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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97화 (197/236)

〈 197화 〉 [용사] 마족의 영토

“마왕님께 당신을 보낼 수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깨무는 그녀는, 마왕의 명을 어겨서라도 마왕을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세라는 마왕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고, 에르티나는 그가 죽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를 제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를 방해할 인물은 루엘라가 유일했다.

여기서 그녀를 쓰러뜨리면 더 이상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기회다.

물론 이것이 기회가 될지, 아니면 패배해 끝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루엘라…!”

반드시, 쓰러뜨린다.

그녀의 신호를 받은 마물들이 우리에게 진격한다.

마족령에 들어온 지 10분도 채 못 되어, 우리는 전투를 시작했다.

***

“아린!”

“네!”

내 신호를 들은 그녀가 주변의 몬스터들을 단숨에 묶어버렸다.

“크읏… 세라…!”

세라가 아린에게 가르쳐준 운용법.

루엘라는 그녀의 기술에 고전하고 있었다.

애써 모아온 그녀의 마물들은 아린이 묶어버리고, 그렇게 묶인 마물들은….

“준비됐어!”

“좋아, 지금!”

세리아의 마법으로 단숨에 쓸려나간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덩이들이 마물들을 불사르고, 그들의 비명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잠시 그들의 괴로운 비명에 멈칫하지만, 여기서 머뭇거렸다가는 정말 우리들이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

어차피 저들은 적.

그들에게 일일이 동정할 필요는….

“집중을 못하시는 군요.”

퍼엉!

그녀를 둘러싸고 원형으로 무형의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잠시 정신을 팔던 나는 그대로 그녀의 공격을 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크윽…!”

“에릭!”

살아남은 몬스터들을 처리하던 유니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마족의 영토라 정령을 부리는 데 제한이 걸려 그다지 큰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활약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에르티나 덕분이겠지.

“괘, 괜찮아! 나는 신경 쓰지 마!”

“그치만….”

“괜찮아!”

지금 그녀들 셋은 마물들을 막고 있고, 나 혼자 루엘라와 대적중이다.

사실 지금 상태로는 그녀를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그녀들이 도와줬으면 싶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공백이 발생할 것이다.

적어도 마물들을 전부 처리할 때까지는 나 혼자서 버텨야 한다.

“확실히 점점 강해지고 있군요.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루엘라를 이길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닌 모양이다.

나 혼자로는, 도무지 그녀를 이길 수가…!

“당신은, 왜 마왕님을 쓰러뜨리려고 하죠?”

“왜냐니… 그야….”

그것이 내 사명이니까.

“제대로 생각해본 적은 있나요? 왜 본인이 그런 임무를 맡게 되었는지?”

“그런 거….”

생각해본 적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마왕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만은….

“당신은 그런 마음고생을 해가면서까지 마왕님을 죽이려 하는 거죠?”

“읏….”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내가 용사가 되지만 않았더라도, 세리아나 아린을 빼앗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녀들을 알지도 못했겠지만, 나 혼자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좌절하는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유니를 이렇게 다른 남자의 손에 넘기게 되는 일도….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녀를 데리고 도망가세요.”

“…안 돼.”

확실히 그녀의 말에 잠깐 흔들리기는 했지만, 고작 그런 말에 넘어가지는 않는다.

나는, 여기서 확실하게 그녀를 쓰러뜨리고 간다!

“…좋아요, 그럼 여기서 끝을 내죠.”

“읏….”

바라던 바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났다.

신성력을, 더 강하게!

내가 쥔 검에 흰 불꽃이 일었다.

신성력이 불꽃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검에 서린 그 힘을 보고 루엘라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그건….”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그녀는 마치 익숙한 것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내 검을 바라봤다.

“더더욱 당신을 보낼 수 없게 되었군요.”

어쩌면, 이건 과거의 용사가 쓰던 기술일지도 몰랐다.

나와 그는 어딘가 닮은 점이 많아보였으니까, 이런 식으로 비슷한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지.

