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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62화 (162/236)

〈 162화 〉 [용사] 다시 찾은 아세일라

다음 날 아침, 나는 유니가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세리아에게 경비 문제에 대한 조언을 들으러가자고 할 때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제일 한심한 것은, 그 날 들었던 조언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유니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눈으로 날 한심하게 바라보는 세리아의 시선이 무척이나 따가웠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럼 어떡할까, 에릭? 안 들리고 가면 조금 아슬아슬하긴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음….”

세리아의 의외로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난 후, 우리는 아세일라를 들려야하는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 그 도시가 예전 그대로 남아있다면, 솔직히 그다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무척이나 기분 나쁜 도시 아니었던가.

“내 생각에는… 아, 그냥 내 생각이니까 참고로만 들어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들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들리자.”

유니도 그렇게 말하는데, 고작 내 개인적인 감상 하나만으로 파티의 보급을 엉망으로 만들 순 없지.

“어? 아냐 에릭! 굳이 내 말대로 안 해도….”

“아냐, 확실히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딱히 유니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도 어느 정도 필요성에는 동의를 하고 있었고, 사실 그 거부감이라는 것도 아린과 관련한 소동 때문 아니었던가.

우스운 얘기지만, 이미 그녀를 빼앗겨버린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빼앗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알았어.”

유니는 살짝 미안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세일라에 들르는 방향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아세일라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그들과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때 봤던 광경이 도무지 뇌리에서 잊히지가 않는다.

세리아와 아린의 교성과,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월했던 그의….

제기랄, 이런 걸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

어차피 나와 유니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 않는가.

유니가 그녀들처럼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분명 성격 차이일 것이다.

그래, 그냥 그녀가 신음을 거의 내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 것일 뿐.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자꾸 유니를 닮은 신음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그건… 대체 누구였을까.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들을수록 그 목소리는 유니와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유니일 리는 없다.

그녀는 항상 내 옆에 있으니까.

아무튼 이런 생각으로 복잡하게 머릿속을 꽉 채운 나는 아세일라에 도착할 때까지 멍한 상태였다.

“거의 다 왔어, 에릭.”

“응? 아, 응….”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 맞지?”

유니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그녀에게는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녀를 달랬다.

“미안, 정말 별 거 아니니까 괜찮아. 그냥 요즘 생각할 게 좀 많아서 그래….”

“저 여자들 때문이야?”

유니가 순간 날카롭게 물었다.

나는 살짝 뜨끔했지만 애써 말을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흐응, 그렇구나….”

그러나 유니에게는 제대로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그 속뜻을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그녀들이 있는 방향을 잠시 바라봤다.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을 할까 싶다가도, 내가 왜 굳이 그래야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뭐, 설마 그렇게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번지기야 하겠는가?

그렇게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아세일라에 도착했다.

“들어가도 좋습니다.”

아세일라의 경비병은 가벼운 차림으로 우리의 짐을 검사하더니 손짓으로 우리들을 들여보냈다.

간만에 찾은 아세일라.

그곳은 여전히 불쾌한 공기와 열락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다만 사람들의 눈빛은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지금 당장 도시가 폐쇄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무슨 식으로라도 압박이 가해졌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이곳은 퇴폐적인 거리였다.

사람들은 아직도 속이 훤히 비쳐 보이는 옷을 입고 거의 헐벗은 채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천박하네요.”

“역시 기분 나쁜 도시야.”

세리아와 아린은 서로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조금도 주눅 든 기색 없이 거리를 걸었다.

첫 날에 모두가 쭈뼛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많이 달라진 모습.

오히려 그녀들은 도시 사람들을 관찰하며 평가할 정도의 여유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거 보면 안 돼, 에릭.”

“아, 응….”

그에 비해 우리는 여전히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걷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니만 당당하게 걷고 있고 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살짝 눈을 밑으로 내리고 걷고 있었다.

“숙소는 어떻게 할 거야, 에릭? 저번과 같은 곳으로?”

“…응.”

어차피 거기나 다른 곳이나 큰 차이는 없겠지.

그러면 저번처럼 그나마 숙박업에 더 치중된 숙소를 고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저번에 제렌도 말하지 않았는가.

다른 숙소에는 다른 여자나 남자를 불러 여러 음란한 짓을 즐기는 서비스가 들어있다고.

차마 그런 곳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전에 들렸던 숙소를 찾아갔는데, 하필이면 그 사이 운영방침이 조금 바뀐 것인지 이 숙소도 결국 그러한 서비스를 도입한 상태였다.

“…필요 없어요.”

“흐음, 알겠습니다. 그럼 방 두 개로, 출장 서비스는 없이. 맞습니까?”

“네.”

그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평소와 같은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주인은 나와 제렌에게 각각 열쇠 하나씩을 건넸다.

제렌에게 뭐라고 한 두 마디를 더 한 것 같기는 한데, 살짝 훔쳐들으니 둘 만이 아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무슨 얘긴지는 몰라도 그리 좋은 얘기 같지는 않았다.

