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용사] 자각
“그럼, 갔다올게.”
“혹시 나도….”
“응?”
“아, 아냐. 잘 갔다와.”
나는 의아해하는 유니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잠시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그러면 이 순간이 깨질 것만 같았다.
유니가 숙소 밖으로 나가고,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섰다.
이미 내가 갈 곳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 걸음에는 막힘이 없었다.
쭉쭉 나가가던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 쯤 속도를 낮췄다.
“멍… 멍! 멍멍!”
“크흐흐, 이것도 먹어라.”
이제는 명물 아닌 명물이 된 아린이 바닥에 떨어진 고기조각을 입으로 주워 먹었다.
영락없는 개의 몰골이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서 가장 흥분하는 것 같았다.
세리아는 아린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애완견에게 나쁜 마음을 품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녀들과 마주치면 곤란하므로 나는 슬쩍 인파 사이에 숨어들었다.
잠시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므로 착각일 것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린은 보러 몰려온 사람들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 일부는 다른 목적을 위해 이곳에 있었다.
“나가자.”
“네에.”
가게 문이 열리고, 두 남녀가 팔짱을 끼며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뒷모습.
제렌과 유니다.
이 유니의 정체에 대해서는 우선 묻어두기로 했다.
이제와서 그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제렌이 나오자 세리아는 반색하며 팔짱을 풀고 목줄을 잡아당겼다.
“쮸읍, 츕… 키힝!”
개처럼 혀를 할짝이며 고기를 핥던 아린은 갑자기 목이 조이자 신음소리를 내며 세리아 곁으로 달려왔다.
물론 네발인 채다.
“가자, 멍멍아.”
“멍!”
자연스레 인적 드문 골목으로 향하는 그들의 뒤를 쫓아, 한 노예와 한 마리 개가 따라가기 시작했다.
인파들은 짧은 축제가 끝나고 흩어졌지만 그 중 몇몇은 눈을 빛낸 채 슬그머니 그녀들의 뒤를 쫓았다.
그 속에는 나도 있었다.
“…자주 뵙는구만, 형씨.”
“…….”
그 중 한 녀석이 아는 체를 했지만 인사를 받아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입을 다물고 그녀들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뒤를 밟았다.
“못 들어오게 잘 막아.”
“네.”
“멍!”
익숙한 골목.
그곳에서 제렌은 유니의 어깨를 잡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그 앞을 세리아와 아린이 막아섰다.
그러나 그녀들이 통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골목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뿐.
그 옆에서 몰래몰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제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방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주변에 몰린 사람들은 골목길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잘 들리는 위치에 앉아 침을 꿀꺽 삼키며 기다렸다.
“…흐읍.”
마침내 유니의 신음이 들렸다.
사람들의 신경이 온통 벽 너머로 향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제길… 왜 몰려드는 거냐고….
“흐그읍♥ 하읏, 읏… 괘, 괜찮아요.”
찌푹찌푹!
“끄읏♥ 흐읏… 흐윽, 윽… 조, 좋아요….”
부끄러워하며 솔직한 감상을 말하는 유니.
그녀의 순수한 반응에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슬그머니 다리 사이를 감췄다.
흥분하지 말라고….
“자, 자지…! 기, 기분 좋아요…♥”
주변 사람들이 유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흥분할 때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너희를 위해 이러는 게 아니야….
그 더러운 귀로 유니의 목소리를 듣지마!
유니를… 유니를 욕보이지마!
그녀는, 그녀는 나만의….
“후욱, 후우….”
“흐흐… 오늘도 참 좋구만….”
그녀들이 유니의 신음을 들으며 평가할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싶었다.
이들과 함께 앉아있으면 마치 내가 그들과 동급의 인간이 되는 것 같았다.
유니를 만져볼 수도 없고, 그저 멀리서 신음하는 목소리로 자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무관계한 타인.
내가 그런 타인이 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유니를 안을 수도 있고, 그녀의 냄새를 맡을 수도, 가장 가까이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나는… 나는 이들과 다르다.
“하그윽… 흐긋… 오, 오늘도 그런 걸… 아,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유니가 말을 한다.
오늘도… 오늘도 하는 건가.
“네헷… 저는… 연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하긋♥ 바람을… 피우고 있어요….”
윽….
가슴이 아프다.
