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짐꾼] 외투
“…외투는 고마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외투를 슥 내밀었다.
한 손을 뻗어 그걸 받으면서도 나는 그녀의 손을 확인했다.
반지는 아직 없군.
“날 찾아올 때는 반지를 끼고 오라고 하지 않았나?”
“읏….”
내 말에 유니는 살짝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냥 외투만 돌려주러 온 거니까.”
“크흐흐, 뭐 그래.”
받은 외투는 침낭 주변에 대충 가져다두었다.
어차피 지금 걸칠 일은 없으니까.
내가 잠시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침낭 안에서 틀어박혀 있던 세리아가 신음을 내며 뒤척였다.
“으음….”
그 바람에 유니의 시선이 잠깐 침낭 아래의 세리아를 향했다.
살짝 얼굴이 빨개진 걸 보니 아무래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해버린 것 같다.
들어올래? 하고 농담을 해볼까 싶었지만, 별 소용 없을 것 같아 지금은 그만뒀다.
그런 건 나중에, 나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때 해보도록 하자.
“아린은?”
“…자고 있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보낸 거야?”
뜬금없이 그녀를 왜 보냈냐는 물음이겠지.
“혼자 자면 외로워할까 봐 그랬지. 싫었나?”
“…그런 참견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보내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내심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
이걸로 용건은 끝났음에도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 사실을 지적했다가는 곧장 나갈게 뻔했으므로 나도 굳이 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뭐라도 말을 붙여볼까.
“나한테 온 걸 후회하나?”
“내 판단이었으니까, 후회는 안 해.”
그렇게 말하더니 유니는 자기 팔을 슬쩍 붙잡으며 덧붙였다.
“…멍청했다고는 생각하지만.”
“프흐흐….”
내가 웃자 그녀가 찌릿 나를 노려봤다.
“너… 마왕이 죽으면 뭘 할 생각이야?”
“죽으면? 글쎄….”
죽으면 용사와 파티원들은 영웅이 되겠지.
나야 뭐, 정식 파티원이 아니니까 슬쩍 빠지겠지만.
“별 거 안 하겠지.”
처음부터 딱히 권력욕이라던가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잘 먹고 잘 살 수만 있으면 된다.
“…세리아랑 아린은?”
“날 따라오지 않을까?”
내가 아무 말 안해도 알아서 따라오겠지.
뭐, 그러니 아마 그녀들과 함께 여유롭게 살지 않을까 싶다.
“편한 인생이네.”
“편한 게 최고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씩 웃었다.
“너는 어떤데?”
“나는….”
그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전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
용사와 함께 사는 게 그녀의 바람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직도 용사와 함께 사이좋게 지내는 꿈을 꿀 수 있을까?
“읏… 으읏….”
유니의 무언가를 건드려버렸는지,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아 최대한 자제하고는 있지만, 툭 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이거 또 달래줘야 하나?
무심코 몸을 일으키려는데, 잠든 세리아가 뒤척이며 내 팔을 붙잡았다.
“…딱히 할 게 없으면.”
그녀는 조심스레 눈가를 닦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 땐 찾아와. 사람 하나 는다고 굶어죽지는 않을 테니.”
유니의 눈이 살짝 뜨였다.
“…어차피 나는 마을로 돌아가면 되거든?”
“아, 그런가.”
그러고 보니 촌장의 딸내미랬나.
하긴, 생각해보니 괜한 질문이었군.
아니, 잠깐만.
그러면 그녀를 데려오려면 이 문제도 해결해야한다는 소린가?
갑자기 골치가 아파지는데.
“아마 자리는 없겠지만….”
“응?”
뭔가 작게 중얼거린 것 같은데?
“아, 아냐. 그냥 그렇다고.”
“흐음….”
뭐, 이 문제는 차차 고민해보자.
다음 화제는 뭘로 꺼내지 고민하던 와중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스스한 머리의 아린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아, 유니… 역시 여기있었군요… 하암….”
“아린? 더, 더 자고 있지 왜….”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유니가 움찔했다.
“저 원래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거 알잖아요.”
“아… 그, 그랬지.”
사이가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역시 아린을 보내길 잘한 건가.
“그보다 여기 있다는 건….”
“이, 이제 갈 거야.”
유니는 아린이 히죽 웃자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럼 이만….”
적당히 손을 흔들어 보내주었다.
“제가 괜히 끼어들었나요?”
“아냐, 나쁘지 않았어.”
어차피 할 말도 별로 없었고.
아린은 그대로 안으로 쏙 들어오더니 내 품에 안겨있는 세리아를 보고 입숙을 비죽 내밀었다.
“치사해.”
