”

그녀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문짝이 덜렁거리며 바닥에 떨어질 뻔 하길래 둘이서 잠시 비스듬하게 세워두었다.

안쪽은 조명 하나 없어 어두울 것 같았지만, 벽과 지붕이 어느정도 무너진 상태라 그런지 햇볕이 잘 들어 오히려 밝았다.

수북이 쌓인 먼지와… 산산조각이 난 여신상.

“저건 세라가 부순 거예요.”

“네?”

저 여신상을?

당황한 내가 되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봉인된 사이에 있었던 일이지만, 루엘라가 말해주더군요. 이 땅을 정복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그거였다고.”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니, 생각해보니 다른 곳에서도 교회를 들리지는 않았다.

설마 마족이 정복한 땅에서는 교회가 다 이런 상태인가?

“네, 아마 그럴 거예요.”

“왜, 왜 이런 짓을….”

내 물음에 에르티나는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야 분노했기 때문이죠.”

“…역시 그런 건가요?”

그녀들의 분노. 그리고 체념.

무언가 묘한 그 감정들의 원인이 이 여신에게 있을 것이라고, 얼추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마 대충은 짐작하고 계신 것 같은데, 맞아요.”

에르티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자신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어디부터 말씀을 드려야할지 조금 고민되는데… 그거 아시나요?”

에르티나는 그렇게 내가 반쯤 추측하고만 있던 것이, 사실이라 말해주었다.

“마왕은… 아주 오래 전부터 몇 번이나 나타났어요.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그리고 훨씬 전에도.”

우리가 아는 것은 저번 마왕 뿐.

그렇지만 분명 그게 시작은 아니었을 것이다.

옛날이야기 중에는 분명 더 오래된 것 같은 마왕의 이야기들이 있었으니까.

“아마 들은 이야기들은 항상 비슷하게 끝났을 거예요. 용사가 결국에는 마왕을 물리쳤다고 말이죠. 하지만 조금은 달라요.”

그리고,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은….

“용사는 마왕을 물리쳤죠. 네, 그건 맞아요. 그렇지만… 마왕이라는 그 존재 자체를 쓰러뜨린 것이 아니에요.”

…중요한 이야기가 빠져있었다.

“당대의 마왕은 죽어도, 항상 후대의 마왕을 향한 씨앗이 남게 되었죠.”

“설마 그건….”

“네. 항상 누군가는 배신을 해요.”

마왕이 나타나고, 이에 맞설 용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용사는 마왕을 쓰러뜨리지만, 항상 누군가는 그 용사를 배신하고 새로운 마왕이 된다.

“왜… 그런 거죠?”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설계….

이런 것을 설계할 수 있는 존재는, 아마 하나밖에 없으리라.

“네, 여신이죠.”

“대체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글쎄요. 무언가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저희도 그건 알지 못해요. 심지어 이제 와서는 영영 알 길도 사라져버렸죠.”

“그건… 무슨 말이죠?”

그녀가 흘리듯이 던진 말에서, 나는 무척이나 불안한 예감을 받았다.

에르티나는 각오하라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모든 것을 계획했던 여신이, 사라져버렸거든요.”

“…네?”

여신이… 없다고?

“남은 것은 그녀가 만든 이 굴레 뿐. 저희는 더 이상 관리하는 이도, 지켜보는 이도 없는 굴레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무슨….”

무슨… 무슨 말이지 대체?

“마왕의 부흥으로 시작해서, 용사가 마왕을 죽이고, 새로운 마왕이 탄생하는 일련의 과정. 그것만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저희도 그랬고, 그 전에도 다들 그러했죠.

에르티나가 남긴 말은 이해가 되었으나 도무지 납득이 가지를 않았다.

“아니, 그렇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

왜… 매번 그런 일이 반복되는 거지?

“말씀 드렸잖아요. 그렇게 설계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설계….

그렇지만, 배신을 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에 달린 것이 아니던가?

“그냥… 그냥 운 좋게 아무도 배신을 안 하는 경우가 한 번 쯤은 있어도….”

“없어요. 배신할 인물을 그 굴레가 사전에 지정한 것인지, 아니면 배신하도록 변화를 일으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그래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불현 듯 제렌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럼 이번에는….”

“아마도 그가 되겠죠.”

제렌이… 마왕이 된다.

그것이 정해진 결말이라고?

“왜… 그럼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거죠?”

“저희는 예전에 이미 들었거든요.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누구에게?

“저번 사천왕에게서요.”

지금의 마왕이 아닌 이전의 마왕.

그의 사천왕 또한 지금의 에르티나와 비슷한 위치였던 걸까.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마치 운명처럼.”

“운명….”

“저희는 그런 걸 믿고 싶지 않지만요.”

에르티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느 정도는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루엘라와 세라는 마왕이 직접적으로 해치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던 것이 더 컸기 때문일 거예요.”

그 말은, 역시 마왕은 그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싶어 한다는 뜻이 되는 건가.

