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짐꾼] 외투
유니와 데이트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 세리아와 아린이 덥석 나를 안았다.
“뭐야, 갑자기.”
“잘 하고 오셨나요?”
“음… 아마도?”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이는 반지도 건네줬고, 본인도 꽤 고민하는 표정이었으니 무언가 성과는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축하드려요.”
그렇게 말하는 세리아는 살짝 기운이 없어보였다.
역시 삐진 건가.
지금 보니 아린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는 더 할 일도 없으니, 둘 다 옷 벗어.”
“아….”
“네!”
둘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슬슬 쌓인 것도 풀어야지.
나는 세리아와 아린에게 잔뜩 정을 쏟아주었다.
“하읏♥ 하으읏….”
“하아… 읏, 흐으으…♥”
***
다음 날, 다시 출발한 우리는 다음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마왕성까지 또 한 발 가까워지는 길이다.
용사는 그동안 계속 고민하는 것 같더니, 그 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조금은 나아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선두에 서서 파티를 이끌고 있었다.
결국 파티를 때려치울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뭐, 그렇게 되더라도 이상하지는 않겠거니 싶었지만 아무튼 계속 가겠다면 끝까지 따라가게 되겠지.
이제 와서 내가 빠지기에는 너무 멀리와 버리기도 했고.
유니는 용사의 뒤, 그러니까 우리와 그 사이에서 혼자 걷고 있었다.
원래는 저 위치에 에르티나가 있었는데.
지금은 유니와 에르티나의 위치가 바뀐 것만 같다.
결국 에르티나로 넘어간 건가?
딱히 둘 사이에 감정이 싹튼 건 아닌 것 같지만, 뭔가 기묘한 풍경이기는 했다.
아무튼 변화한 유니의 위치는 제법 좋은 일이다.
이제 우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니까.
“유니.”
“…왜?”
내가 말을 걸자 앞서가고 있던 그녀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힘들면 좀 쉬어가자고 하지 그래.”
“…읏.”
그녀의 모습은 꽤 피로해보였다.
사실 둘이 헤어진 그 날 이후로 유니는 늘 어느정도 피곤해보였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은데, 그녀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솔직히 어쩔 수 없이 보인다.
앞서나가는 용사는 과연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유니가 그의 앞에서는 멀쩡한 척을 하기 때문에 모를 것 같기도 하지만.
“잠깐 쉬어가지 그래?”
내가 앞에다 대고 소리치자 용사와 에르티나가 나를 돌아봤다.
용사는 잠시 에르티나와 한 마디 얘기를 하더니 결국 그대로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안 챙겨줘도 돼.”
“나도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유니는 조금도 내 말을 믿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홱 돌렸다.
잠시 뒤 지나치게 조용해진 것 같아 슬쩍 바라보니 자리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많이 피곤한가보네요.”
“이래서는 뭘 하지도 못하겠는데요?”
둘은 그렇게 말했지만, 뭐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그녀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는 것보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아, 주인님의 외투라도 덮어주는 건 어떨까요?”
“뭐?”
뻔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고개를 끄덕이자 아린이 내 외투를 벗기고 쪼르르 달려가 유니에게 덮어주었다.
“그러면 춥지 않아요, 주인님?”
세리아가 나를 걱정하며 그렇게 말했다.
살짝 춥기는 하지만 뭐….
“네가 덥혀야지.”
어차피 나한테는 몸을 덥혀줄 여자가 둘이나 있으니까.
“앗♥ 주인님….”
그녀는 내 손길에 미소를 지으며 내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아앗, 왜 세리아만!”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아린도 후다닥 달려와 내 반대편에 찰싹 달라붙었다.
“에르티나가 보면 안 되니까 곧 비켜.”
“네에.”
“저희가 보고 있을게요.”
둘은 그렇게 말하며 혹시라도 내 몸이 차가워질까 최선을 다해 부비적거렸다.
물론 자기들을 위해서기도 하겠지만.
잠깐의 휴식 이후, 파티는 다시 출발했다.
잠에서 깬 유니는 자기 몸에서 흘러내린 옷을 보고 의아해 하더니 내 쪽을 홱 돌아봤다.
나는 일부러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지금 그녀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네요.”
“고마워하는 거 같기도 하고, 투덜거리는 거 같기도 하고….”
어차피 내가 안 봐도 그녀들이 보고 있으니 상관없지.
이런 식으로 조금씩 마음을 기울게 하면 된다.
어차피 이제 임자가 없어진 그녀는 용사에게 쉽게 돌아가지도 못하니 남은 길이 별로 없다.
잠시 후 슬쩍 그녀를 봤더니 내 외투를 손에 걸치고 있었다.
계속 입고 있을 마음은 없는 듯 했다.
아마 계속 입고 있자니 눈치 보이고, 그렇다고 돌려주러 오기도 망설이는 것 같은데….
이러면 계속 들고 있게 해야겠네.
