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용사] 용사와 그녀들과 정령사
나는 고민 끝에 그녀들을 안에 들였다.
유니가 알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차마 그녀들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그렇지만 내 입에서는 딱히 고운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무튼 나는 그녀들에게 약간의 안 좋은 감정을 품게 됐으니까.
“나를… 놀릴 생각이라면 돌아가 줘.”
“그 땐 죄송했어요.”
아린은 슬쩍 고개를 숙이려다가 세리아의 눈치를 보고 그만뒀다.
“에릭. 우선 우리의 말을 먼저 들어줄래.”
“…알았어.”
그녀의 입에서 대체 무슨 말이 나올까.
나는 주먹을 꾹 쥐고 각오를 다졌다.
“사실 에릭에게는 조금 실망을 했어. 물론 내가 말을 하지 않은 잘못이 제일 크지만… 그래도 내심 속으로는 알아채줬으면 했거든.”
세리아가 지금의 세리아가 되기 전 이야기다.
나는 그 때 확신을 갖지 못했다.
또 내 착각이면 어떡하지? 괜한 일로 파티 내에 불화가 생기면 어쩌지?
“웃기는 이야기지. 내가 말을 안 하는데, 에릭이 알아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건 나를 욕해도 돼. 내 잘못이 맞으니까.”
“아냐. 나는, 어쩌면 알고 있었는데도… 용기가 없었을 뿐이야. 미안.”
그 말에 세리아는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달라졌네.”
“그런가?”
“역시 유니가… 그렇구나.”
그녀는 잠시 씁쓸하게 웃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 에릭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 남자는, 너희에게 잘 대해줘?”
이것만은 묻고 싶었다.
나는 그녀들을 챙겨주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그녀들이 나에게서 떠나가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그녀들이 더 좋은 남자에게 갔으면 했다.
나와는 달리 그녀들을 더 챙겨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남자에게….
그런데 그 남자는 그런 남자인가?
“아니. 우리는 노예야.”
그 말을 듣자 내 가슴이 삐걱거릴 것 같았다.
“저희는 주인님의 노예에 지나지 않아요. 그 분의 말은 무엇보다도 절대적이고, 저희를 도구 내지는 소모품쯤으로 취급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죠.”
“왜… 대체 왜 그런 사람한테….”
왜 그런… 그런 잔혹한 사람에게 가는 거야?
“주인님은 저를 종종 의자로 쓰세요. 그럴 때면 저는 사람이 아니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개처럼 목줄을 매고 알몸으로 돌아다닌 적도 있었어요. 용사님은 모르셨겠지만. 제 인간성이 모조리 박탈당하고, 저는 그저 인간 이하의 가축, 또는 도구가 되었죠.”
“왜…! 대체 왜… 왜 그런 걸 참고만 있는 거야….”
눈이 시큰거렸다.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그녀들은 내 소중한 동료였다.
지금도 동료로 남아있고 싶다.
그런데… 그녀들이 이런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에릭 씨는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여자 마음을 잘 모르는 것도, 착하고 순수하게만 살아오셔서 그렇겠죠.”
아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지만 에릭 씨… 저희는 알아버린 거예요.”
“뭐를… 그런 심한 짓을 당했는데, 대체 뭘 알았다는 거야….”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세리아와 아린이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슬펐다.
그리고 그녀들이,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게… 행복이라는 걸…♥”
말도 안 된다.
대체 누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노예 생활을 행복하다 말하겠는가.
이건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아니야… 너희 모두… 속고 있는 거야….”
“맞아, 에릭. 우리는 속고 있어.”
세리아는 나를 바라보며 더 없이 잔인한 현실을 들이밀었다.
“그렇지만 에릭… 우리가 속고 있으면, 그 동안은 너무나도 행복한 걸.”
“…그게, 그게 무슨….”
“우리는, 우리 손으로 목을 조른 거야.”
세리아는 자기 손으로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목을 조르고 있으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 이게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하고 싶어지고.”
“그래서 저희는 점점 더 오래 목을 조르는 거예요. 죽음의 문턱을 밟기 일보직전까지.”
“미쳤어… 미친 거라고….”
그녀들의 말은 정상인이 할 말이 아니었다.
광인.
광인들이나 할 법한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그 남자가 좋은 거야? 나는… 나는 이해가 안 돼….”
“이해가 아니야, 에릭.”
“이건 본능이에요.”
그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져 일어나 뒷걸음질 쳤지만, 이 좁은 방에서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기분 좋은 걸 하고 싶은 건… 동물의 기본적인 욕구라구요, 에릭 씨.”
아린이 나를 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에릭도… 눈을 감아봐. 현실에서 잠깐만 눈을 돌려봐.”
세리아가 내 어깨에 양손을 올리며 반대쪽 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흐읏… 이, 이러지 마….”
“에릭 씨….”
“에릭….”
그녀들이 나를 양옆에서 에워싸며, 제 정신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끔찍해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감았네?”
