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 [용사] 자각
“후읏… 후우….”
찍!
벽면에 하얀 물방울이 튀었다.
제길, 제길, 제길….
“흐읍… 흑… 노, 놓지마….”
벽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
불안감과 기대감에 떨리는 유니의 목소리다.
유니가 대체 왜?
아니, 그보다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이 신음이 유니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것만으로 흥분했고, 또 지금 자위를 하고 있었다.
세리아나 아린은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들의 눈에 띠지 않게 숨어서 자위하고 있으니.
이런 걸 만약 그녀들에게 들킨다면?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참 한심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쪼옥… 쪽… 당신, 당신 때문이니까… 쮸읍…♥”
분명 아까 사정했는데.
이상하게도 몇 번이고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유니와 관계를 맺을 때도 겪어보지 못했던 흥분에 몸을 떨며 다시 스스로를 위로했다.
“후욱, 후우….”
이건 유니가 아니다.
절대 유니일 리가 없다.
슈욱슈욱!
나는 그냥 유니를 닮은 여자의 신음을 들으며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그리 떳떳한 짓은 아닌데.
죄책감을 느끼며, 나는 다시 한 번 벽에 사정하고 말았다.
찌익! 찍!
왠지 왼손에 빛이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열락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나는 허탈과 자기비하에 빠진 채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와중에도 내 뒤에서는 유니와 제렌이 몸을 섞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대체 왜… 아니 어떻게….
방으로 돌아오기까지 내 머릿속에서는 어지러이 생각들이 요동쳤다.
그녀는 정말 유니인가?
분명 제렌의 옆에 있던 여자는 유니 그녀였다.
내가 유니의 얼굴 하나 못 알아볼 리가 없다.
그녀의 얼굴, 몸… 어딜보나 분명 유니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에르티나와 함께 있는 것 아니었던가?
“유니….”
유니는 우리를 위해, 또 우리 파티를 위해 큰 결단을 내리고 내 곁을 잠시 떠난 것이다.
세계를 위해, 마왕을 처단하기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린 그녀가, 사실은 수련이 아니라 제렌과 붙어 다니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분명 그건 가짜다.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문득 예전에 상대했던 도플갱어가 생각났다.
그래, 분명 그녀는 도플갱어인 것이다.
왜 마족이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는지는 몰라도 분명 그런 것이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이 문제로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고민하지 않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훈련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유니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무기력하게 침대 위에 누워만 있었다.
끼익!
“에릭 나 왔… 어라, 자?”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까 들었던 신음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에릭? 일어나 있는데 왜 대답을 안 해…?”
유니는 살짝 불안한 듯 나를 바라보다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설마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아프면 꼭 나한테 말해줘, 응?”
“…아냐, 그런 거.”
“그, 그래? 다행이다….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라.
나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치만 지금 에릭… 누가 봐도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지?”
“…….”
“연습이 잘 안 됐어? 혹시 연습하다가 어디 부딪히기라도 했어?”
“아냐…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그녀는 내 대답에 더욱 걱정하는 것 같았다.
“전부… 말해주기로 했잖아.”
그래, 그랬지.
숨기는 거 없이 전부 유니에게 말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건 유니도… 마찬가지 아닌가?
“…알았어.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 더 묻지 않을게.”
유니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았다.
그녀의 온도는 따뜻하고, 늘 그랬듯 안겨있으면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듯 했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불안함.
이 온기를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도 나누어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내 몸을 잠식했다.
“…그럼 에릭이 기운 낼 수 있게 내가 도와줄까?”
유니는 날 껴안은 채로 그렇게 말하더니 입을 맞췄다.
“흐읍… 으음….”
그녀의 혀가 내 입 안에 들어온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살짝 당황한 것 같았지만 유니의 혀는 내 혀를 찾아 적극적으로 얽히기 시작했다.
“츄읍… 쥬릅….”
그녀는 긴 키스를 마치고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오늘도… 응?”
그녀의 손은 자연스레 내 다리 사이로 향했지만 그곳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너무 많이 사정해버렸다.
오늘은 더 이상 서버리지 않을 만큼 모든 정을 쏟아내고 온 것이다.
“오늘은 하고 싶지 않은 거야?”
“…응, 미안.”
유니는 살짝 놀란 듯 했지만 이해한다며 애써 웃어보였다.
“괜찮아, 그럴 때도 있는 거지. …그럼, 대신 이야기나 잔뜩 하자.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거든.”
정말 많은 일….
나에게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스승님이 처음으로 내 정령술을 인정해주셨어. 왜 그랬냐면 대련하다가….”
내가 본 유니는 대련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제렌과 만나 천박하게 신음소리를 내며…
“어라, 에릭?”
유니는 다시 자란 내 다리 사이의 자지를 바라보았다.
또… 서버렸다.
“후후, 뭐야… 아까는 그냥 지쳐서 그랬던 거구나? 에릭, 몸은 솔직한데…?”
“아….”
유니는 쿡쿡 웃으며 나를 침대에 밀어 넘어뜨렸다.
“오늘도… 할 거지?”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유니를… 유니를 만족시킬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봉사했다.
“하앗, 하아… 하아….”
내 위에 겹쳐누운 그녀가 달콤한 신음을 내며 내 목에 얼굴을 묻었다.
“…사정한 거야?”
사실 못했다.