어느새 그녀와 나 주변에는 더 이상 마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전부 처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읏….”

“끝이야, 루엘라.”

이제는 나와 그녀만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들과 그녀의 싸움이 되었다.

“…루엘라.”

“이제 그만 포기하시고….”

“닥쳐….”

확실히 궁지에 몰린 것인지 루엘라의 표정이 안 좋다.

생각해보면 조금 다급해보이기는 했다.

그녀치고는 엉성하달까, 마물들도 급하게 데려온 것인지 통일성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쓰러뜨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녀의 공세를 꺾었다.

“…이렇게 된 이상, 죽여서라도….”

그녀가 섬뜩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는 흑마법이 있다.

사람의 생명을 이용하는 어둠의 마법.

그것을 우리에게 쓸 생각인 걸까?

지금까지 쓰지 못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마왕의 명령을 나름대로 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자, 그녀는 각오를 다진 모양이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마왕님만큼은…!”

“에릭!”

그녀가 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 손에 일렁이는 검은 기운은, 분명 흑마법이다.

어떻게 피하지?

그냥 그녀의 손길을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나는 그녀의 손길을 피해 옆으로 이동했다.

“피할 수 없어요. 이건 반드시 상대를 맞추는… 윽…!”

손을 다시 나에게 뻗던 그녀의 움직임이 순간 굳었다.

“…당신이…?”

루엘라가 아린을 돌아봤지만,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루엘라를 쳐다볼 뿐이었다.

무슨 일이지?

마치 동작이 굳어버린 듯한….

“루엘라, 마왕님의 명령이 우습게 들리시나요?”

“…세라.”

마물들의 시체를 넘어, 세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를 묶은 건가요, 지금?”

“마왕님이 이런 짓을 허가하시지는 않았을 텐데요.”

“…….”

루엘라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당신의 생각은 이해해요. 그렇지만… 그것이 그 분의 바램이에요.”

“그런 거…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분노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세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잠시 머리 좀 식히고 계세요.”

그러더니 그녀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여러분. 루엘라가 잠시 폭주해서 제멋대로 일을 꾸몄네요.”

“으, 으음….”

적에게 이런 사과를 받다니.

조금 미묘한 기분이다.

“루엘라, 이러시면 마왕님도 가만히 계시지는 않을 거예요.”

“…알아요.”

묶인 동안 잠시 진정한 것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침착해져 있었다.

“이제 풀어주시죠.”

“이상한 짓 안 할 거죠?”

“…알았으니까.”

세라가 가볍게 손짓하자 루엘라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팔과 다리를 가볍게 움직이며 몸을 잠시 풀면서 우리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바라봤다.

“당신도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정말로 마왕님을 해치는 것이 옳은….”

“루엘라.”

“후우….”

세라의 경고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당신은….”

이번에 그녀가 바라보며 말한 것은 제렌이었다.

“…나중에 보죠.”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더 말을 잇지 않고 돌아갔다.

루엘라가 사라지자, 잠시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세라는 우리를 보며 싱긋 웃었다.

“다치신 부분은 없죠?”

“친한 척 하지 마.”

괜히 심술이 난 세리아가 팔짱을 끼며 그렇게 말했지만 세라는 능청맞게 그녀의 말을 받아넘겼다.

“여러분은 마왕님을 위해 꼭 필요하신 분들이니까, 함부로 다치거나 하면 곤란하거든요. 안 그래요?”

“…….”

마치 마왕을 위한 도구가 된 느낌에 우리 모두가 불쾌함을 느꼈다.

“후후, 불쾌하신가요? 그렇지만 이해해주세요. 마왕님도 결국에는… 아, 아직은 조금 이른가?”

세라는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하며 입가를 손가락으로 가렸다.

“모처럼 이렇게 됐으니 잠시 안내라도 해드릴까요? 놀랍게도 이곳에도 마을이 있답니다.”

“그런 거 필요 없어.”

“정말로요?”

사실, 약간의 휴식이 필요하기는 하다.