“그 분은 자상하고 착한 분이지만… 아응♥ 자, 자지도 작고 기술도 볼품없어서….”
와하핫하고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 여자도 만족시킬 수 없는 열등수컷이였어요♥”
그들이 히죽거리며 서로에게 농담을 던진다.
“저런 좋은 여자가 바람을 피우게 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작은 거야?”
“크흐흐, 고자라도 손만 있다면 저런 암컷년을 가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중 한 남자가 내 어깨를 탁탁 치며 웃었다.
“안 그래?”
“아, 아하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그래서 여자 하나 지킬 수 있겠어? 조심하라고, 저 여자처럼 네 마누라도 다른 남자한테 보지나 벌리고 있을 수 있으니까!”
천박한 농담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렇지만 나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이곳이 가장 유니의 신음이 잘 들리는 자리니까.
“햐으윽…♥ 지, 진짜 수컷님의 자지….”
진짜 수컷이 유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동안,
“하앙… 아응… 이거, 이게 아니면… 이제 부족해요….”
열등수컷인 나는 혼자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쪽♥”
***
“쪽.”
그녀가 내 볼에 입을 맞췄다.
“헤헤, 깜짝 놀랐지?”
“아, 으, 응….”
“뭐야, 그 재미없는 반응!”
“아, 미안….”
내 밍밍한 반응에 유니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역시 훈련이 잘 안 돼?”
“아냐, 연습은… 잘 되고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잘 되고 있다.
흥분에 가득찬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신성력 총량은 날을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히히… 그만큼 나한테 흥분했다는 소리지?”
“그, 그렇지….”
정확히는… 아니, 아무튼 유니로 흥분했다는 건 맞는 말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 한 번 보여줘.”
“그럴까?”
나는 손을 뻗어 눈을 감고 집중했다.
신성력을 방출하고… 그 범위를 좁히고 또 좁혀서 내 팔까지….
“와아!”
눈을 뜨니 내 팔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새하얀 빛.
여신님이 나에게 내린 가장 눈부신 증명이 내 팔에 깃들어 있었다.
“…이게 신성력이구나.”
유니는 감탄한 표정으로 내 팔을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네.”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도 없다.
이 힘은 오직 마물에게만 피해를 입힌다.
“대단해, 에릭… 스승님도 한 달은 더 걸릴 거라고 하셨는데.”
“벼, 별 거 아냐.”
“후후… 역시 에릭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용사님이야.”
유니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안고 자기 가슴에 문질렀다.
“아얏!”
무심코 그녀의 가슴을 깨물고 말았다.
“미리 말이라도 해줘. 깜짝 놀랐잖아.”
“아, 미안….”
그녀의 외도에 흥분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이후로, 나는 더더욱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내고 싶었다.
내 것이라는 증거를 남기고 싶은 걸까?
추하지만 그런 욕망을 나는 좀처럼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이런 내 습관이 불확실한 의심을 걷어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유니의 몸에는 아직도 내가 새긴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다.
당장 어깨에 든 멍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렌과 함께 다니는 유니의 어깨에는 그런 멍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게 진짜 유니일 리는 없지만, 역시 그녀는 진짜 유니가 아닌 것이다.
도플갱어?
마족?
아마 인간은 아니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 마족을 퇴치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도 그 마족을 퇴치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내버려둔다고 무언가 해를 끼치지도 않는데,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마족이 없으면, 더 이상 외도하는 유니의 모습을 볼 수가 없으니까.
“응? 왜?”
“…아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유니가 직접….
안돼.
이것만큼은 안 된다.
방금 떠오른 생각은 다시 생각도 못하도록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다.
정말 그랬다가는, 진짜 유니가 다신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할까?”
“응.”
유니는 내 뺨을 어루만지며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내 몸 위에 올라탔고, 나는 그녀가 아파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격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기분 좋은 신음은커녕, 아파하는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늘도… 좋았어.”
“응….”
그리고 다음날, 유니가 에르티나의 인정을 받았기에 우리는 아세일라를 떠나기로 했다.
아세일라의 밖으로 나오면서 유니는 자기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다들 나를 바라보는 거 같은데?”
“차, 착각이겠지.”
“…이상한 말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유니는 살짝 날카로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행스럽게도 직접적인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은 없었는지 그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 채지는 못했다.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거 맞지?”
“……응.”
나는 그녀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