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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202화 (202/236)

〈 202화 〉 [용사] 더 깊은 곳으로

우리는 에르티나를 길잡이 삼아 낯선 마족의 영토를 거침없이 나아갔다.

정령이 없다는 것을 빼면 주변 경관에는 그다지 큰 차이점이 없었다.

다만 가끔 텅 빈 마을이나 도시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허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안쪽에는 사람들도 있어요. 바깥쪽 도시들이 텅 빈 이유는 그들이 비교적 최근에 편입된 도시라는 점과 마족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죠.”

도망가거나, 저항하다 죽거나.

전자는 아직 어딘가에서 살아있겠지만, 후자는 그들의 항복 권유도 거절하며 끝까지 죽는 편을 선택했다.

“…엘프의 영역까지는 거리가 좀 남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시간문제겠죠. 하루라도 빨리 마왕을 처리하고, 그 뒤의….”

에르티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슬쩍 뒷말을 흐렸다.

“그 뒤의?”

“나중에 말해줄게.”

유니가 고개를 갸웃하자 에르티나가 그녀를 달랬다.

아직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라, 도대체 무엇일까?

이미 마왕에 대한 진실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진실이 남아있다고?

몇 가지 예상을 해봤지만, 어느 쪽이든 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라 그런지 그다지 충격적일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내가 쉽게 맞출 수 있으면 그게 왜 충격이겠는가.

에르티나가 적어도 나쁜 의도로 우리에게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녀가 마음을 굳힐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겠다.

“…그보다 유니,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거야?”

“네? 아, 아뇨, 그게… 그냥….”

뒤쪽을 흘끔거리던 그녀가 에르티나의 말에 흠칫 놀라며 손을 휙휙 저었다.

“역시 신경 쓰여? 한 번 더 말하고 와야겠네.”

“아, 아니에요!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유니가 에르티나를 말리는 사이, 나는 그녀가 왠지 모르게 나에게서 더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응?”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손을 잡았던 것 같다.

유니가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후후… 왜 그래, 갑자기?”

“좋을 때네요.”

“읏… 그, 그냥….”

부끄럽기는 했지만 놓지는 않았다.

놓아버리면 그녀를 다시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너무 과도한 애정행각만 부리지 마세요. 저들에게는 쓴소리를 하면서 당신들에게만 안 하면 형평성에 어긋나니까요.”

“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껴안고 키스하고 그럴 용기는 없다.

유니의 얼굴을 보니 살짝 아쉬워하는 듯 했지만, 에르티나의 말도 있고 하기도 부끄러우니 조금만 더 손을 잡고 있자.

“그럼… 계속 가죠.”

그렇게 우리는 또 마왕성에 한 발 다가선다.

***

“아마 이 다음부터는 슬슬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곳이 마지막 무인도시인 셈이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숙소에서 열쇠를 빌려 제멋대로 방을 사용했다.

여전히 도둑질 같다는 느낌이 들어 찜찜하기는 하지만….

“그냥 더 넓은 방을 빌리자. 뭐 하러 그렇게 좁은 방을 골라?”

“넓은 방?”

그러고 보니 나는 자연스레 좁은 2인실을 고르고 있었다.

더 넓은 방을 빌려도 상관없을 텐데.

실제로 제렌 쪽은 가장 넓은 방을 제멋대로 가져가버렸다.

어쩌면 왠지 모르게 주인 없는 방을 빌린다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 나도 모르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걸로 하자.”

유니는 내가 망설이는 사이 손을 뻗어 그 다음으로 넓은 방의 열쇠를 가져왔다.

“괜찮지?”

“아, 응….”

괜찮… 겠지.

“그럼 여러분, 저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스승님도 그냥 빈 방 하나 쓰시면 되지 않아요? 굳이 그렇게 다른 곳에 갈 필요가….”

“미안해요, 그러면 아무래도 제가 마음이 안 놓여서요.”

에르티나는 자신이 사천왕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실제로 하는 역할도 거의 없고, 그 자리 자체도 본인이 원해서 앉은 게 아닌데도 사천왕이 되어버린 자신은 우리들과 같은 곳에서 편히 잠들 수 없다는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 기분을 알 것도 같았지만, 솔직히 괜한 고집을 부리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모습에게서 유니의 모습을 겹쳐보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만약 저번 대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된다면, 저것이 유니의 모습일까?

먼 미래에서도 홀로 겉돌며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미래?

그런 미래는, 그런 미래만큼은 막고 싶다.

그래도 제렌의 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리아와 아린이 그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 나름 위로가 되었다.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그녀들끼리도 그를 어느 정도 제지할 수는 있겠지.