“내일은 교대시켜주지.”
“앗, 정말요?”
유니를 혼자 놔두지 않는 김에 겸사겸사 셋의 사이도 회복을 좀 시켜둬야지.
예전처럼 적개심이 강하지 않은 지금이 사이를 되돌릴 기회다.
***
그 뒤로도 나는 번갈아 그녀들을 유니의 천막에 보냈다.
처음에는 나와 떨어지는 걸 별로 반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 번 오가다보니 유니와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는지 그리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틀에 한 번은 나를 독점할 수 있기도 하고.
다음 마을에 들르는 동안 루엘라도 한 번 찾아왔었다.
저번처럼 우리를 죽이러들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왠지 언짢아하는 듯한 태도였다.
하긴, 자기 주인을 죽이러 가는 건데 기분이 좋으면 그것도 좀 이상하겠지.
물론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유니의 모습으로 온 시점에서 이미 답은 정해져있었다.
“왠지….”
“응?”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풀린 눈으로 말했다.
“당신이라면….”
부끄러운 건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는지.
그녀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크흐흐, 나라면 뭐?”
“…아니에요.”
“주인님으로 섬겨도 좋겠다는 말이겠죠, 그렇죠?”
“아니거든요!”
아린이 깐족거리자 루엘라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하아… 아니에요.”
결국 나를 끝까지 궁금하게 만들어놓고서 그녀는 가버렸다.
“뭔가 외로울 때만 와서 안기고 가는 거 같네요.”
“세리아도 그렇게 생각해요?”
둘은 서로 그렇게 말하며 쿡쿡 웃었다.
뭐,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딱히 별 일이 있지는 않았다.
유니를 조금 더 챙겨주고, 그녀가 조금 더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는 것 정도?
어느새 그녀의 위치는 용사와 우리 중간에서, 우리 쪽으로 더 많이 다가온 상태였다.
“정말 그런 게 좋은 거야?”
“유니도 알 것 같지 않아요?”
“아니, 전혀.”
유니가 아린이나 세리아와 말을 섞기 시작했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항상 혼자 지내게 된 유니는 에르티나와도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항상 혼자였다.
그러던 중 세리아와 아린이 꼬박꼬박 밤마다 찾아가 상대를 해주니, 더욱 그리움이 사무친 것이리라.
그녀의 마음은 조금씩 우리에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유니도 알고 있겠지만, 이건 본인이 막으려고 한들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
“아냐.”
내가 빤히 바라보자 유니가 나를 보고 물었다.
“너흰 정말 저런 남자가 그렇게 좋은 거야?”
“후후… 이제 와서 그런 걸 물으시나요?”
문득 유니가 이상한 질문을 했다.
“뭐, 확실히 주인님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
세리아의 말에 아린이 웃었다.
음, 부정은 못하겠군.
“그렇지만, 유니. 우리는….”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보고는 유니 귀에 무어라 속삭였다.
“읏….”
그러자 유니의 얼굴이 빨개졌다.
뭐야, 무슨 얘기야?
“주인님한테는 비밀이야.”
유니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뭐, 어차피 나쁜 말은 아닐 테니.
“너도 알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
“…벼, 별로 알고 싶지는 않네, 그런 거.”
그렇게 말하며 유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아직 그녀의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다음 날, 나는 유니와 함께 자고 온 세리아로부터 새벽에 그녀가 내 반지를 만지작거렸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래?”
“후후… 유니도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닐까요? 주인님이 무언가 해주시기를.”
“흐음….”
뭔가 계기가 있다면 다시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
이제 곧 마을이던가.
거기서 다시 시간을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잘했어. 그보다 새벽까지도 안 자고 있었던 거냐?”
“아뇨,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니가 일어난 것 같길래 덩달아 깼죠.”
유니도 자다가 일어난 모양이지?
꿈에서 무언가를 보고 일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들에게 유니와 꿈 얘기를 해본 적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꿈이요?”
“으음….”
딱히 특별한 얘기는 없었는지 그녀들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벽돌집 얘기를 했던 거 같기는 한데.”
“벽돌집?”
그 얘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다.
전에 유니의 꿈에서 봤던 집.
안쪽이 가려져 있고 에릭과 그들의 자식이서 지내던 꿈 속의 그 집도 분명 벽돌로 된 집이었다.
“그 얘기 하면서 또 뭐랬는데?”
“아무 얘기 안했어요.”
아무 얘기도 없었다라.
용사가 있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건가?
“네, 마치… 꿈에서 그것밖에 못 봤던 것처럼요.”
아무래도 이제 유니의 꿈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용사도, 그들 사이에 있기를 바라던 자식도 없다.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