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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213화 (213/236)

〈 213화 〉 [짐꾼] 꿈의 마왕

다음에 도착한 마을은… 아니, 도시쯤은 되겠다. 아무튼 그 도시는 사천왕의 직속 부하들이 관리하는 도시라고 한다.

루엘라의 부하들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루엘라도 여기에 있나?

“후후, 도시의 주인이 주인님의 발밑에 있는 셈이네요.”

맨날 발밑에 깔고 범하던 년이 도시의 주인이라.

솔직히 생각해보면 대단한 여자기는 했다.

인간일 시절에도 강력한 마법사였고, 지금은 마왕 다음가는 사천왕의 한 자리를 맡고 있으니.

“여기서 유니를 손에 넣으시려는 거군요.”

“그래야지.”

더 늦어졌다가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여기가 승부처.

과연 유니는 순순히 넘어올까?

방법은 이것저것 생각해봤지만, 역시 제일 단순한 게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모두와 살짝 떨어져 홀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둡던 그녀의 얼굴이 햇빛을 받아서인지 조금 밝아보였다.

“유니, 내일 시간 좀 내라.”

“…뭐?”

그녀는 다짜고짜 꺼낸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어차피 따로 할 거 없잖아?”

“그렇다고 굳이 너와 보낼 이유도….”

“9시야.”

저번처럼 또 간단히 용건만 전하고 돌아왔다.

내 뒤통수에 그녀의 시선이 꽂히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잘 됐나요?”

“글쎄, 별 일 없으면 오겠지.”

그렇지만 지금의 그녀에게 딱히 특별한 일이 생길 이유도 없다.

그녀는 내일 아침에 나올 것이다.

“숙소로 가죠.”

용사의 말에 따라 우리들은 숙소로 이동했다.

에르티나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숙소는, 인간이 아닌 마물이 운영하는 숙소였다.

이거 괜찮은 거 맞나?

“아… 어서 오세요.”

루엘라를 닮아 지식욕이 왕성한지 우리가 왔음에도 가게 주인은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저건 또 무슨 종족이지.

꼬리와 날개가 달려있기는 하지만, 음마는 아닌 것 같다.

“악마족 같네요.”

악마라.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빽빽해 보이는 걸로 봐서 분명 재미없는 책이다.

“음… 외부인? 뭐, 상관없겠죠. 방은 어떻게 드릴까요?”

이 시기에 여기까지 찾아올 외부인이라고는 한정되어 있을텐데, 그는 딱히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신경쓰지 않는 것일까.

조금 궁금해졌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1인실 두 개 하고….”

용사가 잠시 우리쪽을 바라보자 세리아가 나서서 말했다.

“3인실 하나요.”

그는 잠시 벽에 걸린 열쇠들을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3인실은 남는 게 없군요. 대신 같은 가격에 4인실은 어떻습니까?”

“4인실? 어떡할까요, 주인님?”

“뭐, 거절할 이유 없잖아.”

“그럼 그걸로 주세요.”

4인실이라.

이것 참, 재밌는 우연이네.

슬쩍 용사를 보니 살짝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렇지만 나름 억제하고 있기도 했다.

예전만큼 어리숙하지는 않구나.

나름의 성장이라고 봐야할까.

세리아는 열쇠를 가지고 돌아왔다.

“주인님, 올라가죠.”

“그래.”

평소라면 우리가 올라가기 전에 먼저 유니가 올라갔겠지만, 오늘은 우리가 제일 먼저 올라갔다.

혹시 무언가 용사에게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유니의 모습을 살펴보니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우리와 그를 살피면서 묘하게 신경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데이트 신청을 또 받아서 그런 건가.

왠지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미 관계는 끝났으니 더 이상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데, 역시 아직 완전히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그녀의 감정이 정리된 순간이, 그녀가 나에게 넘어오는 때이리라.

유니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 문득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4인실이라 그런지 넓네요.”

“후후… 유니도 여기서 재울까요?”

그녀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지 쿡쿡 웃었다.

“뭐, 어차피 여기 오래 머물 것도 아니고 그러긴 어렵겠지.”

대신 여기서 유니의 공략이 끝나면 다음 마을에서는 4인실에 넷이서 묵을 수 있으리라.

“후후… 내일이 기대되네요.”

“정말요? 유니가 들어오면 또 주인님을 셋이서….”

“하아… 그 얘기는 꺼내지 말아줘….”

처음 아린이 들어왔을 때도 나를 둘이서 나눠가진다는 것을 아쉬워하긴 했었지.

이제는 아린이 그 아쉬움을 느낄 차례다.

“그만큼 내가 더 해주면 되는 거잖아?”

