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용사] 둘의 거리
유니가 돌아왔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흥분해버렸다.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온 것일까?
그 동안…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유니는 멈칫거리더니 나를 보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렇구나.”
“아, 아니, 이건….”
읽었을까? 아마 읽었겠지.
내 감정을 읽고 실망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해버린 나 자신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그딴 더러운 상상으로 흥분해버려서는…!
“에릭, 혹시 지금… 아니야, 밤에 하자.”
유니는 불안한 듯 나를 보며 말했다가 급히 말을 바꿨다.
“아, 알았어.”
사실 지금 당장하자고 하면 나도 할 자신이 없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라면 나도 최선을 다해 그녀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유니도 그래서 밤에 하자고 한 것일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춰서?
“오늘… 나랑 같이 잠깐 나갔다 올래?”
“으, 응.”
거절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나는 유니와 함께 외출했고, 도시 곳곳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유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했지만, 오늘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유니가 물었다.
“에릭, 지금 행복해?”
“…….”
축제가 끝난 다음 날의 분위기는 조금 어수선했다.
미처 다 치우지 못한 축제 장식물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사람들은 어제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제의 열기가 모조리 빠져나간 상태였다.
술 한 잔에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차갑게 식어버리고, 그 자리에는 후회만이 가득 찼다.
나는 유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었고 또 그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유니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유니가 먼저 그를 유혹하지는 않았을 테니, 분명 그가 또 무슨 농간을 부린 것이리라.
유니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뿐이다.
그러면, 그러면 나는 당연히 분노해야하지 않는가?
왜 가만히만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며 고뇌하는 지금은 결코 행복하다 부를 수 없으리라.
“나는, 에릭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나도 유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유니를 위해 아무런 말도 못해주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뒷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나중에 마왕을 쓰러뜨리면 말이야.”
유니는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며 앞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보상을 엄청 많이 받겠지? 어쩌면 작위 같은 걸 받을지도 몰라.”
우리가 귀족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명예겠지만, 어째서인지 이 말을 하는 유니는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역시 도시보다는 우리 마을 같은 곳이 더 좋아. 그러니 나는 보상이 나온다면 금을 조금 받고 고향으로 다시 내려가고 싶어.”
그것은 유니가 품고 있던 소망이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나도… 유니를 따라갈게.”
“이번에는 에릭이 나를 따라오는 거네? 아하하….”
유니는 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용사로 선택받은 나를 유니가 따라왔듯, 내가 용사가 아니게 된 순간에는 내가 유니를 따라가리라.
우리 둘의 관계가 지금처럼만이라도 남아있다면 나는 무조건 그럴 생각이었다.
“…에릭이 나랑 같이 돌아간다면 말이야, 축제를 벌이자.”
마왕을 토벌하고 돌아온 우리 둘이다.
분명 마을 사람들도 기뻐하며 우리를 반겨주겠지.
“그리고 그 축제에서 발표하는 거지. 나와 에릭은 부부가 되겠습니다, 하고.”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춰섰다.
지금 이 말은….
“어때?”
유니가 나를 돌아봤다.
위태로워 보이는 그 미소는, 그럼에도 밝고 눈부셔보였다.
나는 유니의 마음속에 있는 한 줄기 따스한 희망을 보고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응, 꼭 그러자.”
“응, 반드시….”
내가 뻗은 손을, 유니는 마주잡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손에서 익숙한 반지를 발견했다.
어디에서였더라, 그녀에게 선물했던 반지다.
머나먼 어느 곳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지를 주는 풍습이 있다고 그랬지.
그 날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반지를 끼고 다니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나는 어째서인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에릭!”
유니가 다급히 달려와 나를 안았다.
“…미안해.”
“아냐, 사과하지 마, 에릭.”
나는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안, 정말 미안해….”
“…….”
그런 나를 유니는 말없이 가만히 껴안아주었다.
눈물이 말라 더 이상 흐르지 않을 때까지.
“…돌아가자.”
“응….”
우리는 손을 잡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다시 그녀의 장밋빛 미래를 들으면서 우리는 밤을 맞이했다.
유니를 위한 밤을.
“유니, 이제….”
나는 각오를 다지고 그녀를 불렀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녀를 만족시켜야 한다.