설마 갑자기 그가 마왕이 되어버린다거나 그런 미래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이만….”

“조심해서 가세요.”

우리는 그녀를 보내주고 방으로 올라왔다.

“와, 넓다!”

“이, 이런 방도 있었구나.”

가장 넓은 방과 두 번째로 넓은 방은 나름대로 특별한 손님들을 위한 방이었는지 분위기 자체가 다른 방들과는 달랐다.

누가 봐도 신경 써서 꾸민 티가 역력하다.

“이불… 은 일단 먼지부터 털어야겠네.”

“그러게.”

우리는 그동안 무인도시에 오면 항상 하던 대로 방문과 창문을 열고 가볍게 먼지부터 털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다보니 미세하게나마 먼지가 쌓여서 그대로 쓰기는 힘들었다.

파앙! 파앙!

창문에 대고 가볍게 이불을 털던 나는 왠지 등 뒤가 조용해진 것 같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니? 거기 있지?”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니?”

뒤를 돌아보니 활짝 열린 방문만이 있을 뿐, 유니는 이곳에 없었다.

“…유니?”

어디로 갔지?

불안한 예감이 들어 나는 이불을 내려놓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설마… 설마?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옆방인 가장 큰 방으로 향했다.

무언가 가느다란 신음이 나길래 귀를 대고 안쪽의 소리를 들어보았다.

“아극… 하읏…♥”

벌써부터 하고 있는 건가.

그나마 다행인 건 저 목소리의 주인이 유니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제렌은 저기서 아린과 관계를 맺느라 바쁘다는 소리일 테고, 유니가 어디 갔는지는 몰라도 그와 함께 있지는 않다는 말이겠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문에서 귀를 뗐다.

“뭐해?”

“흐악!”

어느새 세리아가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세, 세리아….”

“후후… 그런 취미가 생긴 거야?”

“아, 아냐!”

생각해보니 조금은 찔리는 말이지만, 우선 다급히 변명부터 했다.

“그, 그게 아니라 유니가 안 보여서… 어디 있나 찾고 있었어.”

“그거랑 우리 방 엿듣는 건 무슨 상관이야?”

“그게….”

혹시 유니가 여기 있을까봐… 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그녀의 외도를 묵인하고 있다는 꼴이 되니까.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녀들에게는 그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거라면 들어오지 그래?”

“자, 잠깐!”

안에 혹시라도 유니가 있으면…!

끼이익.

그녀가 반쯤 문을 열다 멈췄다.

“안 들어올 거야?”

“읏, 그게, 그….”

왠지 방 안이 살짝 소란스러운 것 같다.

“주인님, 저 들어갈게요? …흐읏.”

“…들어와.”

왠지 약간의 침묵을 두고 그가 대답했다.

끼익.

세리아가 완전히 문을 열 때까지 나는 제자리에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다.

유니가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만에 하나 저 안에 유니가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이윽고 활짝 열린 문 앞에는 조금 급하게 바지를 갖춰 입은 듯한 제렌과, 그의 다리 사이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아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바로 앞이 아니라 조금 옆에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저 반대편에도 마치 사람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둘이서 그에게 봉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렇지만… 안에는 아린밖에 없으니 아마 아닐 것이다.

“들어올래?”

“아, 아냐… 됐어.”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됐다.

나는 그들의 방에서 도망치듯 물러나왔다.

그렇다면 유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잠시 다른 방도 하나씩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우리 방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그녀는 방 안에 앉아있었다.

“유니?”

“에릭….”

어디 있다 온 거지?

나는 계속 복도에 있었으니까 그녀가 지나갔다면 아마 눈치를 챘을 텐데….

“미안, 나 찾아다녔지? 베개가 조금 더러운 거 같아서 다른 방에서 바꿔 가져왔어.”

“…그렇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베개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아마 유니는 몰랐던 것 같다.

이 숙소에서 특별한 방은 딱 2개밖에 없고, 그 방들의 베개는 다른 방의 베개들과 다르다는 것을.

방금 일반 객실의 문도 열어본 나는 알고 있다.

저렇게 화려한 베개는, 오직 우리 방과 그들의 방에밖에 없다.

다른 방에는 그저 밋밋한 누런 베개만 있을 뿐이다.

“아하하… 더러운 베개는 좀 그렇잖아, 그렇지?”

“응…. 깨끗한 게 좋지, 역시….”

유니의 반응을 자세히 살펴보니 약간 초조해하는 기색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설마, 나에게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은근하게 티를 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아보였다.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내가 알지 못하도록?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 흥분하고 있는 나 자신 또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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