“어머… 역시나♥”

내가 침대에 털썩 눕자 그녀들이 살살 다가와 내 옆구리를 하나씩 차지했다.

“…그러고 보니 유니까지 들어오면 자리가 없네요.”

“한 명은 위로 올라가야지.”

“앗, 나쁘지 않을 지도.”

내 위로?

가슴 위에 눕겠다는 소린가.

조금… 무겁기는 하겠군.

“뒤에서 받치라고 해.”

“앗, 그렇게 할게요.”

“네에.”

뒤에서 가슴베개든 무릎베개든 뭐라도 하게 시키면 되겠지.

뭐, 가슴에 약간의 무게감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럼 오늘은 누구부터 할까요?”

“너희끼리 정해.”

내 말에 그녀들은 서로를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제는 당신이었죠? 그러니 오늘은….”

“뭐라는 거야? 그때마다 새로 정하기로 했잖아.”

나는 그녀들의 앙칼진 싸움이 끝나고 아무나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가, 하나씩 지쳐 쓰러지게 만들었다.

“하으읏….”

“후우, 후으….”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든 그녀들을 보며, 나는 내일 있을 일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자연스레 잠든 것 같다.

***

“응?”

어느새 나는 이상한 공간에 있었다.

주변이 새카맣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

당연히 주변에는 나밖에 없었다.

어디가 어딘지도 제대로 구분이 되질 않지만, 나는 왠지 앞으로 향해야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걸을 때마다 뚜벅뚜벅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제법 큰 공간인가?

아니, 대체 여기는 어딘데?

걷다보니 무언가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한 그것은, 의자였다.

무척이나 화려하지만 음울해보이는 의자.

비싸 보이는 장식들로 꾸며진 그 의자는, 분명 아무나 쉽게 앉는 의자는 아닐 것 같았지만 적어도 귀족이나 왕들의 의자는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불길해보이는 의자를 사용할 리가 없으니까.

의자는 검은 장미와 해골들로 치장되어있었다.

왜일까, 여기에 앉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꿈속이라 그런지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팟하고 일제히 조명이 켜졌다.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어딘가 생동감이 없는 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지만 살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

이곳은, 마왕의 홀이다.

더럽게 싸늘하구만.

끼이익!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어머, 일찍 오셨네요.”

“…세리아?”

칠흑 같은 드레스를 입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그녀는, 세리아가 맞았으나 세리아 같지가 않았다.

“그리운 이름이네요.”

그녀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후후 웃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런 옛날 이름으로 부르고.”

“음… 아니, 그냥.”

왠지 무언가 알 것 같은데.

“후후…♥ 꿈이라도 꾸셨나요?”

“꿈이라….”

지금 꾸고 있는 것 같은데.

세리아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권좌의 오른편 팔걸이에 앉았다.

“마족들 상태는 어떻던가요?”

“…지금이라도 내보낼 수 있겠더군.”

본 적도 없었지만 왠지 그런 말이 나왔다.

“후후… 또 평화에 찌든 인간들은 분명 우왕좌왕하면서 도망치겠죠.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그녀의 꼬리가 마치 잡아달라는 듯 내 눈앞에서 흔들렸다.

꽈악!

“햐윽♥ 마, 마왕님도 참….”

이게 일종의 신호였는지, 그녀는 덥석 내 품에 안겨 바짓단을 살짝 내렸다.

“왜 이렇게 여기서 하는 걸 좋아하시는지 몰라… 하읍…♥”

그녀가 내 귓불을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꼬리로 내 자지를 휘감더니 능숙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쮸읍… 츕….”

나는 무척이나 익숙하게, 그녀를 안았다.

“하앗, 하아… 오늘은 다른 걸 하실 생각이 없나보네요.”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왜일까요, 되게 옛날 생각이 나는데….”

그녀를 안고 있다 보니 어느새 다른 여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세레스! 또 말없이 이런 곳에…! 앗, 마, 마왕님?”

누구야, 이 검은 머리는.

이미지가 워낙 달라져서 못 알아봤다.

검은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마찬가지로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많이 사악해보이기는 했지만일단 아린인 것 같았다.

“…아린인가.”

“네! 당신의 종, 아린이에요.”

그녀의 목에는 목걸이가 하나 걸려있었다.

작대기 하나와, 그 밑에 걸린 원 하나.

새벽의 여신을 상징하는 목걸이가 뒤집혀있다.

가라앉는 여신을 상징하는 뜻이었던가.

멍청한 신도들이 보면 광분할 목걸이다.

아주 옛날에… 내가 누군가한테 받았던 목걸이군.

이제는 생각도 잘 나지 않지만.

“세레스, 이제 막 돌아오신 마왕님을 그렇게 보채면 안 되죠.”