사정의 쾌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뭐랄까… 텅 빈 정액을 애써 끌어내는 느낌이었다.
이미 말라버려 나올 것이 없는 것이다.
“난, 좋았어 에릭… 후후, 점점 실력이 늘어나는 거 같은데?”
“유니….”
“응?”
“혹시….”
혹시 별로였어?
라는 질문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혀에서 막혀버렸다.
“아냐.”
“왜에? 뭔데? 말해줘.”
“아냐, 그냥… 오늘도….”
“아, 응, 좋아.”
그녀는 살짝 부끄러운 듯 나에게 어깨를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치아로 세게 물었다.
“아얏…!”
피부가 잇자국이 남다못해 새빨개졌다.
“읏… 에, 에릭…!”
나는 평소보다도 세게 그녀의 어깨를 물었다가 놓아주었다.
“윽… 흐읏….”
“아… 미, 미안.”
“아냐, 괜찮아… 하아….”
그녀는 어깨를 문지르며 위태롭게 웃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응.”
우리는 서로를 안으며 잠에 들었다.
평소보다 더 유니의 온기가 그리워져 나는 그녀의 품에 더욱 파고들었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리 파고들어도 예전만큼 따뜻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차가운 꿈을 꾸었다.
저번에 한 번 꾸었던 그 때의 악몽을….
***
“아….”
여기는, 꿈속이다.
묘하게 낯설지만 익숙한 내부 구조를 바라보며 나는 금방 깨달았다.
이곳은 마왕을 토벌한 우리가 시골 마을로 내려가 구한 둘만의 보금자리… 아니, 딸이 생겼으니 셋만의 보금자리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집에 홀로 서있었다.
유니는? 우리 딸은?
“…읏, 흐읏….”
옆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왠지, 불안한 예감을 느꼈다.
남편이 일 나가고, 딸은 집 밖에서 놀라고 내보낸 후 부른 손님.
그 손님과 유니는 부부의 침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한 번 따라갔던 그 발길을 따라, 나는 다시 침실로 향했다.
그 때는 내가 무엇을 봤더라?
보았던 것도 같지만, 아무 것도 못 봤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침실의 문고리를 잡고 잠시 망설이다가 살짝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유니의 모습과 이제는 낯선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둘은 침대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몸을 섞고 있었다.
“흐그읏♥ 하앗… 제, 제렌… 더, 더 세게 해줘요….”
“이렇게? 남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더 세게 찔러달라는 거지?”
“네엣…! 하읏, 하으윽…♥ 흐긋….”
파앙! 파앙!
살과 살이 거칠게 맞붙는 소리가 침실을 반쯤 메웠다.
남은 반은 유니의 신음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응♥ 하앗♥”
“부부의 침실에서 외간남자를 불러놓고, 이렇게 보짓물 질질 흘리고 있어도 돼? 응?”
“안 돼요… 이러면 안 되는데…♥”
“아는 년이 왜 그러고 있어?”
그가 유니의 머릿채를 꽈악 쥐자 그녀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새어나왔다.
“하으읏… 기, 기분 좋으니까…♥”
아, 아냐….
이건, 이건….
주춤, 거리며 뒤로 물러나던 나는 유난히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고야 말았다.
삐걱!
“…손님이 온 모양이군.”
“아….”
둘의 시선이 살짝 열린 문틈으로 향했다.
“들어오라고 해.”
“…드, 들어와요 여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에게 매달린 그녀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하으, 하읏… 보, 보지마요….”
“크크, 들어오라고 해놓고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는 옛날 그대로 심술 맞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오랜만입니다, 용사님. 부인 좀 빌려 쓰고 있어요.”
“읏… 제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왜… 왜 아직도 나한테 이러는 거야?
대체 왜…?
“저는 두 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 암컷이 자꾸 저를 귀찮게 하지 뭡니까. 한 번만 보자고… 한 번만 와달라고….”
“유니를… 유니를 모욕하지마….”
내 말에 그가 크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야, 유니. 네가 직접 말해봐.”
“아, 아니야… 아니에요….”
그러나 제렌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자 흠칫하며 그녀가 놀랐다.
“…읏, 여, 여보… 아니, 에릭….”
그녀는 새빨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바라봤다.
“……미안해♥”
그게, 끝이었다.
***
“허억, 허억….”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벌떡 일어났다.
꿈… 그냥 꿈이다.
끔찍한 악몽을 또 꾸었을 뿐.
나는 더듬거리며 손으로 유니의 흔적을 찾았다.
덥석.
그녀의 손을 찾은 나는 재빨리 그녀와 깍지를 끼며 달아오른 심장을 진정시켰다.
“…후우, 후우.”
자세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꿈이다.
그런 시골 마을에 외부인이 들어왔으면 분명 누군가는 그를 봤을 것이다. 그랬으면 나한테도 그 얘기가 귀에 들어왔겠지.
더군다나 사람들과 교류도 하지 않아 모두의 관심 아닌 관심을 끄는 유니가 그런 사람을 매일 집에 부른다? 소문 하나 없이 넘어갈 리가 없다.
현실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이렇게 생각하니 들뜬 감정이 다소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흥분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리 사이의 그것이, 다시 발기해있었기 때문이다.
“윽….”
그 동안은 부정해왔지만, 아무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유니의 외도에 흥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