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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47화 (147/236)

〈 147화 〉 [용사] 둘의 관계

“그럼 에릭, 갔다 올게.”

유니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문을 나섰다.

이대로 나 혼자 방에 남으면 신성력을 연습하다가 또 그녀들이 문을 두드릴 것이고, 나는 결국 문을 열어주겠지.

“…나도 옆에서 같이 해도 될까?”

“응? 그럼 나야 좋지! 물론이야!”

유니는 예상지도 못한 말을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잠시 뒤 살짝 흐린 표정으로 또 이렇게 말했다.

“…그치만 스승님이 허락 안 해주실 거야. 그러면 집중을 못한다고 그러시거든.”

“그,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유니가 나를 의식해서 연습을 못한다면, 내가 그녀에게 들키지 않게 지켜보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유니에게는 비밀로 하고 그녀의 훈련을 지켜보기로 했다.

방 안에서만 연습하니 제대로 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자꾸만 세리아와 아린이 들이닥치는 통에 도무지 끈기 있게 집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응, 그러니까 쓸쓸해도 조금만 참아줘. 최대한 빨리 마치고 올게.”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하고 와.”

나는 유니가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슬쩍 그녀의 뒤를 밟았다.

이러고 있으니 뭔가 그녀를 미행하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는 딱히 흑심을 가지고 접근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분 전환과 약간의 궁금증을 갖고 있을 뿐이다.

과연 무슨 훈련을 받고 있는 걸까?

시간차를 두고 숙소 밖으로 나가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가니, 에르티나와 대화중인 유니가 보였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인사는 기운차서 좋네. 그럼 바로 시작할까?”

“네!”

그 사이 에르티나 쪽은 말을 놓기로 했는지 유니를 편하게 부르고 있었다.

유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둘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서로를 매섭게 바라보는데… 설마 실전훈련인가?

“시작하겠습니다!”

“언제든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니는 재빠르게 물의 정령을 불러 그녀를 공격했다.

허리춤에 맨 그녀의 물병에서 한 줄기 물줄기가 솟아오르더니 이전까지는 상상도 못한 속도로 에르티나에게 돌진한다.

물이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냐고 생각했는데, 뾰족하게 물줄기를 세워 달려드는 모습을 보니 제법 섬뜩해보인다.

그보다 저걸 제대로 맞으면 아무리 에르티나라도 무사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콰직!

유니의 공격은 에르티나의 바로 앞에서 솟아오른 흙벽에 막혀버렸다.

정확하게 유니의 공격을 막을 만큼의 좁은 벽.

에르티나가 얼마나 정령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유니의 물줄기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끊임없이 흙을 파고들며 그 벽에 구멍을 뚫으려고 한다.

에르티나는 다시 그 흙을 메꾸고, 유니는 다시 그곳에 구멍을 낸다.

둘의 치열한 공방이 흙벽의 조그마한 틈새 사이로 벌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둘이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의 신경은 온통 그 흙벽에 쏠려있는 채였다.

“으읏….”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아직 돌파력이 부족하군요.”

잘 풀리지 않는지 유니가 신음을 냈다.

그에 비해 여유로운 태도로 에르티나가 그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

푹!

그러나 유니의 돌파력이 부족했던 것은 그녀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에르티나가 서있는 땅 바로 밑에서 가는 물줄기가 바닥을 뚫고 튀어나왔다.

콰직!

에르티나는 놀라운 순발력으로 곧장 흙으로 다시 막아버렸지만, 집중이 흐트러진 사이 유니는 기존의 흙벽을 뚫는데 성공했다.

“대담한 수였네요. 전력으로는 상대가 안 되니까 적의 신경을 분산시켰군요. 좋은 발상이에요. 하지만 이건 연습인 만큼 다음에는 돌파력을 더 높이는데 집중해보죠.”

“…네.”

참으로 진지한 모습이었다.

유니와 에르티나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더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와, 제법 강해졌네요.”

“이렇게 보니 마법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내 뒤에서 아린과 세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억…! 무, 무스… 으읍…!”

“쉬잇! 들키겠어요.”

“에릭,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들키잖아.”

내가 깜짝 놀라 소리를 내기도 전에 둘이 내 입을 턱 막았다.

“소리 안 지르겠다고 약속하면 떼줄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둘은 내 입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왜 여기있어?”

“에릭 씨가 방에 없길래, 혹시 주변에 있나하고 찾아왔죠.”

“유니가 걱정돼서 나온 거야?”

세리아는 슬쩍 눈꼬리를 휘며 물었다.

은근하게 비꼬는 것이다.

방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으면서, 간만에 나온 것도 기껏해야 그녀를 보러 나온 것이었는가?

“…그냥 기분전환이 하고 싶었을 뿐이야.”

“기분전환은 중요하죠. 저도 오늘은 간만에 속옷을 입었으니까요. 매일 안 입고 있으면 그게 당연하게 느껴져서 감흥이 줄거든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슬쩍 돌리자 아린은 살포시 웃으며 나에게 더 다가왔다.

“궁금하세요? 제 속옷 차림이?”

“…아니, 괜찮아.”

“에릭 씨에게는 특별히 보여드릴 수 있는데.”

어차피 그것도 제렌이 시킨 거겠지. 다 안다.