“그럼 넌 거기 있던가.”

“네? 누가 그런다고 했나요?”

딱히 뿔과 꼬리 같은 건 없지만, 그녀의 몸도 무언가 인간 같지가 않았다.

피부가 더욱 하얘져서 그런가.

아니면… 눈동자가 인간의 눈동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마왕님, 괜찮으신가요…?”

“뭐, 상관없겠지.”

“앗, 그럼 저도….”

그녀가 쪼르르 달려와 내 왼쪽에 달라붙었다.

“하으으…♥”

내 몸에 코를 묻더니 그대로 냄새를 맡고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든다.

때리기 좋은 위치에 있는 그녀의 엉덩이를, 나는 찰싹 하고 내리쳤다.

“히긋♥”

그녀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 오늘은… 해주시는 건가요?”

“뭘 하고 싶은데?”

“저번처럼 목을 졸라주세요… 제가 죽을 만큼….”

그 말에 세리아, 아니 세레스가 살짝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대체 그런 걸 왜 좋아하는 거야?”

“당신 같은 여자는 죽어도 모르겠죠.”

“알고 싶지도 않거든?”

문득 둘의 얘기를 듣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네?”

“누구요?”

둘이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하나 더 있잖아.”

세리아, 아린.

그리고….

“아.”

“그녀라면….”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뒤에 있잖아요.”

고개를 돌리니, 내 뒤에 또 다른 여자가 서있었다.

몸에 달라붙은 그녀들의 드레스와는 달리, 풍성하고 훨씬 화려한 드레스.

왠지 둘과는 격이 달라 보이는 드레스다.

둘처럼 천박하게 몸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꽁꽁 싸매고 있지만, 그럼에도 성적인 매력이 잔뜩 느껴지는 옷이었다.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그녀는 나에게 다가왔다.

“너희들….”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떨어져.”

그녀들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풀어헤친 갈색 머릿결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고혹적인 화장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도.”

그녀가 말했다.

“오자마자 저런 천박한 것들하고 놀아나면 곤란하죠.”

“음… 그, 그렇지.”

둘이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차마 그녀에게 대적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이거 참, 재밌는 관계네.

“둘 다 물러나.”

“하아….”

“네에, 네….”

둘은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며 물러났다.

유니에게 거역하지 못하는 건가.

내가 대체 그녀에게 뭘 했기에 저러지?

“…왜 그러시죠?”

“아니, 별 거 아냐.”

내가 빤히 바라보자 그녀가 물었다.

왠지 표정이 심심하네.

“마왕다운 품위를 지켜주세요.”

“음… 그래.”

맨날 듣는 잔소리… 아니, 맨날 듣던 거였나?

“곧… 차례가 돌아오겠군요.”

“음.”

무슨 차례?

“그녀들에게는 언제 말할 생각이죠?”

“글쎄… 그냥 말하지 말까?”

그 말에 처음으로 그녀가 웃었다.

“울고불고 할 거 생각하면 그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렇지.

내가 왜 잊고 있었더라.

“그녀들은…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요.”

길고 긴 세월.

언제나 그랬듯이.

내 앞의 무수한 마왕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삶에 지쳐 죽음을 택했다.

“그래… 기대되는군.”

인간들을 공격하고,

“어떤 녀석이 나를 찾아올까.”

나를 죽일 용사만을 기다리면서.

그녀의 손이 문득 내 어깨에 얹혔다.

“아쉽네요.”

“뭐가?”

“제가 당신을 죽이지 못해서.”

그녀의 손이 어깨에서 조금씩 위로 올라가 내 목을 잡았다.

마치 목을 조르는 듯한 자세였지만, 그녀는 힘을 주지 않았다.

“크흐흐….”

사랑이 느껴지는 눈동자로,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참으로 차가운 사랑이었다.

“너는 나를 죽일 기회마저 빼앗긴 거지.”

“지독하시긴.”

“마왕이잖아?”

그래, 나는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관객 하나 없는 텅 빈 연극을 진행하기 위해.

그것이 내 역할이니까.

“자, 그럼… 슬슬 준비해볼까.”

마왕이, 다시 부활할 때가 되었다.

***

“뭐야, 시발.”

황당한 꿈이었다.

눈을 뜬 나는 곧장 그녀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붉은 머리에 아직 뿔도 날개도 없는 인간 세리아와 멀쩡하게 금발의 긴 머리를 하고 있는 아린.

“참나….”

역시 꿈이구만.

개꿈이라기에는 묘하게 가슴이 간질간질한 꿈이었다.

가슴이 살짝 뛰는 것 같기도 하고.

흥분한 건가? 그 꿈의 내용에?

…뭔가 더럽게 기분 나쁘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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