결국 유니는 저녁을 먹고 잠에 들 시간까지도 계속 내 외투를 들고 있었다.
용사도 도중부터는 그 사실을 눈치챈 것 같지만 지적하지 않았다.
지적할 명분이 없어서겠지.
막상 건네주려면 얼마든지 올 수 있는데도, 그녀는 불만스러워하는 얼굴만 할 뿐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유니는 우리가 천막 안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그것을 들고 있었다.
“유니도 천막에 들어가네요.”
슬쩍 바깥을 살피는 아린이 고개만 내민 채로 그렇게 말했다.
용사와 같이 자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에 마을에서 천막을 하나 산 모양인데, 혼자 쓰기에는 조금 컸다.
단순히 작은 게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외투는… 하읏♥ 가, 가지고 들어갔어요….”
보지를 슬쩍 만져주자 내 쪽으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계속 보고한다.
“쯉… 쮸읍… 더 기다리실 건가요?”
내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있던 세리아는 잠시 자지를 빨던 입을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손짓하자 다시 열심히 자지를 입에 물기는 했지만.
“흠… 뭐, 슬슬 뭔가 하긴 해야지.”
가만히 있어도 시간문제라지만 문제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지.
뭐가 좋을까.
내가 직접 들어가는 건 별로 좋은 생각 같지가 않은데.
“둘 중 하나가 가서 같이 잘래?”
“네?”
“으, 으음….”
둘은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하긴, 둘 중 하나가 가면 그 날은 아무 것도 못하는 셈이니까.
그럼 이유를 붙여줘야지.
나는 말했다.
“남아있으면 밤새 나랑 할 수 있겠군.”
“읏…!”
“앗….”
둘의 표정이 달라졌다.
좋아, 이래야지.
독점욕이 든 그녀들은 가벼운 내기로 유니에게 갈 인원을 하나 뽑았고, 결국 진 것은 아린이었다.
“하아… 뭐,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유니가 안 받아주면 어쩌죠?”
“안 그럴 테니 걱정 마.”
“당신한테 물은 거 아니거든요?”
“언제부터 이렇게 건방져졌대.”
세리아가 아린의 다리를 콕콕 찔렀다.
둘이 투닥거리는 것을 보며 나는 대답했다.
“뭐, 그러지는 않겠지만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돌아오고.”
“네!”
아린이 사라진 후, 세리아는 내 품에 기대어있다가 물었다.
“주인님.”
“왜?”
“…유니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뭐가 불안한데?”
그녀의 손이 내 가슴에 닿았다.
아무래도 내가 유니에게만 신경 쓰니까 조금 서운한 모양이다.
아린 때도 그랬을 테니 새삼 낯설지만은 않을 텐데.
“노예 주제에 이런 얘기하기 좀 죄송하지만….”
“말해봐.”
“유니한테는… 뭔가 조금 물러진 느낌이셔서….”
“그런가?”
딱히 바뀐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름 느끼는 바가 있겠지.
“아… 물론,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유니의 처우를 어떻게 하시든 저는 상관없지만….”
“마음에 안 드나?”
“아뇨, 저는 이미 당신의 소유물이니까요.”
세리아의 머리가 내 어깨에 얹혔다.
“저는 이미 결심했어요. 주인님에게 모든 것을 다 드리겠다고….”
“그랬지.”
“그러니까 주인님도 괜히 저희 때문에 고민하거나 그러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고민이라.
내가 그녀들 때문에 고민했다는 말인가?
“저희한테 그러셨듯이… 그냥 주인님이 내키는 대로 해주세요.”
분위기를 잔뜩 잡은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내 얼굴을 살폈다.
“크흐흐, 그렇게나 분위기를 잔뜩 잡고는… 귀엽기 그지 없구만.”
그녀를 침낭 위로 넘어뜨리자 세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하는 짓이 귀여우니 원하는 걸 하나 해주지. 뭘 하고 싶어?”
내 말에 세리아는 수줍어하며 말했다.
“…세게 안아주세요.”
나는 그녀가 바라는대로 해주었다.
“하으♥ …주인님….”
세리아는 내 가슴에 코를 묻고 잠시 그러고 있었다.
물론 그 뒤로는 평소와 같은 시간을 가졌고.
그녀의 안에 삽입한 채로 잠이 든 나는, 이른 아침에 별다른 이유 없이 눈이 떠졌다.
“흐으음… 으음….”
그녀는 아직 자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 기상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다시 잘까.
그렇게 고민하던 나는 문득 천막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하나 느꼈다.
아린인가?
잠시 앞에서 망설이던 그 인물은 곧 천막을 살짝 열고 안을 살폈다.
“뭐야, 그럴 거면 그냥 들어와.”
“읏….”
유니가 한 손에 외투를 든 채 천막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도, 돌려주러 왔어.”
“일단 들어와.”
유니는 잠깐 고민하더니 슬쩍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