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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201화 (201/236)

〈 201화 〉 [용사] 더 깊은 곳으로

나는 그녀가 정액 냄새를 풍기고 돌아와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숨길 수 없는, 누가 봐도 명백한 증거였지만 나는 입을 다무는 편을 택했다.

“에릭….”

유니는 대신 흥분한 내 자지를 보며 살짝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도와줄까?”

“아, 응….”

나는 내 자지를 상냥하게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사정하고 말았다.

찌익!

“앗, 옷에….”

유니는 당황하며 옷에 묻은 정액을 닦아냈지만, 사실… 내 정액은 그곳에 묻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아래에 묻어있지만, 양이 적어서 그런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유니는 열심히 내 앞에서 그 남자의 정액을 닦아내고 있었다.

“오늘은… 못 하겠지?”

유니는 금세 쪼그라든 내 자지를 흘긋 보며 그렇게 말했다.

최근에 그녀와 관계를 맺은 적이 별로 없는데, 오늘도 이렇게 넘어가는 건가?

요즘 그녀는 나와 몸을 섞는 것을 거의 피하는 것 같았다.

대체 왜?

혹시 자신이 더러워져서 나와 맺어질 수 없다거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설마 그가 나랑 하지 말라고 시켰다거나?

아니, 유니가 그런 말에 따를 리가 없다.

“유니… 그, 나는 항상 유니를 사, 사랑하니까….”

“응, 고마워.”

그녀는 담담하게 내 말을 받았다.

그리고는 뒤늦게 내 말의 뜻을 이해했는지 살짝 웃었다.

“그렇구나, 걱정된 거야?”

그녀는 자애로운 미소를 띠우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냥… 요즘 좀 피곤해서 그럴 힘이 나지 않았던 것뿐이야. 나한테도 에릭은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인 걸.”

“응….”

왠지 이렇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어머니가 자상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느낌.

왠지 묘하게 간질간질해서 나는 슬쩍 헛기침을 했다.

“그, 그보다… 유니가 나간 다음에 말이야….”

“아, 응.”

조금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돌린 화제였지만 유니는 순순히 내 말에 귀기울여주었다.

나는 세라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살짝 간단하게 요약해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역시 그렇구나. 그럴 거 같았어.”

“어? 그래?”

세라가 왔다갔다는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역시 정령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유니가 하는 말은 알고 있다가 아닌 그럴 것 같았다는 추측의 말이었다.

“계속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에릭을 힐끔거리던데.”

“그, 그랬어?”

“…설마 그 여자랑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아, 안 했어!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그나마 있었던 일도 그냥 세라의 장난이었으니까, 여기까지는 말 안 해도 되겠지?

“으음… 뭐, 좋아. 사실 여기에는 정령들이 없어서 나도 항상 다루고 있기가 좀 어렵거든.”

“아, 그랬지, 참.”

마족의 땅에는 정령이 없다.

아세일라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적어도 그 때와 지금의 유니는 많이 달랐다.

정령이 주변에 없다고 무력해지던 과거의 그녀가 아니다.

유니의 성장이 체감되는 한편, 그렇다면 더 이상 주변을 항상 보고 있을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짓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오늘은 이만 잘까?”

“그, 그럴까?”

내일쯤이면 에르티나도 도착하겠지.

그 때 다시 출발하도록 하자.

***

“우리랑 같이 다니겠다고?”

“네, 또 루엘라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요.”

에르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다.

나와 유니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제렌과 그녀들은 당연히 들은 적 없으므로 마음에 안 드는 듯 했다.

“에릭, 정말 괜찮겠어? 아무리 그래도 저 여자는….”

“나, 나는 괜찮아.”

“…나도.”

나와 유니가 곧장 동의하자 세리아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제가 강제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저는 그 자를 지키고자하는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실제로 그나마 남은 제약들도 이제는 모조리 풀렸구요.”

제약이라.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괴로워하며 마왕님이라고 불렀었지.

그녀에게 가해졌던 제약이었던 걸까.

“…이것도 마왕 본인이 스스로가 해제한 거예요. 끝이 가깝습니다. 루엘라가 어떤 식으로 방해를 해올지 몰라요.”

“으음….”

그들 셋은 잠시 자기들끼리 어색한 시선을 교환했다.

에르티나가 미심쩍다는 듯 그들을 바라봤지만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 또한 정령으로 우리의 감정을 읽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

유니가 그러하듯 그녀 또한 여기서는 힘이 상당히 제한될 테니까.