유니가 나에게서 불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반드시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만 한다.
내가 그녀의 어깨를 잡자, 유니는 살짝 망설이는 눈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나는 유니의 옷을 하나씩 벗겨냈다.
가장 먼저 웃옷이, 그리고 그녀의 스커트가, 속옷이 바닥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무렇게나 둘 수는 없어 나름 최대한 정리하며 두었다.
그리고 나는 유니와 함께 침대에 누워 그녀의 몸을 어루만졌다.
“읏….”
유니를 만족시킬 손기술 같은 것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정성껏 그녀의 몸을 만져주는 것 뿐.
나는 최대한의 노력을 담아 그녀를 만족시켰다.
“…….”
유니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아쉬움과 슬픔이 공존하고 있었다.
“역시 아니구나….”
그녀가 중얼거린 말은 무엇을 뜻하는 지는 잘 몰랐지만, 그리 좋은 뜻 같지는 않았다.
“유니, 시작할게.”
“…응.”
나는 조금씩 유니에게 삽입하며 최대한 그녀가 만족할 수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녀의 반응이 좋았던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그 때의 반응을 재연하려고 했다.
“으응… 읏….”
유니의 입에서 아주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더 열심히 움직였다.
“후우, 후우….”
역시 부족했던 걸까?
유니는 그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꺼림칙한 기분이라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녀의 목 뒷부분을 어루만지며 유니를 흥분시켰다.
“아흣…♥ 거, 거기는… 흐읏….”
역시 유니는 여기가 약하구나.
그녀도, 나도 몰랐던 이 약점을 그는 어떻게 안 것일까.
나는 그가 친절하게 가르치고 개발한 그녀의 약점을, 그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하읏… 읏… 으응….”
유니가 조금씩 나에게 안겼다.
그가 남긴 것을 이용하는 느낌이라 기분은 조금 나쁘지만, 이것이 아니고서는 나는 유니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다.
지금은 수단을 가릴 때가 아니다.
이런 것이라도… 유니가 기뻐한다면.
나는 그녀의 목 뒤를 집요하게 노리면서 유니가 흥분하도록 도왔고, 그녀의 반응이 고조될수록 나도 더욱 흥분했다.
“하아, 하아… 유니, 나 이제….”
“흐읏… 응…♥ 조, 좋아….”
나는 그녀에게 허락을 맡고 넘쳐흐르는 사정감을 그녀의 안에서 해방했다.
찌익, 찍!
“…흐읏.”
유니의 몸이 살짝 떨렸지만, 흥분으로 인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사정의 여운에 잠겨 잠시 그녀의 안에 넣은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에릭, 한 번 더 할 수 있어?”
“…해볼게.”
노력했지만 나는 2번이 최대였다.
두 번의 사정을 마치고 그녀 옆에 눕자 유니가 슬쩍 나에게 어깨를 내밀었다.
“…해도 좋아.”
그러나 나는 왠지, 그녀의 목을 문지르며 흥분케 했던 사실이 떠올라 잠시 망설여졌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 의해 만들어진 그녀의 육체.
왜인지 그녀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선뜻 그녀의 어깨를 깨물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알았어.”
유니는 그런 내 심정을 눈치 챈 것인지 내밀었던 어깨를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내 것이라는 표식을 남기기에는… 그녀의 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너무나 부족했다.
“에릭.”
“응.”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유니가 말을 걸었다.
“…내일 다시 출발하자.”
“응….”
이 도시에 더 오래 남아서 좋을 것 하나 없다.
나도 유니의 말에 동의했고, 우리는 다음 날 이 도시를 뒤로 했다.
어쩌면 가장 중요했을 순간을 그곳에서 얻지 못한 채로.
그리고 다음 날, 천막을 치고 저녁을 먹은 뒤 유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먼저 잘래? 나는 조금 이따가 들어갈 테니까.”
“읏….”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은, 우리의 천막이 아닌 다른 천막을 향해 있었다.
“에릭, 정말 가지 말라고하면 나는….”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알았어.”
그것은, 잠시 가까워졌던 우리들의 거리가 다시 멀어지는 소리였다.
문득 바라본 내 팔에는, 이전보다 약간 작아진 듯한 장미가 한 송이 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