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용사] 돈을 관리하는 방법
“전부 거짓말이야. 분명 그렇겠지.”
가장 먼저 집안에 들어온 유니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흥분? 흥,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렇지, 에릭?”
“어? 아, 응….”
솔직히 조금 의아한 얘기기는 하다.
정말 그런 걸로 힘이 채워진다고?
지금까지 유니와 함께하며 얼마나 많이 두근거렸는데, 딱히 내가 느끼기에 힘이 차오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세라가 무언가 잘못 알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녀에게 흥분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니까.
“에릭이… 나한테 흥분 안 할 리가 없잖아. 그렇지?”
“응….”
그러나 거짓말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유니의 얼굴에서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었다.
***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아세일라였다.
저번에 아세일라를 빠져나오자마자 찾아갔던 작은 마을은 이번에는 굳이 들리지 않았다.
검은 개 소동이 있었지만 잘 마무리가 됐고, 저번처럼 급하게 들릴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세일라는 어떻게 됐을까?”
“그러게, 그 때 편지를 써서 보냈으니 무언가 조치를 했겠지?”
우리들의 별 거 아닌 잡담에 세리아가 슬쩍 끼어들었다.
“아니, 그대로일걸.”
“…왜?”
세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쿡쿡 웃었다.
“그야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하루아침 만에 내릴 수가 없잖아. 편지가 오고가는 시간이랑 조사대를 파견하고, 결재 받고 사람들을 모으고 할 시간을 생각하면… 아마 그대로일걸.”
“읏….”
그럼 아직도 그런 이상한 도시로 남아있다는 말인가?
그대로라면 다시 찾아가고 싶지 않은데.
“대신 다른 도시에서 보급을….”
“경비는 이제 너희들이 관리하니까 알아서 해. 나는 몰라.”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쏙 빠졌다.
그래, 이게 문제였다.
한 번에 마왕성까지 가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이대로 직진하다가는 반도 못가 우리의 식량이 전부 동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도중에 마을이나 도시에 들려 새로 필수품을 보충할 필요가 있는데, 이걸 관리하는 건 경비 담당, 즉 이제 우리의 역할인 것이다.
전에는 세리아가 도맡아서 했는데, 갑작스레 우리가 맡게 되니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이렇게 과거에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것도 세리아가 짜고 실제로 검증했던 안정적인 루트이기 때문이다.
다른 길로 빠졌다면 과연 이렇게 무사히 다닐 수 있었을까.
경비관리는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아냐, 우리로는… 역시 조금 힘든 것 같아.”
유니는 그래도 어떻게든 애를 써서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우리들은 이런 일에 맞지 않는다.
역시 이런 건 세리아가 맡는 게 제일 좋다.
아니면 그녀에게 우리가 직접 배우거나.
“세리아에게 맡길 수는 없어. 이제 우리가 어떻게 그녀를 믿겠어.”
“그치만 세리아도 우리 동료….”
“다른 남자한테 헤벌레하는 년인데?”
그녀의 노골적인 표현에 잠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건 좀….
“아… 미, 미안해, 에릭.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아, 아냐, 그럴 수 있지.”
그녀는 내 표정을 보고 급히 사과했지만 이미 그녀가 뱉은 말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다른 남자한테 헤벌레….
“역시 내가 세리아에게 부탁해볼게. 그래도 같은 파티원이니까 도움 정도는 줄 수 있겠지.”
“그럼 나도 같이….”
“유니….”
“…알았어.”
유니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이 있어서 그런지 쭈뼛거리며 물러났다.
그녀가 세리아나 아린에게 화난 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이 좀 지나쳤다.
그녀들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해버리면 파티의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안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뭉쳐있는 이런 상황에서 말실수라도 한 번 했다가는 그 순간 파티 해산이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나도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파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오늘 밤 그녀에게 찾아가 경비 운용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로 했다.
세리아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저녁시간이 되어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불안해졌다.
기억하고 있는 거 맞겠지?
“이거 봐, 분명 신경도 안 쓰는 거라니까.”
“내가 다시 가서 얘기해볼게.”
“에릭, 그냥….”
자꾸만 나를 말리려드는 유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그들 쪽으로 다가갔다.
“헤븝… 쪽, 쪼옥….”
세리아는 한창 입에서 입으로 식사를 전달하는 중이었다.
아린은 계속 끼어들 틈을 노리며 호시탐탐 수저를 입에 물고 둘의 동태를 살피고만 있었다.
“쮸읍… 쯉… 응? 에릭, 무슨 일이야?”
