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용사] 행동하는 유니
다음 날 저녁, 방에 돌아온 유니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읏… 흐응… 그, 그렇구나….”
“유니?”
마치 부끄러운 것을 보듯, 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고 있다.
이제와서 서로의 몸을 보고 부끄러워할 시기는 지났을 텐데.
“왜 그래?”
“응? 아, 아냐…! 별 거 아냐!”
누가 봐도 무언가 있는 표정인데.
나는 그녀에게 우리는 서로 비밀을 갖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건 나였으니까.
나의 뒤틀린 성욕.
그것만큼은 차마 유니에게 말할 수 없다.
나는 결국 약속을 어기고 유니에게 입을 다물고 말았고, 유니는 내가 숨기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녀를 추궁할 자격은 없겠지.
내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유니가 살짝 당황했다.
“에릭, 혹시 내가 말 안 해서 실망한 거야?”
“아, 아냐.”
아니라고는 하지만 약간은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는 그녀에게 얘기를 해주지 않는데 그녀는 나에게 얘기해주기를 바라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이기적인 말이었다.
“그게… 그냥 스승님한테 새로운 기술을 배웠거든.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만….”
“…그런 거야?”
유니는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물론 전부 다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그 기술을 배운 것과 나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왜 그 기술이 무엇이길래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는지.
그렇지만 나는 그 모든 의문을 그대로 목구멍 뒤로 삼켰다.
“응… 아마 내일쯤이면 적응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대체 무슨 기술이길래?
그보다 적응한다는 것은 지금도 쓰고 있다는 건가?
나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지만 딱히 특별한 것은 느끼지 못했다.
“그, 그보다… 오늘도 할 거지?”
“아… 응.”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엘라에게 패배한 이후, 왠지 유니와 관계를 맺을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유니가 싫어졌다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과 그걸 위한 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머릿속을 떠다닐 뿐이다.
이것보다 더 흥분되고, 더 강해질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있는데,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또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그녀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이렇게 자꾸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면 어느새 흥분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몸이 식어버리는 것이다.
“…하기 싫으면 억지로 안 해도 돼.”
유니가 조심스레 말하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 아냐!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응.”
유니는 미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열심히 해야지.
유니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갖고 유니와 몸을 섞었지만, 그녀의 반응은 여전히 미묘했다.
“에릭… 기분 좋았어?”
“응? 아… 응.”
평소에는 내가 아니라 본인의 감상을 얘기하는데.
이날은 어째서인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내 몸을 빤히 쳐다보면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짓말.”
목소리가 작아서, 나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
아침에 눈을 뜨니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어제 너무 무리한 걸까?
딱히 차이는 없었던 것 같은데.
유니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아마 에르티나를 만나러 갔겠지.
나는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잠시 마른세수를 했다.
이래도 여전히 피곤하네.
이대로는 연습하다가 잠들어버릴 것 같다.
바깥바람이라도 조금 쐬면 나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겸사겸사 유니도 만날 겸 해서 숙소 밖으로 나왔다.
앞마당에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왔지만 의외로 그곳에는 에르티나 혼자만 남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왜 그녀 혼자만 여기에 있지?
“오늘은 유니의 부탁으로 연습을 쉬기로 했어요. 잠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랬거든요.”
“네?”
마음을 정리해…?
왠지 그 말에서 불안한 느낌이 났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신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던데요. 혹시 싸우셨나요?”
“서, 설마요.”
유니와 내가 싸워?
그럴 일은 없다. 만약 있다면 내가 먼저 사과를 하겠지.
“뭐, 사이좋은 연인이라도 고민할 일은 있는 거죠.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아, 네….”
그렇지만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보다 이런 아침부터 무슨 일이시죠? 잠에서 깨려고 나오신 건가요?”
“아… 그렇죠, 뭐.”
적당히 그녀의 말을 맞추고 있으니 내 대답이 성의 없다는 것을 에르티나도 느낀 것 같았다.
“그렇게 걱정되시나요?”
“아… 죄, 죄송합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었으니 화가 났겠지.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지만 에르티나는 그것 때문에 언짢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유니를 믿어주세요. 그녀는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 그렇군요.”
그렇지.
유니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으리라.
그런 확신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후후… 역시 사이가 좋군요.”
에르티나는 내 모습을 보며 슬쩍 웃었다.
그녀의 웃음을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어쩌면 저와 그도 이렇게….”
“네?”