갑자기 이런 전투를 치르게 되어 다들 조금 지친 상태.

그렇지만 과연 그녀를 믿어도 될지….

“자, 그럼 출발하죠. 제가 좋은 마을로 안내해드릴게요.”

아니, 이제 와서는 의미 없는 질문이다.

적어도 그녀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을 테니까.

우리는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한 때 인간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이 텅 빈 마을이었다.

“여기 살던 인간들은 다 죽었어요. 저희들은 딱히 그럴 생각도 없었는데, 제멋대로 오해해서 끝까지 저희와 싸우는 편을 선택하더군요.”

“…죽였다는 사실은 그대로잖아.”

“음, 그렇기는 하죠.”

우리를 이런 곳으로 안내한 건가?

이런 곳에서 쉬라니, 아무리 그래도 좀….

“여관도 있어요. 물론 주인은 없으니 마음껏 써도 된답니다.”

여관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당연히 우리에게 방을 안내해줄 사람도 나오지 않아, 우리는 조금 불편한 어색함을 느끼며 머뭇거렸다.

“후후, 다들 겁쟁이시네요.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은 없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카운터로 다가가 2인실 방과 3인실 방을 빌렸다.

“자, 여기요. 이렇게 나눠주면 되는 거 맞나요?”

그녀는 열쇠 하나는 나에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니에게 건네주었다.

“왜 나에게…?”

“어머, 남자 방과 여자 방으로 나누는 거 아니었어요?”

“윽….”

이 여자, 분명 일부러 그런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재밌다는 듯 웃는 그녀의 얼굴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가 가져갈게.”

그렇게 말하며 세리아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 놓인 열쇠를 탁 가져갔다.

“가죠, 주인님.”

그녀들과 제렌은 먼저 방으로 올라갔다.

남겨진 우리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방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왜….

“왜 따라오는 거야?”

“안 되나요?”

루엘라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걸까?

“아, 혹시 제가 있어서 부끄러운 거라면 저는 없는 셈 쳐주셔도 좋아요.”

“윽… 누, 누가 그런데?”

어차피 요즘에는 한 적도 없고….

“빨리 돌아가.”

“너무하시네. 제가 여기까지 안내해 드렸는데.”

유니는 거의 강제로 그녀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정말로 남고자 하는 거라면 버틸 수도 있겠지만, 세라는 정말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순순히 그녀에게 떠밀려 밖으로 나갔다.

“후후… 그럼 이따가 봐요.”

유니가 문을 세게 쿵 닫았다.

“하아… 대체 뭐야, 저 여자?”

“그, 그러게.”

도무지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는 여자다.

유니는 그 뒤로도 잠시 문밖을 힐끔거리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에릭….”

“응.”

그녀는 살짝 안절부절한 얼굴로, 그렇지만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 할래?”

“지금?”

나야 좋지만… 갑자기 왜?

나는 굳이 그녀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하아, 하아….”

“후우, 후우….”

유니는 정사를 마친 내 몸 위에 올라와 잠시 누워있었다.

가슴에 귀를 댄 그녀에게는 내 심장박동이 들리겠지.

살짝 두근거리며 뛰는 그 연약한 박동이.

“…역시 부족해?”

“읏, 아, 아냐….”

“나는….”

유니는 잠시 무어라 말을 하다가 입을 웅얼거리며 다시 다물었다.

무언가 아쉬워하는 그녀의 반응을 보며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 나는 잠시 쉬고 있을게. 그러니까….”

“…그럼 나는 잠시 나갔다 올까?”

“읏….”

유니는 내 말뜻을 이해하고서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에릭.”

유니는 옷을 대충 걸쳐 입으며 말했다.

“…나는 에릭을 사랑하니까.”

“유니….”

뒤돌아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갔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왠지 그녀의 말이, 내가 아닌 그녀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 살짝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똑똑.

유니가 벌써 돌아온 걸까?

그녀가 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노크소리가 들렸다.

“유니?”

“앗, 기대하셨나요?”

그렇지만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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