“아… 그, 그게….”
각오는 했지만 눈앞에서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조금 기분이 안 좋다.
나는 마음을 애써 다잡고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아까 아침에 말했던 그, 경비와 관련해서….”
“응? 아, 그거? …앗, 아린! 뭐하는 거야!”
그녀는 깜빡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그 사이 제렌의 입술을 빼앗아 간 아린에게 버럭 화를 냈다.
“저, 저기, 세리아….”
“크읏… 얌체 같기는… 알았어, 이따가 알려줄게.”
“이따가 언제?”
“밥 먹고! 불침번하기 전에 알려줄게, 됐지? 아린, 좀 비켜…!”
그녀는 빨리 돌아가라는 듯 건성건성 대답하고는 아린과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아파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게 왜 굳이 저길 찾아가서.”
유니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유니에게 다가와 품에 안겼다.
“그래도 고생했어. 정말 열심히… 응?”
그녀는 날 꼭 끌어안고 자기 볼을 내 볼에 부비적거리다가 잠시 멈칫했다.
“에릭….”
“어?”
그녀의 시선이 내 다리 사이로 향했다.
유니를 따라 내 시야도 다리 밑으로 향했는데, 당혹스럽게도 내 자지는 발기한 상태였다.
“아, 아냐, 이건…!”
“벌써부터 나랑 하고 싶었어?”
유니는 후후 웃으며 그렇게 말했는데, 아마 자기 생각을 하느라 서버린 것으로 오해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잠깐 고민했지만 어차피 말만 안하면 모르겠지라는 살짝 나쁜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밥 먹고 잠깐 할까?”
“아….”
끝나고 세리아한테 가기로 했는데.
그래도 잠깐이면 괜찮겠지?
나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밥 먹고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유니에게서 풀려났다.
세리아가 기다리고 있겠지?
빨리 찾아가봐야겠다.
“그냥 내일 물어보자, 응? 지금 가봤자….”
“하루라도 빨리 물어봐야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을 거 아냐.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치만 지금….”
유니는 천막 안에서 내 팔을 잡으며 자꾸만 만류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하루라도 빨리 배워두는 게 좋지 않겠는가.
어차피 내일 묻는다고 해도 또 이렇게 어영부영하다가 시간만 날릴 게 뻔했다.
“…그, 그거 하고 있단 말이야.”
“아….”
유니가 떨떠름하게 뱉은 말에 나는 그녀가 왜 그랬는지 이해했다.
“그, 그럼 내일로 미루겠다고 얘기만 하고 올게.”
“어? 그럴 필요는….”
“나 때문에 기다릴지도 모르잖아.”
유니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 때문에 일정이 밀린 셈이니까 그 부분은 확실하게 말해야겠지.
나는 유니에게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한 뒤에야 겨우 천막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직 불침번을 서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들도 천막을 꽉 닫은 채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근처에 다가가니 금세 알 수 있었다.
“…흐읏, 하아…♥ 흥, 흐읍, 흣….”
이건 세리아의 목소리인가?
내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저, 저기…!”
“흐븝… 흡… 아린, 움직이지 말고….”
“햐윽….”
중간중간 아린의 비명 같은 소리도 들린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저기! 세, 세리아!”
“하읏, 하아… 주인님 방금 저 부르셨나요? 네? 아니라구요?”
잠시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천막 안에서 세리아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에릭이었구나. 무슨 일이야?”
“저, 그게….”
“아, 그 경비? 그러고 보니 기다렸는데 안 왔네?”
역시 기다렸구나.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 바로 가려고 했는데….”
“흐읍♥ 주, 주인님, 지금 에릭이랑 말하고 있는… 꺄응♥”
그러나 그녀는 내 사과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천막 안쪽으로 돌리더니 새빨간 얼굴로 난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천막으로 입구를 꼭 가린 그녀의 손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하악, 흐읍…♥ 그,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햐읏! 이, 이건 별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 그게….”
서, 설마 아니지?
“흐읍… 하앗, 하악…♥ 괜찮아, 아, 아무 것도 아니니까… 흐으응….”
“그, 그게, 그… 내일… 내일 다시 물어보려고….”
나는 더듬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내 용건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아, 그래…? 내일? 알았… 꺄흡…♥ 왜, 왜요…?”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귀를 천막 안 쪽으로 가까이 가져다댔다.
“아… 네, 네…. 후훗, 알았어요.”
그녀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갑자기 쿡쿡 거리더니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에릭, 잠깐 들어올래? 안에서 알려줄게.”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