“그래야만이 죽을 수 있거든요. 더 이상 마왕이 아니게 된 시점에서, 용사에게 죽을 수 있는 거죠.”

“…즉, 마왕은 죽기 위해 다른 마왕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죠.”

그런 거라면… 역시 제렌을 데려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그렇지만 마왕의 자리를 넘기지 않으면 나에게 죽지 않는다는 말 아닌가.

난감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문득 나는 여신을 원망하고 싶어졌다.

…그렇구나.

이래서 다들 여신에게 분노했던 거구나.

“무책임하죠.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저렇게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에도 그녀는 반응하질 않아요. 이미 이곳에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산산조각이 난 여신상의 일부를 발로 살짝 걷어찼다.

“우리를 버리고 가는 건 그렇다 쳐도, 적어도 이런 굴레만큼은 벗겨주고 가야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신이라지만 너무하네요.”

그럼 이런 행위 자체에는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셈이다.

의미도, 보람도, 그 무엇도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사실을 전하지 않고 마왕의 앞까지 당도하면, 그는 분명 이를 들려줘서 당신의 마음을 꺾어버릴 거라고.”

에르티나는 계속 말했다.

“그렇게 새로운 마왕을 정하는 자리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경험담인 것일까.

그녀의 표정을 보아 아마도 그러한 듯 했다.

“그래서 늦게나마 미리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얘기가 늦어진 점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어쩌면… 당신도 용사님처럼 무너질 거라고….”

사실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는데, 왜 내가 이를 계속해야하는 걸까.

이 이야기를 마왕의 앞에서 직접 들었더라면, 나도 무심코 검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에르티나는 내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당신을 보니 그래도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 같지는 않군요. 다행이에요.”

“미리 말씀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적어도 이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은 생긴 셈 아닌가.

“…그래요.”

그녀는 잠시 내가 혼자 시간을 갖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마음을 조금은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왜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 거죠?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셨는데, 어차피 이게 정해진 운명이라면 저는 아무 것도….”

“정말 그래도 좋나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불타는 듯한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에릭 씨. 저는 당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어요. 동료들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다는 그 의지는, 어쩌면 그저 정해진 운명이 이끈 대답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얘기를 들으니 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저기, 그럼 그… 저번에 그들을 내버려두자고 제안하셨던 건….”

“어차피 어떤 방식으로든 그가 그 자리에 서있게 될 테니까요.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그렇군요….”

하긴, 정말 그 운명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씌워진 굴레가 그렇게 강력한 것이라면 고작 이런 방법에 막히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만.

그녀의 말대로라면… 마왕의 힘이 넘어가고 내가 그를 죽이는 미래는, 결국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그녀가 어떻게 해서든 나를 마왕성까지 보내려는 이유는… 이런 미래를 받아들여서인가?

그렇다기에는 그녀의 태도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에르티나 씨는… 그… 받아들인 건가요? 그런 미래를?”

“아니요. 저는 이 굴레가 끊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그것이 에르티나의 바람이었다.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없어요. 그런 건 이미 다 과거의 누군가가 해봤죠. 무의미한 발버둥일지도 모르고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며 처음으로 분한 표정을 지었다.

“…부디 이 악순환을 끊어주세요.”

“…….”

에르티나는 나에게 부탁했다.

이 굴레를 끊어달라고.

획기적인 방법 같은 것은 없다.

있더라도 분명 이전의 누군가가 시도를 해보고, 실패했을 테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이 굴레가 그 증명인 셈이다.

결국 그녀는 나에게 부탁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에르티나의 부탁을 등에 짊어지고 마왕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겠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용사이기 때문일까?

이미 많은 이들의 바람을 등에 지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어쩌면 완전 허황된 꿈만은 아닐지도 몰라요. 분명 먼 옛날과 비교하면 그 힘도 약해졌을 테고… 문양마법처럼 이 굴레에 개입한 사례도 있고….”

“네? 문양마법이요?”

흘려지나가는 그녀의 말에서 문득 놓쳐서는 안 될 얘기가 지나갔다.

“아… 네. 그 장미 문양은… 음… 제가 알기로는 이전의 마왕들 중 누군가가 그 굴레에 간섭해서 만들어둔 마법이에요.”

이건 그럼… 여신도 아닌 그냥 옛날 마법사의 마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가?

“누가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이미 그건 그 굴레의 일부가 되어버렸어요. 단순히 조금 센 마법 정도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죠.”

“이런 걸 왜….”

뭐하러 이딴 문양을….

“…그건 저희도 몰라요. 언제 적 마왕인지도 모르니….”

“…….”

괜히 더 찝찝해졌다.

그 뒤로 기분 전환을 위해 약간의 이야기를 더 나눈 후,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복잡한 이야기였다.

이건… 모두에게도 이야기를 해줘야겠지.

특히 그에게도 말해두면… 말해두는 게 좋은 걸까?

설마 좋다고 받아들이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밖에 나온 나는, 곧 그 고민의 장본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유니.”

“에릭….”

유니가, 제렌과 단 둘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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