“아린, 자꾸 그렇게 주인님 허락 없이 막 보여주고 그러면….”

“어때요, 그래도 저희 파티장이신데.”

“너도 참….”

…이것도 분명 내 관심을 끌려는 수작이다.

그보다 파티장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나를 에릭도, 용사도 아닌 파티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살짝 마음이 아프다.

“다시.”

“네!”

유니는 에르티나가 세워둔 흙벽을 한 번에 뚫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제법 힘든지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난 이만 올라가볼게.”

나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유니도 이렇게나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데, 나도 빨리 그 신성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어야한다.

그녀들과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틈이 없다.

“잠깐만요.”

돌아가려는 나를 아린이 붙잡았다.

“…여기서 한 번 하고 가실래요?”

“뭐?”

아린의 눈이 색욕으로 젖어 번들거린다.

그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나는 재빨리 그녀의 손을 쳐냈다.

“아앗….”

“그렇게 빼지 않아도 괜찮아, 에릭.”

나는 아린의 손은 쳐냈지만 곧장 내 반대쪽 손을 붙잡는 세리아는 쳐내지 못했다.

“읏… 이, 이러지 마….”

“한 번만 싸고 개운하게 가서 연습하면 되잖아.”

궤변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면 우리도 오늘은 더 귀찮게 굴지 않을게.”

그렇지만 이건 진짜다.

내가 거부하고 방으로 올라가면, 방까지 쫓아와 나를 방해할 게 뻔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려는 거야? 나랑 이러는 걸 그 남자도 좋아하지는 않을 텐데.”

그녀들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집착할 이유가 없다.

분명 제렌이 시킨 것이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할 이유가 있나?

그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왜냐니… 에릭이 가엾어서 그렇지.”

“우후후… 유니가 잘 못하죠?”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런 말 하지 마.”

“그게 안타까운 거예요. 진짜로 기분 좋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에릭도, 유니도 둘 다 너무 서툴러.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잖아.”

그럴 지도 모르지.

우리 둘 다 그런 쪽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그러나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고, 그리고 당장 정말 부족하다고 느끼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당연하지.”

“용사님이 제 어깨를 물었을 때, 많이 아팠는데.”

그녀는 슬쩍 자기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 때, 도서관에서 내가 그녀의 어깨를 깨물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 생각해보면 그 때 처음으로 나는 내 이상한 취향에 눈을 떠버렸다.

깨물고, 피를 내고 싶은 그 음습한 욕구를.

“유니한테도 그러고 있죠? 그런 취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정말 상대가 그런 행위를 기뻐할지는….”

“의외네. 아린 같은 마조히스트는 좋아할 거 같았는데.”

세리아가 키득거리며 농담을 하자 아린이 입을 비죽였다.

“아무 남자나 손을 대도 좋은 건 아니라구요.”

졸지에 아무 남자가 되어버린 나는 마음속 한 켠이 쓰라렸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돌아갔다.

“에릭, 혹시 제대로 된 섹스를 해보고 싶으면 우리한테 말해. 물론 허락은 받아야겠지만, 내가 잘 말씀드려볼 테니까.”

“저한테는 있는 힘껏 깨물어도 좋아요. 정말 흉터가 남도록 깨물어보고 싶지 않나요?”

그녀들의 유혹을 뒤로 하고 나는 말없이 방에 올라갔다.

전부 필요 없다.

유니.

오직 유니만 있으면 된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신성력을 뿜어내던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집중하면 신성력을 내뿜는 것 까지는 가능하다. 필요하면 다시 집어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가능한 것은 그것 뿐.

그 세기를 조절할 수도 없고, 몸 밖으로 그저 내보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그녀들을 상대하려면 내가 세기를 원하는 대로 조절하고, 특정 부위나 물건에만 두를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어야 한다.

이건 그냥 힘을 낭비하는 꼴이니까.

신성력을 내뿜으며 나는 어떻게든 그 흐름을 제어하려고 애를 쓰지만,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뭘 어떻게 해야 조절이 가능한 걸까? 아니, 애초에 가능하기는 한 걸까?

물어볼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나에게는 이에 대해 물어볼 스승조차 없다.

“…으읏.”

집중하려고 해도 자꾸 잡생각이 떠오른다.

세리아의 유혹, 아린의 유혹.

그리고 유니와의 기억.

자꾸만 잡념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눈을 뜨고 내려다보니 피가 몰려 딱딱하게 굳어진 내 자지가 보였다.

하필 이런 것밖에 생각을 못하다니… 너무 한심하다.

내가 이렇게 성욕에 미친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고, 마치 세리아와 아린의 말을 신경쓰는 것 같아 자괴감도 든다.

애써 쓸데없는 생각들을 치워버리려고 했지만 도무지 되질 않았다.

차라리 세리아가 했던 말대로 한 번 싸고 나면 집중이 잘 될 것 같은데.

아직 유니가 돌아올 시간은 아니다.

적어도 앞으로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두 시간.

나는 두 시간동안 이걸 참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은 두 시간 동안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미안, 유니….”

나는 왜 미안한지도 잘 모른 채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며 집중력을 되찾았다.

그제야 나는 잡념 없이 신성력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별 성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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