“후후… 에릭 씨, 그대로 눈을 감고 계세요. 그거면 돼요….”
그녀들의 손길이 내 목부터 서서히 밑으로 내려갔다.
나를 간지럽히듯, 몸 곳곳에 그녀들의 흔적을 남기며, 그녀들은 점점 내려갔다.
그리고 배꼽을 지나 그 밑으로 내려갔을 때, 그들은 손뿐만 아니라 내 바지와 속옷도 한꺼번에 내려버렸다.
“흐윽… 그, 그만 둬….”
“봐요, 에릭 씨는 저희를 거부하지만 몸은 거부하지 않는 걸요.”
“어쩔 수 없는 거야. 우리는… 이렇게 태어난 거라고.”
조물조물.
만지작만지작.
그녀들의 손이 내 다리 사이로 향했다.
“흐윽…! 하, 하지….”
“쉬잇.”
세리아인가? 아린인가?
누군가가 내 입을 막았다.
세 손이 내 성기를 애무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 내 입을 막고, 남은 손들은 나를 흥분시키는데 집중한다.
흥분되기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내 몸은 공포조차 흥분으로 받아들이는 건지, 다리 사이의 자지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흐읍… 읍….”
“후후… 이런 상황이 흥분되는 구나?”
“에릭 씨도… 저희와 다르지 않아요.”
할짝.
누군가의 혀가 내 가슴에 닿았다.
“흐읍…!”
“흐읍, 흐릅… 특별히… 해드리는 거예요. 주인님껜 비밀로….”
“후후… 그 말에 반응하는데? 더 해줘.”
쭈윽, 쭈윽.
둥글게 만 손 하나가 내 자지를 왕복한다.
그 사이에 낀 내 자그마한 남성의 상징은, 그녀의 손에 농락당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잘한다.
유니보다도, 저번에 세리아가 해줬을 때의 손짓보다도, 훨씬 더 정교하고 숙련된 몸짓이었다.
“흐읏, 윽….”
“유니에게 미안하신가요? 괜찮아요… 나중에 그녀에게 사과하죠.”
“유니는 착하니까 이해해줄거야… 그렇지?”
그녀들의 말이 내 귓가에 어지러이 울려퍼지고, 내 몸은 자극에 반응해 움찔거리고 있었다.
쿡, 쿡.
그리고 누군가의 손가락이 나를 간지럽혔다.
나조차 몰랐던 민감한 부위가 갑작스런 자극에 반응하며 부르르 떨린다.
“후후… 여기가 약하시군요?”
“기분 좋아? 참지 않아도 돼.”
“흐읏, 흐윽….”
어쩌면 힘으로 밀쳐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들이 다칠까봐?
아니면… 나도 이 상황에 흥분하고 있어서?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부디 전자이길 바랬다.
“괜찮아요. 에릭 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가 나쁜 거야. 에릭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있는 거니까….”
아니다.
이 말은 나를 유혹시키는 말이다.
스윽, 스윽.
“괜찮아요. 아무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거예요.”
꾸욱. 꾸욱.
“유니도… 지금은 보고 있지 않아. 한눈 팔 여유가 없거든.”
어떻게 그들은 알고 있는 걸까.
누군가가… 말해준 걸까?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요.”
“안심하고 사정해도 괜찮아.”
그녀들은 그렇게 말하며 내 귀를 물었다.
“그러니까… 사정해줘, 에릭.”
“사정해줘요, 에릭 씨.”
찌익! 찍!
나는 볼품없이 몸을 비틀면서 사정하고 말았다.
“아하하!”
“아하하하….”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흐읏, 흐으….”
나는 그대로 등에 기댄 채 주르륵 흘러내려 주저앉았다.
그제야 눈을 뜬 내 시야에는, 세리아와 아린의 얼굴밖에 비추지 않았다.
그녀들은 내 시야 위에 존재했다.
“일어나요, 에릭 씨.”
“아직… 안 끝났잖아?”
그녀들은 30분이나 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돌아갔다.
“또 봐요.”
“또 봐.”
그녀들의 인사말은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혀버렸다.
“에릭, 나 왔어! …에릭?”
그로부터 또 잠시 뒤, 땀을 잔뜩 흘린 채 돌아온 유니는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나를 보고 놀라 뛰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유니….”
유니를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하지?
그녀들에게… 농락당했다고?
이 사실만큼은, 유니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
“에릭.”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무조건 나에게 말해줘.”
“…….”
그녀는 나를 일으켜 세워 침대 위에 눕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서로를 보며 자란 소꿉친구잖아. 그리고 지금은….”
쪽.
그녀는 내 입에 입을 맞췄다.
“…하나뿐인 연인이고. 그렇지?”
아직 나도, 그녀도 서로에게 고백을 한 적 없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유니가 나에게 처음으로 한 고백이었다.
“…응.”
나는 울면서 유니에게 안겨, 있었던 일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녀는 내 등을 쓸어주면서, 이 말만을 반복했다.
“그렇구나…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에릭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돼.”