“크흐흐, 거 속도 좁긴. 다음에 얘기합시다. 지금은 좀 바빠서.”

그는 그렇게 말하며 가게주인을 물리고 먼저 방으로 올라갔다.

“우리도 올라가자.”

“응….”

어차피 물어봐도 대답 안 해주겠지.

우리는 더 자세한 사정을 캐내는 것을 포기하고 숙소로 올라갔다.

똑똑.

방에서 잠시 앞으로의 계획을 같이 유니와 짜고 있던 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응? 앗….”

유니가 깜짝 놀라 일어나자,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에, 에르티나 스승님이야!”

“뭐?”

에르티나.

그녀가 이 도시에 찾아왔다.

***

“…듣기는 했지만 끔찍한 도시군요.”

“그렇죠….”

에르티나는 살짝 불쾌해보였다.

그야 예전에는 이런 도시가 없으니 그녀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우리도 처음에는 이런 느낌이었겠지.

“굳이 이런 도시에 들려야 했나요?”

“그, 보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왠지 말하고 보니 변명처럼 들린다.

정말 아무런 사심도 없었는데….

“하아, 그래요. 그건 제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니까…. 아무튼 여러분의 예상대로 저는 당신들을 쫓아온 게 맞아요. 성과라고 할까… 변화를 보고 싶었거든요.”

여전히 그녀는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축하해, 유니. 많이 실력이 늘었네.”

“앗… 감사합니다.”

그녀는 유니를 보며 싱긋 웃었다.

유니는 부끄러워하며 헤헤 웃었는데, 이런 그녀의 순수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당신도… 조금이기는 하나 많이 나아진 것 같군요.”

“아, 네… 요즘 성과가 조금 있었죠.”

세라 덕분이기는 하지만.

흥분이 원동력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유니와 여러 방면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아마 그 성과가 에르티나의 눈에 띨 정도로 제법 컸던 모양이다.

다행이네.

“아무의 도움도 없이 이렇게나 빨리 성장하다니… 역시 당신은 용사가 맞는 것 같네요.”

“아…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세라가 이 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나는 이 사실을 말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뭔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보이는 군요.”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우리의 감정 읽기에 무척이나 능숙한 엘프였다.

애초에 반응을 숨긴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나는 결국 세라와 있었던 얘기를 전부 털어놓았다.

“세라가? …이상하긴 하네요. 용사님도 몰랐던 사실을 왜 그녀가 알고 있지?”

에르티나는 의아한 듯 미간을 좁혔지만, 그녀도 알 수 없는 사실이라 결국 마땅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제가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죄송해요. 이 점에 대해서는 도움을 드릴 수 없겠군요.”

“아, 아뇨! 괜찮아요.”

살짝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말할 생각도 없었던 만큼 그리 실망스럽지는 않다.

내 반응을 읽고 그녀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래요. 아무튼… 이 도시에는 잠깐만 머물고 갈 생각인가요?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유니의 정령술을 손봐주고 싶은데.”

“여, 여기에는 정령이 없지 않나요?”

유니가 깜짝 놀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은 정령이 없는 곳이었지.

땅 자체가 마계화 되어버렸기 때문에 정령들도 살지 못하는 곳이 된 것이다.

“거의 마계와 같은 곳이라 정령들이 꺼려하기는 하지만, 오기를 거부하는 것이지 못 오는 것이 아니야. 아무래도 강제로 끌고 오는 법도 배워야겠네.”

“아….”

유니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강제로 끌고 온다는 말에 살짝 거부감을 느낀 것 같기는 하지만, 에르티나는 정령에게 자아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그녀를 설득했다.

결국 유니는 망설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얼굴은 이미 넘어간 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내 허락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래, 굳이 막을 필요는 없지.

“며칠 더 머무르다 가겠습니다.”

“괜찮나요? 괜히 저 때문에 일정이 꼬이기라도 하면….”

“괜… 찮아요.”

설마 며칠 늦는다고 마왕이 세계를 모조리 집어 삼키겠는가.

아마 그렇게 긴박한 상황이라면 에르티나도 한가로이 우리를 찾지는 않았겠지.

“그래요. 사실 시간은 큰 의미가 없죠…. 아무튼 그렇다면 제가 조금 더 도와줄 수 있겠네요. 유니, 더 날카롭고 치명적으로 기술을 다듬어보자.”

“네, 네!”

에르티나는 우리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는 돌아갔다.

그녀는 가기 전에 다른 사천왕을 너무 믿지 말라는 조언을 남겼는데, 아마 내가 세라의 조언을 듣고 고민하던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래, 아무리 호의를 가지고 대해도 그녀는 우리의 적인 것이다.

…그러면 에르티나는?

그녀는 믿어도 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도 확실한 점이 있다면, 우리가 아세일라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될 것이라는 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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