“아, 혼잣말이 나왔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왠지 더 듣고 싶은 내용이지만 그녀에게 묻는 것은 실례겠지.
“궁금하다는 표정이네요. 정말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옛날 생각을 했을 뿐이죠.”
“옛날이라면….”
“네, 저와 당신 이전의 용사님이 연인 사이였던 그 시기의 일을요.”
그녀도… 용사와 연인이었구나.
왠지 용사와 정령사라는 연인 관계가 이전 대부터 계승하듯 이어진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과 유니를 보고 있으면 저와 용사님이 생각나요. 정말 놀랍도록 비슷하거든요.”
“그렇… 군요.”
잠시 우리를 보며 과거를 추억하던 에르티나는 슬픈 미소로 그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저희와 같은 길을 밟지 말아주세요.”
“아….”
용사 파티였던 자들이, 지금은 용사 파티의 적이 되어 우리들을 가로막는다.
우리의 모습이 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에르티나의 말은, 우리 또한 자칫 잘못하면 똑같은 결말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유니와 싸우지도 말고, 그녀를 오해하지도 말아주세요. 유니는 항상 당신을 위해 행동하니까요.”
“네….”
여러모로 선배라고 할 수 있는 그녀에게 들으니 뻔한 말에서도 무게가 느껴진다.
살짝 기분이 풀린 나는 그녀와 잡담을 잠시 나누었다.
생각해보니 그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대화는 자연스레 유니가 배웠다는 신기술로 넘어갔다.
“음… 신기술 말이죠.”
에르티나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했다.
왠지 묻지 말아달라는 반응 같은데, 이런 반응까지 보면 더더욱 신경이 안 갈 수가 없다.
혹시 뭔가 위험한 것이라도 배운 걸까?
“그런 건 아닌데, 음….”
에르티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가르쳐준 것은, 상대의 감정을 읽는 방법이에요. 정령을 통해 대상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 그것으로 감정을 읽어내는 방법이죠.”
“그, 그런 게 가능하다구요?”
“물론 정령과의 교감이 어느 정도 가능해야지만 배울 수 있지만… 유니가 너무 간절하게 부탁하길래 간단한 것만 몇 가지 가르쳐줬죠. 실망, 기쁨, 초조 같은 것들요.”
감정을 읽는다… 그런 것을 왜?
문득 어제 유니가 보였던 이상한 태도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녀의 태도에 살짝 실망했다는 사실도 바로 눈치챘었지.
역시 그것도 이 기술로 읽어냈던 걸까.
대체 왜 이런 걸 배웠지?
이러면 앞으로는 그녀에게 사실을 숨길 수가 없어진다.
이대로라면 차마 밝히지 못할 내 취향까지도 들켜버리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해서는 숨기지 않는 편이 좋아요. 차분하게 얘기하면 분명 그녀도 이해해줄 테니까요.”
“…네.”
그야 나도 평범한 취향들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고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 내 취향은 상대에게 절대 말하지 못할 부류의 것이 아닌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얘기를 에르티나에게 할 수도 없고, 그냥 묻어둬야겠다.
에르티나와 잠깐의 담소를 마치고 방에 돌아오니 유니가 이미 방 안에 앉아있었다.
“엇, 어디 있다 온 거야?”
“잠시 산책 좀 하다 왔어. 오늘은 조금… 컨디션이 안 좋은 거 같아서.”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적어도 겉보기에 그녀의 몸상태는 멀쩡해보인다.
유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에르티나에게 배웠다는 그 기술이 생각나 나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가, 그녀에게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왜 그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유니가 숨기고 싶어 했던 비밀은 이것이겠지.
그렇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숨길 필요가 있었나?
내 마음을 읽히는 것 같아 그리 반갑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말했으면 이해해줬을 텐데.
이게 그렇게까지 나에게 감추어야만 하는 비밀인가?
하긴, 내가 기분나빠할 것을 알고 감추려한 지도 모르겠다.
그럼 왜 그걸 알면서도 이런 짓을?
생각이 복잡하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티를 많이 낸 모양이다.
유니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니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 있잖아, 에릭.”
“응?”
“루엘라와… 상대한 날 밤에 말이야.”
“응….”
그녀에게 패배했던 그 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안 좋아질 것 같다.
“더 강해져야한다고 그랬지?”
“응….”
더 강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큰 흥분을 느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거, 지금 이대로는 부족한 거지?”
“…뭐?”
유니가… 그 비밀을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