“흐음… 이런 곳에 힘을 낭비할 수는 없겠죠. 제가 길을 알고 있으니 마왕성까지 안내하겠습니다.”

“마왕의 부하한테 안내받는 것도 좀 이상한 기분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죽여 달라는 걸 굳이 거절할 필요도 없겠죠.”

에르티나는 그가 죽기를 바란다는 점에 대해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적어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세라와 동일한 것 같았다.

“뭐… 우리가 들었던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기는 하네.”

그리고 결국 그들도 에르티나의 합류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6인조가 되어버린 우리 파티는 선두에 나와 유니가 있고, 맨 뒤에 제렌과 그녀들이 따라오는 형태가 되었다.

그 사이에는 에르티나가 위치해 있었는데, 아마 일부러 그런 위치를 고수하는 것 같았다.

“당신들 자꾸 뒤처지잖아요. 빨리 따라오세요.”

“…네, 네.”

에르티나의 지적에 제렌과 장난을 치던 그녀들이 입을 비죽였다.

그래도 그녀가 있으니 저들이 조금 조용해졌네.

어쩌면 이제 유니에게 손을 대지 않을지도 모른다.

에르티나가 두 눈을 뜨고 감시하고 있는데, 설마 이런 와중에 그녀에게까지 손을 대지는 않겠지.

그러면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걱정….

기뻐해야 할 일인데, 왜 나는 아쉬움을 느끼는 걸까.

유니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내 성벽을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아쉬웠고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유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살짝 그녀의 모습을 훔쳐봤지만, 유니는 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괜찮은 거지?

그 남자에게 마음이 조금 넘어가버렸다거나, 그러지는 않은 거지?

***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저녁을 먹고 여기서 쉬었다가 가죠.”

에르티나는 마치 본인이 파티장인 것처럼 지시를 척척 내렸지만, 어차피 이쯤에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굳이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어머, 미안해요. 생각해보니 제 일이 아니었죠.”

그녀는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 챘는지 나한테 사과했다.

“예전에는 주로 제가 이런 역할을 맡았거든요. 왠지 그 때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그만….”

“아, 아뇨, 괜찮아요. 저는 신경 안 쓰니까요.”

“당신은 안 쓸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쓰니까요. 앞으로는 파티장인 당신이 해주세요.”

“아, 네….”

그녀는 조금 엄격한 구석이 있었다.

하긴, 그러니 유니를 그렇게 열심히 훈련시키는 것이겠지.

“유니, 자기 전에 시간 내서 연습하는 거 잊지 마요.”

“윽, 네….”

식사를 하다말고 유니가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당신들도 식사 시간에는 식사에만 집중하세요.”

“하아….”

에르티나 때문에 과도한 애정행각을 부릴 수 없게 된 그녀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랄까, 기강이 잡혀가는 듯한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 파티에는 이런 사람이 부족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많이 해이하네요. 이게 당신의 방침이라면 저도 과하게 간섭하지는 않겠지만….”

“아, 아뇨.”

이미 할 대로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내심 바라던 일이기도 했으므로 나는 몰래 그녀의 행동을 응원했다.

그렇게 간만에 평범한 식사를 마치고 불침번을 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에르티나가 그런 우리를 말렸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할 테니까.”

“네? 그, 그렇지만 에르티나 씨도 잠은 자야….”

“제 말에 조금 오해가 있었군요. 제가 아니라 정령들이 한다는 말이었어요.”

에르티나는 굳이 불침번을 설 필요 없이 우리 천막 주변에서 낯선 움직임이 발견되면 그 기척을 정령들로부터 전달받는 형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네? 자, 자면서 어떻게 그런 걸…?”

“아직 네가 정령과 하나가 되지 못해서 그래. 내가 너한테 신호가 가도록 연결해둘 테니 걱정 말고 푹 자.”

“그, 그런 게 가능하다니….”

유니는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일었다.

역시, 많이 성장하기는 했어도 아직 갈 길은 멀구나….

그러나 아마 유니가 저렇게까지 성장하지는 않겠지.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에르티나는 어쩌면 새로운 마왕 즉위를 막기 위해 그녀를 단련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우리는 더 이상 예전같은 의욕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큰 목표가 허무할 만큼 쉽게 이루어질 것이기에, 더 이상 이를 대비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나는 제대로 신성력을 다루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

“그, 그럼 나는 연습하고 올게.”

“아, 응….”

원래라면 같이 천막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유니는 에르티나의 등쌀에 떠밀려 결국 혼자 연습을 하러 가버렸다.

“미안해요. 제가 여러분의 사이를 방해했나요?”

“아, 아뇨. 그… 강해지면 좋은 거니까….”

하루 종일 이동하는데다가 정령을 다루기도 제한적인 지금 상황에서 에르티나도 그녀에게 대련 같은 격한 수련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마치 내가 신성력을 가만히 앉아 집중하며 연습하는 것처럼, 그녀도 나름대로 정령들과의 감응력 같은 것을 높이는 훈련을 하는 것 같았다.

“많이 허무하셨겠죠.”

“아, 그게….”

마왕에 대한 진실 얘기겠지.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저도 그 전까지는 제약에 묶여있던 몸이라….”

“그 제약이라는 건 역시 마왕이 걸었던 건가요?”

“네. 사천왕이 된 저에게 그가 건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죠. 자신에게 불리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하지만 규칙의 허점을 노려 그녀는 스스로를 봉인했다고 말했다.

“…설마 그렇게 변해버렸을 줄이야. 역시 시간이란 참 무섭군요.”

“그러네요.”

대체 얼마나 오래 살면 스스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나로서는 잘 상상이 가질 않는다.

“뭐,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는 마요. 애초에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마왕이 되겠다는 생각 같은 것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마왕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던 걸까.

하긴, 그런 자리에 덜컥 앉아버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 남자도 순순히 자기 의지만으로 앉은 것은 아니었지만요.”

“네?”

내 물음에 에르티나는 잠시 나를 바라봤다.

“세라는… 아직 이 얘기를 하지 않은 것 같군요.”

그러고 보니 그녀도 무언가 더 있다는 식의 암시를 했었지.

역시… 아직 더 남은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조금 고민되네요. 지금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이 맞는지….”

그녀라면 전부 다 말해줄 것 같았는데, 살짝 의외였다.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에르티나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참… 말하기가 좀 그러네요. 안다고 무언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 이야기라서요.”

“대체 뭐길래….”

왜 우리에게 호의적인 그녀까지도 도저히 말을 못하게 만드는 것인가?

“…생각을 좀 더 해보고 말씀드릴게요. 결심이 서면, 그 때 다시….”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더 방해하지 않겠다면서 물러났다.

에르티나는 굳이 천막에서 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대체 어디서 자려는 것일까.

“제 걱정은 굳이 안 하셔도 돼요. 아침에 다시 찾아올 테니, 그 때 다시 뵈어요. 유니도 곧 돌아오겠죠.”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유니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그들에게 간 것인가, 하고 불안해하던 와중 그녀가 돌아왔다.

제렌에게 안기고 왔다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시각이다.

“에릭, 나 왔어.”

“유, 유니….”

그녀의 행색도 멀쩡하다.

정말 별 일… 없었던 건가?

유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 옆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분위기가 많이 좋아진 느낌이야. 그렇지 않아?”

“응, 역시 에르티나 씨가 있으니 괜히 이상한 짓도 안하는 것 같고….”

확실히 그건 좋은 점이다.

좋은… 점일 것이다.

“그치? 나도 이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유니는 잠시 말을 흐렸다.

“나도… 나도 노력해볼게. 이대로 지낼 수 있도록.”

그렇게 된다면 아마 유니는 더 이상 그에게 가지 않겠지.

“에릭도 이제는 그렇게 무리해서 강해질 필요가 없잖아?”

“……응.”

그녀의 말은 온통 옳은 말 뿐이었다.

굳이 그들의 음란한 장난을 방치할 필요도 없고, 나는 이제 그렇게까지 강해지려고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심 지금 상황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이전처럼 돌아가기를 바라는 건가?

다시 유니가 그에게 넘어가버릴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것일까?

그건… 그건 싫다.

적어도 유니가 아직 그에게 넘어가지 않은 지금, 마지막으로 그녀를 붙잡아둬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순간 눈치 채고 말았다.

바깥쪽으로 향한 유니의 시선 끝에, 그 천막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방금 유니는 노력한다고 했다.

하지 않겠다거나, 그런 말이 아니라 노력해보겠다….

어쩌면, 이미 되돌리기는 너무 늦은 것 아닐까?

그런 불안한 생각이 마음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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